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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전 국회의사당, 현 국제 헌터 협회 본부.
쾅―!
급하게 전투태세를 갖추고 그곳의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
“……?”
건물 안을 오가던 직원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어느 누가 달려들지 몰라,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그들과 대치하고 있자.
“거 살살 좀 다닙시다.”
“문 다 부서지겠네.”
“여기 혼자 씁니까?”
꽤나 냉담한 반응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것뿐이었다.
한마디씩 주의를 준 그들은 이내 별 관심 없다는 듯 다시금 본인들의 일에 열중했다.
“……뭐야?”
“…이게 끝이에요?”
한유빈과 김민주는 그 모습이 퍽 당황스러운 듯 중얼거렸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모르는 건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내부를 보며 그런 의문을 갖고 있자니.
“이 시간이면 잔존 작전팀도 전부 출동 나가서 아무도 없어요. 있어봤자 행정부 직원 몇 명인데… 이 사람들은 어차피 당신들 얼굴 모르니까, 그냥 들어와도 돼요.”
“…….”
“…….”
클로이가 먼저 걸음을 옮기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꽤나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폼이란 폼은 다 잡고 진입했는데, 설마하니 아무도 우리가 누군지 모를 줄이야…….
‘이건 뭐, 견학 온 것도 아니고…….’
그렇게 벙쪄 있던 그때.
“뭐해요. 안 따라와요?”
마치 제집 드나들 듯, 한 치의 경계도 없이 걸어가던 클로이가 답답한 듯 말했다.
우린 멋쩍은 얼굴로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
“…….”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다.
연구실로 향하는 동안 몇 명의 본부 직원과 마주쳤지만, 그 누구도 우리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놀랍도록 무관심한 반응,
우리를 막아서는 경비는커녕 우리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조차 단 한 명도 없었고, 그렇게 우린 아무런 방해도 없이 연구실 앞까지 도착했다.
그런데 이곳에 발을 들여놓고 나서 처음으로 그 앞에서 걸음이 막혔다.
“여기 문 어떻게 엽니까…?”
다름 아닌, 한눈에 봐도 꽤나 두꺼운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하긴… 뱅크 아이템 연구실인데 이 정도 보안은 해뒀겠죠.”
“부수는 게 어려울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여기까지 문제없이 왔는데, 이제 와서 소란을 일으키는 건 좀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아영과 한유빈 그리고 김민주가 한마디씩 덧붙였다.
전 PB 코퍼레이션 소속 뱅크 아이템 컨트롤 센터.
‘흐음…….’
굳게 잠긴 문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삐빅―.
클로이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분증을 인식시켰다.
철컹―!
“오, 이게 아직 되네?”
“……?”
“……?”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컨트롤 센터의 문이 활짝 열렸다.
…어이가 없네.
퇴사한 사람의 정보를 아직 안 지웠을 줄이야.
‘완전 개판이구만.’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고개를 가로젓길 잠시, 우리는 이내 천천히 연구실로 들어섰다.
섹터별로 나눠진 공간.
온갖 장비와 기계들이 즐비한 그곳.
클로이가 의자에 몸을 던지더니 세상 편한 자세로 우리를 향해 말했다.
“저기 A-3 구역에 있는 게 시간석이고, A-4구역에 있는 게 차원석이에요. 전용 케이스는 저기 세부 장비 보관실에 있으니까 잘 확인해보고 담아요.”
“…….”
“…….”
우리는 또다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너무나 쉽게 뱅크 아이템과 마주했다.
‘작전 회의랍시고 호들갑 떤 게 쪽팔릴 정도네…….’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오자.
“그러게, 굳이 나 안 데려와도 된다고 했잖아요.”
클로이가 단번에 내 표정을 읽은 듯 볼멘소리를 냈다.
“설마하니 이 정도로 허술할 줄은 몰랐습니다.”
“특정 몇몇 팀만 제외하면 나머진 사실 다른 조직이랑 똑같아요. 사람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허…….”
“시간 없다면서요. 빨리 챙기고 빠져나가죠.”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곧바로 뱅크 아이템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저기요.”
이아영 본부장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저거… 원래 저래요?”
그녀가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이이잉―.
A-4 구역에 보관되어 있던 차원석이 밝은 보랏빛을 내뿜으며 발광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거 왜 저럽니까?”
“혹시 터지는 거 아니에요?”
“에이, 설마.”
나와 김민주 그리고 한유빈 또한 알 수 없는 현상에 한마디씩을 던졌다.
하지만 이 컨트롤 센터의 전 총책임자였던 클로이는 가만히 그 빛을 쳐다보고 있길 잠시.
“수, 숨어요!”
갑자기 크게 당황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 네?”
“뭔 소립니까, 갑자기?!”
“닥치고 빨리 숨으라고!!”
무척이나 다급해 보이는 그녀의 반응에 우리는 이유를 물을 틈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렇게 각자 연구소 구석구석에 몸을 숨긴 직후였다.
파앗―!
차원석의 강렬한 빛과 함께 수십 명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이내 그 실루엣을 확인하고 자동으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시발, X 됐네…….’
그도 그럴 게 컨트롤 센터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다름 아닌, 국제 헌터 협회의 수장.
웨슬리 사무총장이었다.
‘대체 왜 벌써…….’
왜 벌써 복귀한 것인가.
나는 이를 으득 씹으며 몸을 숨긴 채 그를 노려봤다.
듣자 하니 봉쇄 구역에 큰불이 났다고 했는데, 설마 그것 때문에 후퇴한 건가?
아니면 벌써 에덴을 입수한 건가?
그것도 아니면…….
‘설마 우리가 본부에 침입했다는 걸 눈치챈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우리가 궁지에 몰렸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던 그 순간.
저벅, 저벅―.
“……!”
웨슬리 사무총장의 발걸음이 내가 숨어 있는 책상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
“쯧…….”
뱅크 아이템 컨트롤 센터.
웨슬리 사무총장은 차원석 게이트를 통해 본부로 복귀하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설마하니 그렇게 비장하게 출발해놓고 이토록 허무하게 돌아오게 될 줄이야.
이러면 베를린 공습까지 포기하고 후퇴한 게 우스운 꼴이 되지 않는가.
‘하아…….’
물론, 그 상황에선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능파 차단에, 구역 전체에 깔린 노아 길드.
게다가 원인 모를 갑작스러운 산불까지.
수색도 불가능한 마당에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조금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다시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문제는…….
‘김준우, 그놈도 움직이고 있을 거라는 건데…….’
노아 길드가 움직이고 있다는 건, 김준우도 에덴이 발견됐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만약 WDSO 귀에 이번 일이 들어갔다면 그들이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놈들 또한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에덴을 회수하려고 하겠지.
‘설마 불을 지른 것도 그놈 짓인가…?’
그런 생각이 스치길 잠시.
웨슬리 사무총장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우리를 해당 구역에서 후퇴시키려고 일부러 불을 질렀을 수도 있지만…….
고작 그것만을 위해 우랄산맥에 불을 지르는 걸 러시아 정부에서 허가해 줄 리가 없다.
러시아는 국제협회가 유일하게 약점을 잡을 수 없는 국가다.
토벌 산업에 그 어떤 투자도,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국가이기에, 토벌 산업을 미끼로 통제할 수 없는 나라.
그런 이들이 국제협회를 막기 위해 멀쩡한 산맥을 모조리 태워 먹을 이유가 없다.
애초에 그들이 우리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니 산불은 우리를 막기 위해 벌인 짓이 아니다.
아니, 우리를 막으려고 한다기보다…….
‘아예 구역 내 모든 병력을 후퇴시키려고…?’
만약 그렇다면 산불을 낸 범인은 김준우가 아니라 제삼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현재 정황상 제삼자라 하면…….
‘……귀찮은 놈들이 끼어들었군.’
웨슬리 사무총장은 그렇게 중얼거리길 한 차례.
“뭐… 산불이 꺼지기 전까지는 어차피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테니 급할 건 없겠죠.”
함께 복귀한 직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은 좀 더 정보를 모아봅시다. 위성으로 해당 구역 던전 위치 전부 파악하고, 위험도 순으로 분류해서 의심 던전 리스트 뽑아 보세요.”
“네.”
“불길이 사그라지면… 바로 다시 이동할 겁니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에덴을 찾아내세요.”
그의 말에 직원들은 대답 대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불 진화에 빠르면 3일.
늦으면 일주일.
그 안에 어떻게든 유력 던전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면 산불이 꺼지자마자 누구보다 빨리 회수해서 충분히 손에 넣을 수 있다.
‘…….’
그럼에도 웨슬리 사무총장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국제협회는 현재 벼랑 끝에 몰려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WDSO의 지부를 공격해서 그들을 산산조각 내는 것도 실패.
PB 코퍼레이션은 반강제로 해체됐고, 덕분에 자신의 손발이 돼줄 이들을 모두 잃었다.
무엇보다 회심의 일격으로 준비했던 베를린 공습도 물 건너갔고, 그 결과 국제협회는 너무나 많은 전력의 손실을 보았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반드시 에덴을 입수해야 한다.
마지막 기회이자, 최후의 선택,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모든 게 끝이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컨트롤 센터를 벗어나려던 그때.
“……?”
웨슬리 사무총장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센터 내부를 둘러봤다.
무언가 소리를 들은 것 같은 까닭이었다.
센터 내부를 한참이나 살폈지만, 수상한 점은 없었다.
‘…….’
하지만 복도를 가로질러 집무실로 향하던 와중에도 어딘가 찜찜한 기분은 멈출 줄 몰랐다.
결국, 그는 발걸음을 멈췄고 이내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사, 사무총장님…?”
“여, 여기까진 어쩐 일로…….”
사내 업무 데이터를 보관하고 처리하는 정보 기록실이었다.
“뱅크 아이템 컨트롤 센터, 출입 기록 좀 확인해볼 수 있을까요.”
“네, 네…? 아, 무, 물론입니다!”
갑작스러운 사무총장의 방문에 직원들이 크게 당황하기도 잠시.
이내 그들은 곧바로 모니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 별 특이 사항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직원 한 명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의심스러운 출입이나, 강제로 문을 연 흔적도 없습니까?”
“네, 네… 애초에 그런 출입이 있었으면 저희가 먼저 알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오늘은 출입 기록이 두 번밖에 없어서 확인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요.”
“…그렇군요.”
웨슬리 사무총장이 작게 대답했다.
역시 기우였나?
예민해져 있었나 보군, 그런 생각과 함께 등을 돌리던 그 순간.
“……잠깐.”
그가 다시 움직임을 멈췄다.
“출입 기록이 두 번이라고요…?”
“아, 네.”
직원의 확답에 그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한 번은 누군지 알고 있다.
오늘 오전, 컨트롤 센터에서 러시아로 이동했으니 당연히 본인이겠지.
그렇다면…….
“다른 한 명은 누굽니까…?”
“어…….”
직원이 모니터를 확인하길 잠시.
“클로이 팀장님이시네요. 뭐, 센터 총책임자시니까 볼 일이 있었던 모양…….”
그가 말을 하다 말고 그대로 굳었다.
웨슬리 사무총장의 그 서슬 퍼런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사고가 정지된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내.
쾅―!
웨슬리 사무총장은 모든 벽을 박살 낼 기세로 기록실을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