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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육관음중사(六觀音中四)]
[제4격 -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고유 스킬 : 퍼스트 블러드 - 각성]
[도플갱어]
[3번 - 11번 - 8번 - 13번]
[3번 - 11번 - 8번 - 13번]
캉―!
카가가강―!
김민주와 케이트 사이에는 서로의 검이 맞닿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가공할 속도의 참격과 가공할 속도의 방어.
‘분신술…?’
김민주는 눈을 가늘게 뜨며 케이트의 움직임을 살폈다.
도플갱어.
마치 동양의 분신술처럼 자신의 공격을 모방하는 그림자를 소환하는 스킬.
검사는 다른 클래스와 다르게 개인의 육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뛰어난 스킬을 가졌다고 한들, 결국 검을 휘두르는 건 본인이니까.
세계 랭커 중에 검사 클래스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무리 S랭크 스킬과 S랭크의 무기를 가져도, 결국 본인의 신체와 검술이 따라주지 못하면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목숨을 잃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
가장 기본적인 클래스인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클래스.
상식 밖의 공격을 퍼붓는 것이 아닌, 한 번의 움직임으로 한 번의 동작밖에 할 수 없기에 무조건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 번의 움직임으로 여러 개의 동작을 수행할 수 있는 검사가 있다면?
그건 곧 약점이 없다는 의미이다.
[고유 스킬 : 퍼스트 블러드 - 각성]
[도플갱어]
[1번 - 4번 - 8번 - 19번 - 1번]
스스슥―!
스스스스슥―!
“큿…!”
김민주는 이번에도 동시에 날아드는 두 번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마치 두 명과 싸우는 기분.
아니… 두 명이어도 각자의 동작만 살핀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데, 이건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눈으로 보고 반응하면 늦는다.
감.
오로지 감으로만 상대해야 한다.
‘후우…….’
김민주는 숨소리조차 함부로 흘리지 않은 채 케이트의 검에만 집중했다.
각성 스킬을 제외하고도, 그녀의 스킬 자체도 매우 위협적이다.
한 번의 호흡으로 수차례의 움직임을 물 흐르듯이 이어간다.
품에서 품으로, 모든 동작이 일말의 빈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몇 번 검을 맞대본 결과 그녀가 가지고 있는 품은 모두 20가지.
그걸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공격이 된다.
다시 말해, 그녀가 가용할 수 있는 공격은…… 수만 가지가 넘는 것이다.
‘젠장…….’
김민주는 이를 으득 씹었다.
기존대로 싸워선 전혀 승산이 없다.
자신의 스킬 또한 6가지의 자세가 있지만, 이는 모두 일격에 특화되어 있다.
저 괴물 같은 검사를 상대하기 위해선 자신 또한 스킬을 이어가야 한다.
“흐읍!”
전신에서 힘을 끌어와 작게 기합을 내지르길 한 차례.
[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육관음중일(六觀音中一)]
[제1격 - 성관음(聖觀音)]
스윽―.
[육관음중육(六觀音中六)]
[제6격 - 여의륜관음]
슈욱―!
억지로 두 자세를 연계했지만.
캉, 카강―!
아니나 다를까.
“어쭙잖은 흉내를 내네요.”
케이트에게 너무나 쉽게 막혀버렸다.
“……따라가려면 어쩔 수 없죠.”
“그쪽 스킬은 한 호흡에 연계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에요.”
“…….”
“괜히 무리해서 따라 하지 말고, 본인 스타일대로 싸우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케이트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일격에 특화된 스킬.
이를 억지로 연계하려고 하면 위력도 떨어질뿐더러 빈틈만 생겨난다.
애초에 훈련도 없이 랭킹 1위의 흉내를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김민주 또한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한 번씩 공격해서는 절대 못 이겨…….’
지금껏 해본 적 없어도 상관없다.
여기서 할 수 있게 만들면 그만이니.
[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육관음중외(六觀音中外)]
[접신 - 관세음(觀世音)]
이내 그녀의 전신에서 푸른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케이트는 그런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 순간.
[육관음(六觀音)]
[제1격 - 성관음(聖觀音)]
[제4격 -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제3격 - 마두관음]
슥, 스윽―.
스스스슥―!
그그그그극―!!
“……!”
조금 전보다 훨씬 다듬어진 공격.
케이트는 서둘러 공격을 막아냈지만, 예상보다 훨씬 날카로웠는지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다.
“2위 이름값은 하네요.”
케이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김민주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엔 오로지.
‘할 수 있다…….’
그 생각뿐이었으니까.
수십 개의 품을 자유자재로 연계하는 그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공격 하나하나의 위력은 그녀보다 한 수 앞선다.
이대로만 케이트의 공격을 따라갈 수 있다면 이길 수 있다.
김민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고유 스킬 : 퍼스트 블러드]
[도플갱어 x4]
“……?!”
“제가 두 번씩만 공격할 수 있는 줄 알았나요?”
그것마저도 오래가진 못했지만.
[택틱컬 콤보]
[5번 - 3번 - 15번 - 1번 - 9번 - 6번]
[x4]
스스스슥―.
스스슥―!
스윽, 스스슥―!
마치 폭풍우와 같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 공격.
김민주는 황급히 검을 들어 방어 태세를 취했지만, 수십 번의 참격을 모두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큭, 크읏…!”
어깨, 팔, 다리. 뺨.
그녀의 전신에서 붉은 피가 스며 나왔다.
애초에 그녀의 공격을 모두 막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지금도 가까스로 치명상만 피한 정도였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지만, 김민주는 이를 악물고 가까스로 몸을 추슬렀다.
이대로 주저앉으면 다음엔 목이 날아간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그런 김민주의 모습을 보던 케이트가 슬쩍 입을 열었다.
“기세는 좋은데, 1위는 아직 한참 부족하네.”
“……역시 사람들이 천재라고 하는 데엔 이유가 있네요.”
김민주는 애써 담담한 척 대답했다.
케이트가 대놓고 실소를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놈의 천재, 천재… 그깟 칼 좀 쓰는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다들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
“……?”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들, 아무리 노력하고 매일 같이 훈련을 한다고 한들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게 있어요.”
그때, 케이트가 의미심장한 말을 뱉으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웨슬리 사무총장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케이트의 시선이 다시금 김민주에게 닿았다.
“이것 봐요. 수행비서가 된 이후로 검을 몇 년 동안 안 들었는데도, 나한테 손가락 하나 못 대고 있잖아.”
“…….”
“노력이니 뭐니, 다 부질없는 짓이에요. 뭐… 차라리 검사가 아니라 다른 클래스였으면 어떻게 해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케이트가 퍽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검사는 결국 상식을 벗어나지 못해요. 그리고 상식을 벗어나는 수많은 이능력자들 사이에서 그건 매우 큰 약점이죠.”
그 말을 하는 케이트의 눈빛은 허무에 차 있었고, 무척이나 공허해 보였다.
“마법을 쏘고 괴물을 소환하는 세상에서 이깟 쇳덩이 하나 휘두르는 사람이 뭘 할 수 있겠어요.”
“…….”
김민주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경청하길 잠시.
이내 피식, 미소를 흘렸다.
“글쎄요. 전 잘 모르겠네요.”
그녀가 대답했다.
“전 그냥… 평범한 검사라서.”
[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육관음(六觀音)]
이내 그녀가 다시금 자세를 고쳐 잡은 순간.
[제3격 - 마두관음]
[제6격 - 여의륜관음]
[제5격 - 준세관음]
[제1격 - 성관음(聖觀音)]
“……!”
이전보다 하나의 자세가 더 추가된 4연격이 케이트를 향해 매섭게 날아들었다.
케이트는 곧바로 검을 치켜들었다.
[도플갱어 x4]
[18번 - 17번 - 9번 - 8번 - 1번]
[x4]
캉―!
카가가강―!!
다시금 검과 검 사이에 맹렬한 불꽃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도플갱어 x8]
[20번 - 3번 - 7번 - 3번 - 13번]
[x8]
케이트가 먼저 한 템포를 올렸다.
[육관음(六觀音)]
[제6격 - 여의륜관음]
[제4격 -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제1격 - 성관음(聖觀音)]
[제2격 - 불공견삭관음(不空羂索觀音)]
[제6격 - 여의륜관음]
카가가가강―!!
김민주도 그에 맞춰 속도를 올렸다.
“……큭!”
케이트는 점점 가열되는 김민주의 공격에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동시에 그녀의 얼굴에서 당혹감이 드러났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20년 가까이 연습해온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따라잡는 게 정말 가능한 건가?
“크윽……!”
[고유 스킬 : 퍼스트 블러드 - 각성]
[도플갱어 x16]
[1번 - 1번 - 1번 - 1번 - 1번 - 1번]
[x16]
케이트는 그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결국 자신의 힘을 최대치까지 끌어냈다.
그와 동시에.
[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육관음(六觀音) - 9연격]
스슥―.
김민주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
다른 이는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누가 이기고 있는 건지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
그저 검과 검이 맞닿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고, 두 사람의 참격이 끝없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이미 인간의 움직임을 초월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더 빠르게, 더 강력하게.
두 사람 모두 한계치까지 몸을 움직이던 그때.
“…잡았다.”
“……!”
0.1초.
아니, 0.01초의 차이.
기어이 김민주가 케이트의 움직임을 따라잡았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16번의 공격을 쏟아내는 랭킹 1위의 검사를…… 오로지 하나의 자세, 하나의 신체로.
그렇게 김민주의 움직임이 조금 더 앞선 순간, 그녀는 확실하게 케이트의 빈틈을 포착했다.
[육관음중이(六觀音中二)]
[제2격 - 불공견삭관음(不空羂索觀音)]
사삭―!
그녀의 검이 순간 번쩍이며 허공을 갈랐다.
어마어마한 검풍이 대지를 휩쓸고 지나간 후.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췄다.
“쿨럭…!”
케이트가 검을 떨어트리며 피를 쏟아냈다.
“뭐야… 천재 아니라면서…?”
어깨에서부터 복부까지 그어진 붉은 선.
“아니에요. 당신에 비하면.”
“겸손한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케이트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아쉽네… 내가 현역일 때 그쪽을 만났으면 검을 놓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
“축하해. 랭킹 1위.”
힘겹게 그 말을 뱉어내고는 이내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
김민주는 잠시 침묵한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렇게 한때 최고의 검사에게, 자신의 우상에게, 마지막 예를 갖췄다.
그리고 그 직후.
“후우…….”
긴장이 풀린 것인지, 그녀 또한 다리에 힘이 풀린 채 털썩 주저앉았다.
솔직히, 어떻게 싸운 건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살았다는 것에 진심으로 안도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고유 클래스 각성 :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劒)]
두 번째 고유 클래스 각성.
전 세계 5명밖에 없는 SS랭크의 승급 조건을, 방금 전투 중에 달성했다는 것을.
***
[고유 스킬 : 디스트로이어]
쾅―!!
“시발, 많기도 하네…!”
한유빈에게 뒤를 맡기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병력을 처리하면서 조금씩 진영 안으로 파고들던 그때였다.
사아아아아―!
“……!”
어디선가 머리카락이 쭈뼛거릴 정도의 소름 끼치는 검풍이 느껴졌다.
곧바로 고개를 돌려 김민주가 전투를 벌이던 곳을 바라보자.
‘…끝난 건가?’
방금까지 치열한 싸움이 이어지던 그곳이 쥐죽은 듯 조용해져 있었다.
두 검사의 승패가 정해진 것이다.
“야, 김민주! 괜찮냐? 어떻게 됐어!”
곧바로 무전기를 들어 김민주에게 연락을 넣었다.
“대답해! 어떻게 됐냐니까?! 다쳤으면 말이라도…!”
「…전 괜찮아요.」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긴 거냐?”
「네. 저 이제 검사 클래스 1위에요.」
“참 나… 애도 아니고, 그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일부러 볼멘소리를 냈지만, 내심 크게 안도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됐어요? 유빈 씨는요?」
“그쪽은 팀장들 처리하고 있어. 난 웨슬리 찾으러 돌격 중이고.”
「이길 수 있죠?」
그녀가 퍽 무거운 목소리로 묻자 나는 피식 실소를 뱉었다.
“너도 이겼는데, 나라고 못 할까.”
「……그러네요. 괜한 걱정이었어요.」
“그래. 알았으면 뒤 좀 부탁한다. 아직 싸울 수 있지?”
「싸울 수 있긴 한데… 이제부터는 초과근무에요.」
“…….”
말하는 거 보니까 멀쩡하네.
“수당 따따블로 챙겨줄 테니까, 잘 좀…….”
그 말을 뱉는 순간,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곤 말끝을 흐렸다.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이따 연락할게.”
무전기를 집어넣고는 정면을 바라봤다.
그리곤 미소를 지으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찾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참 꼭꼭도 숨어 있으셨군요.”
“젊은 놈이 찾아와야지, 제가 갈 순 없잖아요?”
“무서워서 숨어 계신 게 아니라?”
“하하하! 재밌는 말을 하는군요.”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남자.
나는 그를 지그시 노려봤다.
국제협회 사무총장.
이 모든 일의 원흉.
웨슬리 다비드.
비로소 그와 마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