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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구역 수색 결과, 화재 발생 후 모든 병력이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러시아, 국회.
블라디미르에게 드미트리 협회장이 그 소식을 전했다.
“그래, 잘 됐군.”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화재 진압은 3일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그사이에는 아무래도 저희 또한 수색이 힘들 것 같습니다.」
“뭐…?”
블라디미르 장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동안 수색을 못 한다니? 화재가 진압되면 또다시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모여들 텐데, 그 안에 못 찾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그, 그래도 너무 위험합니다. 불길이 너무 거세서 방화복을 입고 수색을 하더라도 채 10분도 못 버틸 텐데…….」
“위험한 거 누가 몰라? 산 하나 태워 먹은 값은 해야 될 거 아닌가! 모두가 후퇴한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먼저 그 아이템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
드미트리 협회장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러시아의 허리라고 불리는 우랄산맥에 불을 지른 이유가 무엇인가.
남의 나라에서 보물찾기나 하고 있는 놈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그 틈에 아이템을 손에 넣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화재가 진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극약 처방을 내린 의미가 없다.
어떻게든 수색을 진행해야 하지만…….
‘하아…….’
블라디미르 장관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다.
아직 불길이 거센데 무턱대고 인력을 보낸다고 해서 반드시 찾을 거란 보장은 없다는 것을.
그렇다고 이능파 차단을 해제하자니, 다른 놈들이 먼저 정보를 입수할 게 뻔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다른 놈들이 모여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아이템을 찾을 수 있을까.
블라디미르 장관은 전화기를 붙잡은 채 한참을 고민했지만…….
영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러시아 협회의 기술력으로는 국제협회와 WDSO보다 아이템을 빨리 찾을 수 없다.
이대로 불길이 진압되면 또다시 모여들 테고, 누가 먼저 손에 넣든 간에 러시아는 구경도 못 해보겠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네…?」
“아무도 못 들어오게 막는 수밖에.”
「그게 무슨…….」
핸드폰 너머에서 상황 파악을 하려는 드미트리 협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자회견 열자고.”
블라디미르 장관이 지시를 내렸다.
“러시아 내에서 국제협회와 WDSO 간의 마찰이 일어나, 산불이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봤다…….”
「……!」
드미트리 협회장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양측 모두 러시아 내에서의 모든 활동을 전면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 군사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내 드미트리 협회장이 걱정스레 물었다.
「오히려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저희가 더 불리한 게…….」
“아니.”
하지만 블라디미르 장관은 고개를 저으며 즉답했다.
“국제협회와 WDSO가 정면으로 맞붙은 지 이제 겨우 하루 지났다. 전력 손실도 만만치 않을 거고, 다시 전투를 벌일 만큼 회복하지도 못했을 거야.”
「…….」
“보나마나 둘 다 전투는 피하고 싶겠지.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일반 군사력이라고 해도 무시할 순 없어.”
블라디미르 장관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기자회견 후에 두 조직에도 다시 한번 확실히 전달해.”
이내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 시간부로 러시아 안에선 개미 새끼 한 마리 가져갈 수 없다고.”
결국, 두 조직 모두와 척을 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블라디미르 장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물론 우랄산맥에 있다는 아이템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봤자 최상급 부산물이거나, 장비 재료겠지만…….’
그건 애초에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템이 국제협회와 WDSO 모두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물건이라는 것만으로도 손에 넣을 가치는 충분하다.
협상, 거래.
혹은 협박.
그 아이템을 직접 사용하진 못하더라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현재 국제사회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나라는 미국도, 중국도 아니다.
국제협회와 WDSO.
두 조직이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만약 이 아이템으로 두 조직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면…….
‘각하께서 좋아하시겠군.’
그의 입꼬리가 한없이 올라갔다.
***
쾅―!
뱅크 아이템 컨트롤 센터.
웨슬리 사무총장은 문이 부서져라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곤 곧바로 센터 내부를 미친 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책상 밑.
장비함 안.
모든 섹터 구석구석까지 뒤졌지만…….
“시발!!”
아무도 없다.
자신이 방금 출입기록을 확인했을 때까진 빠져나간 기록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곳으로 오는 사이에 빠져나간 건가?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오면서 마주치지 못했으니 갈 곳은 한정되어 있다.
지금 당장 수색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대체 그년이 여긴 왜 온 거지…?’
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웨슬리 사무총장의 머릿속을 스쳤다.
클로이.
전 PB 코퍼레이션 뱅크 아이템 관리팀장.
나름 국제협회의 핵심 인력이었지만.
WDSO와의 마찰에서 양상이 불리해지니, 박쥐같이 WDSO로 갈아탔다.
그런 인간이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본부로 다시 기어들어 왔을까?
뭐, 두고 간 물건을 가지러 온 건 아닐 테고.
‘…….’
잠시 우두커니 서서 생각을 정리하던 그 순간.
“……설마.”
이내 무언가가 떠오른 듯, 웨슬리 사무총장은 곧바로 A-3 구역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
텅 비어 있는 뱅크 아이템 보관 체임버.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시발, 시발!!”
쾅―!!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자 순간 검은 기류가 터져 나오며 센터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사, 사무총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뒤늦게 웨슬리 사무총장을 따라온 직원들이 물었다.
하지만 그들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 뭐야…?”
“체임버가 왜 비어 있어?”
직원들 또한 뱅크 아이템이 있어야 할 그 빈자리를 바라보며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
“…본부 봉쇄하세요.”
웨슬리 사무총장의 낮은 음성이 깔렸다.
“이 시간부로 본부 밖으로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나갑니다. 그리고 기록실 내 모든 CCTV 확인하고, 구역별로 병력 배치해서 침입자 수색 진행하세요.”
“지금 그만한 인력이……”
“시발, 당장 움직이라고!!”
그의 고함과 함께 또다시 터져 나오는 검은 기류.
화들짝 놀란 직원들은 대꾸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센터를 빠져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다시금 홀로 남은 컨트롤 센터.
“…….”
웨슬리 사무총장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확실하다.
WDSO 또한 에덴의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국제협회가 에덴을 찾기 위해 러시아로 이동할 거라는 걸 알고 그 틈을 타서 본부를 친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지금이라면 뱅크 아이템을 탈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에덴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도, 해당 장소가 아닌 적진으로 향하는 과감한 판단.
정확히 빈틈을 노린 작전.
허를 찌르는 계획.
틀림없다.
김준우가 직접 움직이고 있다.
독일에서 끝을 보지 못했다고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이야.
하지만 그 또한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빨리 복귀할 거라고는 말이지…….’
본인이 컨트롤 센터를 나가서 출입기록을 확인하는 사이에 뱅크 아이템을 들고 사라졌다.
다시 말해, 자신이 본부로 복귀하던 그 시점에는 센터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급한 건 그들이다.
이곳은 그들에게 있어, 적진 한복판.
국제협회의 본부다.
결코, 무사히 빠져나가진 못할 것이다.
웨슬리 사무총장은 굳은 얼굴로 천천히 센터를 빠져나갔다.
***
“우,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센터를 빠져나와 미친 듯이 복도를 질주하고 있던 그때, 김민주가 물었다.
“낸들 알아?”
당연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
그저 앞뒤 없이 달릴 뿐이었으니까.
그런 내 손에는 차원석과 시간석이 담긴 두 개의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웨슬리 사무총장이 이렇게 빨리 복귀하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그가 나간 틈을 타서 가까스로 뱅크 아이템을 회수하는 데엔 성공했지만…….
‘문제는 빠져나갈 수 있냐는 건데…….’
또 아까처럼 철판 깔고 정문으로 돌파해볼까.
아니, 지금 상황에 그건 너무 도박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달리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던 그때.
「컨트롤 센터 내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발생! 모든 직원은 의심 인원 발견 시 즉시 보고 바랍니다.」
복도 스피커를 통해 방송이 울려 퍼졌다.
기어이 들통 난 것이다.
‘몰래 빠져나가긴 글렀군.’
건물을 부수고 도망쳐야 하나 싶던 그때.
“지하에 피난용 비상구가 있어요.”
앞서가던 클로이가 말했다.
“봉쇄하기 전에 도착하면 들키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어요. 괜히 눈에 띄는 짓을 하는 것보단 그게 낫겠죠.”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이내 그녀가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비상구 앞에 다다른 그때.
“빌어먹을…….”
“하아…….”
코너에 몸을 숨긴 채 비상구 앞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집중해. 놈들은 숙련된 헌터들이야.”
“알겠습니다.”
“발견 즉시 발포하고, 경계 늦추지 마.”
병력이 벌써 비상구 앞에 포진해 있었다.
“…이제 어떡하죠?”
“몇 명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죠?”
이아영 본부장이 숨을 죽인 채 묻자, 한유빈이 의견을 내놓았다.
‘역시 그 방법밖에 없는 건가…….’
확인되는 인원은 5명.
충분히 상대할 만하다.
나는 김민주와 한유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길 한 차례, 모두가 전투태세를 갖췄다.
“돌아가요.”
그때, 클로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몇 명이나 된다고…!”
“여기엔 이전에 만들어둔 반능석 장비가 아직 남아 있어요.”
클로이가 한유빈의 말을 끊으며 즉답했다.
그와 동시에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달려드는 순간 스킬을 차단당할 테고, 그러면 전투가 가능한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요.”
클로이는 나를 바라봤다.
“혼자서 상대할 수 있겠어요? 그것도 4명과 뱅크 아이템을 지키면서?”
“…….”
날 뭐로 보는 건가.
당연히 가능하다.
물론…….
내가 예전 상태라면 말이지.
[각성 패시브 : 슬기로운 청소부]
[해당 패시브의 효과로 인해, 귀하의 고유 스킬이 변경되었습니다.]
[귀하의 고유 클래스가 초기화되었습니다.]
현재 내 상태는 고유 스킬과 고유 클래스가 모두 초기화된 상태.
어떤 스킬인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나조차 모르는데 과연 전투를 벌이는 게 옳은 선택일까.
‘만약 공격 스킬이 아니라면…….’
그땐 더는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이곳은 적진 한복판, 국제협회의 본부다.
적진 한복판에서 도박을 할 순 없다.
“…돌아갑시다.”
결국, 나 또한 클로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내가 지시를 내린 이상, 이의를 제기할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다시금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던 그 순간.
“1층, 2층 다 확인했어?”
“네, 확인했습니다. CCTV에도 잡히지 않은 걸 보면 내부 상황을 잘 아는 놈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봤자 독 안에 든 쥐새끼야. 1, 2층 다 확인했으면 남은 건 지하밖에 없잖아.”
뒤에서 다른 병력의 대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발…….’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 느껴졌다.
김민주와 한유빈은 곧바로 공격 태세를 갖췄고, 이아영과 클로이는 그들 뒤로 몸을 숨겼다.
이대로는 포위당하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여길 빠져나갈 수 있는 거지.
머리가 점점 하얘지던 그 순간.
“…….”
구석에 있는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방법이 있을 것 같군요.”
구석에 있던 던전 청소용 도구들을 손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