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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너…!”
베를린 근처까지 후퇴한 끝에 만들어진 최종 방어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모나한 장관은 예상했던 대로 내 멱살부터 부여잡았다.
“너지? 네놈이 블라디미르 장관님한테 그딴 개소리를 한 거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시치미 떼지 마, 시발!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나도 쥐고 있는 거 많아! 내가 입 열면…!”
“장관님!”
아니, 이젠 장관도 아니지.
“당신, 이 상황 해결할 수 있습니까?”
“……뭐, 뭐?”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스콜은 모두 불발, 당신이 타국 개입을 극구 반대한 덕에 병력 증원도 불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쥐고 있는 게 많으면 뭐 합니까? 지금 당장 당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
모나한 장관의 눈이 파르르 떨려왔다.
“국가와 국민을 수호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잇속 때문에 국가를 사지로 내몰고 계신다는 걸 알고는 있습니까?”
“네, 네깟 놈이 감히 어디서 그런 말을…!”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독일을 멸망시키든 말든 제가 알 바는 아닙니다. 다만, 최소한 제 일은 방해하지 마셔야죠.”
그의 말을 끊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입을 열든 말든 알아서 하시고 능력도, 실력도, 염치도 없으면 그만 좀 꺼지십시오. 걸리적거리니까.”
그를 지나쳐 앞으로 나섰다
뒤에서 무어라 욕설이 들려왔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모나한 장관님.”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뭐, 뭐야? 이거 안 놔?! 너희 시발, 내가 누군지 몰라?! 이거 놓으라고!!”
곧바로 나타난 헌병대가 그를 연행하기 시작했으니까.
물론 순순히 따라갈 리가 없던 그는 끊임없이 발버둥쳤다.
“계속 동행에 불응하시면 포박하겠습니다.”
“뭐, 뭐…?!”
“수갑 채워.”
결국, 끝까지 추한 꼴을 보이며 강제로 연행되었다.
뭐, 추후 어떤 조치가 있을지는 안 봐도 뻔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그나저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최초 방어선은 이미 뚫린 지 오래.
최후방인 이곳까지 진격하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마저 뚫리면 그다음은 베를린이다.
어떻게든 여기서 끝을 봐야 한다.
“일단 각자 포지션대로 이동하십시오.”
나는 대동한 현지 작전팀을 향해 입을 열었다.
“트랩, 기습, 공중 요격,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둬야 합니다. 전면전이 시작되면 어떤 클래스든 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진영을 유지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네!”
“물론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인원으로나 화력으로나 애초부터 불리한 싸움이니, 저흰 그저 본부 병력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나는 이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반 병력은 모두 방어선 후방으로 이동했고, 가디언 클래스를 비롯한 근접 포지션이 최전방에 진영을 잡았다.
마법사 클래스를 비롯한 모든 원거리 포지션은 방어선 중앙에서 요격 거리를 계산 중이었다. 그 외 모든 인원은 장비 체크 및 보급 운반을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가 아무 말 없이 각자의 역할을 준비했고, 이내 머지않아.
“……왔군.”
저 멀리서 엄청난 숫자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저기요! 정신 차려 봐요!”
정신을 잃었음에도 신경을 긁는 목소리.
클로이는 자신을 부르는 그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고, 이내 흐릿한 모습이 보였다.
점점 초점이 돌아오자 자신을 깨운 사람의 얼굴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괜찮은 거예요?!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빨리도 오네.”
다름 아닌 이아영 지원본부장이었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그쪽 팔이…!”
“호들갑 좀 떨지 마요. 안 죽었으면 됐지, 뭐.”
클로이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그리곤 자신의 오른팔을 확인했다.
팔뚝까지 잘려 나간 채 붕대로 감겨 있었다.
출혈도 통증도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사제 클래스가 응급처치한 듯했다.
‘쯧…….’
하지만 클로이는 퍽 담담한 반응이었다.
그저 한 차례 혀를 차곤, 곧바로 자신이 있는 곳을 살폈다.
분명 방어선 한복판에서 정신을 잃었는데, 어째선지 눈을 뜬 곳은 허름한 천막 안이었다.
“여긴…?”
이아영 본부장을 향해 묻자 그녀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최종 방어선 후방의 임시 의무대에요. 근처 도시까지 옮길 여유가 없어서 급한 대로 여기로 데려왔어요. 방금 사제 클래스가 응급처치는 해줬고요.”
“최종 방어선? 철수 명령 떨어진 거 아닌가? 모나한 장관이 총지휘를 맡겠다고 한 거 같은데.”
클로이는 정신을 잃는 순간 들었던 음성을 떠올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방금 해임됐어요. 모나한 장관.”
“……?”
“그리고 전시작전통제권이 WDSO에 인계됐고요.”
굉장히 뜬금없는 소식에 그녀가 가만히 눈을 끔뻑였다.
그렇게 오래 정신을 잃은 것 같진 않은데…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싶었다.
하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안 봐도 김준우가 움직이지 않았겠는가.
그라면 상황을 역전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겠지.
“그래서, 상황은 어떻게 됐어요?”
클로이는 지난 일 대신, 지금의 상황을 물었다.
“일단 최초 방어선은 모두 뚫렸어요. 국제협회는 52번 국도를 따라 계속해서 진격 중이고요.”
“김준우는…?”
“현지 작전팀이랑 같이 현장에 가 있어요. 3시간만 있으면 본부 병력이 도착할 테니, 그때까지 직접 막겠다고…….”
“안 돼요.”
그때, 클로이가 그녀의 말을 끊으며 고개를 저었다.
“웨슬리가 직접 참전했어요. 아무리 김준우라고 해도 그 인원으로는 3시간은커녕 30분도 못 버텨요.”
“네, 네…?”
“일단 내가 직접 가서…….”
클로이는 그 말과 함께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아영 본부장이 곧바로 제지했다.
“우, 움직이면 안 돼요! 지금 그쪽 상태가 어떤지 몰라요?! 응급처치는 했지만 당장 병원으로 가서 제대로 치료해야 한다고요!”
“…….”
이아영 본부장이 한껏 격양된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클로이가 퍽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예요?”
“……아니, 그쪽이 여기서 죽으면 이클립스는 또 내가 맡아야 하잖아요.”
“나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
이아영 본부장이 대답을 아끼길 잠시.
“싫어해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싫어하는데… 그렇다고 죽는 걸 바라는 건 아니에요.”
“…….”
클로이는 그 대답에 눈썹을 위로 치켜올렸다.
꽤나 의외의 대답이 싫지만은 않았지만.
“어차피 당신 비전투 인원이잖아요. 지금 가서 뭘 할 수 있겠어요. 괜히 꼴값 떨지 말고 얌전히 치료나 받아요.”
“…….”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래요?”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온 클로이가 대뜸 물었다.
“정말 만에 하나 본부 병력이 올 때까지 진격을 막아냈다고 쳐도 그다음에는요? 철저하게 준비한 국제협회 병력을 상대로 WDSO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
“물론 김준우를 포함해서 꽤 뛰어난 인력들이라는 건 인정해요. 그런데… 철저하게 대비해도 어려울 판국에 인원도, 보급도, 준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들을 막는 건 불가능할 텐데요?”
정확한 판단이었다.
이아영 본부장 또한 같은 생각인 듯, 잠시 대답을 아꼈다.
“…방법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클로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반능석을 쓰면 가능성은 있어요.”
“…반능석?”
그와 동시에 이아영 본부장의 눈빛이 번뜩였다.
“혹시 몰라서 파견 중인 본부 인력 편으로 반능석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했어요. 당신들이 했던 것처럼 반능석을 사용한다면 부족한 인원으로 충분히 가능할 거예요.”
“가공해 본 적은 있고?”
“이전에 한 번요. 소량이긴 했지만.”
“그거랑은 비교도 안 될 텐데? 가공량이 늘어날수록 뱅크 아이템이 폭주할 확률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자칫 뱅크 아이템 자체가 파괴될 수도 있어요. 설령 가공에 성공한다고 해도 실용화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이아영 본부장이 그녀의 말을 끊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실용화는 내 전문이거든요. 대신… 뱅크 아이템 가공은 그쪽이 맡아줘요.”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들려왔다.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도와달라는 거예요? 진심으로?”
“뭐야. 난 그래도 그쪽이 뱅크 아이템에 대해서라면 세계 최고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어이가 없네.”
“그래서 도와줄 거예요, 말 거예요.”
“…….”
이내 클로이가 피식 실소를 뱉길 한 차례.
“방해나 되지 말아요.”
그 말과 함께 입꼬리를 올렸다.
***
52번 도로.
그 길을 따라 진격 중인 국제협회의 모든 병력.
웨슬리 사무총장은 그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
사실 걸어서 베를린까지 진격하는 건 꽤나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차원석을 가공한다면 차원 통로를 만들 수도 있으니, 바로 베를린으로 향할 수도 있었다.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하더라도 보다 편한 이동 수단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럼에도 굳이 걸어서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것을 선택한 건 일종의 퍼포먼스 적인 이유가 컸다.
그래.
이 전쟁은 서로의 이득을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싸움이 아닌, 전 세계를 향한 경고다.
그렇기에 이편이 가장 효과적이다.
우리가 걸음을 옮기는 모든 곳이 파괴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까.
아직까진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
그럼에도 웨슬리 사무총장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항상 만약을 대비하긴 했지만, 솔직히 1년 전만 하더라도 전면전을 벌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또한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날이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고작 청소부 출신 한 명 때문에.
‘김준우…….’
웨슬리 사무총장이 작게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여기까지 온 이상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둘 중 한 명이 죽어야 끝이 난다는 것을.
그러니 좋든 싫든 김준우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면, 그것이 오늘이어야 할 것이다.
「사무총장님.」
한창 사색에 빠져있던 그때, 선두에 있던 케이트 수행비서에게서 무전이 울렸다.
「정면에 방어선이 있습니다.」
“…또?”
「보아하니 이게 최종 방어선인 것 같은데…….」
그녀가 말을 흐리길 잠시,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김준우가 복귀한 모양입니다.」
“……잠시 대기.”
웨슬리 사무총장은 모든 병력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혼자서 선두로 향했다.
이윽고 진영을 빠져나와 방어선과 마주한 순간.
“오랜만입니다. 사무총장님.”
저 멀리서 김준우가 자신을 알아보곤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웨슬리 사무총장은 대꾸하지 않고, 방어선의 병력을 먼저 살폈다.
그리곤 피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그 인원으로 우리를 막을 생각인가요?”
“그럴 리가요. 제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국제협회를 상대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이미 눈빛은 여기서 끝을 볼 생각인 것 같은데?”
웨슬리 사무총장이 말하자, 김준우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때 못 끝낸 이야기, 오늘 여기서 다 해볼 생각인데…….”
[고유 스킬 : 마왕]
김준우의 전신에서 검은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같이 어울려주시겠습니까?”
“…….”
웨슬리 사무총장은 대답을 아끼던 끝에.
“뭐… 주제도 모르는 애송이 교육은 또 내 전문이죠.”
[고유 스킬 : 천지창조]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