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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러시아 국회.
블라디미르 국방부 장관에게 귀를 의심케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장에서 수색 중이던 협회 인원이 모두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현재 드미트리 협회장을 포함해서 약 100명가량의 작전팀 전원이 연락 두절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연락이 끊기다니! 마지막으로 연락된 건 언젠데!”
“수색 시작 13시간쯤 지났을 때입니다. 어제 오전 8시부터 수색을 시작했으니…….”
보고를 하던 보좌관과 블라디미르 장관이 누구랄 것 없이 동시에 시계를 바라봤다.
현재 시각은 수색 시작 후 하루가 지난 오전 8시.
그럼 벌써 연락이 끊긴 지 10시간 가까이 됐다는 건가?
‘대체 무슨 일이…?’
블라디미르 장관이 꽤나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협회 통제팀에서 위치 추적 가능하잖아. 확인해 봤나?”
“아시지 않습니까. 협회 내에 제대로 작동하는 탐지기기는 없다는 거.”
“…….”
잠시 잊고 있던 사실에 블라디미르 장관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설마 드미트리 그 새끼, 아이템 챙겨서 도망친 건 아니겠지? 위치 추적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거 아닌가.”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
“하, 어쩐지 계속 불안하다고 밑밥을 깔더니만…….
블라디미르 장관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실제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상상조차 못 한 채.
“일단 현장으로 가서 찾아보게. 도망쳤으면 흔적이라도 남아 있겠지.”
“알겠습니다.”
“단서 나오는 대로 나한테 보고하고. 뭐… 만약 잡으면 생포해오고. 처분은 내가 직접 할 테니까.”
그렇게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보좌관에게 지시를 내린 순간.
쾅―!!!
갑자기 건물 밖에서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사무실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
블라디미르 장관은 곧바로 일어나서 창밖을 살폈다.
“……뭐, 뭐야?!”
저 멀리 커다란 화염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이 어딘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 방향이면…… 협회 아닌가.”
“마, 맞는 것 같습니다.”
보좌관도 당황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남자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된 도심과 시민들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대체 뭐가 어떻게 됐길래…….
벌건 대낮에 모스크바 한복판에 있는 협회가 공격을 받은 것인가.
순간 블라디미르 장관의 눈앞이 까마득해진 그때.
‘이제부턴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저조차 예상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했던 그 말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그러니… 부디 조심하십시오.’
김준우.
접근 금지 요청 직후 연락해온 그가 던진 그 한마디.
“…….”
블라디미르 장관은 아비규환이 된 도심을 보고 나서야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
“아영 씨!!”
WDSO 대한민국 본부.
산하 연구소 이클립스, 뱅크 아이템 보관 구역.
갑자기 들이닥친 김민주 본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이아영을 찾았다.
바싹 굳은 표정에서부터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무, 무슨 일이에요?”
이아영 본부장 또한 곧바로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국제협회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
“……!”
그 대답에 이아영은 물론, 클로이 또한 눈이 동그래졌다.
“우, 움직이기 시작했다뇨. 러시아를 공격하기라도 했다는 거예요?”
“러시아뿐만이 아니에요.”
“……네?”
“러시아 협회를 비롯해서 유럽과 중동 협회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어요.”
순간에 정적이 흘렀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차별 공격이라면… 설마…….”
“네.”
이아영의 물음에 김민주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통제하는 것을 포기한 거예요. 그 대신…….”
“전부 파괴하는 것으로 노선을 바꿨네.”
클로이가 그녀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럼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
“…….”
김민주와 이아영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곧 마음을 가다듬은 이아영이 클로이에게 물었다.
“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 세계 협회를 전부 파괴한다니.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올 이유가…….”
“국제협회는 뱅크 아이템을 모조리 빼앗긴 순간부터 궁지에 몰린 셈이에요. 잃을 게 없어진 마당에 못 할 게 뭐가 있겠어요.”
클로이가 애써 담담한 척 대답했다.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이젠 멈추지 않을 거예요. 전 세계 협회가 모두 무너지거나 혹은 본인들이 사라질 때까지.”
“그래도 뱅크 아이템은 우리가 가지고 있잖아요!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고 해도 그걸 생각 안 하고 움직일 리가…!”
“상관없어진 거죠.”
클로이가 대답했다.
이아영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우리가 뱅크 아이템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나온다는 건…….
“국제협회가 먼저 에덴을 손에 넣은 거예요.”
“…….”
“…….”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
“아무튼 국제협회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어요. 빨리 병력 준비해서 막아야 해요.”
김민주가 말을 이었다.
“더 늦어지기 전에 선생님 호출해주세요.”
“…….”
하지만 이아영 본부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뭐 하고 있어요! 빨리 연락해서 복귀해달라고…!”
“지금은 안 돼요.”
이아영 본부장이 그녀의 말을 자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이능파가 오메가 등급에 가까울 만큼 강력한 던전이에요. 그 안에서는 무전은 물론이고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요.”
“그, 그게 무슨…….”
“준우 씨가 던전 진입 후 3시간 안에 연락이 없으면 그때 추가 병력을 보내 달라고 했어요. 그때까지는 연락이 불가능해요.”
이아영은 그렇게 말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30분 남았어요.”
“기다리고 있을 시간 없어요! 지금 당장 병력 투입해서 어떻게든 데려와야 해요!”
김민주의 목소리가 점점 격양됐다.
하지만 이아영과 클로이는 여전히 답답한 반응이었다.
그러자.
“저라도 가볼게요. 던전 위치라도 알려줘요!”
결국, 김민주가 참다못해 나섰다.
“제가 직접 가서 데려올 테니까.”
“자, 잠깐만요!”
“괜히 들어갔다가 오히려 김준우랑 당신, 둘 다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이아영과 클로이는 온갖 말로 그녀를 설득했지만, 이미 그녀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김민주는 자신의 장비를 챙기곤 곧바로 이클립스를 벗어나려고 했다.
“……됐어. 인마.”
하지만 곧 들려온 목소리가 그녀를 막았다.
맞은편에서 만신창이가 된 누군가가 연구소로 들어왔다.
“서, 선생님…?”
“토, 토벌한 거예요…?”
“뭐야, 정말로?”
이아영과 클로이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당황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갔다.
김준우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다 모여 있는 거 보니… 어째 좋지 않은 상황 같은데?”
“국제협회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각국 협회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그렇군.”
김준우는 그 짧은 설명으로 모든 걸 이해했다는 듯, 한숨을 팍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지금 당장 모든 병력 대기시켜주십시오.”
그가 입을 열었다.
“이제 훈련은 끝났으니까.”
그 말과 함께 먼저 이클립스를 나섰다.
***
WDSO 서울 본부.
사무총장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바로 병력을 파견해드리겠습니다!”
“예예, 상황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버텨주십시오!”
“일단 방어에만 신경 쓰고 계시면, 저희가 곧바로 가겠습니다!”
박인범 사무총장의 전화기가 미친 듯이 울려대고 있었다.
국제협회의 무차별 공습 소식이 전달되자마자 각국의 모든 협회장이 WDSO에 도움을 요청하는 중이었다.
박인범 사무총장은 물밀 듯 밀려드는 그들의 연락에 일일이 응답해주느라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혀, 형님!”
한창 바쁜 가운데, 이두식 이사가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그리고 곧바로 소식을 전했다.
“중앙아프리카 통합 협회가…… 무너졌다고 합니다.”
“……!”
가히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중앙 아프키라 통합 협회.
WDSO의 직속 지부이자, 핵심 부산물 생산 지역.
그곳이 함락됐다는 건… 이제부터 WDSO는 부산물을 공급받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그뿐만 아니라, 프렉탈 같은 최고급 부산물이 국제협회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일부러 그걸 노리고 먼저 친 거군…….’
박인범 협회장이 이를 빠득 갈았다.
독일 공습 실패로 인해 상당히 큰 전략적 손실을 보았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고 해도 앞뒤 없이 달려든 게 아니었다.
부족한 전력과 장비를 보충하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하고 움직인 것이다.
“러시아, 동유럽과 중동 아시아 대부분의 협회가 이미 함락됐습니다! 각국이 군사 대응에 나서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는데… 국제협회의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지 않아 그마저도 힘든 것 같습니다.”
“빌어 처먹을…….”
박인범 협회장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 틈을 타서 테러 단체와 반정부 단체들 또한 들고 일어난 것 같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전역에 선전포고가 내려졌다고 하고…….”
“…….”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국제협회가 정확하게 원했던 상황이겠지.
막아야 한다.
더 이상 지체했다간 전 세계가 돌이킬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질 것이다.
이전에 없던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준우는… 지금 어디 있나?”
“막 파견 준비 마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제협회의 움직임을 전혀 예측할 수가 없어서 어디로 먼저 가야 할지…….”
“…….”
박인범 사무총장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미 유럽은 넘어갔다.
지리적으로 봤을 때 그다음은 아시아로 진출하는 게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다.
무엇보다 웨슬리 사무총장은 똑똑한 놈이다.
언뜻 이성을 잃고 눈에 보이는 대로 모조리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러시아를 가장 먼저 공격함으로써, 에덴을 손에 넣었다.
그다음에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을 공격해서 활동 범위를 넓혔고, 중앙아프리카를 통해 부산물 확보, 중동 아시아를 통해 국제적인 혼란을 일으켰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차례로 공격하고 있어…….’
그렇다면 다음은…….
“아시아가 아니야.”
“……네?”
박인범 사무총장이 이두식 이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한중일을 포함해서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전부 WDSO의 본진이나 마찬가지야. 현재 시점에서 그곳을 공격하는 건 국제협회에 위험부담이 너무 커.”
“그, 그럼…….”
“확실히 공습을 성공시킬 수 있는 곳이면서, 단숨에 전세를 끌고 올 수 있는 곳.”
박인범 사무총장이 눈을 위로 치켜들어 이두식 이사와 눈을 맞췄다.
“미국.”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다음 공습 지역은 미국이다.”
“…….”
이두식 이사는 움찔했지만, 그것도 잠시.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파견하겠습니다.”
그 말을 뒤로하고 곧장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그가 사라진 뒤에도 박인범 사무총장의 전화기는 쉼 없이 울려댔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정리하느라 모두 무시했다.
국제협회의 무차별적인 공격.
혼란스러운 틈을 타 발발하고 있는 각국의 전쟁.
기어이 넘어가 버린 에덴.
‘시발…….’
두 손을 꽉 포개었다.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설립되었던 국제협회.
그들을 따라 세워진 각국의 수많은 독립 협회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들의 안중에는 시민들의 안전 따윈 사라졌다.
그들에게 남은 건 오로지, 통제와 권력뿐.
‘서로 살리려고 만든 협회가, 이젠 서로 죽자고 싸우고 있구먼…….’
박인범 사무총장은 이전에도 그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서로를 밟고 올라가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
던전이 나타나고, 몬스터가 등장했음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인간들끼리의 싸움.
기어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