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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309화 (309/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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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한가운데.

우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선박.

이내 선박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자.

“……뭐야?!”

나도 모르게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도 그럴 게, 그 선박에는 ‘한별무역’이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다.

“한별무역…?”

“한별에서 여긴 어떻게…….”

갑판에서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던 병력도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인 듯했다.

“빠, 빨리 회항시켜야 하는 거 아니에요?”

“소식 못 들었나. 왜 아직도 항해하고 있는 거래요?”

김민주와 한유빈 또한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나 또한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통제팀에 무전을 날렸다.

“통제팀, 지금 당장 선내에 통신 요청해보세요. 여긴 위험하니까 항로 변경하라고.”

「아, 알겠습니다.」

대체 뭔가 싶어 모두가 벙찐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때.

「아아, 들리십니까?」

우리 쪽 선내에 통신이 울렸다.

「그런데 표정들이 왜 그러십니까. 못 볼 거라도 보셨습니까. 하하하!」

익숙한 목소리와 웃음소리.

나를 포함한 본부장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위를 보십쇼.」

그 말에 우린 시선을 옮겼고, 이내 갑판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다름 아닌…….

「이야, 여기서 다 뵙네요. 하하하!」

하성일 해외사업본부장이었다.

명랑한 표정의 그를 보자마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뭡니까…? 소식 못 들었어요?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무역선을 출항시킵니까? 그쪽은 거기 왜 타고 있는 거고?”

「소식이야 당연히 들었습니다. 대서양에서 뉴욕 지부 병력이 승선해 있던 군함이 공습을 받았다고…….」

그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해졌다.

「클로이 소장님이 말씀하시길, 이 상황이면 우리 쪽도 위험하다고 하시더군요. 도와줄 선박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가 한 차례 어깨를 으쓱이곤 말을 이었다.

「뭐, 이 정도 크기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회장님이 허락해주신 겁니까? 그거 하나 빼 오려면 손해가 어마어마할 텐데…….”

「하하하.」

그가 멋쩍게 웃길 잠시.

「사실… 이제 허락받지 않아도 됩니다.」

“그게 무슨…?”

「할아버님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셨거든요.」

“설마 경영권을 인계받으신 겁니까?”

「하하…….」

그가 대답을 회피한다.

‘허…….’

동시에 터져 나온 실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새파랗게 젊은 놈한테 국내 최고 기업을 통째로 물려준다고?

그것도 전시 상황에?

‘기어이 노망이 났나 보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이러고 있을 시간 없습니다. 공격받을 수도 있다면서요. 일단 빨리 옮겨 타십쇼. 컨테이너 싹 비워둬서 충분히 탑승 가능할 겁니다.」

“…….”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갑판에 모여 있는 병력과 선원들.

긴급 상황 속에서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한 그 모습은 우리뿐만 아니라 나머지 선박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별그룹이 움직인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지만, 어쨌든 우리에겐 동아줄이나 다름이 없다.

공습을 대비한다고 해도, 방어 체계 하나 없는 선박으로는 결코 무사하지 못했을 테니까.

솔직히 말해서…… 덕분에 살았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곧바로 승선 준비를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인원이었지만, 지체 없이 신속하게 옮겨 탔고 다행히 공간도 충분했다.

그렇게 내가 마지막으로 화물선에 오르자 하성일 본부장이 곧바로 다가왔다.

“그럼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저희 쪽에서 독점을 딴 항로가 있는데, 그쪽으로 항해하면 발각되지 않고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아뇨.”

내가 즉답했다.

동시에 하성일의 눈썹이 물결쳤다.

“일단 떨어져서 상황을 좀 지켜봅시다.”

“…네, 네?”

“기회가 될지도 모르잖습니까.”

애매한 대답이라고 생각했지만, 하성일 본부장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늘 그렇듯 그는 고개를 끄덕이길 한 차례, 아무런 이견 없이 내 지시를 따랐다. 이내 화물선은 우리가 버린 선박으로부터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육안으로 겨우 확인이 가능할 만큼 떨어졌다.

나는 숨죽여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왔군요.”

또 다른 선박 하나가 우리가 버린 배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 정보도 쓰여 있지 않은 선체.

항로가 겹치는 데도, 아무런 통신도 시도하지 않는 모습.

확실하다.

예상대로 이미 우리 위치는 국제협회에 발각이 된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쾅―!!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작된 공격.

쾅, 콰광―!!

미친 듯이 쏟아지는 스킬 세례에 14척의 배는 순식간에 벌집이 되었고, 이내 힘없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모두의 표정이 퍽 어두웠다.

조금만 늦었으면 저 배와 함께 가라앉는 건 본인들이었을 거라는 사실이 이제야 실감이 난 모양이었다.

“확인하셨으면 이제 그만 빠져나가죠. 더 있다간 우리도 발각될 수…….”

“전원 공격 태세 갖추십시오.”

이내 병력을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하성일 본부장은 물론, 김민주와 한유빈 또한 눈이 동그래졌다.

“자, 잠깐만요! 굳이 여기서 공격을 감행할 이유가 있어요?!”

“맞아요. 일단은 뉴욕에 무사히 도착하는 게 우선이니까, 지금은…….”

“마주치지 않았다면 모를까, 마주친 이상 그냥 돌아갈 순 없죠.”

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뉴욕 지부의 복수는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날카로운 눈빛으로 국제협회의 선박을 바라봤다.

***

「저… 사무총장님.」

웨슬리 사무총장의 통신기가 울린 그때.

선장이 퍽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14척 모두 침몰했습니다만, 시신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예…?”

그와 동시에 웨슬리 사무총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나도 발견되지 않은 겁니까?”

「네, 네. 전혀 없습니다.」

이내 웨슬리 사무총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럴 리가 없다.

공격에 성공했다면 어떤 형태로든 확인이 되어야 한다.

만약 공습 계획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방어 체계 하나 없는 운송선으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단 한 구의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미리 빠져나갔다는 건가?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을 텐데.

그럼 대체 어떻게…….

곰곰이 경우의 수를 되짚어보던 그때였다.

‘잠깐…….’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지금 당장 후퇴하세요!”

「네…?」

“미끼입니다! 어디서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는…!”

웨슬리 사무총장이 무전기에 대고 소리친 그 순간이었다.

쾅―!!

지지지직―.

단발의 굉음과 함께 통신이 끊겼다.

“…….”

통신기에선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웨슬리 사무총장은 벙찐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지만, 그것도 잠시.

“하, 하하…….”

이내 실소를 내뱉었다.

물론 진심으로 이번 기회에 죽이려고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절대 이 정도로는 그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또 어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살아남겠지.

하지만 경험으로 알고 있다고 해도 머리로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다.

설령 본인들이 공습할 것을 알고 있었다 해도 미리 도망칠 구석을 준비해 두진 못했을 것이다.

곧바로 옮겨 탈 수 있는 구조선을 부른다고 해도 시간에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공습을 피했다는 건, 한 가지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김준우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누군가 그를 돕기 위해 미리 움직인 것이다.

‘꽤 똑똑한 놈들을 동료로 뒀군…….’

에마 대표도 늘 말하지 않았던가.

김준우가 무서운 이유는 그의 스킬이 아닌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 때문이라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남을 도울 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더군다나 특별한 관계도 아닌, 어찌 보면 그저 직장 상사일 뿐인 사람을.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을 김준우는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

여태까지 본인이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 때문에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사람만은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린 본인과 전 세계를 아군으로 만든 김준우.

그 전력은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겠지.

하지만.

‘그것도 결국 타이밍이지.’

말했듯, 어느 정도는 상정하고 있었던 일이다.

공격에 성공한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설사 실패한다고 한들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아무리 저들끼리 똘똘 뭉쳐봤자 때를 놓치면 모두 무용지물이니까.

그리고 그들은 이미 대피와 역공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겼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미 늦었다.

“오셨습니까?”

덕분에 우리가 먼저 뉴욕에 도착했으니까.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예.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웨슬리 사무총장이 천천히 배에서 내리자 미리 뉴욕에 도착해 있던 직원들이 그를 맞이했다.

웨슬리 사무총장을 비롯한 국제협회의 모든 병력이 기어이 뉴욕에 발을 들여놓았다.

“뉴욕 지부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지방 인력을 급하게 모아서 필사적으로 막고는 있는데… 오래 버티진 못할 겁니다. 못해도 두 시간 안으로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군은?”

“투입 하루 만에 전력 50%가 소실됐습니다.”

웨슬리 사무총장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사무총장님의 계획대로,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미국 전체가 무너질 겁니다.”

“좋습니다.”

웨슬리 사무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지부로 갑시다. 나눌 이야기도 있고.”

“알겠습니다. 차량 대기 시켜 놨습니다.”

웨슬리 사무총장은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차량에 탑승했다.

차량은 천천히 도심으로 들어섰고, 이내 아수라장이 된 뉴욕의 모습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웨슬리 사무총장은 창밖으로 보이는 그 지옥과도 같은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미군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고, 최종 방어선인 뉴욕 지부도 바람 앞 촛불 신세다.

결국, 미국이 함락되는 건 시간문제겠지.

국제협회가 미국을 정복한다면 곧 전 세계가 요동칠 것이다.

정말 WDSO가 국제협회를 막을 수 있는 건가?

미국마저 무너졌는데, 계속 WDSO에 붙어 있어도 괜찮은 건가?

그냥 국제 협회에 붙는 게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공포심과 혼란을 전 세계에 심어줄 수 있다.

그때부턴 WDSO, 아니 김준우의 가장 큰 무기가 사라진다.

그들을 믿고 따랐던 사람을 잃기 시작할 테니까.

잠시 사색에 잠겨 있던 찰나, 이윽고 차량이 멈춰 섰다.

뉴욕 지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웨슬리 사무총장이 차에서 내려 바라본 뉴욕 지부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건물.

그 앞에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방어선을 지키고 있는 헌터들.

웨슬리 사무총장은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웨슬리라고 합니다.‘

먼저 인사를 건넸지만, 지부 병력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퍽 멋쩍은 기분이 들던 그때, 때마침 뉴욕 병력 사이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 남자는 다름 아닌, 뉴욕 지부의 책임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테러리스트이신데.”

마이클 지부장이었다.

테러리스트.

그 단어에 또다시 웨슬리 사무총장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마이클 지부장을 향해 말했다.

“여기까지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더 이상 직원들을 희생하는 것도 리더로서 못 할 짓인 것 같은데.”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니군요.”

마이클 지부장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리고 저희는 희생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럼…?”

마이클 지부장이 웨슬리 사무총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맞서 싸우고 있는 거죠.”

의외의 대답.

웨슬리 사무총장이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무자비한 학살자도 아니고, 항복한다면 아무도 다치지 않을 텐데요.”

“대신 자유를 잃겠죠.”

마이클 지부장이 즉답했다.

“WDSO를 포함해 각국의 모든 협회가 무너져 내리면, 그 이후는 당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

“토벌 및 부산물 유통과 같은 던전 산업은 물론이고, 그것을 토대로 한 모든 정치, 경제, 외교를 멋대로 주무르겠죠. 그리고 우린 그 아래에서 모든 것을 통제당한 채 살아가겠죠.”

“잘 알고 계시는군요.”

웨슬리 사무총장이 뭉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마이클 지부장이 갑작스러운 물음을 던졌다.

여태껏 그 누구도 묻지 않았던, 그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았던 그 물음.

“그렇게 국제사회와 시민들을 통제한다고 해서, 대체 뭘 얻을 수 있냐는 말입니다.”

“…….”

자신의 목표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그 질문이 날아들자, 웨슬리 사무총장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의미라…….”

그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공허하고 회의적인 목소리.

웨슬리 사무총장은 그때서야 처음으로 자신이 벌이고 있는 일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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