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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외전 – 17화
“시발, 왜 이렇게 안 와.”
“빌어먹을, 진짜.”
“벌써 9시인데…….”
용산역 인근 골목에 위치한 던전 입구.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토벌대원들은 그곳에 서서 아직 오지 않은 한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민주 씨, 그 인간한테 연락해봤어?”
그때, 대원 중 누군가가 김민주에게 물었다.
“네, 네. 방금도 연락해봤는데 가고 있으니까 기다리라고만 하셨습니다.”
“…그게 뭔 개소리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시발, 긴급 토벌에 늦으면 어쩌자는 거야.”
얼토당토않은 대답에 대원들은 퍽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랄 것 없이 시계를 바라보며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벌써 기존 작전 시간에서 한 시간이나 지체됐다.
여기서 더 늦으면 정말 위험하다.
“안 되겠어. 5분만 더 기다려보고 안 오면 우리끼리라도 먼저 진입하자.”
그때, 이학태 헌터가 말했다.
토벌 대원 중 가장 연장자이자, 가장 경험이 많은 헌터.
이번 토벌에서 유사시 김준우 다음으로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남자였다.
“…우리끼리요?”
“정말 괜찮겠어요?”
“그럼 뭐 어떡해!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인간 기다리다가 등급 상승하면 너희들이 책임질래?!”
“그래도…….”
물론 토벌대원들은 그의 결정에 선뜻 찬성하지 못했다.
그야 레드 등급 던전이지 않은가.
그것도 언제 오메가 등급으로 상승할지 모르는 곳이다.
그런 곳을 김준우 없이 진입하는 건 꽤나 위험한 일이었고, 사실상 토벌 참가부터 많은 각오가 필요했던 그들에게 또 다른 위험을 무릅쓸 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모두가 결정을 망설이고 있던 그때.
끼이이이익―!!
그들 앞에 한 차량이 요란스러운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멈춰 섰다.
이윽고 그 차에서 등장한 건.
“오, 오셨다!”
“빌어먹을! 빨리도 오네.”
이번 토벌의 현장 책임자이자, 리더.
김준우 헌터였다.
김민주는 곧바로 그의 장비를 챙겨 들고 김준우에게 다가갔다.
“부팀장님! 왜 이렇게 늦으신…!”
“닥치고 따라와.”
하지만 김준우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장비를 받아들고는 곧장 던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김민주는 그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왠지 모르게 꽤나 급해 보이는 모습.
무엇보다 그의 표정은 여태까지 봐온 그 어느 때보다 분노에 차 있었다.
“바로 작전 개시한다. 장비 챙겨서 따라와.”
김준우는 기다리고 있던 대원들마저 휙 지나치며 말했다.
그렇게 최종 작전 브리핑과 장비 점검, 확인 절차까지 모조리 생략하고는 먼저 던전에 진입했다.
토벌대원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던전 입구를 바라보길 잠시.
“시발, 진짜…….”
“끝까지 제멋대로네.”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그를 따라 던전으로 들어섰다.
김민주 또한 마지막으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작된 토벌.
김준우는 던전 내부로 들어서서 잠시 지도 파일을 확인하더니.
“보스 방까지는… A-1 루트로 간다.”
작전 회의 때와는 전혀 다른 루트를 선택했다.
“예,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회의에서는 B-3 루트로 가는 거로 얘기되지 않았습니까! A-1 루트는 다수 몬스터 예상 출현 구역인데…!”
“지체되지만 않는다면 보스 방까지 1시간은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어.”
대원들의 이의에 김준우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시간 단축이 뭐가 중요합니까! 지금이 정산 시즌도 아니고!”
“맞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인원인데,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
대원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지만, 김준우는 대답 대신 그들을 가만히 노려봤다.
이내 그의 눈빛을 확인한 대원들은 흠칫하며 곧바로 입을 닫았다.
그만큼 지금 김준우는 어딘가 이상했다.
모두가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끼고 있던 그때, 김준우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길은 내가 틀 테니까 서정운, 배수혁은 후방에서 확인 사살하고, 김민주는 내 뒤에 붙어서 지원해.”
“네, 네.”
“알겠습니다…….”
결국, 말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시작된 A-1 루트 돌파.
김민주는 김준우의 등 뒤에 붙은 채로 천천히 따라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도저히 이 상황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준비도 없이 시작된 토벌, 회의 때와 달라진 루트.
그 모든 것들이 아직 젊은 헌터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아무리 김준우라고 해도 여긴 레드 등급 던전이다.
그마저도 긴급 토벌이기에 인원과 지원도 넉넉하지 못한 상태.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몰라도 감정적으로 나설 만한 곳은 절대 아니다.
김민주는 계속해서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고유 스킬 : 마왕]
스스슥―.
[습득 스킬 ; 극초식 – 어검술]
[습득 스킬 : 시간 초과]
[습득 스킬 : 업화]
쾅―!!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김준우가 움직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자신의 기우였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끼에에에―!!
카아아아악―!
본격적으로 A-1 루트에 들어서고 몬스터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대원들 사이에선 단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그저.
[고유 스킬 : 레이저포인터]
[고유 스킬 : 컴뱃 파이어]
[고유 스킬 : 천수관음]
쿠구구궁―!!
퍼벙, 펑―!!
김준우의 템포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그렇게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몬스터를 정신없이 처리해나가던 중.
툭―.
앞장서던 김준우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제야 대원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
“…….”
그와 동시에 대원들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실소를 터트렸다.
던전 진입 후 1시간 12분째.
가장 위험한 A-1 통로를 뚫고, 기어이 최단 경로로 보스 방 입구에 다다른 것이다.
하지만.
“허억, 허억…….”
“하아…….”
통로를 뚫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쏟은 건지 대원들은 이미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던 김민주는 김준우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원들이 통로를 뚫느라 많이 무리했어요. 조금 쉬었다가 재정비 후 진입하는 게…….”
“그럴 시간 없어.”
“…네?”
하지만 김준우의 이해할 수 없는 대답에 김민주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물론 긴급 토벌이긴 해도 아직 등급 상승 보고는 전달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2시간으로 잡아둔 통로 돌파 시간을 1시간 만에 뚫었으니 사실상 시간 여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그럴 시간이 없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대체 무슨 일이에요?”
“…….”
김민주가 물었지만, 김준우는 입을 닫았다.
그 대신.
끼이이익―.
“자, 잠깐…!”
“……!”
“…돌겠네, 진짜.”
말도 없이 멋대로 보스 방의 문을 열어버렸다.
대원들은 그의 단독 행동에 학을 뗐지만, 이미 문이 열린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보스가 활동을 시작할 테니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지친 몸을 이끌고 보스 방으로 들어섰다.
스슥―.
스스스스스―.
“미친…….”
“…….”
눈앞에 드러난 보스 방의 모습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번 던전의 보스, 에그스피어.
성인 남성만 한 크기의 보잘것없는 애벌레지만, 알을 낳아 개체 수를 늘리는 특성을 가진 몬스터.
보스 방을 가득 채운 그 수천 마리의 애벌레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전대로 이학태 헌터님은 좌측, 배수혁은 우측을 맡고, 김민주는 나랑 같이 모체를 맡는다.”
“…….”
“…….”
김준우가 말했지만, 대원들은 그 충격적인 풍경에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준우는 대답을 들을 시간도 없다는 듯.
타닷―!
곧바로 애벌레들 사이로 달려들었다.
‘진짜…….’
[고유 스킬 : 천수관음]
스릉―.
그와 동시에 김민주도 검을 빼 들고는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쾅, 콰광―!!
서걱―!
스스스슥―!!
애벌레들은 날카로운 창이 달린 단단한 외피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강력한 산성 액을 뱉어댔다.
물론 개체 하나하나는 블루 등급에도 못 미치는 보스다.
시간이 지나 성체가 된다면 이전 리젠던전보다 더한 재앙이 펼쳐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다만.
“시발, 너무 많아!!”
“둘러싸이지 않게 계속 움직여!!”
“으아아악!!”
그 수가 너무 많았다.
확인된 개체만 3천 마리가 넘는다.
아무리 하나하나가 약하다고 해도, 한 번 둘러싸이기 시작하면 그대로 녹아 없어질 것이다.
콰과광―!!
펑, 퍼버버벙―!!
대원 모두가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며 공격을 이어갔다.
하지만 김준우는…….
[고유 스킬 : 마왕]
[습득 패시브 : 과다출혈]
[체력이 소모될수록 모든 스텟이 대폭 증가합니다.]
쾅―!!
뻑, 뻐억―!
마치 눈이 돌아간 사람처럼 미친 듯이 앞으로만 돌격하는 중이었다.
“부, 부팀장님!”
그 위험천만한 행동에 김민주가 그를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그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김민주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고유스킬 : 마왕 - 독재자]
[시전자의 상념에 따라 일회용 스킬을 제작합니다.]
[스킬 제작 중.]
[스킬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슈퍼노바]
쾅―!!!
“……!”
눈이 멀 정도로 밝은 빛과 함께 터져나간 폭발.
김민주는 그 광경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여태까지 그에 대한 평가가 뒤집힐 만큼 압도적인 실력.
비슷한 나이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엄청난 전투 센트.
무엇보다 자신과 랭크도 딱 한 등급 차이였다.
하지만 저 정도가 A랭크라면…….
자신은 결코 A랭크로 승급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저게 천재구나…….’
목숨이 오가는 토벌 중, 그런 열등감마저 느껴질 정도의 수준이었다.
김민주는 이내 검을 거둔 채 가만히 김준우만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눈앞의 몬스터만 바라보며 미친 듯이 달려드는 중이었다.
그의 눈빛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고, 움직임은 더더욱 상식을 벗어나는 중이었다.
하지만 김민주가 본 그의 행동은, 단순히 분노에 잡아먹힌 발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박함에 가까웠다.
‘대체 왜…….’
김민주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뭐, 뭐야…?”
“저 인간이 저 정도였다고…?”
다른 대원들 또한 그의 광기 어린 모습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유 모를 분노와 절박함.
죽는 것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김준우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끔찍한 살기가 느껴졌다.
“시발…….”
그 순간, 김준우가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김민주는 다시금 검을 쥐었다.
[고유 스킬 : 천수관음]
서걱―!
김준우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김준우는 그곳에 있는 모두에게 평생 느낄 수 없는 자극을 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원들은 그를 따라 저마다의 각오를 다졌지만, 그 사실을 오로지 김준우 혼자만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 째 이어진 토벌.
어느덧 보스 방에는 수천 마리의 애벌레 사체들만이 널브러져 있었다.
“후우…….”
“시발, 진짜… 두 번은 못 하겠다.”
“그러니까요.”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제자리에 주저앉는 대원들.
그들은 이내 미소를 흘리며 안도의 한숨을 쏟아냈다.
5시간 32분.
레드 등급 토벌로썬 경이로운 기록.
하지만.
“…….”
여전히 김준우의 표정엔 그 어떤 성취감이나 안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토벌이 끝나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거친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수, 수고하셨습…….”
김민주가 그에게 인사를 건네기 무섭게 그는 곧바로 등을 돌렸다.
급한 걸음으로 던전을 빠져나가며 무전기를 들었다.
“토벌 완료했습니다. 지금 바로 이동할 건데, 지원팀한테 부탁해놓은 건 어떻게 됐습니까?”
「……일단 복귀하십시오.」
“아마 서울로 돌아온 건 아닐 겁니다. 충청도 쪽으로 빠졌을 것 같은데, 잘 확인한다면 충분히 쫓을 수 있는…….”
「김준우 헌터님.」
이윽고 들려오는 편창현 팀장의 무거운 목소리.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답이 끊기길 잠시.
「하은혜 사원, 발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