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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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도심에서도 한참 떨어진 야산.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던전 앞에서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능파 파장은 안정적인데, 강도가 레드 등급을 한참 초과했어요. 이 정도면 오메가 급에 근접한 수치에요.」
그리고 그때, 이아영 본부장에게서 무전이 울렸다.
오메가 급.
실질적 토벌 불가 판정을 받은 던전에만 붙는 명칭.
서울 리젠 던전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피해를 안긴 등급이다.
당연히 혼자 오메가 급 던전을 토벌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게다가 고유 스킬이 뭔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뭐, 근접이라는 건 그 정도까진 아니라는 거겠지만…….’
어쨌거나 위험한 건 변함이 없다.
아무리 훈련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죽음을 각오할 이유까진 없지.
“3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으면 바로 작전팀 투입해주세요.”
「…알겠어요」
“그럼 진입하겠습니다.”
「준우 씨.」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진입하려던 그때, 이아영 본부장이 사뭇 무거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부탁이니까… 조심해요.」
“알겠습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던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렁거리는 입구를 지나자마자 눈에 들어온 기괴한 조각상과 피라미드 형태의 거대한 건축물.
마치 고대 사원을 연상케 하는 풍경.
‘차원형 던전이군…….’
현실과 다른 공간에 생성되는 던전.
그 어둡지도, 그렇다고 밝지도 않은 오묘한 공간을 천천히 둘러봤다.
안개가 잔뜩 끼어 있는 그곳은 온갖 이끼와 덩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 당장이라도 나를 집어삼키려는 듯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피라미드 사원이 보였다.
나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곧장 그 안으로 들어섰고, 이내 원형의 공간과 함께 커다란 제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일 던전인가…?’
하나의 던전에 오직 한 마리의 몬스터만 존재하는 단일 던전.
이 공간을 보아하니 다른 몬스터는 없는 듯했다.
한 마리만 상대하면 되기에 언뜻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보스 몬스터가 상식 밖의 힘을 지닌 경우가 대다수다.
협회에서도 단일 던전에 더 많은 준비와 신경을 기울인다.
그럼에도 일반 던전보다 사망률이 거의 두 배나 높다.
‘쯧, 어려워지겠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던 그때.
스스스스―.
커다란 제단 앞으로 안개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곳으로 응축되던 안개는 점점 사람의 형태를 갖춰갔다.
이윽고, 단검을 쥐고 있는 거대한 형체가 눈앞에 나타났다.
고대 문명의 복식을 갖춘 제사장의 모습.
온몸이 피로 얼룩진 그가 나를 발견한 순간.
카아아아아―!!
“……!”
전신이 오싹해지는 기괴한 비명을 질렀다.
몬스터의 이름도, 정보도 모른다.
던전 내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도 모른다.
한순간이라도 집중을 잃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극한의 상황.
이런 곳에 굳이 제 발로 기어들어 온 이유는 딱 하나.
[각성 패시브 : 슬기로운 청소부]
[해당 패시브의 효과로 인해, 귀하의 고유 스킬이 변경되었습니다.]
[귀하의 고유 클래스가 초기화되었습니다.]
[고유 스킬 : 황제]
[고유 클래스 : 성군]
오로지 나에 대해 알기 위해서.
“후우…….”
정신 똑바로 차리자.
속으로 몇 번이나 중얼거리길 잠시.
타앗―!
더 이상 생각할 시간도 없이, 곧바로 제사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
러시아, 우랄산맥 인근.
화마에 의해 모든 것이 시커멓게 변해버린 숲속.
“출입 가능한 던전부터 샅샅이 수색해! 하나도 빼놓지 말고!”
러시아 협회의 모든 인원이 모여든 그곳에서 드미트리 협회장이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야야! 아무렇게나 막 들어가지 말고 A-1 구역이랑 A-2 구역은 1팀이 맡고, 북부 지역은 2팀이, 나머지 구역은 3팀이 맡아!”
“아, 알겠습니다.”
“네!”
모여든 인원들의 우렁찬 대답.
하지만 드미트리 협회장은 아까부터 계속 무언가 탐탁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3일 안에 끝내야 하니까 빨리빨리 하자고.”
드미트리 협회장은 그 지시를 마지막으로, 임시 작전지휘실로 걸음을 옮겼다.
현장 근처에 설치된 작은 컨테이너.
작전지휘실이라기보단 당직실에 가까운 그곳에 들어서자 이고르 통제팀장이 곧바로 술잔을 대령했다.
“쯧, 이게 뭐 하자는 짓인지…….”
드미트리 협회장은 쭉 술을 넘기곤 꽤나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러시아 협회는 독립협회인 동시에 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아주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와 비슷한 협회로는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몇몇 독재국가, 그리고 북한 정도.
그리고 러시아 협회가 속한 정부 기관은 다름 아닌 국방부였다.
당연히 그들의 최고 책임자 또한 드미트리 협회장이 아닌, 블라디미르 장관인 셈이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협회에 지원은 고사하고 신경조차 안 쓰더니…….’
막상 필요해지니까 제 마음대로 부려먹으려는 꼴이 영 못마땅했다.
게다가 전 병력을 투입하라니.
작전팀이 무슨 군대인 줄 아는 건가.
‘애초에 전 병력이라고 해봤자 100명도 안 되는 인원인데…….’
오죽하면 협회장이 직접 현장에 나와서 작전 지휘를 하고 있겠는가.
개발도상국 협회 상황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영 못마땅한 드미트리 협회장은 혀를 차며 목소리를 냈다.
“언제부터 이쪽 바닥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다고…….”
“그러게 말입니다. 평소에 위험한 작전이 있다고 지원 좀 해달라고하면 들은 체도 안 하시더니.”
이고르 통제팀장 또한 한마디를 거들었다.
“WDSO랑 국제협회가 그 아이템을 두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니까, 이제 와서 욕심이 난 거지 뭐. 먼저 아이템을 손에 넣으면 양쪽 모두를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이제 와서 토벌 조직을 견제하고 싶으면, 애초부터 지원해줬으면 되는걸…….”
“알잖아. 여긴 러시아야.”
드미트리 협회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개인이 힘을 갖는 건 피하고 싶지만, 국가가 힘을 갖는 건 마다할 수 없겠지.”
그러자 이고르 통제팀장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제야 불편한 이야기를 꺼냈다는 걸 문득 깨달은 드미트리 협회장은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아이템이길래 WDSO랑 국제협회에서 그렇게 혈안이 됐던 걸까.”
“그게… WDSO에선 새로운 뱅크 아이템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거에 대해서 팀원들이랑 얘기를 좀 해봤는데…….”
이고르 통제팀장은 이내 주변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곤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아무리 봐도 뱅크 아이템은 아닌 것 같습니다.”
“……뭐?”
그 말에 드미트리 협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생각해보십시오. 뱅크 아이템은 실질적으로 거래 및 양도가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까. 애초에 두 조직이 손에 넣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저희 소유입니다.”
“난 또 뭐라고… 야, 지금 상황을 좀 봐라. 국제협회를 예전 같은 조직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며칠 전엔 독일 공습도 감행한 놈들이야. 그깟 원칙 하나 어기는 것쯤이야 우습지도 않을걸.”
“국제협회는 그렇겠죠. 하지만… WDSO는 아니지 않습니까.”
“……?”
그 순간, 드미트리 협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와 동시에 이고르 통제팀장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WDSO는 국제협회를 대신해서 나름 공식적인 국제기구로 인정받은 조직인데, 단지 국제협회를 견제하려는 이유 때문에 원칙을 어길 놈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
드미트리 협회장이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그도 그럴 게, 일리가 있는 말이었으니까.
“그래서, 아무리 봐도 뱅크 아이템은 아닌 것 같고…… 다른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거라니?”
“뱅크 아이템은 아니지만 특별한 규정도 없고, 무엇보다 WDSO랑 국제협회가 모두 눈에 불을 켜고 손에 넣으려고 하는 물건이라면…….”
이고르 팀장이 뜸을 들이길 잠시.
“에덴이 아닐까 하고…….”
“……!”
드미트리 협회장이 크게 움찔했다.
그 또한 에덴에 대해선 알고 있다.
아니, 아무리 모양뿐인 협회장이라고 해도 그걸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그냥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물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실존한다고…?’
아니 그것보다.
그게 러시아에서 발견됐다고?
‘…….’
드미트리 협회장은 팔짱을 낀 채 다리를 떨어대기 시작했다.
다른 걸 떠나서, 에덴이라는 말에 갑자기 불안해진 까닭이었다.
현재 국제협회는 전 세계를 통제하려 하고 있다.
그 때문에 계속해서 국제 사회와 대립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독일에 대해 공습까지 감행했다.
그런 이들에게 에덴이 어떤 의미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완벽한 통제를 위한 마지막 조건.
만약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게 정말 에덴이라면…… 접근 금지 요청만으로 그들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설령 우리가 먼저 손에 넣는다고 한들 쓰지도 못할 물건일뿐더러 아무런 의미도 없다.
만약 정말 에덴이라면…….
‘WDSO가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이야…….’
빌어먹을.
과연 이걸 찾는 게 맞는 건가…?
그런 의구심이 드는 순간, 드미트리 협회장은 결국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자, 장관님.”
「뭔가.」
블라디미르 국방부 장관.
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수색… 중단하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소리야, 또.」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체 뭐가?」
드미트리 협회장은 잠시 뜸을 들였다.
지금 러시아에서 발견된 것이 에덴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가 없는 까닭이었다.
확실한 정보가 아니고, 그저 통제팀장의 일방적인 추측일 뿐이었으니.
그런 걸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테고, 오히려 그의 성격이라면 더 좋아할 수도 있었다.
드미트리 협회장은 다른 이유를 들어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국제협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저희가 다룰 수 있는 물건인지도 확실치 않고. 그냥 WDSO에 넘겨주시는 게…….”
「드미트리.」
“예…?”
그러자, 핸드폰 너머에서 작은 실소가 들려오길 한 차례.
「혹시 죽고 싶나?」
“…….”
드미트리 협회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난 자네 의견을 물은 게 아니야.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거지.」
“…….”
「한마디만 더 해봐. 광장에 네놈 모가지를 걸어줄 테니.」
드미트리 협회장은 이를 꾹 깨물었다.
적어도 그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저게 농담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드미트리 협회장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통화를 종료했다.
하지만.
‘안 돼…….’
드미트리 협회장은 여전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게 정말 에덴이라면 우리가 찾는 순간 재앙이 찾아올 것이다.
국제협회는 이제 더 이상 시민의 안전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통제와 지배.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악무도한 집단으로 변해버렸다.
우리가 지금 에덴을 찾고 있는 건, 그들에게 수고를 덜어주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된 이상…….’
독단적으로 수색 중지 명령을 내려야 하나?
하지만 그러다가 정말 광장에 목이 걸릴 수도…….
‘시발…….’
무엇 하나 섣불리 선택할 수 없는 상황.
드미트리 협회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댔다.
그리고 그때.
「혀, 협회장님!」
무전기에서 작전 1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뭔데?”
드미트리 협회장은 침을 꿀꺽 삼킨 뒤, 떨리는 목소리로 응답했다.
「차, 찾은 것 같습니다…!」
“……!”
이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정신이 순간 아득해졌지만, 그것도 잠시.
드미트리 협회장은 애써 이성을 부여잡고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했다.
“일단 다른 팀한테는 말하지 말고, 최대한 숨겨서 빠져나와.”
「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냥 그렇게 해! 던전 빠져나오는 대로 나한테 가져오고!”
「아, 알겠습…….」
그리고 그 순간.
쾅―!!
무전기에서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야, 야… 방금 뭐야! 괜찮은 거야?! 시발, 대답해!!”
「…….」
드미트리 협회장은 곧바로 무전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조금씩 불안한 기운이 엄습해오던 그때.
「협회장님이십니까?」
한 남자의 목소리가 작전 1팀장을 대신해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