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292
“유, 유빈 씨?!”
온갖 스킬과 비명 그리고 유혈이 낭자한 전장 한복판.
김민주는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지원시설로 후퇴하고 있던 중, 피투성이가 되어 대자로 뻗어 있는 한유빈을 발견했다.
“괘,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왜 여기 누워 있어요!”
“일이 좀…….”
“아니, 다쳤으면 무전이라도 쳐야죠!”
“그 정도로 멀쩡하지는… 쿨럭!”
한유빈의 입에서 핏덩이가 튀어 올랐다.
반쯤 죽어가는 몰골을 보아하니 상태가 꽤 심각한 듯했다.
김민주는 곧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B-1 구역에 부상자 발생! 응급 처치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조금만 참아요. 어디를 다친 거예요?”
“발…….”
“발이요? 잠깐만요. 일단 제가 지혈이라도…!”
“빼고 다요…….”
쿨럭.
한 번 더 각혈.
아무래도 포기해야 하는 건가 싶던 찰나.
“지원팀입니다! 부상자는요?!”
몇 명의 의무병과 본부 소속의 사제 클래스가 다가왔다.
“아니, 또 본부장님이십니까?!”
“대한민국 O형 혈액은 본부장님이 다 빨아 드시겠습니다, 아주.”
걱정보다 꾸중을 먼저 날렸다.
이내 시작된 긴급 수혈.
그제야 기력을 조금 되찾았는지 한유빈은 눈을 끔뻑이며 주변을 둘러본다.
“…팀장님은 어디 있어요?”
“웨슬리 사무총장과 만났어요.”
“안 보이는데?”
김민주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두 개의 검은 기류가 서로 엉겨 붙어 만들어진 작은 구체가 있었다.
“저곳으로 둘 다 빨려 들어갔어요. 아마 다른 공간에서 싸우고 있을 거예요.”
“…이길 수 있는 건가?”
“그거야 모르죠. 다만…….”
김민주가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
“뭐… 우리는 우리 할 일에나 집중해야죠.”
한유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김민주에게 물었다.
“그래서, 전세는 어때요?”
“크게 불리하진 않은데… 인원 차이도 심하고 화력도 조금씩 밀리고 있어요.”
“대책은요?”
“그나마 우리 쪽이 유리한 건 임시 지원시설에서 계속해서 보급받을 수 있다는 건데…… 그것도 한계가 있어요.”
“그럼 빨리 끝내면 된다는 거죠?”
“……그렇죠.”
김민주는 어딘가 불안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럼 뭐… 어쩔 수 없네….”
한유빈이 몸을 일으켰다.
“안 돼요! 유빈 씨는 가만히 있어요!”
“우리 없이 끝낼 수 있어요?”
“그, 그건…….”
말끝을 흐리자, 한유빈이 거 보라는 듯 주삿바늘을 뽑으며 일어났다.
그러자 김민주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있다고 해도 끝낼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
“그래도 해봐야죠.”
마찬가지로 한유빈 또한 퍽 진지한 표정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지는 거보다야 나으니까.”
“……죽을 수도 있어요.”
“뭐야. 그게 무서워요?”
“…….”
김민주가 피식 입꼬리를 올린다.
“설마요.”
그녀들의 눈이 번뜩이길 한 차례.
“저기, 폼 잡고 있는 와중에 미안한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딱히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거든요?”
고개를 돌리자, 이아영 지원본부장이 서 있었다.
“아영 씨가 여기까진 왜…?”
“뭐야, 시설에서 나오지 말라니까?”
“비전투 인원이라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볼멘소리를 하길 한 차례.
“선물 가져왔어요.”
그녀의 뒤로 지원팀 전원이 수십 개의 케이스를 들고 나타났다.
“반능석 가공 끝났거든요.”
“……네?”
“버, 벌써…?”
김민주와 한유빈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 이제 겨우 두 시간 됐는데요…?”
“말도 안 돼.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뭐, 다 내 덕분이라고 하고 싶은데…….”
이아영 본부장이 뒤를 흘기며 말했다.
“저 혼자였으면 당연히 못 했을 거예요. 클로이 씨가 거의 다 했죠.”
“…….”
공을 넘기자 예상치 못했다는 듯 클로이가 퍽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이내 시선을 피한다.
“수고했어요.”
“아니, 뭐… 별거 아니었는데…….”
진심으로 그 말을 전하자, 데면데면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아영 본부장이 본론을 꺼냈다.
“아무튼, 급하게 만든 거라 그렇게 많진 않아요. 총 만 발밖에 안 되지만, 일단은 일반 병력에 지급해서 계속해서 지원 사격 요청해요. 당연히 총알 자체가 대미지를 줄 순 없겠지만, 한 발이라도 맞으면 스킬 사용이 차단될 거예요.”
“하지만 자칫하다간 아군이 휘말릴 수도 있잖아요.”
“그땐 뭐…….”
그녀가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이 나서야죠.”
그리곤 씨익 미소를 짓는다.
***
[고유 스킬 : 마왕 - 독재자]
[시전자의 상념에 따라 일회용 스킬을 제작합니다.]
[스킬 제작 중.]
[스킬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성물 - 롱기누스]
푸른빛의 창.
그 어떤 방어막도 뚫어 버리는 성창을 들고 웨슬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슈우욱―!
그 순간, 최대한 근거리에서 있는 힘껏 창을 내던졌다.
[고유 스킬 : 천지창조]
[11차원의 고유 공간을 창조합니다.]
[쉘터]
하지만 투명한 벽이 웨슬리 사무총장을 감쌌다.
스윽―.
내 창은 마치 허공을 가르듯, 웨슬리 사무총장을 그대로 통과해서 반대편으로 빠져나갔다.
[고유 스킬 : 천지창조]
지이잉―.
“……!”
내 머리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곧장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었다.
“시발…!”
나는 곧바로 목이 부서져라 고개를 꺾었다.
가까스로 머리가 날아가는 건 피할 수 있었지만, 흩날린 머리카락 몇 개가 일그러진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까부터 계속 이런 식이다.
내 공격은 아예 닿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을 시도할 때마다 몸의 어딘가가 날아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빌어먹을…….’
천지창조.
원형의 이능력을 이용하여 이공간을 창조하는 스킬이자, 활용도가 가히 어마어마한 능력.
내 공격 자체를 이공간으로 보내 버릴 수도, 아니면 본인을 다른 공간으로 감싸 공격을 무효화시킬 수도 있다.
아무리 화력이 좋은 스킬과 방어막을 뚫는 스킬을 때려 부어도 의미가 없다.
그 어떤 스킬도 아예 다른 공간에 있는 대상을 공격할 순 없으니까.
무엇보다 내 신체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간이 생성될 때 몇 초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
즉, 웨슬리가 생성하는 공간을 움직임으로 피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계속해서 움직이면 날 직접적으로 공격할 순 없겠지만…….’
결국, 소모전으로 가면 스킬 유지에 한계가 있는 내가 불리하다.
하지만, 만약 내 생각이 맞는다면…….
어쩔 수 없지.
직접 확인해보는 수밖에.
[습득 스킬 : 하이퍼 부스트]
[전투 중 시전자의 이동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타앗―!
나는 다시 한번 속도를 올려 웨슬리 사무총장을 향해 돌진했다.
“…실성한 건가요?”
[고유 스킬 : 천지창조]
지이이잉―.
그 순간, 또다시 내 머리 위의 공간이 휘어졌다.
재빨리 머리를 꺾으며 피했다.
공간이 생성되는 순간에 맞춰 스킬을 발동시켰다.
[습득 스킬 : 업화]
쿠구구―!
쾅―!
“……큭!”
아니나 다를까 공격이 적중했다.
여태껏 손끝 하나 닿지 못했던 그에게 고작 하급 스킬이 정확히 직격한 것이다.
이를 확인한 나는 이내 피식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다.
내 예상대로…….
한 번에 생성할 수 있는 공간에 한계가 있다.
“보아하니 만들 수 있는 공간은 한 번에 두 개가 전부인 것 같군요.”
“……!”
웨슬리 사무총장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그래.
말이 안 되지.
우리가 가진 힘은 그저 이능력의 원형.
획일화된 스킬이 아닌 다양한 형태로 변형할 수 있다는 것뿐.
결코, 절대적이고 무한한 힘이 아니다.
무한한 공간을 무한하게 만들어내는 힘?
그런 게 있을 리가.
“몇 번 공격을 맞대본 거로 그걸 파악하시다니…… 역시 대단하시네요.”
말과 다르게 명백히 조롱하는 투였다.
하지만 내가 볼 땐,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이 드러난 걸 무마하기 위해 애써 여유로운 척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이 공간을 만드는 데 하나를 쓰셨고, 절 공격하기 위해선 남은 하나를 남겨놔야 하니…….”
“…….”
[소환 : 군단]
[원형 소환 : 대원수 - 바엘]
[원형 소환 : 정복자 - 아가레스]
[원형 소환 : 지배자 - 가미긴]
[……]
[대악마 총 72, 마물 총 124,240마리가 소환되었습니다.]
그그그그극―.
키에에에엑―!
“이젠 어떻게 하실 겁니까?”
[고유 클래스 : 절대군주]
모습을 드러낸 내 모든 전력.
수십만 마리의 마물이 당장이라도 그를 집어삼킬 듯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가 현역 때는 레드 등급 던전 토벌에만 참여했어요.”
“……?”
웨슬리 사무총장은 어째선지 미소를 지으며 뜬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전투를 벌일 필요도 없었죠. 그냥 보스 몬스터를 다른 공간으로 보내 버리기만 하면 그만이니까요. 뭐… 그렇게 토벌한 몬스터만 300마리쯤 될 겁니다.”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지금 다 어디 있을 것 같나요?”
“……!”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유 스킬 : 천지창조]
[공간 해제]
[A-1 : 골드버그]
[A-2 : 고대병기 - 카미라]
[A-3 : 팬텀 소드]
[……]
[ZZA- 10 : 킬러 킹]
[총 337개 공간이 해제되었습니다.]
구구구구구―!
수백 마리의 몬스터.
역대 레드 등급 던전의 보스들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 공간을 두 개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저것들을 가두고 남은 공간이 두 개밖에 없었던 겁니다.”
“…….”
338마리의 레드 등급 몬스터.
그리고 봉인이 해제된 340개의 공간.
그 절망적인 풍경에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웨슬리 사무총장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미안한 생각은 안 들어요?”
그가 나에게 물었다.
“제가 미안해야 합니까?”
“당신이 방해만 안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우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러면 시민들의 희생도 없었을 테죠.”
“이 모든 게 저 때문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럼, 아닌가요?”
웨슬리 사무총장이 말을 이었다.
“당신만 아니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
“오늘 당신은 여기서 죽을 거고, WDSO는 해체될 것입니다. 당연히 베를린 침공은 막을 수 없을 거고요. 그렇게 당신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면, 당신을 믿고 따르던 부하들도 그제야 알게 되겠죠.”
그가 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모두 당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그의 말에 나는 작게 미소를 흘렸다.
“한때는 당신을 존경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토벌 시스템을 만들고, 조직을 꾸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늘 최전선에서 싸웠으니까요.”
여태껏 누구에게도 한 적 없는 말.
그리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는 그 말을, 웨슬리 사무총장에게 천천히 전했다.
“헌터는 자신보다 약한 놈을 절대 자신보다 앞에 세워선 안 됩니다. 가장 강한 놈이 가장 위에 있어야 하고, 가장 앞에 있어야 하죠.”
“…….”
“뭐, 권력욕에 찌든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
그래야만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힘을 가지고 계셨는데도 그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그 책임을 남한테 뒤집어씌우려는 걸 보니까…….”
나는 크게 숨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이제 보니 그냥 찌질한 겁쟁이였군요.”
“…….”
그 말이 확실히 직격타였는지 웨슬리 사무총장의 표정이 바짝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야기가 길어지는군요.”
“동감입니다.”
이내 우리 둘 사이에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전쟁 속 또 다른 전쟁.
다른 이들은 상상조차 못 할 그 거대한 전력들이 마주한 순간.
구구구구구―.
키에에에에―!!
두 사람의 전력이 서로를 향해 돌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