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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라고…?”
WDSO 대한민국 본부.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박인범 사무총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에덴이… 발견됐다고…?”
동시에 귀를 의심케 하는 그 갑작스러운 소식에 박인범 사무총장의 눈이 크게 꿈틀거렸다.
“아, 아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베를린 공습을 막고 있던 거 아니었어? 갑자기 에덴이 발견됐다니!”
「이전부터 노아 길드에 요청해서 계속해서 에덴 수색을 진행했었는데…… 전투 중 러시아 쪽에서 기준치를 크게 초과하는 이능파가 감지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박인범 사무총장과 다르게, 김준우는 꽤나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설마 지금 싸우다 말고 러시아로 달려가고 있냐?”
「국제협회도 해당 정보를 입수한 모양입니다. 전투가 거의 마무리 되던 찰나, 먼저 후퇴를 하더군요. 지금은 상황 종료돼서 현지 협회로 복귀한 상태입니다.」
“하아…….”
박인범 사무총장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에덴을 찾는 건 그에게도 1순위 목표였다.
청소 3팀 또한 그것을 위한 편성이었고, 처음부터 보다 자유롭게 해외 지부를 오갈 수 있도록 계획된 프로젝트였다.
김준우 또한 여러 가지 명분으로 각국의 협회를 오가며 에덴을 수색하는 것이 첫 번째 역할이었다.
‘그런데 설마하니 이런 타이밍에 발견될 줄이라고는…….’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할지.
박인범 사무총장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인상을 구기며 혀를 찼다.
“자세한 위치는?”
「현재 러시아 우랄산맥 근처 던전에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늦지 않게 갈 수 있겠냐?”
「혹시 몰라서 블라디미르 장관님한테 봉쇄 요청을 해뒀습니다. 그리고 노아 길드가 곧바로 이동할 예정이어서 어떻게든 맞춰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박인범 사무총장이 답답한 마음에 말끝을 흐리길 한 차례.
“애들은 괜찮냐?”
이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 뭐… 클로이 씨가 다치긴 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크게 문제없고요.」
“자네는?”
「…예?」
순간 당황한 목소리.
“자네는 어떻냐고.”
「…….」
김준우가 뜸 들이길 잠시.
「잘… 모르겠습니다.」
“……?”
모호한 대답을 던졌다.
괜찮으면 괜찮은 거고 안 괜찮으면 안 괜찮은 거지, 잘 모르겠다는 건 또 뭔가.
「일단 다친 곳은 없습니다만, 나중에 좀 더 확인해봐야 할 부분이 생겨서…….」
추가적 설명을 덧붙였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전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어렴풋이 추측했지만, 구태여 물어보진 않았다.
그가 말을 하지 않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이니.
“자네도 바로 러시아로 갈 생각인가? 몸 상태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되면서 곧바로 작전 수행을 하려는 건 좀 위험…….”
「아뇨. 저는 러시아로 가지 않습니다.」
“뭐…?”
「저희는 국제협회의 모든 전력이 이동한 틈을 타서 그들의 본부를 칠 생각입니다.」
“……!”
그 말에 박인범 사무총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목표는 HQ 점령을 통한 지휘체계를 무너뜨림과 동시에 남은 뱅크 아이템 전량 회수입니다.」
“위, 위험하지 않겠나.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건가?”
「혹시라도 에덴 확보에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한 보험입니다.」
“…….”
박인범 사무총장이 대답을 아꼈다.
고작 몇 시간이 지났다고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공습을 막기 위해 전투를 벌이던 게 불과 30분 전인데 갑자기 에덴이 출현했다고 하질 않나, 국제협회 본부를 공격하겠다고 하질 않나.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솔직히 거기서 모든 결판이 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면 또 원점이군.”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에덴이 발견되지 않았어도 국제협회는 후퇴했을 테니까요.」
“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김준우는 설명 대신 계속 말을 이었다.
「국제협회로서는 마지막 기회가 온 것뿐입니다. 만약 이것마저 막힌다면…….」
“……드디어 끝나는 건가?”
「예.」
그가 사뭇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국제협회를 무너뜨리는 것, 나아가… 이능차원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을 겁니다.」
“…….”
박인범 사무총장은 생각이 깊어졌다.
이능차원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다.
그게 의미하는 것은 자명했다.
던전도, 몬스터도 그리고 헌터도 없던 시절.
평화롭진 않았어도, 최소한 괴물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
“다른 나라들이 협력해줄지 모르겠군. 토벌이 산업으로 자리 잡힌 이상 탐탁지 않아 하는 세력도 분명 있을 텐데.”
「뭐, 그거야 나중에 고민해도 될 문제 아니겠습니까?」
김준우가 피식 실소를 뱉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사무총장님.」
“…….”
박인범 사무총장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잘 부탁한다.”
「…예.」
그 짧은 대답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박인범 사무총장은 깊은 한숨과 함께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댔다.
‘끝이라…….’
생사를 넘나들던, 그리고 누군가의 생사를 두 눈으로 지켜 봐왔던 수십 년간의 시간을 천천히 곱씹었다.
***
독일 베를린 협회, 헌터 지원실.
전투가 끝난 직후, WDSO의 모든 인원이 모인 자리.
“사제 클래스 분들 모여주세요! 포션이랑 회복 아이템 재고 전부 가져와 주시고요!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 분들은 지원팀 직원들 좀 도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아영 본부장은 그곳에서 부상자 파악 및 간단한 치료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충 큰 틀은 이렇게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나와 김민주, 한유빈 본부장과 노아는 그 옆에서 구체적으로 작전을 검토 중이었다.
“아무리 모든 전력이 이동했다고 해도, 최소한의 병력은 남아 있을 거예요.”
간단한 작전 브리핑을 마치자 김민주가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물론 최고 전력은 아니겠지만. 우리도 곧바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인원은 많지 않고요.”
“흐음.”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 우리끼리 할 수밖에 없겠네.”
그렇게 말하며 김민주와 한유빈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녀들 또한 같은 생각이었는지 별다른 이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준비되는 대로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작전 인원은 저랑 김민주, 한유빈 씨, 이아영 씨. 그리고…….”
나는 이내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클로이 씨까지 가주셔야겠습니다.”
“……?”
그와 동시에 클로이의 눈썹이 파도쳤다.
“뭔 소리야. 내가 왜 같이 가요. 나도 부상자인데?”
상당히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오른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물론 나도 큰 부상이 있는 사람을 작전에 참여시키는 건 최대한 피하고 싶지만…….
“뱅크 아이템을 회수해야 하는데, 당연히 해당 분야 전문가가 동행해야죠. 무엇보다 본부 내 연구실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클로이 씨뿐이잖습니까. 저희가 보호해드릴 테니, 회수만 도와주십시오.”
“…….”
클로이가 눈을 가늘게 뜨곤 나를 노려본다.
어째 쉽게 넘어올 것 같지 않아 나는 한마디를 더 던졌다.
“어찌 됐건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번 작전이 끝나면 두 조직 중 하나는 무너지겠죠.”
“…….”
“저흰 이왕이면 성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클로이 씨가 도와준다면 확률을 올릴 수 있을 거 같군요.”
“하아…….”
그녀가 한숨을 팍 내쉬길 한 차례.
“이 팔로는 가봤자 방해만 될 것 같아서 그래요.”
“…….”
여태껏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그녀가 이번만큼은 퍽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순식간에 숙연해진 분위기.
그녀의 반쪽짜리 오른팔을 가만히 힐끔거리고 있던 그때.
“거 핑계도 많네. 어차피 우리 회사 들어올 때 이미 한 번 죽은 목숨인데, 그냥 가면 안 돼요?”
이아영 본부장이 그녀를 향해 쏘아붙였다.
그와 동시에 싸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혹시 또다시 싸움이라도 날까, 우리가 곧바로 제지하려 했지만.
철컥―.
이아영 본부장은 아무렇지 않게 클로이의 오른팔에 무언가를 장착했다.
“생체 디바이스 의수예요. 일단 있는 재료로 급하게 만든 거라 완벽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당장 쓸 만은 할 거예요.”
“……?”
저건 언제 또 만들었대?
아니 그것보다…….
둘이 원래 친했나…?
“뭐해요? 움직여 봐요.”
“…….”
끼릭, 끼릭―.
클로이 또한 그녀의 갑작스러운 선물에 할 말을 잃은 듯, 벙찐 표정으로 고분고분 말에 따랐다.
생체 디바이스 의수.
부상을 당한 헌터들에게 자주 사용되는 기술이었다.
여기서 그 짧은 시간에 뚝딱 만들어낼 줄이야.
“쓰읍, 관절 가동 범위가 생각보다 좁네. 뭐, 나중에 본부로 돌아가면 제대로 만들어줄 테니까, 일단은 불편해도 참아요.”
“…….”
클로이는 여전히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건 우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뭘 봐요. 구경났어요?”
뒤늦게 우리의 시선을 눈치챈 그녀가 꽤나 멋쩍은 듯 쏘아댔다.
그리고 그때.
“……더럽게 못 만들었네.”
비로소 클로이가 입을 열었다.
“내가 만들었으면 이것보다 백배는 나았을 텐데.”
“뭐, 뭐라고요?! 아니 지금 그쪽 생각해서 만들어줬는데…!”
“고마워요.”
툭 던지듯 날린 감사 인사.
클로이가 작게 미소를 짓자 이아영 본부장 또한 코웃음 치길 한 차례, 이내 따라 미소를 지었다.
‘…….’
물론 나는 아직도 두 사람의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됐지만.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다시금 클로이를 향해 물었다.
“……알았어요. 갈게요.”
그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쯧, 진작에 그럴 것이지.
“자,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노아 씨도 와주십시오.”
모두를 불러 모은 후, 한 번 더 작전을 확인했다.
“저희는 차원석과 시간석을 회수하는 게 첫 번째 목표고, 여유가 된다면 지휘 시스템을 파괴할 생각입니다.”
“네.”
“알았어요.”
“노아 씨는 곧바로 러시아로 이동해서 에덴 던전 파악해주시고요. 확인되는 대로 연락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아시겠지만, 국제협회가 전투로 인해 아무리 전력이 약해졌다고 해도 절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닙니다. 최대한 전투는 피하시고 에덴 던전을 찾지 못하도록 교란만 해주십시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설명은 대충 끝난 것 같았기에 나는 허리를 펴며 물었다.
“그럼… 질문 있습니까?”
“저…….”
그러자 한유빈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이제 와서 물어보기 좀 그렇긴 한데… 뱅크 아이템을 회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예요? 결국, 국제협회 손에 에덴이 들어가면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아, 그건…….”
무어라 설명을 해줘야 할지 잠시 뜸을 들이고 있던 그때.
“에덴은 통제 아이템이 아니에요.”
클로이가 대신 입을 열었다.
“뱅크 아이템이 이능차원 현상을 부분별로 통제할 수 있는 리모컨이라고 한다면, 에덴은 전원 버튼이죠.”
“……?”
“……?”
그 이야기를 한 번에 이해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리송한 반응에 클로이가 한숨을 내쉬길 한 차례.
“과거, 수많은 과학자가 이 괴현상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었어요.”
이내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어느 것 하나 명확히 밝혀진 건 없지만. 유력한 가설 하나가 등장했어요. 어떤 특수한 물질이 끊임없이 이능파를 내뿜어서 지구상에 던전을 출현시키고 이능력자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냐는 가설이었죠.”
“아, 설마 그게…….”
“네. 그게 바로 시니아의 핵, 에덴이에요.”
김민주의 물음에 클로이가 즉답했다.
“가설에 따르면 에덴은 무언가를 통제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이능차원 현상을 유지하는 전력이자 전원인 셈이죠. 에덴을 파괴한다면 이 현상도 없어질 거라 보고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에덴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변하지 않겠죠. 그리고 웨슬리 사무총장이 절대 에덴을 파괴할 리는 없을 거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에겐 국제협회를 무너뜨리고 이능차원 현상을 종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열쇠지만, 국제협회엔 의미가 다릅니다. 갖고 있다고 해서 쓸 일은 없지만, 남의 손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하는 애물단지 정도죠.”
나는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을 한 번씩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에덴을 손에 넣는다고 한들, 결국 국제사회를 통제하기 위해선 뱅크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뱅크 아이템 없이 에덴을 가지고 있다고 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죠. 그래서 뱅크 아이템을 회수하려는 겁니다.”
“…….”
“…….”
그제야 이해가 간 듯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뭐, 더 할 말 없으시면 다들 장비 챙기고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비로소.
“끝을 보러 갑시다.”
마지막 작전이 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