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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310화 (310/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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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국제사회와 시민들을 통제한다고 해서,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입니다.”

뉴욕, 롱 아일랜드.

뉴욕 지부 건물 앞에서 국제협회 병력과 대치 중이던 마이클 지부장이 던진 물음.

“…….”

그 근본적인 의문에, 웨슬리 사무총장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가는 게 보였다.

그와 동시에 이번엔 마이클 지부장의 입가가 올라갔다.

“보십쇼. 당신도 모르지 않습니까.”

“…….”

“당신 또한 결국 목적을 잃고 목표에 잡아먹힌 겁니다. 그러니 당신조차 의미를 모르는 이 짓에 어울려주고 싶지 않군요.”

마이클 지부장이 힘을 주어 말했다.

이미 아수라장이 된 도심.

바람 앞 촛불 신세인 지부.

병력은 이미 한계였고, 버틴다고 해도 한 시간이 최대.

아무리 봐도 배짱부릴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곳이 무너지면 그다음은 미국 전체일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다음은 혼란에 빠진 국제사회, 다음은 시민들이겠지.

그러니 당장 자신과 직원들의 목숨을 생각한다면…… 아니, 미국과 국제사회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항복을 선언해도 뭐라 그럴 이는 없었다.

하지만 마이클 지부장은 단호했다.

원리원칙주의자.

외세와 타협하지 않는 외골수.

융통성 없는 답답한 인간.

직원들 사이에서 그런 말이 돌고 있다는 건 본인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만큼은 필요했다.

직원들 또한 그걸 알고 있기에, 마이클 지부장이 지시를 내리기 전에 먼저 움직였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융통성 없는 원리원칙주의자인 셈이었다.

“뭐… 알겠습니다.”

웨슬리 사무총장은 그들의 굳건한 표정들을 바라보던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뭐… 사실 목적이니, 목표니 이제 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마이클 지부장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는데.”

“…….”

“…….”

지부를 지키던 모든 병력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말은 곧 웨슬리 사무총장 본인도 이게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었고, 그럼에도 멈출 생각은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모두가 다시금 공격 태세를 갖추며 마지막을 각오했다.

그리고 그때.

“사무총장님.”

국제협회 직원 한 명이 웨슬리 사무총장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송출 준비 완료됐습니다. 바로 촬영 시작할까요?”

“그러죠.”

웨슬리 사무총장이 대답하자, 이내 다가온 한 대의 카메라.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고, 카메라 렌즈가 웨슬리 사무총장과 함께 뉴욕 지부를 비추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웃으세요. 전 세계로 송출되는 거니까.”

웨슬리 사무총장이 마이클 지부장을 향해 너스레를 떨었다.

큼큼, 목을 풀길 한 차례. 그가 다시 한번 뉴욕 지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국제 헌터 협회 사무총장으로서, 미국 지부 및 전 세계 모든 협회에 통보합니다.”

힘 있는 목소리.

“저희 국제협회는 기존의 모든 협회를 재설립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잔존 협회에는 선택권을 드릴 것이며, 기간은 지금부터 24시간을 드리겠습니다.”

“24시간 내에 시행한 협회는 일절 건드리지 않을 것이며 안전을 보장할 것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시간 내에 시행하지 않는 협회는 강제 집행 대상이 됨을 통보합니다.”

“……!”

“……!”

그 발언에 뉴욕 지부 병력의 눈썹이 크게 요동쳤다.

이것은 최후통첩이었다.

24시간 내에 항복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통보.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자,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이클 지부장님. 지부 재량으로 시행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여기서 끝을 보시겠습니까.”

“…….”

웨슬리 사무총장은 크게 미소를 지으며 마이클 지부장을 바라봤다.

동시에 고뇌하는 그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엿이나 드십쇼”

결국 그가 선택을 내렸고, 웨슬리 사무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웨슬리 사무총장이 등을 돌린 순간.

쾅―!!

뉴욕 지부가 무너져 내리는 그 모습이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

“……!”

WDSO 서울 본부.

박인범 사무총장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미국 지부가 날아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일 났군…….’

이내 그의 주먹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선택권이니, 자가 시행이니 개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설마하니 미국 지부를 날려버리는 걸 생방송으로 전 세계에 송출할 줄이야.

‘머리를 썼네…….’

이렇게 되면 각국의 협회가 어떻게 나올지는 너무나 뻔했다.

미합중국.

자타공인 최강대국이자, 토벌 산업을 제외하면 군사, 경제 등 여전히 국제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

그런 국가가 자국을 침략한 이들을 상대로 힘조차 못 써보고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그 모습을 모두가 목격했다.

이제 모든 국가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박힐 것이다.

‘미국마저 무너진 상황에 국제협회와 대립하는 건 자살행위다.’

국제협회 또한 공포심과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송출한 거겠지.

이렇게까지 된 이상 WDSO에 붙어 있을 협회는 없다.

아마 24시간 안에 모두가 국제협회로 넘어가겠지.

‘아니, 24시간이 뭐야…….’

12시간이면 떡을 칠 텐데.

WDSO가 나름 국제협회에 대응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가 된 건 결코 우리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그간 세간에 보여준 신뢰감.

각국 협회와의 유대 관계.

그것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이 우리를 믿고 따라준 덕이었다.

이번 전쟁에서도 물러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있는 한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 사무총장님! 중국협회가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벌써…?”

“뿐만 아닙니다! 남미 거의 대부분의 협회가 속속히 국제협회로 넘어가고 있어요!”

“빌어먹을…….”

이렇게 되면 전 세계를 상대해야 하는 건, WDSO가 될 것이다.

박인범 협회장은 부서져라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직이다.

아직 모든 협회가 WDSO를 떠난 건 아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과 베트남 협회만이라도 붙잡을 수 있다면…….

따르릉―.

그때, 마침 박인범 사무총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사무총장님, 후인입니다.」

베트남 지부, 후인 지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송 보셨습니까?」

“……봤네.”

후인 지부장은 망설이길 잠시,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무총장님도 아시다시피, 미국마저 무너졌습니다. 아마 국제사회는 앞다투어 항복을 선언하겠죠. 그렇게 되면 WDSO는 전 세계를 적으로 두게 될 것이고요.」

“…….”

「그래서… 제가 일본 지부의 하라무라 지부장님과 상의해봤는데, 아무래도…….」

그 순간, 후인이 말끝을 흐렸다.

그와 동시에 박인범 협회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준우야, 큰일 났다…….’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

이젠 박인범 사무총장의 머릿속엔 최악의 미래만이 그려졌다.

지금 상황에서 믿을 건 김준우밖에 없다.

그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길 바라는 수밖에.

***

“……가망이 없습니다.”

한별무역의 선박 안에 내 목소리가 나지막이 깔렸다.

예기치 못한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서둘러 뉴욕으로 향하고 있던 도중, 또다시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 까닭이었다.

기어이 뉴욕 지부가 무너졌다는 그 소식이.

“하,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지 않나요?”

“맞아,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죠! 벌써 포기하면…….”

“지부가 무너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송출했습니다. 이대론 뉴욕에 도착해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 상황이 전 세계로 퍼진 이상, 각국이 앞다퉈 항복을 선언할 테고요.”

김민주와 한유빈의 말을 끊으며 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전 세계 방송 송출은 다분히 계획적인 행동이었다.

너희를 지켜줄 마지막 방어선마저 무너졌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

“이렇게 되면 이제 고립되는 건 우리가 될 겁니다. 신뢰와 관계로 여기까지 올라온 우리가, 그것들을 잃는다면… 가망이 없습니다.”

“…….”

“…….”

내 말을 듣던 모든 본부장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김민주는 아직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내게 방법을 물었다.

하지만.

“내가 묻고 싶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나는 쓰게 웃으며 그 말을 뱉었다.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우리의 계획은 늦기 전에 뉴욕에 도착해서, 국제협회 병력이 모두 집결하기 전에 어떻게든 공습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최소한 미국만이라도 공격을 막아낸다면, 각국에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희망으로부터 반격의 발판을 만들어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모두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공습을 막긴커녕 반격의 여지마저 사라져버린 것이다.

‘하아…….’

이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더 이상은 안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는 회귀했을 때부터 줄곧 다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이곳의 누군가가 어떻게 되든 나와는 딱히 상관없는 일이었고, 실제로 별로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내가 회귀한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이젠 내가 돌아가는 걸 떠나서 이 상황을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무시하기엔 너무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사무총장이 될 수 있었던 몇 번의 기회도 모두 포기했는데…….

‘결국, 이렇게 돼버릴 줄이야…….’

내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깊은 곳에서 진득한 회의감이 몰려왔다.

돌아갈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보다,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는데도 실패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팀장님… 곧 항구에 도착합니다.」

선장실에서 도착을 알리는 무전이 울렸다.

「정박 준비할까요. 아니면… 회항할까요?」

“…….”

하지만 나는 그 간단한 물음에도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선장의 그 물음이 나에겐 전혀 다른 말로 들린 까닭이었다.

‘후퇴하는 게 맞겠지…….’

그런 생각이 떠오른 그 순간.

퍽―!

“……?”

난데없이 내 어깨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저희 아직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

이아영 본부장이었다.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간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근데 그건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팀장님이랑 있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뭐, 좀 어긋나긴 했는데… 딱히 끝났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요.”

하성일, 한유빈 본부장 또한 한마디씩을 보탰다.

그리고.

“던전에서 우리만 남았다고 작전팀이 후퇴해버리면, 몬스터는 누가 잡고 시민들은 누가 지키겠어요?”

마지막으로 김민주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잖아요.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한다고.”

“……청소부한테 그런 말을 해도, 딱히 와닿지 않는데.”

농담을 던지자, 그녀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 와서 말하는 건데… 선생님이 처음 청소팀의 입지를 올려놓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퍽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했죠. 마치 당연한 일이었던 것처럼요. 그리고 실제로 조금 지나고 나니까 정말 당연한 일이 되었고요.”

“…….”

“아마 이번 일도 1년만 지나면 사람들이 그럴걸요?”

그리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김준우에겐 당연한 일이었다고.”

“……하.”

그와 동시에 터져 나온 실소.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아닌 게 아니라, 띄워주기도 너무 과하지 않은가.

낯간지러워서 뭔 말도 못 하겠네.

‘그래도 뭐…….’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길 잠시.

이내 무전기를 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박합시다.”

그 말이 떨어지자, 모든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박이 멈춰 섰고, 우린 굳은 얼굴로 천천히 움직였다.

항구로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건, 이미 초토화가 되어 버린 뉴욕의 광경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항구에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웨슬리 사무총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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