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272화 (272/366)

272

272

PB 코퍼레이션.

국제협회의 산하 비밀 조직이자 암살, 납치, 적대적 인수합병 등 음지에서 국제협회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활동하는 기구.

에마가 처음 웨슬리 사무총장에게 처음 그곳의 대표직을 제안받았을 땐, 솔직히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마침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토벌에도 질린 참이었다.

무엇보다 그맘때쯤 헌터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왜 약자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

그런 회의감.

그 때문에 국제협회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조직은, 당시 그녀에게 있어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에마 대표는 웨슬리의 제안으로 PB 코퍼레이션의 수장이 되었다.

처음 몇 년은 예상했던 대로 무척이나 적성에 맞았다.

그저 희생을 강요당하던 헌터와 다르게, 그곳은 힘과 실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했으니까.

마치 이 세상의 꼭대기에 선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오롯이 본인의 판단에 따라 헌터든, 정치인이든 전 세계 그 누구라도 죽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왕의 기분 또한 오래가진 않았다.

또다시 몇 년이 지나, PB 코퍼레이션에서 처리해온 이들이 세 자릿수를 넘어갈 때쯤 되니 또다시 지루함이 찾아온 것이다.

이곳도 결국 직장이었고, 아무리 특별한 일을 한다고 해도 결국 일일 뿐이었다.

이젠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아무런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싸움과 지배에 대한 욕망을 애써 참아가던 그때.

김준우가 나타났다.

당연히 처음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청소부 출신의 이레귤러라고 해봤자, 누가 관심이나 두겠는가.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뀌게 될 때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본인과 웨슬리가 쌓아 올린 걸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리는 그를 보며, 에마 대표는 확신했다.

PB 코퍼레이션이고 국제협회고, 저 남자가 살아 있는 한 그 누구도 정점에 설 수 없다는 것을.

그래.

완전한 정점에 서기 위해선, 반드시 김준우를 넘어서야 한다.

어차피 그를 넘지 못하면 평생 이인자 신세일 것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싸우다 죽는 것이 낫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기어이 그 기회가 찾아왔다.

에마 대표는 시칠리아에서 보지 못한 끝을 여기서 보겠노라 다짐했다.

마침 보이드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개량을 통해 폭주 위험성을 낮추고, 대신 이능력과 함께 동체 시력과 판단력 등 전반적인 전투력을 대폭 상승시킨 물건이다.

김준우가 아무리 규격 외의 괴물이라고 해도 최소한 비벼볼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쿨럭…!”

에마 대표의 입에서 핏덩이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던전 속에 들어온 듯, 현실과는 전혀 다른 공간.

거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그 어두운 절벽 위.

크르르르―.

키에에에에―!

에마 대표의 눈앞에는 수백, 수천 마리의 몬스터.

그리고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 믿긴 힘든 모습의 김준우가 자신을 집어삼킬 듯 진을 치고 있었다.

이제 겨우 한 번 진격해온 뒤였다.

온 힘을 끌어모아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몬스터를 어떻게든 처리해나갔지만…….

“…흐, 흐흐흐.”

역부족이다.

절대 이길 수가 없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멀리서 군단을 지휘하고 있는 김준우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건 전투가 아니다.

상식을 벗어난 존재와 그가 이끄는 대규모 군단을 혈혈단신으로 상대하는 게 어떻게 전투인가.

학살이라면 또 모를까.

그가 여태껏 몇 번이나 다른 존재를 이 공간에 초대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 모두가 이 말도 안 되는 전장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며 죽어갔을 거라 생각하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하물며 그게 몬스터라고 해도.

“나름 철저하게 분석했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과소평가였나 보네.”

한쪽 팔을 잃은 그녀가 자리에 주저앉은 채 입을 열었다.

“이렇게 압도적으로 당한 건 그 사람 이후로 처음이야.”

“…그 사람이라면?”

“웨슬리.”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이내.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에마 대표가 친근한 말투로 물었다.

“이 정도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 살아?”

“…무슨 말입니까?”

“청소부 출신이었다면서? 이 정도 힘을 가지고 있으면 높은 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었잖아. 왜 굳이 그런 밑바닥을 선택한 거냐고.”

“…….”

김준우의 표정이 꽤나 복잡해 보였다.

하지만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주진 않았다.

그 대신.

“업보입니다.”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청소부가 딱히 밑바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솔직히 따지고 보면 힘도 권력도 모두 가진 당신들마저 제 역할은 미뤄두고 다른 짓에 힘을 쏟고 있지 않습니까. 최소한 제가 일했던 곳은 그러진 않았습니다.”

김준우가 말을 덧붙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시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본인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나름 국제협회 소속인 당신과는 다르게요.”

“…….”

“누가 더 밑바닥 인생인 것 같습니까?”

그 물음에 에마 대표가 피식, 실소를 뱉었다.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그건 그냥 다른 짓을 할 힘이 없는 인간들의 변명이야. 너도 알잖아. 원래 세상은 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돌아가고, 우린 그걸 누릴 권리가 있다는 거.”

“…….”

김준우는 대답을 아꼈다.

그 틈에 그녀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너도 우리랑 같이 일했으면 좋았을 텐데. 너 정도 실력이라면 정말 혼자서도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었을지 몰라.”

“…….”

“어때, 지금이라도 우리랑…….”

“그러려고 했습니다.”

“뭐…?”

그리고 그때,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과거엔 당신들, 국제협회와 같이 세상을 다 먹을 생각이었다고요.”

“그럼 왜…….”

“왜 지금은 당신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요?”

그의 목소리가 무겁게 울려 퍼졌다.

“내가 꼭대기에 서려고 했던 건, 작전에 방해되는 놈들을 모조리 쳐내고 싶어서였습니다. 한때는 청소팀이 그중 하나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이내 김준우의 시선이 에마 대표를 향했다.

“알고 보니 진짜 방해되는 놈들은 따로 있더군요.”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힘 있는 자의 권리? 초등학생입니까? 애초에 내가 그딴 거에 관심이 있었으면 정치를 했지, 헌터를 했겠습니까?”

“…….”

“날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으면, 국제협회는 맡은 바 역할을 다하셨어야 했습니다. 시민을 지키는 일 말입니다.”

김준우의 그 말에 에마 대표가 고개를 떨어트리길 잠시.

“흐, 흐흐흐…!”

그녀가 흐느끼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

“아무래도 우린 평생 가도 서로를 이해 못 할 것 같아.”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왕 시작한 거 진짜 꼭대기까지 가봐. 근데 웨슬리, 그놈은 조심해야 할 거야. 겁쟁이 새끼인데, 실력 하나는 좋거든.”

“…항복하려는 겁니까?”

“하면 살려주게?”

“하라무라 지부장의 혐의를 풀어주고, 보이드 유통 및 민가 습격에 대한 모든 책임을 국제협회가 지겠다고 약속한다면…… 못할 것도 없죠.”

김준우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힘들 것 같네.”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에마 대표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고유 스킬 : 병기 확보 - 각성]

[조정간 - 투하]

[시전자의 각성 스킬이 시전이 확인되었습니다.]

[고유 화기에 접속합니다.]

다시 한번 전신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이윽고 모든 힘을 끌어모아 김준우를 향해 공격을 시도했지만.

키에에에에―!!

크아아아아―!

수천 마리의 마물들이 곧바로 김준우를 향해 몸을 던졌다.

콰과광―!!

그렇게 그녀의 마지막 공격은 김준우에게 채 닿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날아갔다.

“하하…….”

포기한 건지, 아니면 마지막 희열을 느낀 건지 모를 웃음소리가 들려오길 한 차례.

[고유스킬 : 마왕 - 독재자]

[시전자의 상념에 따라 일회용 스킬을 제작합니다.]

[스킬 제작 중.]

[스킬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카르마]

───!!

이윽고 거대한 업화가 그녀를 집어삼켰다.

***

“…….”

방금까지 에마 대표가 서 있던 곳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전생에서 나를 죽이고, 여기서도 수십 명의 사람을 죽여 온 국제협회의 산하 조직, PB 코퍼레이션.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조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것으로 하라무라 지부장의 혐의도 무사히 벗을 수 있을 것이고, 일본 지부도 무사하겠지.

내 복수를 달성한 건 덤이고.

“…….”

싸움은 끝이 났지만, 그럼에도 나는 고유 전장에서 나오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기뻐해야 마땅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한 건 처음이었으니.

막상 입 밖으로 꺼내고 보니, 지난 기억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어질렀다.

“쯧…….”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나는 이내 고개를 털며 잡념을 닦아냈다.

그 후 스킬을 거두자, 이내 검은 하늘에 가려졌던 일본의 밤하늘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선생님…!”

김민주가 한걸음에 나를 향해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어.”

“자, 잠깐만요! 파, 팔이…!”

“괜찮다니까.”

크게 찢어진 탓에 피가 나고 있었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뭐가 그리 대수겠는가.

그럼에도 김민주는 자신의 소매를 찢어 내 팔을 지혈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지금은 그냥 내버려 뒀으면 했지만, 아쉽게도 그녀를 뿌리칠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기에 잠자코 있었다.

그러고 있자니, 그녀가 넌지시 물었다.

“몸 생각 좀 하세요. 아픈 채로 돌아가면 억울하잖아요.”

“……?!”

그와 동시에 내 눈이 동그래졌다.

“무, 무슨 소리야…? 내가 어딜 돌아간다고…….”

“숨기지 않으셔도 돼요. 아영 씨가 얘기해줬거든요.”

“…….”

아니, 장난해?

얘기 안 하겠다고 했으면서!

“아영 씨한테는 화내지 마세요. 대화하다가 실수로 튀어나온 걸 제가 꼬치꼬치 캐물은 거니까.”

“넌 그걸 냅다 믿었고?”

“당연히 처음엔 안 믿었죠. 그런데… 아영 씨 표정을 보니까 안 믿을 수가 없던데요?”

“에휴…….”

하여간 그 인간.

거짓말은 또 못 해 가지고.

“유빈 씨한테는 정말로 비밀로 할게요.”

“그 인간은 이미 알고 있다.”

“잠깐…… 그럼 두 사람한테는 말해줬으면서 저한테만 비밀로 한 거예요?”

아, 아아.

어째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내가 설마 내 입으로 떠들었겠냐. 어째 다들 눈치가 좋더라고.”

김민주는 그제야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전혀 의도치 않았는데…… 이걸로 주변 사람은 다 알게 된 건가.

시발.

“선생님이 있던 곳에선 저랑 무슨 관계였나요?”

그때, 김민주가 내 팔에 감은 천을 단단히 고정하며 물었다.

“내 부하였지.”

“…딱히 지금이랑 다를 건 없네요.”

“그런데 내가 잘랐어. 어깨 다쳐서 수술했다고.”

“풉! 거짓말.”

……?

거짓말이라고?

면전에 대고 쌍욕도 뱉었는데?

“뭐,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충분히 그럴 만할 것 같아요.”

“…무슨 뜻이야?”

“검사가 어깨를 다치면 아무리 수술을 했다고 해도 이전으로 돌아가진 못해요. 1초, 아니 0.1초라도 차이가 생길 거고, 토벌에서 0.1초의 차이는…….”

“목숨이 오가지.”

그녀를 대신해 대답했다.

그러자 김민주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쪽에서도 선생님은 절 살려준 거네요.”

“…….”

아까부터 자꾸 뭐라는 거야.

“그런데 말이에요……. 정말 모든 일이 끝나면 돌아가실 건가요?”

그때, 김민주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

하지만 나는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김민주 또한 더 이상 물을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렇게 무거운 정적만이 흐르던 그때.

“주, 준우 씨! 민주 언니! 큰일 났어요!”

문소연을 비롯한 청소 3팀원들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큰일이라뇨? 시민들 대피 완료한 거 아니었어요?”

“대피는 무사히 끝냈어요. 그런데 방금 지부에서 연락이 와서는…….”

망설이길 잠시, 문소연이 말을 이었다.

“보이드가 대량으로 유통됐다고 해요.”

“네, 네?!”

“출처도 심지어 쿄쿠세이구미가 아니래요. 또 다른 조직에도 보이드를 맡겼었나 봐요!”

한유빈이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이렇게 될 걸 대비해서 다른 놈들한테 여분을 맡겨둔 건가?

“선생님! 전 지금 당장 유통 루트부터 파악해 볼게요. 선생님은 병원에…….”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네?! 지금 본인 상태가 어떤신지 모르는 거예요?! 지금 당장 병원부터…!”

“그게 아니라. 유통 루트 파악 안 해도 된다고.”

“……네?”

김민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이번만큼은 나도 예상했다.

혹시 모를 자폭을 대비해, 일본에 오기 전부터 이아영 본부장한테 부탁해놨으니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