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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전면전이 발발한 52번 도로, 제3 방어선.
모나한 국방부 장관은 전선 후방에 위치한 임시 지휘통제실에서 상황을 모니터링 중이었다.
“계속 공격해! 레오파르트 계속해서 추가 투입하고, 토네이도랑 타이푼 추가 이륙 명령 내려!”
모나한 장관이 참모들을 향해 소리쳤다.
현재 제3 방어선에는 독일 내 거의 모든 병력이 집결됐다.
그동안 아끼고 있었던 전차와 전투기까지 투입하고, 실전 배치된 스콜이 방금 막 발사되었다.
WDSO가 철수한 지금, 반드시 여기서 끝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전력을 쏟아부은 것이다.
하지만…….
“자, 장관님! 스콜 1기 불발입니다!”
꽤나 불길한 보고가 전달됐다.
“시발! 하필 이렇게 중요할 때…! 2기, 3기 같이 발사해!”
“알겠습니다!”
모나한 장관은 이를 으득 씹었다.
모든 전력을 투입하는데도 확실히 쉽지 않다.
큰 피해도 없는 모양이고, 진격 속도도 줄지 않은 걸 보면 정말 일반 화기로는 그들을 막기 역부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다.
독일이지 않은가.
유럽 땅에서 본인들을 이길 수 있는 이는 없다.
이능력자?
그래 봤자 몬스터나 잡고 다니는 놈들일 뿐이다.
제아무리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졌다고 해도 한 국가의 군대와 전쟁을 벌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스콜 2기, 3기 불발입니다!”
“뭐…?”
“현재 타이푼 총 56기 격추됐다고 합니다!”
“토네이도 ISD도 현재까지 총 41기 격추됐습니다! 상공에 스킬이 빗발치고 있어서 추가 이륙이 불가능합니다!”
“…….”
어딘가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모나한 장관은 설마 하는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지만, 불길한 소식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스콜 7기, 8기, 9기… 11기까지 전량 불발입니다!”
“더 이상 공군 전력 운용이 불가능합니다!”
“일단 방어선에서 후퇴하고 최대한 전력을 보존하시는 게…!”
“…….”
미친 듯이 날아드는 보고에 모나한 장관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순간 혼이 빠져나간 듯, 그저 멍하니 서 있던 그때.
“장관님!!”
누군가의 고함에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방금 제3 방어선…… 돌파당했습니다.”
모나한 장관의 눈이 마구 흔들렸다.
“일단 장관님은 피신하셔야 합니다! 지통실까지 진격하는 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겁니다!”
“…….”
장성들이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미 멘탈에 금이 간 모나한 장관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3 방어선이 뚫렸다면 지통실까지는 다이렉트다.
국방부 장관인 본인을 포함해 모든 장군이 모여 있는 이곳이 공격받는다면 전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모나한 장관은 이 상황이 되고 나서야 뒤늦게나마 김준우의 말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우리만으로는 힘들다.
조금만…….
조금만 도움을 받자.
스콜도 전량 불발이 난 상황에 눈치 볼 것도 없다.
공을 독식하지 못하더라도 일단은 이기고 봐야 할 게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모나한 장관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대로 익숙한 번호를 눌러 통화를 연결하자.
「무슨 일인가?」
이윽고 핸드폰 너머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자, 장관님… 지금 혹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다름 아닌, 그와 10년째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는 남자.
박스 인더스트리 대표의 장인.
러시아 국방부 장관, 블라디미르였다.
「음? 지금 전시 상황 아니었나? 나에게 연락할 여유가 있는 건가.」
“그것 때문에 도움이 필요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뭐?」
이내 모나한 장관이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습니다. 상대도 예상외의 전력인지라 저희 병력만으로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스콜이 있지 않나. 듣자 하니 이번에 실전 배치했다면서.」
“아, 그, 그건…….”
모나한 장관이 말끝을 흐렸다.
차마 그에게 11기가 모두 불발이 났다는 말은 꺼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못 들은 척 넘어가며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 아무튼 지금 상황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지원군을 보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흐음…….」
핸드폰 너머에서 깊은 호흡이 들려오길 잠시.
이윽고 블라디미르 장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러시아, 모스크바.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블라디미르 국방부 장관에게 꽤나 뜬금없는 전화 한 통이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WDSO 본부 소속 김준우라고 합니다.」
“…누구라고?”
「WDSO 소속 김준우입니다, 장관님.」
블라디미르 장관은 꽤나 황당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바라봤다.
WDSO 직원이 어떻게 본인의 개인 연락처로 연락을 한 거지?
그런 의문이 들기도 잠시.
「이렇게 갑작스럽게 연락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박인범 사무총장님을 통해 개인 연락처를 전달받았습니다.」
“…미스터 박이?”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박인범과는 꽤 오랜 인연이 있었다.
알고 지낸 지는 거의 20년 가까이 되었고, 자신이 진심으로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 친구라기 하기엔 꽤나 모호한 관계였다.
뭐랄까…….
그냥 서로가 필요할 때나 연락하는 비즈니스적인 관계라고나 해야 하나.
그런 그가 갑자기 WDSO 소속 직원을 연결해줬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의미겠지.
가령 내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그럼 본인이 직접 연락할 것이지, 왜 일개 직원한테…….’
블라디미르 장관은 은근히 기분이 나빴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현재 독일 상황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김준우가 던진 질문에 다른 생각이 곧바로 날아갔다.
“알다마다. 국제협회 병력이 침공했다면서? 베를린까지 진격하는 것을 모나한 장관이 막고 있고.”
「아뇨. 막지 못할 겁니다.」
“…음?”
「모나한 장관은 이능력자와의 전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합니다. 일반 병력과 장비로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중입니다.」
“신형 미사일도 준비가 됐네. 자네 생각만큼 크게 걱정할 건…….”
「장관님.」
그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해졌다.
「박스 인더스트리에 연구개발 투자를 크게 하셨죠?」
“그, 그렇네만…….”
「그럼 박스 인더스트리의 대표이사… 그러니까, 장관님의 사위분이 그 투자금 대부분을 본인 주머니에 챙긴 것도 알고 계십니까?」
“뭐, 뭐…?!”
블라디미르 장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봐, 지금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나?”
「물론 알고 있습니다.」
“증거도 없이 그따위 소리를…!”
「증거라면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그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블라디미르 장관의 말을 잘랐다.
「중요한 건, 장관님의 사위분이 거액의 연구비를 빼돌려 부동산 투자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구멍이 난 비용 덕분에 제대로 개발되지 못했고요.」
“그게 무슨…….”
「제가 감히 장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실전 배치된 11기의 스콜, 모두 불발이 날 겁니다.」
“……!”
동시에 블라디미르 장관의 눈이 동그래졌다.
「당연한 일이겠죠. 애초에 제대로 만들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
블라디미르 장관은 대답을 아꼈다.
당연히 쉬이 믿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지어냈을 거라곤 생각하기 어렵다.
모나한 장관과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전 세계를 통틀어 극소수의 정상급뿐이었으니까.
심지어 미스터 박이 연결해준 인물이다.
그가 소개해준 이가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밀어준 사업이 폭삭 내려앉는 동시에 자신의 명예마저 실추될 것이다.
“그래서? 그걸 나한테 알려주는 이유가 뭔가. 당장 내 사위 놈을 처리하기라도 하라고?”
「아닙니다. 아직 아셔야 할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아직… 남았다고?”
「예. 장관님의 사위를 꼬드겨 부동산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게 한 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 잠깐!”
블라디미르 장관의 전신이 꿈틀거렸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입을 뗐다.
“그게 모나한 장관이라는 소리는…….”
「맞습니다.」
그의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모나한 장관이 과거 매입한 땅이 있습니다. 교통 인프라가 없는 지역의 미개발 토지인데, 그곳에 교량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그런데?”
「해당 토지는 교량 건설을 시작으로 다양한 개발이 이루어질 겁니다. 다만 법적 문제 때문에 모나한 장관이 계속 그 땅을 가지고 있을 수가 없었죠. 그렇다고 노다지가 될 곳을 팔아버릴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그 땅을 믿을 만한 놈한테 넘기려고 한다?”
「그렇습니다.」
“그게 내 사위고?”
「…….」
상대편은 대답조차 필요 없다는 듯했다.
“하, 하하하…!”
갑작스러운 충격 때문일까, 기어이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동안 뒤를 봐줬더니, 기어이 둘이 붙어서 자신을 농락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가만히 둘 수 없겠군.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지.”
「믿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단, 확인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
여전히 무미건조한 말투.
하지만 이유 모를 당당함이 묻어나왔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잘 알았어. 그런데 왜 굳이 나에게 알려주는 거지?”
블라디미르 장관은 애써 냉정함을 되찾으며 물었다.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차라리 모나한 장관을 협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겠나.”
「저는 멍청한 인간과는 거래하지 않습니다.」
“…….”
예상치도 못한 대답.
근거도, 논리도 없는 대답이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신뢰가 가는 말이었다.
“원하는 게 뭐야?”
블라디미르 장관이 다시금 물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내게 이 정보를 넘길 리가 없잖나. 원하는 게 뭔지 말해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윽고 김준우가 본론을 꺼내 들었다.
「첫 번째는 모나한 장관과의 관계를 정리해주십시오.」
“그거야 정해진 수순 아닌가? 내가 그런 소리를 듣고도 그놈을 감싸줄 것 같나?”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동안 모나한 장관과의 거래를 폭로해주십시오.」
“뭐?”
「그냥 관계만 정리한다고 해서 끝날 일이 아닙니다. 꼬리를 자르려면 제대로 나락까지 떨어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랬다간 나까지 무사하지 못할 텐데?”
「그거야 준비할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장비와 거래 내역, 전부 다른 놈에게 넘겨버리십시오.」
“총알받이를 세우라 이건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애초에 이건 장관님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해주십시오.」
“…….”
대답을 아끼길 잠시.
“생각해 보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블라디미르 장관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곧바로 내선 전화를 들어 해외첩보부서에 연락을 취했다.
“어, 나다. 혹시 베를린 근처에 교량 건설 사업이 잡혀 있는 게 있나?”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이윽고 키보드 치는 소리가 들려오길 잠시.
「아, 네 지금 확인해보니… 한국의 한별건설이라는 곳에서 독일 교통건설부와 교량 사업이 계약되어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정말 사실이었군.
‘빌어먹을…….’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때, 다시금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무슨 일인가?”
다름 아닌, 그와 10년째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는 남자.
모나한 국방부 장관이었다.
그는 이내 이런저런 상황을 설명하며 지원군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흐음.”
블라디미르 장관이 고민하길 잠시.
“그건 힘들 것 같군.”
「예, 예…?」
“나와 친분이 있는 건 자네지, 독일이 아니지 않은가. 대놓고 독일에 증원군을 보내 주기엔 이래저래 문제가 많아서 말이지.”
「그, 그건 제가 어떻게든…….」
“자네가 뭘 할 수 있는데?”
「…….」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를 쏘아붙였다.
“장사꾼 출신이었던 자네를 그 자리에 앉힌 게 나야. 자네가 할 수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네.”
「하지만 장관님… 여기서 저희가 밀리면 박스 인더스트리와의 계약도 장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봐, 모나한.”
블라디미르 장관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스콜이 불발이 났나?”
「……!」
숨이 턱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놈 말이 사실인가 보군.”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놈이 내 사위랑 합심해서 내 돈을 빼돌린 거 말이야.”
「그, 그게 무슨…!」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당황하는 기색.
모나한 장관이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결단코 한 번도…!」
“자네, 혹시 말이야…….”
블라디미르 장관이 그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홍차 좋아하나?”
「……!」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저쪽이 더 잘 알고 있겠지.
「한 번만 더 연락하면 나랑 차 한잔하게 될 거야.」
블라디미르 장관은 그 말을 뒤로하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집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보좌관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지금 당장 동부 마피아에 연락해.”
“네, 네?”
“그동안 모나한한테 받은 장비랑 거래 내역, 전부 마피아한테 넘겨버리라고.”
“그, 그게 무슨…….”
자꾸만 이유를 묻고 있는 보좌관을 향해, 블라디미르 장관의 눈이 번뜩였다.
“닥치고 당장 시키는 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