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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외전 – 7화
이제 겨우 정오가 지난 시각.
위원회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임시 작전 참가 제한 명령을 받은 나는, 내 방 침대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반강제이긴 해도 리젠 던전 이후 거의 처음 갖는 휴가에 간만의 여유를 만끽하기도 잠시.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상황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날 이렇게까지 끌어내리려는 놈은 한 놈밖에 없다.
이수용 팀장.
6개월 전 일어났던 리젠 던전 사태 이후로, 내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아니꼽게 보고 있었으니까.
기획서 폰트, 예상 토벌 시간, 인원 편성, 심지어 점심 메뉴마저도 태클을 걸지 않은 적이 없다.
뭐… 그 이유야 나 또한 알고 있다.
리젠 던전 사태 때 본인이 아닌 내가 모든 상황을 해결했다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 혹은 열등감 때문이겠지.
‘하여간, 능력도 없는 새끼가 자존심은…….’
능력 있는 부하를 견제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는 한다.
애초에 실력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실적, 현장 지휘, 그 어느 것도 나에게 한참을 못 미친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을 테니 위기감을 느낀 거겠지.
이대로 가다간 본인 자리가 위험해질 거라는 망상 속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뭐, 명분이야 충분하다고 해도… 사실 그 혼자서 이런 일을 벌일 만큼 대담한 놈이 아니다.
대놓고 통제팀 파일을 조작할 만큼 간덩이가 큰놈도 아니고.
무엇보다 파일이 조작됐다는 걸 위원회가 모를 리가 없는데도 이렇게 나온다는 건, 위원회마저 포섭했다는 뜻이겠지.
‘당연히 이수용 깜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
그럼 뭐, 뻔하지 않은가.
서민철 본부장.
그 인간이 이수용 팀장의 뒤를 봐주고 있다.
‘쯧…….’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감은 잡힌다만.
문제는, 상황을 알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작전 본부의 두 실세가 손을 잡고 나를 묻으려 하고 있다.
게다가 그 대단하신 위원회까지 포섭해서.
이미 위에서 이야기가 끝난 사항이라면 통제팀 파일이 조작됐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더 이상 단서도 남아 있지 않을 테고.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은 그냥 거짓입니다.
문득 머릿속에서 떠오른 기훈철 팀장의 그 말.
이제야 그 말의 의미가 피부로 직접 와닿았다.
파일이 조작됐다는 걸 증명할 수 없는 이상, 나는 그냥 알면서도 강행한 미친놈이거나… 실수로 중요한 정보를 깜빡한 머저리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언뜻 두 선택 모두 비슷해 보여도 둘의 처분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들 또한 당연히 내가 후자를 선택하리라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내가 실수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의 내 실적은 물거품이 되는 건 물론이고, 앞으로의 평판에도 회복할 수 없는 금이 생길 것이다.
이수용 팀장과 서민철 본부장 또한 그것을 노리고 있겠지.
본인들의 자리를 위협하지 못하게, 어떻게든 족쇄를 채우려는 것.
‘눈 뜨고 공사 당한 건 개 같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번 일 하나로 헌터 인생 쫑낼 수도 없고.
다만, 한 가지 그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내가 6개월간 그토록 실적에 열을 올린 이유는… 딱히 진급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
애초에 개나 소나 다 앉는 자리, 딱히 욕심도 없다.
나는 그저…….
‘……쯧, 됐다.’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아무튼, 중요한 건 그들이 아무리 내 평판을 끌어내리려고 해도 나에겐 그다지 타격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윗놈들의 농간에 놀아난다는 건 기분이 심히 더럽긴 해도… 넓은 아량으로 이번만큼은 눈 딱 감고 숙여줄 수 있다.
‘애초에 방법이 없기도 하고…….’
씁쓸한 끝 맛에 크게 한숨을 내쉬던 그때.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인가.
아니, 시킨 게 없는데.
그럼 택배 말고 우리 집에 올 사람이 있나?
‘…….’
나는 퍽 의아한 표정으로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문을 응시하고 있자.
띵동, 띵동―.
빨리 기어 나오라는 듯, 또다시 울려 퍼지는 벨 소리에 나는 기어이 몸을 일으켰다.
이내 문을 열자.
“기, 김준우 헌터님 되십니까?”
그곳에는 처음 보는 여성이 서 있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정장.
무엇보다 딱 봐도 한껏 긴장한 얼굴과 경직된 태도.
아무리 봐도 작전 본부 소속은 아니다.
“…누구?”
“자, 작전 진상규명 위원회 소속 하은혜라고 합니다.”
위원회…?
위원회에서 갑자기 내 집을 찾아온다고?
아니 그것보다… 위원회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
‘신입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이번 던전 개입 사건과 연관해서 김준우 헌터님을 일주일 동안 감시… 아, 아니, 보좌하게 되었습니다.”
“…….”
“아, 그, 그리고 오늘 오후 12시부로 임시 작전 금지 명령이 해제되었으니… 어……. 자, 작전 나가시면 돼요.”
“……그쪽도 같이?”
“네!”
당찬 대답.
나는 퍽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살폈다.
뭐야 이건 또.
***
서울본부, 작전 진상규명 위원회 소속 조사팀 사무실.
기훈철 조사팀장은 자리에 앉은 채, 입맛이 씁쓸한 듯 아까부터 계속 혀를 차댔다.
그 또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퍽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못 들은 척할 걸 그랬나…….’
기훈철 팀장은 영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명색이 진상규명 위원회 조사팀장인데 대놓고 사건 조작을 눈감아줘야 한다니.
나름의 신념으로 일해온 시간에 회의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위에서 떨어진 지시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 천하의 우석호 위원장이 직접 그를 찾아와 부탁을 했으니.
‘대체 무슨 약점을 잡힌 건지…….’
기훈철 팀장은 당시 우석호 위원장의 표정을 떠올렸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각.
마치 귀신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을 찾아온 우석호 위원장은, 다짜고짜 이번 사건에 대한 은폐를 부탁했다.
물론 맨입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다.
비밀 엄수를 대가로, 무려 자신의 위원장 자리를 약속한 것이다.
그가 정계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사실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 때문에 각 부서 사이에선, 차기 위원장으로 누가 올라갈 건지를 두고 큰 관심이 쏠려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대뜸 자신에게 넘겨주겠다고 하니, 기훈철 팀장으로선 혹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무엇보다 일이 어렵지도 않았다.
대충 들어보니 이미 사건은 결말까지 정해진 뒤였고, 자신은 그저 눈 딱 감고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됐으니까.
그렇기에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덥석 미끼를 물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아무리 생각해도 영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시발,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훈철 팀장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뒤로 팍 젖히며 생각을 접었다.
그래, 위원장 자리가 걸려 있지 않은가.
눈 한 번 감아주는 게 뭐 그리 어렵겠는가.
누가 죽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던 그때.
“팀장님, 방금 우리 쪽에서 보낸 감시원이 김준우 자택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조사팀의 직원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그 말을 전했다.
동시에 기훈철 팀장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감시원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예, 예? 위원장님이 팀장님에게도 말씀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조사 기간에 김준우가 허튼짓하지 못하게 감시를 붙이라고 했는데…….”
“…난 들은 게 없는데.”
기훈철 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저는 위원장님 특별 지시라길래 팀장님께도 전달이 된 사항인 줄 알고…….”
그러자 직원은 죄인이라도 된 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특별 지시라니…….’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애초에 결과는 정해져 있는데, 고작 허튼짓하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 하나로 감시까지 붙인다고??
어차피 감시 따위 없어도, 김준우가 파일이 조작됐다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리도 없는데.
‘…….’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던 그때.
“잠깐, 설마…!”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그 말이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앞에 있던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큼큼…….”
그를 포함해 조사팀 전원은 이번 일이 위에서 조작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렇기에 기훈철 팀장은 헛기침과 함께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감시원까지 붙인다는 건, 다시 말해…….
‘아직 증거가 남아 있는 건가…?’
처리를 못 한 게 있어서 감시를 붙인 거라고 하면, 앞뒤가 맞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만약 김준우가 정말 조작 단서를 찾아낸다면… 위원회 자체가 송두리째 공중분해 될 것이다.
‘우석호…….’
진상규명 위원장이라는 놈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청탁을 받아들이다니.
기훈철 팀장이 이를 빠득 갈았다.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몰라도, 덕분에 본인도 살얼음판 위에 올라섰다.
무엇보다 불안하다고 사건을 바로 종결하고 곧장 처분을 내릴 수도 없다.
내부 조항에 따라 최소 일주일 동안은 처분을 보류해야 했으니.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이자, 똑바로 조사하라는 의미.
그런 조직이 파일 조작을 눈감아주고 헌터 한 명을 묻으려고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긴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겠는가.
뭐가 어찌 됐든 일주일은 버텨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감시역이 필요하긴 했네…….’
그렇게 생각하기도 잠시.
“그래서, 누굴 보냈어?”
기훈철 팀장이 직원에게 물었다.
“하은혜 사원입니다.”
“뭐, 뭐?!”
동시에 그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아니, 보내도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된 쌩 신입을 보내면 어떡해?!”
“이, 인력 남는 게 그 녀석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그 녀석 좀 어리바리하긴 해도… 일은 잘하잖습니까. 열정도 있고.”
“하아…….”
알지.
알다마다.
나름 보기 드문 신입이라는 건 부정할 생각이 없다.
다만…….
“그 자식… 은근 꼴통이란 말이지.”
“아, 그건 그렇긴 하죠. 은근 보수적이기도 하고요. 저번에 점심 시킬 때, 쿠폰 안 된다고 하니까 직접 찾아가서 따진 것만 봐도 뭐.”
직원의 말에 기훈철 팀장도 그때의 일이 떠오른 건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깐깐한 만큼 우리 팀에 어울리는 녀석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런데…….”
그 깐깐함이 괜히 다른 데로 샐까 봐 걱정이지.
기훈철 팀장은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무엇보다 깐깐한 건 둘째치고, 쓸데없이 이상적인 녀석이다.
계급, 지휘, 위계를 떠나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아주 머릿속이 꽃밭인 녀석.
게다가 사람을 좋아해서 어떤 일이든 다 같이 으쌰으쌰 하려는 귀찮은 녀석.
뭐, 좋게 말하면 사교성이 좋다고 할 수 있겠다만, 나쁘게 말하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애송이지.’
쯧, 혀를 찼다.
“하필 첫 사건이 김준우 담당이라니. 운도 없지.”
“예…?”
“성격부터가 극상성이잖아.”
듣자 하니 작전이고 토벌이고 뭐든지 혼자 하려 하고, 남을 절대 믿지 않는 놈이라던데.
“감시하러 갔다가 도리어 휘둘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기훈철 팀장은 팔짱을 낀 채 한숨을 푸 내뱉었다.
***
“김준우 헌터님! 던전 출입 시간, 통제팀에 보고하셔야죠!”
“…….”
서울역 인근.
어느 그린 등급 던전 입구 앞.
8명의 팀원에게 짧은 브리핑을 마치고 곧바로 던전에 들어가려던 그때, 뒤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옅은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통제팀에서도 이미 시간 맞춰서 작전 진행되는 거 알고 있습니다. 서로 불필요한 정보가 오히려…….”
“그래도 안 돼요! 규칙이잖아요!”
“…….”
미치겠네.
“쟤 누구야?”
“큭큭, 귀엽네. 신입인가?”
“위원회에서 보내준 보좌관이라던데?”
“부팀장한테도 보좌관이 붙어?”
“야, 위원회에서 보내줬는데 진짜 보좌관이겠냐. 그냥 감시역이지.”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지그시 감고는 짜증 섞인 한숨을 푹 내쉬길 한 차례.
“피차 일하는 입장인데, 좋게좋게 합시다. 서로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이게 제 일인데요? 트집 잡는 거.”
“…….”
아주 한마디를 안 지려고 하네.
“하은혜 씨… 입사한 지 얼마나 됐습니까?”
“3개월요.”
“그쪽이 아직 감이 잘 안 잡히나 본데, 작전 본부장이 와도 저한테 이래라저래라할 수는…….”
“저는 작전팀 소속이 아닌걸요.”
“제가 누군지는 압니까?”
“알죠. 김준우 헌터님이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멍청한 건지, 일부러 저러는 건지 퍽 답답한 마음에 다시 입을 열자.
“대한민국 최연소 헌터이자, 국내 4번째 A랭크 헌터. 현재 작전 1팀의 독보적인 에이스인 동시에 부팀장을 맡고 있으며, 실력과 실적 모두 압도적이지만… 실력에 비해 평판이 좋진 않으며 팀 내에선 공포의 대상.”
“…….”
그녀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내 프로필을 읊었다.
“저도 무서운 분이라는 건 알아요. 배정되기 전에도 선배한테 최대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
“그런데… 무섭다고 해서 할 말을 못 하는 게 더 웃기잖아요? 나름 위원회 조사팀 소속인데.”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꼴통이네.’
보아하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애송이인 것 같은데…….
“뭐 하고 있어요! 작전 시작한 지 벌써 1분이나 지났어요. 빨리 통제팀에 시작 시각 보고하고 던전 입장하셔야죠!”
“하…….”
결국,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더는 대꾸하지 않고 무전기를 들었다.
“작전 1팀 김준우, 오후 14시 33분 작전 개시합니다.”
「예, 예? 아… 네, 알겠습니다」
하은혜 사원을 슥 노려보길 한 차례.
나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려 던전 입구로 걸어갔다.
‘빌어먹을…….’
귀찮은 애가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