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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외전 – 10화
“통제팀 파일이 조작된 것 같아요.”
하은혜 사원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잠시 할 말을 잃고 눈을 끔뻑대고 있자,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해서 좀 알아보는 중이거든요. 헌터님을 오래 본 건 아니지만, 최소한 알면서도 강행할 분은 절대 아니에요. 그렇다고 실수를 할 분도 더더욱 아니고요.”
“…….”
“물론 아직 심증뿐이지만, 그래도 단서는 있어요. 제 나름대로 알아보는 중이에요. 최대한 조사 기간 전까지는 어떻게든 확실한 증거를 찾아볼게요.”
“…….”
그녀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고, 나는 어지러운 기분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마치 탐정이라도 된 듯 하은혜 사원은 팔짱을 끼며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문제는 파일이 조작됐다면 절대 위원회에서 모를 리가 없는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윗선에서 아예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 같은데, 보아하니 팀장님도 좀 의심스럽고…….”
“아, 아니, 대체 어떻게…….”
“알아요. 충격이 크겠죠. 보아하니 헌터님을 음해하려고 누군가 벌인 일 같은데.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그쪽이 그걸 어떻게 안 겁니까?”
“…어떻게 알았다뇨?”
그러자 하은혜 사원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낀 듯, 나를 바라봤고.
“서, 설마 헌터님도 알고 있었어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나는 대답을 아꼈다.
한편 하은혜는 오히려 더욱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럼,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거예요?! 최소 진급 누락에 여태까지 실적도 다 날아가 버릴 텐데?!”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쏟아냈다.
‘하여간,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애송이네…….’
역시 신입은 신입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모르시나 본데, 제가 아무리 팀 내 에이스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었다가 더 상황이 악화할 수도 있고요. 어차피 전 진급에는 딱히 욕심 없으니…….”
“뭐야 그게!”
갑자기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겠다고요?! 더 큰 보복이 무서워서? 토벌 때는 혼자서 온갖 폼 다 잡더니, 이제 보니까 순 겁쟁이네!”
“…….”
그 말에 내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내가 정색하자, 그녀 또한 금세 자신이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제가 좀 흥분했나 봐요.”
곧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과를 건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어쨌든 물러설 생각은 없다는 듯 또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통제팀에 친한 동기가 있어요. 입사 초반에 워낙 실수를 많이 해서, 요즘에는 모든 파일 원본을 개인 하드에 백업해둔대요. 만약 그 파일도 백업이 되어 있으면,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엮어서 터트릴 수…….”
“하지 마세요.”
“……네?”
나는 그녀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 말라고요. 지금 입사 3개월 차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알고나 있는 겁니까? 며칠 봤다고 정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정 때문이라니.”
그러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말했잖아요. 이게 제 일이라고.”
“…….”
“그런 거 무서워서 할 말도 못 하면 억울해서 어떻게 살아요?”
이내 그녀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때 묻지 않은, 너무나 환한 미소.
그 표정을 보자,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꼴통도 이런 꼴통이 없네…….’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내젓고 있자니.
“제가 누누이 말했잖아요. 동료를 좀 믿어보라고. 자꾸만 모든 걸 혼자서 하려고 하면 늙어서도 혼자 지내야 할걸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스레 말을 이었다.
“그리고 뭐… 정말 위험해지면 헌터님이 도와주면 되죠.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요? 그래도 며칠 본 정이 있는데.”
“…….”
뻔뻔하기 그지없는 말에 대답을 아끼길 잠시.
‘하아…….’
깊은 한숨을 쏟아내곤 등을 돌리며 말했다.
“마음대로 하시죠.”
그래 뭐.
내가 도와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알아서 나서겠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나야 사실상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고…….
뭐, 압박이야 들어 오겠지만 그 정도 커버 쳐주는 건 어려운 것도 아니니.
***
“어, 왔냐?”
하은혜 사원이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현관문을 열며 나타난 남자.
하은혜 사원의 대학 동기이자, 협회 동기.
작전 본부, 통제팀 소속의 엄경훈 사원이었다.
“내가 말한 거 확인해봤어?”
“뭐… 일단 들어와.”
엄경훈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집 안으로 들였다.
온갖 기기들로 너저분한 방과 과하리만치 낮은 온도.
먹던 과자 봉지들이 늘어져 있는 책상 위에는 4개의 모니터가 무언가를 비추고 있었다.
“일단은…….”
이내 엄경훈이 모니터 앞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확인해보긴 했는데, 네가 말한 그 파일은 내 담당 작전이 아니라서 원본 백업은 안 해뒀어.”
“…….”
그의 말에 하은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하지만 엄경훈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 대신 다른 걸 좀 찾았지.”
“다른 거?”
“오늘 퇴근하기 전에 파일을 받아와서 방금 좀 뜯어봤거든.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더라고.”
엄경훈은 키보드를 요란하게 두드리며, 모니터에 창 하나를 띄웠다.
그리고 어느 부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 날짜 보이지?”
“응.”
“이게 이 파일의 최초 작성일이야. 이때 원본이 만들어졌다는 소리지. 그리고 그 밑으로는 추가 수정 작업 날짜들이고.”
하은혜는 모니터에 얼굴을 들이대곤, 그 날짜들을 자세히 확인했다.
3개월 전에 처음 만들어진 그 파일을, 이후 한 달 동안 총 13번의 수정을 거친 듯 보였다.
그리고.
“여기 보면 딱 한 달이 지난 시점부터 갱신이 끊겼지?”
“그러네.”
“이때부터 통제팀에선 거의 동결로 넘어간 거야. 동시에 재고 던전으로 분류됐고.”
“…잠깐.”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던 하은혜가 이내 로그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여기 이후로 갱신이 한 번 더 됐는데?”
“바로 그거야.”
엄경훈이 손가락을 튕기며 대답했다.
“선배들한테 물어보니까 한 번 동결돼서 재고로 넘어간 던전은 이후로 추가 갱신되는 일이 거의 없대. 재고 던전까지 계속 정보를 수집할 만한 인력이 없으니까.”
“그런데 여기는 왜…….”
“아무리 봐도 이상하지?”
엄경훈의 말에 하은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따로 있어. 거의 두 달 동안 갱신이 안 되다가, 갑자기 추가 정보가 입력된 시간이…….”
엄경훈이 또다시 키보를 두드리길 잠시.
이내 몇 개의 숫자가 모니터에 나타났다.
“11월 22일, 21시 45분.”
엄경훈이 그 숫자를 육성으로 읽어주었다.
“해당 던전 작전 중이었던 시간이야.”
“……!”
그와 동시에 하은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렇다는 건…….”
“토벌 중에 누군가가 파일을 건드린 건 확실하다는 거지.”
하은혜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됐네, 그럼! 이거 가지고 바로 팀장님한테… 아니지, 이사회에 다이렉트로 제보하면…!”
“아니. 이거로는 어림도 없어.”
하지만 엄경훈은 그녀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여기서는 갱신 시간만 볼 수 있고, 어떤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어. 던전 개입 가능성이 조작되었다는 증거로는 의미가 없는 거야.”
“아…….”
이내 그녀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방법이 없을까? 너 컴퓨터 잘 다루잖아. 해킹 같은 거로 어떻게…….”
“이거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그게 뭐 쉬운 줄 아냐?”
엄경훈이 옅은 한숨을 쉬길 한 차례.
이내 의자를 뒤로 돌리고는 하은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던전에 관련된 모든 파일… 그러니까, 던전 출현 직후부터 실시간 토벌 장면, 던전 소멸까지의 모든 정보는 통제팀 메인 서버에 보관돼 있어. 듣기로는 통제팀이 만들어질 때부터 보관했다고 하니까, 최소한 30년 치의 정보는 모두 있을 거야.”
“그럼…?”
“3개월 전 정보라면 당연히 그 던전의 원본 파일부터 이후 어떤 내용이 변경되었는지까지도 다 나와 있겠지.”
그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 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거야. 우리 팀장님도 접근 못 해. 아마 협회장이나, 작전 본부장 정도? 그마저도 협회장 허가를 받아야겠지만.”
“뭐야. 그럼 결국 우리는 접근조차 못 한다는 거잖아.”
“뭐…….”
말끝을 흐리던 그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가 서버 자체는 못 건드려도… 접속 권한 코드 정도는 크래킹할 수 있어.”
그러자 하은혜의 얼굴도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데 코드를 알아도 원격으로 접속하는 건 불가능해. 어떻게든 서버에서 정보를 뽑아오려면 직접 서버를 건드려야 해.”
“……직접 통제팀 서버실에 들어가서 정보를 빼내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불법 아니야?”
“작전 파일을 개인이 가져와서 로그 뜯어보는 건 합법 같냐?”
“…….”
하은혜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해볼 거야?”
이내 엄경훈이 묻자, 하은혜는 대답을 아끼길 잠시.
“까짓것 해보지 뭐.”
그녀의 눈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참고로 이거 들키면 잘리는 거로 안 끝날 수도 있다?”
“…….”
시작도 전에 초를 치고 있었다.
***
“…….”
“…….”
서울 본부, 작전 진상규명위원회.
우석호 위원장실.
우석호 위원장과 서민철 본부장은 아무 말 없이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조사 종료까지 4일 남았던가요?”
서민철 본부장이 정적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네.”
우석호 위원장은 그 걸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굉장히 심기가 불편한 표정과 말투.
서민철 본부장도 그 반응을 느끼고 있었다.
“너무 불쾌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괜히 찝찝한 과거를 애써 모른 척 덮어 놓는 것보다, 이참에 그냥 시원하게 청산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아주 날 갖고 노는구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군요.”
서민철 본부장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감시역한테선 별다른 이야기 없습니까?”
“없네. 조용하게 토벌에만 집중하고 있다나…….”
“포기했나 보군요.”
김준우는 똑똑한 놈이다.
자신이 공사를 당했다는 걸 알아도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또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를 안다면 굳이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괜히 나섰다간 도리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 또한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아무튼, 남은 기간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말이야.”
그때, 우석호 위원장이 서민철 본부장의 말을 빼앗아, 사뭇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때 그 토벌 모니터링 파일, 확실히 지워주는 거겠지?”
“물론이죠. 뭐… 통제팀 메인 서버에 접속해야 하는 만큼 허가받을 시간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 부분은 확실히 지켜드리겠습니다.”
“자네 외에 다른 놈에게 새어 나갈 일은?”
“하하하,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이봐, 서민철이.”
그 순간, 우석호 위원장이 눈빛이 변했다.
“그 파일이 다른 놈에게 새어 나가면, 난 자네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짓들도 할 수 있어.”
“…….”
“그러니 가능성 같은 개소리 말고, 확실하게 말하게.”
분명 지금 상황에서 칼을 쥐고 있는 건 서민철 본부장 쪽이었다.
아무리 우석호 위원장이 이사회와 견주는 거물이라고 해도, 절대적인 약점을 쥐고 있는 한 우위는 서민철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석호 위원장의 그 경고는 서민철 본부장마저 위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서민철 본부장은 자신이 긴장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이내 그는 가볍게 묵례하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사무실을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수용 팀장이 곧바로 다가왔다.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가 묻자, 서민철 본부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 김준우 건은 예정대로 마무리될 거 같다.”
“그런데 표정은 왜 그러십니까. 변수라도 있는 겁니까?”
“…….”
서민철 본부장이 혀를 차길 한 차례.
“고작 진급 누락 한 번 시키겠다고, 괜한 짓을 벌인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드네.”
자꾸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길한 기분에, 서민철 본부장은 허공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