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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뉴욕 상공을 뒤덮은 거대한 구멍.
암흑 그 자체인 공동이 열리는 순간, 내 입에선 그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완전한 암흑.
시간도, 공간도 없는 그저 무의 형태.
당장이라도 우리를 빨아들일 기세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자, 잠깐…….”
“저거 움직이는 거 아니야?”
“내려오는 것 같은데…?”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그때, 갑자기 진영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나 또한 눈을 가늘게 뜨고 그 거대한 공동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그들의 말대로, 그 구멍은 땅을 향해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다.
“어, 어…?”
“잠깐…!”
“으아아아악!!”
조금씩 가까워지자 한두 명씩 그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당장 대피하세요!!”
“인근 건물로 피신하세요!”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빨리 움직여!!”
그 광경을 목격한 직후, 나를 포함한 김민주와 한유빈 본부장이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뉴욕을 뒤덮었던 그 어마어마한 병력이 일제히 철수하기 시작했다.
각국 협회 병력은 다시금 선박에 서둘러 탑승했고, 나머지는 근처 건물로 들어갔다.
그렇게 불과 몇 분 만에 완전히 비어버린 전장.
나와 본부장들 그리고 웨슬리 사무총장만이 남았다.
“두 분도 들어가세요.”
“…그럼 선생님은요?”
내가 말하자, 김민주가 물었다.
대답 대신 정면에 있는 웨슬리 사무총장을 바라봤다.
이미 이곳에는 아군도 적군도 없다.
모두가 뒤섞인 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칠뿐이지만, 그것도 결국 시간 끌기밖에 안 된다.
결국, 모든 걸 끝내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난 여기서 끝을 봐야지.”
김민주와 한유빈의 표정이 굳었다.
“서, 설마 선생님 혼자 상대하려는 건 아니죠?”
“우리도 도울게요!”
“아뇨. 제가 맡겠습니다.”
그들이 나섰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철수하십시오. 명령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고유 스킬 : 황제]
[마인드 링크 프로토콜 해제]
그와 동시에 그들에게 걸어두었던 링크를 해제했다.
더 이상은 전략도, 지휘도 의미가 없었으니까.
“다 날려 버리면 통제고 뭐고 다 사라집니다. 그건 사무총장님의 목표가 아닐 텐데요.”
“말했잖아요. 이젠 됐다고.”
웨슬리 사무총장이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야말로 괜찮겠어요? 차라리 같이 도망가는 게 그나마 살 확률이 있을 것 같은데.”
“…….”
뒤를 돌아봤다.
선박과 건물 안으로 대피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서 도망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면 어차피 다 죽을 텐데.”
“하하하! 알면서도 부하들한테 대피하라고 한 건가요? 거짓말을 하셨네.”
“거짓말은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제가 여기서 당신을 죽이면 되니까.”
웨슬리 사무총장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입꼬리만 올라가 있을 뿐, 그의 눈빛과 표정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쉽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끝냈으면 되는 건데.”
내가 말하자 웨슬리 사무총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알고 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걸 뻔히 알면서도 그동안 너무 돌아왔다는 걸.
당시에는 그저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느라 바빴으니까.
일부러 모른 척하기도 했고, 엮이고 싶지 않아 애써 피하기도 했다.
그저 멀고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고 눈앞에 있는 것들을 해결하는 데만 급급했다.
만약 처음부터 이렇게 정면으로 맞섰다면…….
‘누군가는 죽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때.
“솔직히 말해서… 난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설마하니 동양의 청소부 출신이 마지막까지 내 앞을 막고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당신의 앞을 막고 있는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음…?”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우리죠.”
[고유 스킬 : 황제]
[발동 조건 확인 중]
[현재 확인된 아군 : 1명]
[현재 확인된 적군 : 1명]
[특수 대치 상황이 확인되었습니다.]
[고유 스킬의 효과가 변형됩니다.]
이내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특수 대치 상황 - 오포지션]
[현 시간부로 제삼자는 두 사람의 대치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해당 효과는 대치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지속됩니다.]
둘 중 한 명이 죽을 때까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 이제부턴 나 또한 목숨을 걸어야 한다.
[고유 스킬 : 천지창조 - 각성]
[삼라만상(森羅萬象)]
쿠구구구구―!!
무슨 일이 있어도 둘이서 끝장을 봐야 할 테니까.
***
김준우가 웨슬리 사무총장과 대치를 이어가던 그때.
“유빈 씨! 빨리 들어와요!”
김민주와 한유빈은 그의 명령대로 인근 건물로 대피했다.
하지만 한유빈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정말 도와주지 않아도 돼요? 아무리 저 인간이라도 해도 웨슬리를 혼자 상대하는 건…….”
“선생님이잖아요.”
김민주가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선생님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어요”
“…….”
한유빈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먼저 몸을 피한 WDSO 병력이 다수 있었고, 그들은 모두 김준우와 웨슬리 사무총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거, 정말 괜찮은 겁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저렇게 혼자…….”
바깥 상황을 주시하던 차석현과 유지우 길드장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팀장님이 위험해지면 전 바로 도우러 갈 겁니다.”
“팀장님한테 모두 떠넘길 수는 없어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곳에 있던 WDSO의 인원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그 광경에 김민주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한때, 김준우는 청소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들에게 무시 받고 사내 정치의 대상이 됐었다.
그의 능력과 실력은 그때도 다를 게 없었는데도.
그럼에도 김준우는 혼자만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그 결과, 이제는 WDSO… 아니, 전 세계 모두가 그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그가 청소부 출신이라는 것 따윈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고생하셨어요. 정말로…….’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지리멸렬했던 조직.
그 조직의 믿지 못할 변화에, 김민주는 마음속 깊이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민주 씨! 듣고 있어요?!」
한별무역 선박에 마련된 임시 작전 통제실.
그곳에 있던 이아영 본부장에게서 다급한 무전이 울렸다.
“네, 네. 듣고 있어요.”
「저 구멍 말이에요. 임시 분석 결과, 던전과 똑같은 차원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기에 빨려 들어가면 시체도 못 찾는다는 소리예요.」
“…….”
김민주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 있자니, 이아영 본부장이 또다시 말을 이었다.
「문제는 던전에서 뿜어대는 이능파보다 수백 배는 더 강력해요. 현재 지상에서 수직으로 15km가량 떨어져 있는데도 그 힘이 레드 등급 수치를 한참 초과했고요!」
“그렇다면…….”
「현재 확인된 바로는 1분에 1km씩 지상으로 가까워지고 있어요. 그리고 지상에서 5km 이하로 가까워지면…….」
이아영 본부장이 침을 꿀꺽 삼키길 한 차례.
「최소 반경 500km에서 최대 1,500km 안에 있는 모든 게 사라질 거예요.」
“…….”
“…….”
그녀의 보고에 김민주와 한유빈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하지만 김민주는 애써 정신을 붙잡으며 되물었다.
“1분에 1km씩 가까워진다는 건… 10분밖에 안 남았다는 건가요?”
「네. 그 10분 안에 그 반경을 벗어나지 못하면 미국 동부 전체가 지도에서 사라질 거예요.」
빌어먹을, 김민주가 이를 으득 씹었다.
10분 안에 그 반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래선 여기 숨어 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지 않은가.
김민주는 고개를 돌려 WDSO 병력을 바라봤다.
이 건물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숨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 이아영 본부장이 거의 패닉에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김민주가 입술을 잘근 씹긴 한 차례.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선생님이 10분 안에 끝내길 바라야죠.”
그렇게 대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때.
“10분이면 충분하지 않나…?”
누군가가 김민주에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냐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리자.
“차원석 게이트가 있는데?”
다름 아닌, 클로이 소장이었다.
그녀의 말에 김민주와 한유빈 그리고 무전 중이던 이아영 본부장의 눈이 동시에 크게 벌어졌다
“마, 맞아! 차원석 게이트를 이용하면 10분 안에 모두 대피할 수 있어요!”
“하, 그 생각을 못 했네.”
「클로이 씨, 할 수 있겠어요?」
이아영 본부장이 묻자, 클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게이트 출구만 조정하면 되는 거라 어렵진 않은데…….”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곤란한 표정으로 문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출구가 저기 전장 한복판에 있다는 게 문제죠.”
“그, 그거야 아직 시간도 있으니까 지금 가서 조정하면…!”
“그게 좀 애매해요.”
김민주의 말에 클로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작동하는데도 최소 5분은 걸릴 테고, 작동한다 해도 게이트를 열려면 차원석의 이능파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니까…….”
“…….”
“그런데 뭐… 지상이 이렇게 흔들거리는데, 안정될는지 모르겠네요. 만약 조금이라도 불안정한 채 게이트를 타게 되면 저기 구멍에 빨려 들어가는 거랑 별반 차이 없을 거고.”
“…….”
“…….”
클로이의 말에 본부장들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가 한번 해볼게요.”
김민주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클로이는 괜한 객기 부리지 말라는 듯 입을 열었다.
“뭐, 어떻게 하려고요? 말했듯이 작동에만 5분이고, 안정시키는 것까지 생각하면 더 걸릴 텐데? 그사이에 그쪽이 먼저 구멍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고.”
“그땐 그때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김민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와 동시에 다시 한번 WDSO 병력을 훑으며 말을 이었다.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이 걸려있는데.”
“…….”
“…….”
내려앉은 정적.
그 순간, 누군가가 피식 실소를 뱉었다.
“하여간 사람 좋은 거 어디 안 간다니까.”
“유빈 씨…?”
다름 아닌, 한유빈 기획본부장이었다.
“나도 같이 갈게요. 뭐, 한 명보단 두 명이 낫겠지.”
그리곤 김민주 옆으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클로이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해 두는데… 난 살려고 WDSO에 합류한 거예요. 난 목숨 걸고 도박할 생각 없으니까, 같이 가자고 하지 마요.”
“걱정 마요.”
“애초에 그쪽이 죽으면 다음 수가 없잖아.”
김민주와 한유빈이 미소로 대답했다.
「그럼…….」
그리고 들려온 무전.
「부탁할게요.」
그 먹먹한 목소리에 김민주와 한유빈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게 이아영에게 보일 리는 없었지만.
이내 두 사람은 건물 문 앞에 서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직후,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치길 한 차례.
끼이익―.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