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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255화 (255/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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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인근, 어딘지 모를 깊은 숲속.

해가 완전히 저물어 주위가 어둑해졌다.

자신들을 내버려달라는 후인 지부장의 절박한 요청에 나는 이내 사과로 운을 띄웠다.

“죄송하지만…….‘

그러자 후인 지부장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는 게 보였다.

동행한 응우옌 작전 본부장을 비롯한 다른 직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정은 이해하지만, 못 본 척 넘어가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른 지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

“…….”

단호한 내 대답에 모두 침묵했다.

하지만 후인 지부장은 포기하지 않고 나를 설득했다.

“물론 위약금이라면 드릴 수 있습니다. 기타 추가적인 보상 또한 충분히 지급해드릴…….”

“그런 걸로 되려나 모르겠군요. 허브 운영은 지부에 맡겼지만, 실질적인 소유권은 저희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걸 통째로 국제협회에 넘겼는데, 고작 위약금 몇 푼 받고 없었던 일로 하기엔 수지가 맞지 않죠.”

“…….”

잠시 침묵하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다는 건가요?”

“글쎄요.”

어깨를 으쓱이고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군요.”

“……예?”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제 대표도 아니고 지부 관리 책임자도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권한도 없죠. 이 건에 대해선 사무총장님께서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후인 지부장의 미간이 확 좁아졌다.

내게 있어 직급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러니까 당신 말씀은…… 이 자리에서 책임을 묻지 않으시겠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왜 굳이 여기까지 직접 오신 건지…….”

그가 말끝을 흐렸고,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저는 청소 지원 계약 건으로 온 겁니다.”

“예…?”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설명하자면 좀 복잡한데… 이번에 청소팀으로 발령 나면서 국제 던전 관리 업무를 같이 맡게 됐습니다. 그래서 일단 저희 소속 지부들 대상으로 청소 지원을 나온 겁니다.”

“고작 그걸로 직접 방문하셨다고요? 저흰 이제 카르마… 아니, WDSO 소속이 아니잖습니까.”

“뭐, 그 정도야 첫 개시 혜택인 셈 치죠.”

“하지만 저희도 청소 지원은 딱히 필요하지 않은…….”

“후인 지부장님.”

내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네.

“저는 베트남 지부의 문제를 공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예…? 뭐, 뭐… 그건 방금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도 그건 이해를…….”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공식적’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겁니다.”

“……!”

그 순간, 후인 지부장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이제 막 국제기구로 인정받은 이 상황에, 청소팀장인 제가 권한도 없는 일을 해결해주겠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요.”

“…….”

“그러니 여기서 확실히 대답해주셔야 합니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부장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이대로 국제협회에 잡아먹히실 겁니까, 아니면 지부장님 걸 되찾아 오시겠습니까?”

“…….”

후인 지부장은 대답 대신 옆에 있던 응우옌 작전 본부장과 직원들을 한 명씩 훑어보았다.

“저흰 여태까지 힘을 가진 이들에게 계속 휘둘리기만 했습니다.”

그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지부로 있었던 이 2년 동안은 저희 스스로 주권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모두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고, 당연히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할 필요도 없었지요.”

“…….”

“그러니… 또다시 누군가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군요.”

“그 말씀은?”

“청소 지원…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기다렸던 대답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얼마든지.”

그에게 악수를 건넸다.

***

“베트남 지부가 국제협회에 붙었다고?”

국제 던전 토벌 기구, WDSO 일본 도쿄 지부.

베트남 지부의 소식은 다른 지부에도 빠르게 퍼져 나갔고, 이내 하라무라 지부장에게까지 전달되었다.

“대체 왜? 베트남 지부면 한국과 신뢰 관계가 꽤 두터울 텐데?”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허브까지 통째로 넘어갔다는 걸 보면 작정하고 등을 돌린 것 같습니다.”

지원팀 소속의 히나 보좌관이 대답하자, 하라무라 지부장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대체 이게 뭔…….’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찬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본인도 그렇지만, 베트남 지부는 김준우에게 평생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

회생 불가능한 수준의 협회를 다시 일으켜준 것도 모자라, 나라 전체를 먹여 살리지 않았던가.

그런 지부가 이제 와서 김준우를 배신했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야.”

하라무라 지부장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이유라뇨…….”

“이전에 미팅에서 후인 지부장을 몇 번 만나봤는데, 돈이나 권력 때문에 도의를 저버릴 사람은 아니었어.”

“태어날 때부터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지부장 자리에 있다 보니 더 높은 곳에 욕심이 났던 게 아니겠습니까.”

“글쎄다. 단순히 김준우를 배신할 생각이었으면 그동안 충분히 기회가 있었을 텐데?”

“…….”

하라무라 지부장의 말에 히나 보좌관은 잠시 대답을 아꼈다.

그의 말에서 반박할 만한 점을 찾을 수가 없던 까닭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 올곧은 사람조차 김준우를 배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겠지.”

“그럼, 국제협회에서 무슨 수작이라도?”

“그러지 않았겠냐. 다른 건 몰라도 허브는 욕심이 날만 하잖아. 그게 아니면…….”

하라무라 지부장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일부러 한국 본부를 고립시키려고 하는 걸 수도 있고.”

“…….”

그러자 히나 보좌관의 표정이 굳었다.

“아무리 국제협회라고 해도… 굳이 그렇게까지 할까요.”

“자국을 상대로 쿠데타도 감행한 놈들이야. 그 정도는 충분히 하고도 남지.”

“……그럼, 언젠간 저희 지부에도 손을 뻗을 수 있겠군요.”

“우리뿐만이면 다행이지.”

하라무라 지부장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다른 지부들에도 연락해놔. 국제협회에 약점 잡힐 만한 건 모조리 처리해두라고. 그리고… 우리도 준비를 해두자고.”

“준비라면…?”

“그놈들이 우리 쪽에 물고 늘어질 만한 게 뭐가 있지?”

그가 묻자, 히나 보좌관이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베트남 지부의 허브를 통째로 가져갔다는 걸 보면… 저희 쪽에선 하라무라 공방의 간판을 노리지 않을까요?”

“음, 확실히 그럴 확률이 높겠네.”

“하지만 그렇다면 저희도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만약 국제협회가 하라무라 공방을 빌미로 협박이라도 한다면…….”

“흐음…….”

하라무라 지부장이 작게 신음했다.

만약 하라무라 공방과 일본 지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확실히 그건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지금이야 본인이 지부장으로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임시일 뿐이다.

더 어울리는 이가 나타나면 언제든 자리를 물려줄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하라무라 공방은 다르다.

공방의 대표는 아직 하라무라 자신이며, 몇 대를 이어온 가업인 만큼 앞으로도 본인이 책임지고 이어가야 할 유산이니까.

언젠간 물러나야 할 지부와 평생을 책임져야 할 공방.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상식적으로 후자의 편을 들어주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까짓 간판이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어. 원한다면 그냥 줘버려.”

하라무라 지부장은 이미 각오를 한 듯했다.

“저, 정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공방을 넘겨주는 건…….”

“그래 봤자 이름뿐인 공방이야. 물론 나도 이전까지는 가업의 명예니, 장인정신이니 떠들어 댔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런 걸 챙길 만큼 멍청하진 않아.”

하라무라 지부장은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린 절대 그놈들 손에 놀아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히나 보좌관은 그의 뜻을 받아들였다는 듯, 작게 고개를 꾸벅였다.

그렇게 그녀는 사무실을 나섰다.

그 직후 하라무라 지부장은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대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나저나…….”

그리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국 본부에서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국제협회로부터 다시 빼앗아 오기엔 아직 본부가 자리를 못 잡은 상황이고, 그렇다고 내버려 두기엔 사안이 심상치 않다.

물론 김준우의 성격상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이다.

분명 뭔가 손을 써도 쓰겠지.

하지만 그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지, 어떤 방법을 쓸지, 그로서는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았다.

***

다음 날, 하노이 지부.

“반갑습니다. 국제 던전 및 헌터 관리 협회 기획재정부 소속, 션이라고 합니다.”

후인이 업무를 보고 있던 그때, 지부장실로 한 남자가 찾아왔다.

자신을 대뜸 션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곧장 후인 지부장에게 악수를 건넸다.

후인은 담담하게 그의 인사를 받아들였다.

“오신다는 연락 받았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베트남 지부가 저희와 함께해주신다는데, 당연한 일이죠.”

가식이 넘쳐흐르는 대화에 후인은 속으로 실소를 뱉었다.

션이 먼저 본론을 꺼내 들었다.

“연락받으셨다니 아시겠지만, 오늘부로 베트남 협회는 공식적으로 국제협회 소속이 되었습니다.”

“……네.”

“작전팀을 비롯한 지원, 통제, 재무, 사업부 등 모든 부서에 국제협회 소속 직원들이 배치될 겁니다. 물론… 최고 운영 책임자 자리 또한 포함해서.”

“그럼, 저는 이제 해고당하는 겁니까?”

“하하하,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그저 지부장님 자리만 잠시 빌릴 뿐입니다. 그래도 2년 가까이 지부를 이끌어주셨던 분인데, 그렇게 내칠 리가 있겠습니까.”

션이 생색을 내며 말을 이었다.

“후인 지부장님께선 남아 계셔도 됩니다. 물론 직급과 직책은 조금 달라지겠지만.”

“…감사합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를 전하는 게 맞나 싶었지만, 딱히 지금 상황에 할 말도 없었다.

“음? 아직 볼일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때, 션이 익살스러운 표정과 함께 손가락을 슥슥 비비며 말했다.

“허브 운영권 말입니다.”

“아.”

후인은 깜빡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한 장의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다름 아닌, 허브 운영권 위임에 대한 계약서였다.

션은 미소와 함께 자신의 만년필로 계약서에 사인을 휘갈겼고, 곧바로 후인과 위치를 바꿨다.

지부장 자리에 선 션과 사무실 문 앞에 선 후인.

비로소 뒤바뀐 위치에 후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전 이만…….”

하지만 그것도 잠시, 후인은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사무실 문을 열었다.

“아, 혹시 말입니다.”

그때, 무언가를 잊은 듯 다시 고개를 돌려 션 지부장을 향해 물었다.

“청소팀도 인원 교체가 있습니까?”

“청소팀…?”

션 지부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청소팀은 예정이 없습니다. 뭐 누굴 쓰든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다른 건 아니고… 사실 당신이 오기 전에 청소 지원 계약을 받아 놨습니다.”

“……청소 지원?”

“인원 교체 예정이 없다고 하시니, 계속 쓰시면 될 것 같군요.”

의미심장한 말을 뒤로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션 지부장이 그 말의 꿍꿍이를 생각해보기도 전에 한 젊은 여성이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섰다.

“당신이 새로운 지부장님이신가요?”

션 지부장은 처음 보는 얼굴에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누구……?”

“이번에 청소 지원으로 베트남 지부에 파견된 청소 3팀 총 책임자, 이아영입니다. 지부 소속은 아니지만,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며 싱긋 웃었다.

션 지부장은 대체 뭔가 싶었지만, 그것도 잠시.

“예, 뭐… 잘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제가 청소팀 업무까지 신경 쓸 일은 없겠지만.”

“알고 있어요. 아, 그래도 이 서류는 바로 결재 부탁드려도 될까요? 업무 투입 전에 이것저것 허가가 필요해서 말이죠.”

“음…?”

션 지부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아영 본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지고 온 서류를 내밀었다.

그리곤 꽤나 사무적인 말투로 보고를 시작했다.

“청소팀 일정과 작업 방식에 변경이 있을 예정이라서요. 장비랑 인원도 소소한 개편이 있을 거라, 한번 자세히 읽어보시고…….”

“됐습니다.”

션 지부장은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서류를 읽어보지도 않고 곧장 사인을 휘갈겼고, 이내 퍽 귀찮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청소 쪽 업무는 알아서 하세요. 그리고… 청소 일로 여기까지 올라오지 마시고 후인 씨랑 상의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주의할게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길 한 차례.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션 지부장님.”

이아영 본부장은 사무실을 나섰다.

그와 동시에 줄곧 참아왔던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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