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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국회의사당.
긴급 소집된 각 부처 장관들과 벤 총리가 한자리에 모인 회의실.
“상황이…… 어떻습니까?”
무거운 침묵 속 모두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벤 총리가 내각들을 향해 물었다.
“이능력자로 구성된 병력이 오늘 새벽 4시경 국경을 넘었으며, 현재 슈투트가르트까지 진격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모나한 국방부 장관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현재 확인된 병력은 약 6만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이 병력과 속도라면 베를린까지 이틀이면 도달할 것 같습니다.”
“대책은요?”
“일단 근방 사단이 베를린으로 향하는 모든 도로에 방어선을 구축한 상태입니다. 국제협회와 충돌 즉시 발포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라 곧 전면전이 시작될 겁니다.”
“그들만으로 막을 수 있는 겁니까?”
“물론 한 개 사단으로는 역부족입니다. 하지만 현재 모든 병력이 집결 중이니, 방어선에서 시간만 끌어준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국방부 장관이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다른 부처는 생각이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막을 수 있다뇨! 상대는 이능력자로 이루어진 군대입니다! 일반 병력으로는 시간을 끄는 것조차 불가능할 겁니다!”
“무기 하나로 몬스터를 사냥하는 이들입니다. 전차도 미사일도 무용지물일 텐데, 무슨 수로 막겠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지금 당장 협회에 연락해서 저희도 작전팀을 출격시켜야…!”
“지금은 전시 상황입니다.”
내각들이 한마디씩 이의를 제기하던 그때, 모나한 국방부 장관이 그들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전시 상황에는 제가 모든 군사 결정권을 가집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
그 말에 모든 장관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사실 모나한 장관 본인 또한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일반 병사로 이능력자를 상대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일반 병력을 고집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이게 얼마짜리 전쟁인데, 다른 놈들이 끼어들게 할 순 없지.’
전쟁은 누군가에겐 재앙이지만, 누군가에겐 기회다.
본인과 이런저런 거래를 하는 기업과 해외 정치인들.
그 모두에게 이번 전쟁은 어마어마한 기회였다.
만약 국방부가 독자적으로 이 상황을 해결한다면, 그 이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니 다른 놈들이 이번 전쟁에 손을 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일반 병사들만으로는 꽤나 어렵겠지만…….
그거야 붙어볼 때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혹시 아는가.
우리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나한 장관은 다시 총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총리님도 아시겠지만, 독일 연방의 군사력은 유럽 제일입니다. 게다가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상대는 그 어떤 군사적 장비도 보유하지 않고 있습니다.”
“…….”
“제아무리 이능력자라고 해도, 결국 같은 인간입니다. 저희가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믿고 맡겨주신다면…….”
“총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모나한 장관이 일장 연설을 늘어놓던 그때.
한 남자가 말을 자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교통건설부 루카스 장관.
현 상황과 가장 관련이 없는 부처였다.
주제넘은 행동에 모나한 장관이 그를 노려봤지만, 벤 총리는 일단 들어보기로 한 듯했다.
“말씀하세요.”
“사실… 몇 시간 전에 WDSO 소속 직원들이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뭐, 뭐?”
“WDSO가 어떻게…?”
루카스 장관의 발언에 회의실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WDSO가 정부의 허가 없이 입국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WDSO 직원이 찾아왔다고요…?”
총리 또한 그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마침 보고 드리려고 했던 사항입니다. 정부의 눈을 피하려고 민간 기업 소속으로 위장해서 입국했고, 정체가 발각되어 일단 연방 경찰에 연행됐는데…….”
말끝을 흐리길 잠시, 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WDSO는 이미 공습 계획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알고 있었다…?”
“예. 그쪽 말로는 공습을 막기 위해 왔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우리도 몰랐던 정보를 어떻게 WDSO가 먼저 알고 있었다는 건데! 그리고 애초에 공습을 막으려고 온 거였다면 네가 아니라 날 찾아왔겠지!”
그 순간, 모나한 장관이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말했잖습니까. 위장 신분으로 입국한 거라고. 최대한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협회와 접촉하려고 했던 겁니다.”
“협회랑…?”
“네. 그러니까… WDSO는 이미 일반 병력으로는 공습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 협회를 설득해서 작전팀을 전선에 배치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
모나한 장관이 입을 다물었다.
WDSO가 능력 있는 조직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의 실력이라면 이미 몇 번이나 증명되지 않았던가.
다만 어디까지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 교류를 중단한 것뿐이다.
그런데 WDSO가 이렇게까지 나올 정도면…….
“아무래도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루카스 장관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벤 총리가 물었다.
“그래서?”
“WDSO에 지원을 요청해보심이…….”
“루카스!”
모나한 장관이 소리를 빽 질렀다.
다름 아닌, 위기의식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WDSO가 끼어든다면 이번 전쟁으로 인한 이득은 모두 그들이 가져갈지 모른다.
그렇게 둘 순 없었기에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모든 결정권은 나한테 있다는 말 못 들었어?!”
“그 결정이 말도 안 되는 거니까 하는 소리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능력자를 상대로 일반 병사가 어떻게 이길 수 있다는 겁니까! 괜한 희생만 치를 게 뻔합니다!”
“지금 교건부가 뭘 안다고 그런 개소리를 함부로 지껄여! 군 경력만 30년이야! 내가 하라는 대로…!”
“조용!”
그 순간, 총리의 음성이 낮게 깔렸다.
그의 눈빛이 두 남자를 관통하길 한 차례.
“현 시간부로 전국에 실제 전시 상황 경보와 데프콘 원 발령하고, 모든 결정권을 국방부 장관에게 인계합니다. 그리고 타국 지원 요청은…….”
이윽고 벤 총리의 명령이 떨어졌다.
“기각합니다.”
그 결정에 국방부 장관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
“미친 새끼가!!”
쾅―!
회의가 끝난 직후.
루카스 장관이 복도로 나오며 벽을 가격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당장 협회 작전팀을 투입해도 모자랄 판에 모든 지원을 거절한다니.
프랑스 정부가 단 이틀 만에 무너지는 걸 보고도 느끼는 게 없는 건가?
‘개새끼… 해외 군수 기업들이랑 붙어먹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놈이 이런 억지를 부리는 이유야 뻔하다.
이번 전쟁으로 모든 이권을 독식할 생각이겠지.
빌어먹을, 이런 상황에서까지 이권 다툼이라니.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이게 말이나 되는가.
‘이대론 안 돼…….’
루카스 장관이 이를 으득 씹었다.
물론 독일의 군사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건 궤가 다르지 않은가.
절대 이길 수 없다.
군사 전문가가 아닌 본인조차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대로라면 독일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탈출한 WDSO 직원들… 소재 파악됐나?”
그때, 루카스 장관이 옆에 있던 보좌관을 향해 물었다.
“아, 아뇨. 최선을 다해 찾고는 있지만, 워낙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쉽지 않습니다.”
“협회는 확인해 봤어?”
“네, 네? 협회는 왜…….”
“멍청아! 협회를 설득하려고 했다잖아! 그럼 당연히 협회를 먼저 찾아갔겠지!”
“아, 죄, 죄송합니다. 미처 생각 못 했습니다.”
보좌관이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지금 당장 협회로 가 봐. 만약 발견하면 바로 나한테 연락 주고.”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내야 해.”
루카스 장관의 눈빛이 번뜩이길 한 차례.
“지금 그 사람들이 우리 마지막 목숨줄이다.”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경찰에 넘긴 걸 진심으로 후회했다.
***
독일협회 본부.
“어, 나야.”
나는 그곳의 전화를 빌려 본부에 연락을 취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지금 어디세요?」
곧바로 김민주의 격양된 목소리가 쏟아졌다.
보아하니 본부도 현재 이곳의 상황을 알고 있는 듯했다.
“걱정 마. 지금 독일협회야. 협회장 만나서 설득하느라 좀 걸렸어.”
「어떻게 됐어요…?」
“지원 허가 떨어졌다.”
대답하자 떨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안도한 모양이었다.
“일단 지금은 현지 작전팀 먼저 파견시킬 거야. 그런데 인원도 장비도 부족해서 오래 버티진 못할 거니까, 지금 당장 본부 인력 최대한 끌어모아서 파견 보내.”
「알겠어요.」
“그리고…….”
나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유빈 씨랑 너도 합류해. 준비 단단히 해서.”
「……네.」
그렇게 통화를 마쳤다.
바로 옆에 있던 이아영 본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뭐가 또 걱정입니까?”
“아니, 그렇잖아요. 정부에서 허가가 난 것도 아니고 협회가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인데… 파견 다 해놓고, 만약 정부에서 투입 자체를 막으면 손도 못 써볼 텐데요?”
“이런 상황에서 지원 병력 투입을 막는다고요? 그런 멍청한 새끼가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단독 결정을 안 좋게 볼 순 있겠지만, 정부가 더 잘 알고 있지 않겠는가.
본인들만으로는 절대 국제협회를 상대할 수 없다는 걸.
나중에 책임을 묻긴 하겠지만, 전투 투입 자체를 막을 리가 없다.
제정신이 박힌 놈이라면…….
“글쎄요.”
그때, 클로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또 모르는 일이죠. 워낙 세상에 또라이가 많아서…….”
“…….”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의미심장한 말을 뱉는다.
쯧, 부정 타게…….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아멜리 협회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파견 지시 내린 거야?”
“예. 최대한 빨리 보내 달라고 했으니… 늦어도 내일 저녁까지는 도착할 겁니다. 그때까진 우리끼리 버텨야겠죠. 준비되셨습니까?”
“가능한 인원 모두 집합시켜 놨어. 출동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해서 와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헛짓거리를 하고 있군.”
그때, 한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아멜리 협회장, 지금 대체 누구 명령을 받고 병력을 집합시킨 거지?”
“……모나한 장관님.”
날카로운 목소리에 아멜리 협회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체 누구길래…?
“데프콘 원 발령됐다. 이제부터 모든 군사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 그리고 작전팀 투입은 공식적으로 기각됐다.”
“……!”
“다 해산시켜!”
남자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명령이 떨어졌다.
“……가끔은 맞는 말도 하시는군요.”
나는 클로이를 바라보며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설마했는데…… 있었네.
제정신이 아닌 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