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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우와의 통화를 마친 클로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몸을 숨기고 있는 세이프 하우스, 그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바닷가.
클로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길 잠시, 다시 세이프 하우스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중요한 전화였나 봐요?”
“……!”
어째선지 에마 대표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동시에 클로이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떨리는 손을 애써 꽉 쥐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남자친구입니다.”
“흠?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처음 듣는데.”
“뭐…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아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
에마 대표가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됐어요. 직원 사생활까지 뭐라 할 생각은 없어요.”
이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에마 대표는 관심 없다는 듯, 먼저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이를 지켜보던 클로이는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깊은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때.
“아, 그 무사시노 신문사 말인데…….”
에마 대표가 순간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클로이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네…?”
“기사 내용 컨펌했어요? 3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아…….”
점점 멘탈이 흔들렸지만, 클로이는 정신을 꽉 붙잡고 대답했다.
“아뇨. 이미 기사 전문을 건네줬으니 따로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에이, 그래도 중요한 일인데 최종 확인은 했어야죠.”
“…죄송합니다.”
“사과할 것까진 없어요. 뭐, 지금이라도 가서 확인해보죠.”
“……네?”
에마 대표의 말에 클로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뭘 그렇게 놀래? 확인하자는 게 그렇게 이상해요?”
“아, 아니 그게… 어차피 지금쯤이면 인쇄도 다 마치고 발행 준비 중일 텐데 굳이 지금 가서 확인하실 필요가 있나 해서요.”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예요. 물론 문제는 없겠지만, 마지막에 확인하고 안 하고는 또 큰 차이가 있으니까.”
“그, 그렇긴 하지만…….”
클로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에마 대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이렇게 말리려는 거죠? 내가 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잠깐, 당신 설마…….”
그 순간, 에마 대표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을 끊었다.
“귀찮아서 그런 건가?”
“……아, 하하. 사실 조금 피곤하긴 했습니다.”
“뭐, 그럴 만도 하지. 그럼 클로이 팀장은 여기 남아 있어요. 나 혼자 갔다 와도 되니까.”
에마 대표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등을 돌렸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클로이 팀장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빌어먹을…….’
이건 심장이 몇 개라도 모자랄 판국이다.
그녀가 김준우에게 무사시노 신문사에 대해 알려준 건, 당연히 이제 와서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지금이라도 선한 일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말했듯, 그녀는 보다 자신에게 이득이 될 만한 일을 선택했을 뿐이다.
국제협회는 현재 프랑스를 거점으로, 거대한 중앙 권력을 내세우고 있다.
뱅크 아이템을 이용한 중앙 통제는 그 효과가 점점 드러나고 있으며, 이에 뒤늦게 국제협회에 협력하는 국가 또한 늘어나고 있다.
다시 말해 전 세계를 국제협회 통제하에 두는 건 시간문제라는 뜻이다.
그래, 시간문제였다.
김준우, 그 인간만 아니라면 말이지.
여태껏 몇 번이나 그의 실력을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전무후무한 이레귤러.
분석 자체가 불가능한 능력자.
청소부 출신으로 시작해서 아무런 인맥도, 자본도 없이 단 2년 만에 세계 최고의 민간 기업을 키워낸 인물.
현재는 세계 각국에 지부를 세우고, 수천 명에 달하는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자.
무엇보다 공포정치나 압박 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고, 덕분에 모든 지부, 모든 직원이 진심으로 그를 믿고 따르고 있다.
이미 그에 대한 수식어는 명불허전이 되었다.
물론 국제협회 입장에선 너무나 큰 걸림돌이었다.
모든 인력과 지원을 쏟아부어 계속해서 그를 견제하고 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지…….’
확신할 수 있다.
김준우가 살아 있는 한, 국제협회는 언젠가 반드시 무너진다.
김준우의 손에 의해, 그리고 김준우가 가진 영향력에 의해서.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노선을 갈아타는 게 현명한 일이리라.
물론 그동안 PB 코퍼레이션에서의 업무가 자신과 맞지 않은 이유도 있긴 했지만.
뭐, 이것도 어디까지나 직장일 뿐이다.
비전에 따라 직장을 옮기는 건 당연한 권리이지 않은가.
다만 문제는…….
‘걸리면 뒤진다는 거지.’
클로이의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것보다 빨리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에마 대표가 무사시노 신문사로 간다면 김준우와 마주치게 된다.
그랬다간 시칠리아에서 미처 끝을 보지 못한 전쟁이 다시금 시작될 것이다.
아니, 둘이 싸우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이 만나면, 본인이 무사시노 신문사에 대해 알려줬다는 게 바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에마 대표를 말려야 하나?
아니, 그럴 명분이 없다.
그러면 김준우한테 연락해서 지금은 피해 있으라고…….
‘그걸 들어 처먹을 리가 없잖아…….’
그놈들도 일분일초가 급박한 상황이다.
이제 와서 가지 말라고 해봐야 곧이곧대로 따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도망치자.’
그래.
그냥 지금 도망치자.
차라리 자리를 비운 지금이 기회다.
일단 몸을 숨기고, 상황이 잠잠해지면 그때 다시 김준우에게 연락하면 된다.
아무리 적이었다고 해도 본인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모른 척하진 않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클로이는 짐을 챙기기 위해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필요한 것만 대충 챙겨서 일단 일본을 뜨자.
그렇게 생각하며 사무실의 문을 여는 순간.
“정말이지…….”
마치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여성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예상을 벗어나질 않네.”
“…….”
웨슬리 사무총장의 오랜 친구이자, PB 코퍼레이션의 수장.
과거 세계 랭킹 1위를 10년간 지켜온 헌터.
에마 대표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
도쿄 인근, 무사시노시.
그곳에 위치한 무사시노 신문사 본사.
그렇게 유명한 신문사는 아니지만 연예인의 열애설, 정치인의 불륜 등 늘 자극적인 기사로 여러 대형 스캔들을 터트리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꽤나 적절한 곳을 골랐다는 생각과 함께 신문사 안으로 들어섰다.
먼저 도착한 김민주와 팀원들에 의해 난장판이 된 인쇄소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 깽판을 쳤군…….’
천천히 둘러보다가, 이내 한 구석에서 신문을 확인하고 있던 팀원들과 마주했다.
“좀 살살들 하지, 뭐 이렇게…….”
“선생님…….”
그들에게 다가가며 말을 걸자, 김민주와 팀원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내 말을 끊었다.
그리고 이내.
“여기… 아니에요.”
김민주가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뭐…?”
“하라무라 지부장 기사 발행할 신문사… 여기 아니라고요.”
“그게 대체 무슨…….”
김민주는 대답 대신 들고 있던 신문을 나에게 건넸고, 곧바로 그것을 낚아챘다.
그리고 확인한 기사 내용은…….
「연예인 A양의 사생활 폭로.」
“시발…….”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뒷장도 모조리 확인했지만, 하라무라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래도 클로이가 우리를 속인 거 같아요.”
“…….”
아니.
굳이 본인의 연락처를 남기면서까지 함정을 팔 이유가 없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결과는 매한가지였을 테니까.
이거는…….
“……걸려들었네.”
“네, 네?”
“클로이가 국제협회를 배신할 거라는 걸 알고, 일부러 그쪽한테도 거짓 정보를 흘린 거야.”
“대체 왜요…?”
“왜긴.”
우리를 일부러 여기로 부르려고 한 거겠지.
그리고 이런 짓을 할 만한 인간은…….
“오랜만이네요.”
때마침 뒤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이거 미안해서 어떡해?”
PB 코퍼레이션의 수장.
에마 대표가 서 있었다.
“…….”
“나 찾던 거 아니었어요? 표정이 왜들 그래.”
“어떻게 알았습니까?”
“뭐? 클로이가 뒤통수를 칠 거라는 거?”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요즘 들어서 낌새가 영 안 좋았거든. 저번 홍콩 지부 때도 독단적으로 당신한테 연락했더라고.”
“고작 그거 하나로 이렇게까지 준비했다는 겁니까?”
“물론 그거 하나 때문만은 아니죠. 애초부터 우리 쪽이랑 잘 안 맞는 것 같기도 했고. 그리고 원래 나이를 먹다 보면 그… 감이라는 게 있어요.”
에마 대표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클로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죽였어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라고 말하고 싶은데,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못 죽여요. 뱅크 아이템 컨트롤 센터 가동 키를 그년이 가지고 있거든.”
에마 대표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그걸 알아내야 죽이든 말든 할 텐데……. 뭐, 어쨌든 지금은 살아 있어요. 어디에 좀 매달려 있긴 한데.”
“…….”
“왜, 동료인 척 좀 했다고 이제 와서 갑자기 걱정돼요?”
에마 대표가 비꼬았지만, 나는 대답 대신 실소를 뱉었다.
그럴 리가.
클로이의 상태를 물어본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들키면 바로 죽을 수도 있는 짓을 왜 한 건가 궁금했으니까.
뭐, 듣자 하니 보험이 있었군.
설령 들킨다고 해도 가동 키를 쥐고 있는 한 바로 죽이진 못할 걸 알고 있었던 건가.
“아무튼, 그년 얘기는 됐고. 그래도 시간도 모자랐는데, 여기까지 온 건 꽤나 대단했어요.”
이내 에마 대표가 내게 다가오며 대놓고 조롱했다.
나는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했고…….
이미 발행 시간이 10분이나 지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끝났다.
이제는 더 이상 막을 방법이 없다.
그렇게 천장을 바라보며 분노 섞인 한숨을 토해내길 한 차례.
“그래서? 시간도 다 지났는데, 굳이 내 앞에 나타난 이유는 뭡니까. 약 올리는 겁니까?”
“뭐, 그것도 있고…….”
내가 쏘아대자, 에마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번에 못 끝낸 일, 이번에 끝낼까 해서.”
“…….”
그녀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지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 저랑 여기서 싸우겠다는 겁니까?”
“그럼, 뭐 대화로 끝낸다는 뜻일까 봐?”
“잘해오다가 끝에서 실수하시는군요. 당신이 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여기서 에마 대표를 붙잡으면, 불리한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거다.
내게 있어선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는…….
“하하, 하하하!”
“……?”
“설마 내가 그것도 모르고 왔을까 봐?”
그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제야 나 또한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날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걸 그녀 또한 모를 리가 없다.
무엇보다 여기서 붙잡힌다면 지금껏 준비해온 일들이 모조리 도루묵이 될 거라는 것도.
그럼에도 당당히 내 앞에 나타났다는 건…….
‘시발, 설마…!’
푹―.
그 순간, 에마 대표가 자신의 팔뚝에 주사기를 꽂아 넣었다.
[고유 스킬 : 병기 확보 - 각성]
[조정간 - 투하]
[시전자의 각성 스킬이 시전이 확인되었습니다.]
[고유 화기에 접속합니다.]
이윽고 그녀의 눈이 푸른빛으로 번뜩였다.
[접속 확인.]
[생체 - 화기 원격 투하 프로토콜 개시]
그녀의 전신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기어이 보이드까지 투약하다니…….
진심으로 여기서 끝장을 볼 생각인 건가.
“김민주…….”
에마 대표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팀원들 데리고 최대한 멀리 대피해.”
“네, 네…!”
“아, 그리고 만약에 내가 죽으면…….”
그들이 곧바로 몸을 움직이려던 그때, 내가 말을 이었다.
“청소용품 사느라 대금 밀린 거 있거든? 그거 대신 좀 갚아주라.”
“…….”
김민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팀원들을 데리고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갈 뿐이었다.
“그럼…….”
이윽고 나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고유 스킬 : 마왕 - 각성]
[각성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시전자는 기존의 클래스를 초월합니다.]
“우리 대표님 실력 좀 보죠.”
[각성 클래스 : 절대 군주]
여유 부릴 틈도 없이, 곧바로 전력을 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