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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무라 공방의 대표이자 WDSO 일본 지부장, 하라무라 류헤이. 대량의 옥타보이드암페타민 유통 정황 포착.」
“이, 이게 무슨…!
내일 날짜가 찍힌 신문의 헤드라인을 확인하자마자, 하라무라 지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개수작 부리지 마! 이런 게 먹힐 것 같아?! 증거가 어디 있다고…!”
“증거……? 그래요, 증거.”
클로이 팀장이 하라무라를 바라보며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까짓 증거, 못 만들 것 같나요?”
“……!”
“지금쯤 지부장님 댁에 택배가 도착했을 겁니다. 뭐, 내용물은… 굳이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죠?”
하라무라 지부장의 얼굴이 바싹 굳었다.
던지기.
마약을 구매자에게 직접 유통하지 않고 특정 장소, 혹은 제삼자에게 넘기는 행위.
대개 마약 구매 현장을 들키지 않으려고 쓰는 수법이지만…….
공급책이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의도적으로 수사 타깃을 돌리기 위해 유통 루트가 포착된 마약을 특정 인물에게 고의로 떠넘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다시 말해 이 순간 일본 지부의 총 책임자가 하루아침에 마약 유통에 연루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집에서 마약이 발견됐다고 해서 무조건 지부장님의 유통 혐의가 입증되는 건 아니겠죠. 조사를 해보면 던지기를 당했다는 건 금방 드러날 겁니다.”
클로이는 크게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말했다.
물론 그 말이 하라무라 지부장에게 위로가 될 리는 없었지만.
“……그걸 알면서도 던진 거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거냐?”
“뭐, 아시다시피 마약 범죄는 구속 수사가 원칙입니다. 내일 지부장님이 체포되시면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최소한 반년은 구치소에 계실 겁니다. 뭐, 운이 나빠서 결백이 입증되지 않으면 영영 못 나오실 수도 있고.”
“…….”
“그사이 중독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테고, 총 책임자가 자리에 없으니 지부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겁니다. 만약 중독자들이 폭주까지 하게 되면 더는 작전을 진행할 수 없게 되겠죠.”
말을 잇던 클로이가 이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 같나요?”
하라무라 지부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클로이가 본론을 꺼내 들었다.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저흰 일본 지부를 원합니다. 한번 신중하게 고민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아쉽게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진 않겠군요.”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목적은 지부였다.
“내일 아침, 이 신문이 일본 전역에 뿌려지기 전까지 연락 주세요. 더 늦으면 지부가 아수라장이 되는 걸 구치소 안에서 구경하시게 될 겁니다. 이도 저도 싫으시면 그 안에 공급책을 잡으시던가.”
“…….”
“뭐가 됐든 빨리 선택하셔야 할 겁니다. 이제 14시간 남았으니 말이죠.”
클로이는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책상 위에 놓고는 곧바로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히나 보좌관이 핸드폰을 들었다.
“지, 지금 대기 중인 작전팀 전부 본부 앞으로 보내주세요! 지금 나가는 사람, 반드시 잡아야…!”
“아서라. 소용없는 짓이야.”
클로이 팀장을 붙잡기 위해 급하게 지원을 부르려고 한 것이지만, 하라무라 지부장이 제지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네, 네? 그게 무슨 말씀…….”
“지금 저놈을 잡아봐야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아니 애초에 잡을 수 있는 놈도 아니고.
하라무라 지부장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장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클로이는 본인이 공급책이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국제협회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집으로 보낸 물건이 마약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나올 수 있다는 건 이미 고위 인사들도 포섭해놨다는 거겠지.
무엇보다 여기서 저놈을 잡는다고 한들, 이 신문은 예정대로 내일 발행될 것이다.
‘빌어먹을…….’
일주일 내내 수사를 했는데도 단서 하나 못 찾았는데, 14시간 안에 잡을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결국, 우리 순서가 이렇게 오는군…….’
지부가 망가지게 두느냐.
아니면 지부를 넘기느냐.
베트남 지부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해결할 방법이 있는 건가.
하지만 고민을 거듭하면 할수록 머릿속만 하얘졌고, 그렇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게 된 그때였다.
“지, 지부장님.”
직원 하나가 집무실로 들어오며 그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지금 공항에서 연락이 왔는데…….”
“공항…?”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친 듯, 그의 얼굴에 순식간에 생기가 돌았다.
김준우.
그가 일본에 온 게 틀림없다.
그래, 그가 나선다면 어떻게든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분명 어떻게든 될 것이다.
“김 대표가 입국한 거냐? 뭐 하고 있어! 지금 당장 데리러 가야…!”
“그, 입국하신 건 맞는데…….”
이내 직원이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지금… 출입국 관리소에 구금되셨답니다.”
“……?”
뭐?
***
하네다 공항, 출입국 관리소.
“아니, 구금당한 이유라도 좀 압시다. 불과 몇 달 전에도 문제없이 입국했었는데, 대체 왜 입국이 안 된다는 겁니까?!”
나는 참다못해 관리소 직원을 향해 언성을 높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조사 중이니 기다려주세요.”
“……하아.”
벌써 이곳에 억류된 지 3시간이 지났지만, 그동안 들은 말이라곤 저게 전부였다.
하지만 조사 중이라는 말과 다르게 우리에겐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그저 방치한 채 내버려두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뭘까요……?”
자리로 돌아와 앉자, 김민주가 넌지시 물었다.
그녀 또한 지금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듯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동행한 청소 3팀원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본부에는 연락해 보셨나요?”
“했는데…… 그쪽에서도 이유를 모르겠단다. 비자 문제인가 싶어서 외무성에도 알아봤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럼…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아니면 만들고 있을 수도 있고.”
내 대답에 김민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우리가 대체 뭘 했다고…….”
“뭘 해서 그런 게 아니라, 뭘 할까 봐 그런 걸 수도 있지.”
“……네?”
나는 관리소 직원과 팀원들을 한 번씩 바라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일본에 입국하는 걸 막고 싶어 하는 놈들이 있는 것 같네.”
“…….”
그 말에 그녀가 대답을 아꼈다.
뭐, 굳이 말을 꺼낼 필요도 없이 누굴 지칭하는 건지 자명했으니.
애초에 한 나라의 부서를 끌어들일 수 있는 이들이 그들 말고 누가 있겠는가.
“얼마나 더 여기에 있어야 할까요?”
“그건… 내가 더 알고 싶다.”
한숨을 팍 내쉬며 대답했다.
답답한 건 둘째치고 상황이 어떤지라도 알고 싶은데.
이곳에 꼼짝없이 붙잡혀 있는 한,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따르릉―.
팔짱을 낀 채 하염없이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김 대표, 하라무라일세.」
다름 아닌, 하라무라 지부장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아, 마침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저희가 오늘 지부로 찾아뵈려고 했습니다만, 지금 출입국 관리소에 구금이 돼서…….”
「이야기는 들었네. 우리 쪽에서도 가능한 한 조치를 했지만, 아무래도 외압이 작용하고 있는 모양이야.」
“뭐, 놀랄 일도 아니군요.”
그럼 그렇지.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별다른 반응 없이, 곧바로 본론부터 물었다.
“지금 지부 상황은 어떻습니까?”
「……좋지 않아.」
“좋지 않다뇨? 중독자가 그새 더 늘어나기라도 했습니까?”
「그것도 그거지만…… 국제협회 쪽 사람이 찾아왔었네.」
“……!”
순간 내 미간이 확 좁아졌다.
그들이 지부로 직접 갔다는 건, 본격적으로 지부를 빼앗기 위해 손을 쓰기 시작했다는 의미였으니까.
「김 대표도 예상했겠지만, 지부를 넘기라고 요구했네.」
“조건은요?”
「내일 아침 신문에 내가 보이드를 유통했다는 기사가 나갈 걸세. 던지기를 당했거든.」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던지기라…….’
그렇게까지 준비해온 건가.
“혐의 입증은 둘째치고, 구류되시면 몇 개월은 밖에 나오기 힘드시겠군요.”
「내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지부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테지.」
“그걸 노렸군요. 지부가 약쟁이 소굴이 되는 걸 지켜보든가, 아니면 곱게 지부를 넘기든가.”
「그래…….」
하라무라 지부장의 목소리가 팍 가라앉았다.
「물론 그 안에 공급책을 잡는다면 어떻게 해볼 수도 있겠지만…… 이미 고위 인사들을 포섭한 이상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네.」
“신문 발행까지 몇 시간 남았죠?”
「14시간… 아니, 이제 13시간 남았군.」
“하, 그래서 이렇게…….”
나는 통화를 하다 말고 관리소 직원을 슬쩍 흘겼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리죠.”
「그래, 기다리고 있겠네.」
전화를 끊고는 곧바로 김민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알겠네.”
“네?”
“13시간이 지나면 하라무라 지부장은 체포될 거야. 그 안에 지부를 넘길지 말지 선택하라는 거지.”
“그게 무슨…….”
“혹여나 그 시간 동안 우리가 공급책을 찾아낼 것을 막으려고 여기에 붙잡아두고 있는 것 같아.”
“…….”
김민주의 얼굴이 바짝 굳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여기 잡혀 있는 한 도와줄 수도 없고. 하라무라 지부장님이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한테는 최악의 상황이 될 텐데…….”
“흐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나올 줄이야.
베트남 때와 같이 어중이떠중이들의 머릿속에서 나올 법한 작전이 아니다.
준비 단계에서부터 작정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
박인범 사무총장의 말대로 꽤나 거물이 움직이는 모양이다.
‘쯧…….’
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최소한 팀원들이라도 나갈 수 있다면 지시를 내려서 뭐라도 해보겠는데, WDSO 소속이라면 아무도 못 나가게 하고 있으니…….
일 났군.
나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황.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공항에 던전이라도 생기길 바라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다.
방법을 찾아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리를 굴려대던 그때.
한 인물이 머릿속으로 번뜩 스쳐 지나갔다.
그래… 그라면 이 상황을 해결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런 일로 연락드리는 건 꽤나 송구하긴 해도 어쩔 수 없지.
잠시 망설이던 끝에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김준우입니다. 혹시 지금 통화 괜찮으십니까?”
「아, 예. 말씀하세요.」
긴장된 목소리로 첫마디를 떼자, 곧바로 돌아온 대답.
“지금 문제가 좀 생겨서…….”
나는 천천히 본론을 꺼내 들었다.
“대통령님이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