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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외전 – 9화
서울 본부, 작전 1팀 사무실.
오후 토벌이 끝나고 모두가 보고서 작업을 위해 남아있는 그곳에는 타자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으으으…!”
금세영 헌터가 기지개를 켜며 사무실의 정적을 깬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옐로우 등급 던전 토벌 얼마 안 남았지?”
“다음 주 월요일이야.”
“3일 남았네. 준비는 잘 돼가?”
금세영이 김민주에게 묻자, 그녀의 표정이 꽤나 복잡해졌다.
금세영은 표정의 의미를 금세 알아차렸다.
“아직 아무 얘기 없구나.”
“…….”
김민주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3일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 회의도 안 한 거야?”
“몰라. 나한테는 아무 얘기 없었어.”
“설마 저번 일 때문에 작전에서 뺀 건… 아니겠지?”
금세영 헌터가 조심스레 물었지만, 곧바로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미 김민주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뒤였다.
지금 그녀에겐 던전 하나, 실적 하나가 중요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옐로우 등급 토벌은 좀처럼 쉽게 오는 기회도 아니었고.
그러니 이제 와서 편성에서 제외되는 건 그녀에게는 출혈이 큰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금세영 헌터도 김민주의 그런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준우 오면 가서 한번 얘기해봐. 작전 준비 어떻게 되고 있냐고. 그냥 깜빡하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다른 것도 아니고 팀에서도 한 달 전부터 기획서 나온 작전인데 깜빡했을 리가…….”
“그건… 그렇네.”
“사실 단둘이 별로 마주치고 싶지도 않고.”
김민주의 목소리는 꽤나 무미건조했다.
“뭐… 회의할 때 되면 알아서 부르겠지. 아니면 정말 제외된 걸 수도 있고.”
“쓰읍, 솔직히 난 옐로우 등급 참가해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원래 3일 남았는데 아직 회의도 안 하는 게 정상인가?”
“나야 모르지.”
김민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 또한 공식적인 옐로우 등급 토벌은 겨우 한 번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건 둘째치고.
“그리고 그거 이제 옐로우 아니야.”
“…뭐?”
“최근에 통제팀에서 오렌지 등급으로 올렸어. 던전 안에서 몬스터 정보가 변경됐나 봐.”
“그게 말이 돼? 던전 개입 상황을 빼면 등급은 출현할 때부터 정해지는 거 아니었어?”
“보스가 진화형 몬스터라면 아주 희박한 확률로 등급이 바뀌는 경우도 있대. 나도 들은 거라 자세한 건 잘 몰라.”
“그럼… 앞으로 등급이 더 올라갈 수도 있다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고.”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김민주의 말에 금세영 헌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러자 김민주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솔직히 말해서… 김준우 작전이잖아. 아니면 네 말대로 난 제외됐을 수도 있고.”
“야, 무슨 말을…….”
금세영 헌터가 말을 하다 말고 옅은 한숨을 내쉬길 한 차례, 그녀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듯 다른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그나저나 김준우 말이야. 요즘에 어떤 여자애랑 같이 다니던데? 너 알아?”
“……알아야 하나?”
김민주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무표정한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금세영 헌터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위원회에서 감시역으로 보낸 신입인데… 다른 팀원들한테 듣자 하니, 그 사람이 붙은 이후로 뭔가 좀 바뀌었다고 그러더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금세영이 무어라 말을 붙이려던 그때.
“김민주.”
“……!”
“……!”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 호명에 두 사람은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김민주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언제 온 건지 모를 김준우가 서 있었다.
“지금 바로 회의실로 와. 작전 브리핑 할 거니까.”
“……네, 네.”
그는 본론만 말하고는 곧바로 등을 돌렸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당황하기도 잠시, 김민주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때.
“아, 그리고.”
먼저 사무실을 나서려던 김준우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니다 됐다.”
이내 사무실 눈치를 보며,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의 뒤를 따라 회의실로 향하는 동안, 둘 사이에선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분위기.
그것은 회의실에 도착한 뒤에야 겨우 누그러들었다.
회의실에는 이미 다른 팀원들이 모두 참석해있었고, 모두가 1팀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랭크보단 경력이라는 건가…….’
물론 본인이 그들 중 가장 랭크가 높았지만, 토벌은 랭크로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김준우 또한 그 점을 고려해서 인원을 편성한 듯했다.
이윽고 그녀는 자리에 앉아 9명의 토벌대원과 눈인사를 나누던 중, 그들 사이로 처음 보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김준우 옆에 서 있는 어느 여자.
초면인 걸 보니 일단 작전팀 소속은 아니다. 게다가 앳된 얼굴을 보아하니 딱 봐도 신입 같은데…….
‘세영이가 말했던 그 사람인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자.
“준비됐으면 시작한다.”
김준우가 단상에 선 채 여자에게 손짓했다.
동시에 그녀는 회의실 불을 끄고는 빔프로젝터의 전원을 켰다.
“던전 위치는 용산역에서 400m쯤 떨어진 골목. 차원형 던전, 보스 명칭은 에그스피어. 던전에서 계속 알을 낳는 것으로 개체수를 늘리는 몬스터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회의.
PPT에 적힌 기본 정보를 읊던 중, 김준우가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다들 알다시피 원래는 옐로우 등급이었는데, 이번에 통제팀에서 잠정 오렌지 등급으로 난이도를 변경했다. 변경 이유에 대해선 보스의 진화나 개체 수 증가를 원인으로 보고 있는데… 보스 특성상 개체 수 증가가 더 확률이 높겠지.”
“…….”
“…….”
평소 토벌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는지,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대답을 아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김민주는 그다지 집중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의 역할은 김준우도 말했듯, 그저 뒤에서 매핑이나 하는 것뿐이었으니.
토벌은 또 혼자 알아서 하라고 하고, 본인은 그냥 시키는 것만…….
“그래서 이번 토벌은 원맨 포지션이 아닌, 각개전투로 진행한다.”
“……?”
“……예?”
그때, 예상치도 못한 말이 들려왔다.
동시에 토벌대원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드러났다.
한 명의 메인 토벌대원을 중심으로 공격을 보조, 지원하는 원맨 포지션에서 벗어나 각개전투로 진행한다는 것은…….
‘설마 포지션을 분배하겠다는 건가…?’
그 김준우가?
김민주는 내심 설마 했지만.
“일단, 이학태 헌터.”
“네, 네.”
“이학태 헌터님은 좌측 근접을 맡을 겁니다. 보스방 예상 평면도 보내드릴 테니까, 본인 포지션 잘 숙지해 두시고요.”
“…알겠습니다.”
정말로 김준우가 포지션을 분배하기 시작했다.
“배수혁.”
“네!”
“넌 우측 근접이야. 서정운은 후방 지원, 강진규는 사제 마크하고.”
“아, 알겠습니다.”
“넵!”
너무나 낯선 풍경에 김민주는 그저 가만히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리고 김민주는 나랑 같이 보스 포지션 잡는다.”
“……저요?”
“여기 김민주가 너 말고 또 있나?”
순간 김민주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보스 포지션이라고 한 게 맞나, 그런 생각에 그녀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저, 저번에는 매핑이나 하라고…….”
“상황이 바뀌었잖아. 아니면 뭐, 혼자 매핑이나 하면서 꿀 빨고 싶다 이거야?”
“…….”
김민주가 짧게 심호흡을 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정말로 보스 포지션을 잡은 것이다.
어느샌가 그녀의 눈빛에는 힘이 바짝 들어간 채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김준우는 그렇게 대답하며 옆에 있는 여자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것도 잠시.
“자세한 사항은 개인 메일로 보내놨으니까 확인해보고, 1차 회의는 여기까지 한다. 모레 최종회의 진행할 거니까 그전까지 각자 포지션별로 전략 세워놔. 모르는 거 있으면 내가 따로 첨삭해줄 테니까 언제든 찾아오고.”
“네, 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해산.”
김준우는 그 말과 함께 거의 도망치듯 먼저 회의실을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뭐야, 지금 우리한테 토벌 참가하라는 거야?”
“또 자기 혼자서 할 테니까, 우리는 뒤에 찌그러져 있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위에서 한소리 먹었나?”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반응들.
토벌대원들은 아직도 믿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 중이었다.
“은혜 씨 오고 나서 좀 변했다더니… 진짜였네.”
“은혜 씨가 누군데?”
“뭐야. 너 같이 작전 들어가 본 적 없어? 아까 김준우 옆에 있던 사람 말이야. 위원회에서 감시역으로 붙였대.”
“그럼 지금 작전팀도 아닌 사람한테 존대 쓰는 거야?”
“야야, 그것도 나름이지. 신입인데도 아주 싹싹하고 귀여워. 그리고… 그 천하의 김준우가 신입한테 꼼짝 못 하고 쩔쩔매는 거 보는 맛도 있고.”
조금 전, 김준우 옆에 붙어 있던 그 여자에 대해 저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물론 김민주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먼저 서류를 챙겨 일어나려던 그때.
“그나저나… 민주 씨는 좀 안 됐네.”
“네?”
갑자기 한 대원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 인간이랑 같이 메인 포지션이잖아.”
“조그만 실수라도 하면 바로 제외해버릴지도 몰라.”
“으… 그 인간이랑 합을 맞춰야 한다고? 차라리 참가 안 하고 말지.”
대원들이 걱정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한마디씩 내뱉었다.
하지만 김민주는 그들의 너스레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 또한 어느 정도 공감하는 이야기였으니.
하지만 그런 것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며칠 만에 사람이 바뀔 수가 있나…?’
여전히 김준우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
물론 그가 개과천선했다는 안심보다는, 의심에 가까웠지만.
***
“……뭐가 그렇게 좋다고 자꾸 실실 웃습니까?”
나는 회의를 마치고 복도로 나오자마자 하은혜 사원을 향해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자꾸만 나를 바라보며 피식피식 미소를 흘리고 있었으니.
“팀원들 반응 봤어요? 다들 벙쪄 가지고는 뭘 잘못 먹었나~ 싶은 얼굴이던데.”
“……. ”
그럼 그렇지.
그냥 놀리는 거였군.
“그나저나 조금 의외예요. 그땐 그렇게 정색하시더니… 왜 갑자기 제 말을 들은 거예요?”
“착각하지 마십쇼. 그쪽 말을 들은 게 아니라, 상황이 바뀌었으니 그에 맞춰 작전을 변경한 것뿐이니까.”
“쿡쿡, 어련하시겠어요.”
“…….”
이젠 겁이 없는 수준을 넘어 예의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보다 더 화가 나는 건…….
나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앞으로도 토벌은 꼭 같이해요. 동료잖아요?”
“…생각해보겠습니다.”
나는 어물쩍 대답을 회피했다.
“그나저나 오렌지 등급이라니… 저도 조금 떨리네요.”
“뭡니까. 설마 거기까지 따라올 생각입니까?”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날이 딱 조사 기간 마지막 날이에요. 저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바라보고 있자, 그녀가 내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물었다.
“왜요. 걱정돼요?”
“…….”
“에이, 무슨 일 있겠어요? 전 딱 뒤에 붙어서 가만히 있을 테니까…….”
“제가 편성한 10명은 토벌을 위한 최소 인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토벌 외의 무언가를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뜻이죠.”
나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거기서는 그쪽을 지켜줄 사람이 없습니다. 각개전투로 가는 이상 더더욱요. 그리고 만약…….”
말끝을 흐리며 망설이길 잠시.
나는 다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정말 만에 하나 그쪽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저는 토벌을 더 우선시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
그녀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래, 아무리 겁이 없다고 해도 고작 3개월 차 신입이다.
죽을 수도 있는 곳에 굳이 제 발로 기어가 들어갈 정도로 또라이는…….
“헌터님은 절 걱정할 때가 아니에요.”
그 순간, 하은혜 사원이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평소와는 다른, 사뭇 무거운 표정.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가 묻자, 그녀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렇게 한참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우물쭈물하던 끝에,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통제팀 파일이… 조작된 거 같아요.”
“……!”
이내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