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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외전 – 8화
하은혜 사원이 내 감시역으로 붙은 지도 벌써 3일째.
사실 첫 만남에서부터 그녀에 대한 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설마하니 나한테 토벌 시작 고지 안 했다고 태클을 걸 사람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앞으로 일주일간 꽤나 귀찮아지겠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잠깐만요! 기획서에는 분명 고민혁, 박연철 헌터를 근접 포지션으로 두고 이후 원거리 공격을 통해서 토벌한다고 돼 있는데, 왜 김준우 헌터님 혼자서 토벌하고 있어요?!”
“지금 토벌 중이니까…! 나중에 다시 얘기하면 안 되겠습니까!”
쾅, 콰광―!
그마저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기요! 지금 기획서에는…!”
“빌어먹을, 조용히 좀…!”
카아아악―!
“크윽…!”
한눈을 파는 순간 날아든 몬스터의 포효.
정신을 갉아먹는 그 소리에 그대로 노출되자 다리에 힘이 풀리며 땅바닥에 한쪽 무릎이 떨어졌다.
‘시발, 진짜…….’
오전 첫 토벌.
그린 등급의 동굴형 던전.
박쥐형 몬스터, 드레인 배트.
안 그래도 날아다니는 놈이라 까다로운데, 옆에서 자꾸 잔소리가 쏟아지니 더욱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스스스스―.
몬스터는 바로 끝을 내지 않고, 허공에서 내 머리 위를 맴돌았다.
마치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듯한 움직임.
뒤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목소리.
‘하…….’
자꾸만 신경을 긁는 그 모든 것들에 짜증이 솟구쳤다.
이마에 핏줄이 바짝 서며 이를 으득 씹는 그 순간.
지이이잉―.
또다시 시작된 환각계 공격.
“끄으윽!!”
귓가에 웅웅거리는 끔찍한 소리.
정신 착란을 유도하는 음파를 가까스로 버텨내고 있던 그때.
“더, 더 이상 버티면 위험해요! 이제 그만하고 기획서대로…!”
그 여자의 목소리가 정신이 번쩍 들 만큼 뇌를 직격으로 파고들었고.
“거, 진짜…….”
[고유 스킬 : 마왕]
[전용 무기 – 센티널 블레이드]
[사용자 : 김준우]
[신분 확인 중]
[신분 확인 완료]
[사용자의 스킬에 맞춰 무기가 활성화됩니다.]
3일간 참고 참았던 짜증이 폭발하는 순간.
“조용히 좀 하라고!!”
슈욱―!!
쥐고 있던 검을 있는 힘껏 내던졌다.
그렇게 무기가 내 손을 떠나자마자, 곧바로 후회가 들이닥쳤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무기를 집어 던지다니.
아직 전용 무기가 없으면 스킬 컨트롤이 불가능한데…….
그렇게 멀어지는 무기를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때.
파악―!
카아아아아악―!
“……?”
반쯤 홧김에 던진 검이 계속해서 허공을 날아다니던 몬스터의 몸통에 정확히 꽂혔다.
쿵―!
몬스터는 크게 포효하길 한 차례, 그대로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별…….’
황당한 상황에 나조차도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와 씨, 저걸 맞추네…….”
“확실히 괜히 에이스가 아니야.”
“저 인간이 실력이 문제냐. 인성이 문제지.”
이내 뒤에서 팀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기 딴에는 작게 말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본인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다는 건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에휴.’
이제 겨우 첫 번째 토벌인데, 어째선지 벌써 기진맥진이다.
빨리 마무리하고 점심시간에 잠이나 좀 자야…….
“뭐해요! 빨리 토벌 완료 보고해야죠.”
“…….”
마무리하고 던전을 나가려던 그때,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날아드는 잔소리.
하은혜 사원은 팔짱을 낀 채, 여전히 봐주는 것 없다는 완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대로 깊은 한숨을 쏟아내길 한 차례.
“작전 1팀, 김준우 외 7명 천호역 인근 드레인 배트 던전 토벌 완료했습니다.”
「아, 넵 알겠습니다. 보고 올리고 바로 청소팀 투입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별다른 대꾸 없이 무전을 날렸다.
그럼에도 하은혜 사원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다음부터는 기획서랑 다르게 작전 진행하면 바로 위원회에 보고할 거예요.”
“…….”
“무엇보다 3일 동안 제가 쭉 지켜봤는데, 토벌 자체가 너무 위험해요. 이러다가 또 사고 터지면 어떡하시려고요.”
입을 꾹 다물었지만, 그녀는 멈출 줄을 몰랐다.
“아무튼, 이번까지만 넘어갈 거예요. 오후 토벌부터는 꼭 제대로 안전하게 해줘요. 아, 점심 전에 오전 장비 점검 꼭 하시고요!”
“하아…….”
깊은 한숨이 절로 쏟아졌다.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거 진짜 또라이네…….’
정예팀 에이스한테 쉴 새 없이 잔소리를 쏟아붓는 3개월 차 신입이라니. 그것도 토벌까지 따라와서.
감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성격 자체가 겁이 없는 녀석인 건 둘째치고라도…….
문제는 나 또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엄연히 조사 기간이니 항의를 할 수도 없고, 조금 겁을 주려고 해도 원체 또라이라 전혀 먹히질 않는다.
물론 한 대 씨게 쥐어박으면 좀 조용해질 것 같긴 한데…….
‘쯧…….’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상대로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남은 4일을 어떻게 버티냐…….’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자.
“은혜 씨, 같이 점심 먹으러 갈래요?”
“요 앞에 칼국수 집 새로 생겨서 가보려고 하는데 어때요?”
“토벌까지 따라와서 고생하는데 작전팀 법카라도 뽑아먹어야죠. 커피도 사줄 테니까 같이 가요.”
팀원들이 그녀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붙인다.
‘얼굴 몇 번 봤다고 벌써 친해진 건가…?’
작전팀 놈들이 다른 부서 사람에게 저렇게 살갑게 대하는 건 꽤나 이례적인 일이다.
늘 제 잘난 맛에 사는 놈들이니 당연한 일이겠다만…….
그런 놈들과 고작 3일 만에 저런 사이가 됐다는 건 나로서도 놀랄 일이었다.
역시 성격부터 사교성까지 나랑은 정반대다.
“아하하, 저도 같이 가고 싶은데 제가 김준우 헌터님한테서 떨어지면 안 돼서…….”
하은혜 사원은 그렇게 말하며 날 바라봤다.
“김준우 헌터님도 같이 가시면 갈게요.”
“…….”
“…….”
참으로 쓸데없는 말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대놓고 표정이 어두워지는 팀원들.
‘얼씨구…….’
아주 눈빛부터 오지 말라고 저주를 퍼붓고 있다.
“…전 혼자 먹는 게 편합니다.”
나는 그 말과 함께 먼저 등을 돌렸다.
그러자.
“그럼 저는 김준우 헌터님이랑 먹을게요. 다음에 꼭 얻어먹으러 갈게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아쉽네~.”
“그래요, 그럼.”
“은혜 씨도 맛점 하세요~.”
하은혜 사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뒤를 따라나섰다.
***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야,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지금부터라도 하면 너보다 좋은 데 취직할 수 있다!”
“…….”
서울 본부 구내식당.
나와 마주 앉은 그녀는, 묻지도 않은 본인의 이야기를 밥을 먹는 내내 쏟아내는 중이었다.
“뭐, 그래서 여기 취직한 거예요. 물론 쉽지는 않았는데… 아, 제가 그 얘기 했나요? 여기 면접 볼 때…….”
“말했습니다. 면접관들 앞에서 물구나무서기 했다는 거.”
“헐, 언제 말했대. 아하하!”
“…….”
3일 내내 쉴 새 없이 입을 열고 있는데, 말을 안 한 게 있을 리가.
태어난 고향부터 가족관계, 유년 시절, 첫 연애, 대학부터 취직까지.
짬이 날 때마다 본인의 모든 이야기를 쏟아냈다.
거기에 업무 시간에는 온갖 잔소리까지.
‘미치겠네…….’
계속 이 상태라면 더 이상 고막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제가 말이 좀 많죠…?”
그 불편한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건지, 하은혜 사원이 웬일로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아뇨. 조금이 아니라 매우 많습니다.”
“아하하! 제가 할머니랑 같이 살다 보니…….”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아빠랑 살았거든요. 그런데 아빠도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어요. 서울 본부 소속의 헌터셨는데…….”
“작전 중에 돌아가신 겁니까?”
“아뇨.”
그 대답에 나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밝지만 무거운, 평소와 전혀 다른 목소리였던 까닭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어요.”
“…….”
이내 들려온 그 말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헌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는 많지 않다.
대개 눈앞에서 동료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계속되는 잔혹한 전투에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폐해졌을 경우.
혹은…….
“누명을 쓰셨거든요. 작전 중에 동료를 살해했다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였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애써 밝은 척을 하려는 듯한 복잡한 미소였다.
“…유감입니다.”
“아니에요, 벌써 15년도 더 된 이야기라, 전 기억도 잘 안 나요. 누명을 썼다는 것도 나중에 할머니한테 들은 거고요.”
그녀가 젓가락으로 반찬을 깨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떤 작전 중에 무슨 사고가 있었고 거기에서 아빠가 부상을 당했는데, 갑자기 살인 누명을 쓰고 체포당하셨대요.”
“누명이라는 건, 범인이 따로 있다는 겁니까?”
“모르겠어요. 너무 옛날 일이라.”
그녀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설마 조사팀에 지원한 이유가…….”
“영향이 없다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막 아빠의 누명을 풀겠다! 뭐 그런 거창한 목표는 아니에요.”
하은혜 사원은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냥… 누구에게도 억울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거죠.”
“…….”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잠시 대답을 아꼈다.
‘그냥 생각 없는 또라이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더 무서운 또라이네.
본인만의 목적이 있는 녀석은 그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그래서, 김준우 헌터님은 왜 그런 실수를 한 거예요?”
“……예?”
“이번 사건 말이에요. 통제팀 파일에 분명 던전 개입 가능성에 대해 적혀 있었는데, 왜 굳이 무리하게 작전을 진행하신 거냐구요. 제가 헌터님을 오래 본 건 아니지만… 최소한 그런 정보를 잊어버리는 실수를 할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얘 봐라?
‘파일이 조작됐다는 걸 모르는 건가…?’
뭐, 하긴… 아무리 위원회가 사건 은폐를 도와주고 있다고 해도, 신입까지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지.
자칫하다간 동네방네 소문이 다 퍼질 테니까.
작전 본부에서 사건을 조작했고, 위원회가 모종의 이유로 그걸 묵인하고 있다는 걸.
또한, 내가 괜히 조작 증거를 찾겠다고 허튼짓하지 못하게 감시를 붙인 거라는 걸 정작 그녀는 모르고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시킨 일만 하고 있는 것이다.
‘참 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게 꽤나 우스웠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기도 잠시.
‘잠깐…….’
이 녀석은 참으로 보기 드문 꼴통이다.
만약 사건이 조작됐다거나, 누군가 고의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다는 것을 안다면 분명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사실을 파헤치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여기서 이 녀석한테 사실을 말한다면…….
‘…….’
쯧.
“사람이잖습니까. 실수할 수도 있죠.”
됐다. 신입 상대로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설령 안다고 해도 저 녀석이 뭔가를 해줄 수도 없을 텐데.
그냥 그렇게 넘어가려던 그때.
“그나저나, 김준우 헌터님은 다 좋은데……. 동료들을 좀 더 믿어보는 게 어때요?”
“…….”
갑작스러운 그 말에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물론 동료들이 위험할까 봐 그러는 건 알지만, 그래도 본인 먼저 챙겨야 다른 사람도 챙길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에이, 저 이래 봬도 눈썰미 하나는 끝내주거든요? 헌터님은 아무리 봐도 실적에 목숨 걸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뭐,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보일 것 같긴 하지만.”
“…….”
내 동공이 크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나중에 진짜 필요할 때 친구 한 명 없다니까요? 짐을 좀 내려놓고 해보는 게 어때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은혜 씨.”
나는 더 듣다못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우리 서로 주제넘은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네, 네…?”
갑작스러운 반응에 당황한 듯한 그녀의 표정.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식판을 들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등을 돌린 직후.
‘시발…….’
치부를 들킨 것에 머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
“……그렇게 해서 오늘 작전도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
서울 본부, 작전 진상규명위원회 조사팀 사무실.
오늘 자 업무가 끝난 후, 하은혜 사원은 그곳에서 기훈철 팀장에게 보고를 올리는 중이었다.
“그래. 수고 많았어. 남은 4일도 잘 부탁한다.”
기훈철 팀장은 보고서를 대충 훑어보고는 대답했다.
이만 퇴근해도 좋다는 제스처를 보냈지만, 어째선지 하은혜 사원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저,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합니다.”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봤자 겨우 3일이지만. 아무리 봐도 절대 실수할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뭐?”
“물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분이지만, 그렇다고 소문처럼 자신의 실적을 위해 동료를 도구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요. 사건에 무슨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닌지…….”
“야!”
기훈철 팀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거기까지만 해라.”
처음 보는 그 표정에 천하의 하은혜 또한 순간 주춤했다.
“넌 그냥 일주일 동안 옆에만 붙어 있으면 되는 거야. 네 멋대로 판단하지 말고, 멋대로 감정 이입하지 마. 그냥 시킨 일만 하라고.”
“…….”
“부탁이니까, 제발 허튼 생각 하지 마.”
기훈철 팀장이 깊은 한숨을 쏟아내며 말을 이었다.
“이건 널 위해서 하는 소리야.”
“……알겠습니다.”
“알면 이제 그만 가 봐.”
기훈철 팀장은 그녀를 향해 손을 휘휘 저었고 하은혜 사원은 그대로 사무실을 나섰다.
처음 듣는 야단에 풀이 죽어있기도 잠시.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해…….’
그녀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나는 조사팀이다.
아무도 보지 못한 곳에서 진실을 찾는 사람.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아빠를 생각해서라도.
‘좋아…….’
이내 그녀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