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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외전 – 18화
「오늘 오후 1시경, 충북 제천시 외곽의 저수지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피해자의 신원은 확인 중에 있으며, 경찰 당국은 살인 사건에 가능성을 두고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국립과학연구소, 부검실.
“…….”
나는 차가운 침대에 누워있는 하은혜 사원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폐에 물이 들어가 있지 않은 거로 봐선, 이미 사망하고 난 후에 저수지에 버려진 것 같습니다. 사인은 질식사인 것 같고요.”
“…….”
“수사는 진행 중인데, 단서가 아무것도 발견된 게 없어서 조금 시간이 걸릴 겁니다.”
“…….”
옆에 있던 수사관이 무어라 설명을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은 멈출 줄을 몰랐다.
“문제는 시신 수습인데……. 고인이 연고자가 없습니다. 할머니랑 둘이 살았다던데, 확인해보니 2년 전에 돌아가셨고요.”
“…….”
“일단 신원 확인은 됐으니까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시신을 인계받는 분이 안 계시면 무연고자 장례로 진행될 겁니다. 혹시 주변 지인이나 먼 친척이라도 알고 계십니까?”
“…….”
“…저, 듣고 계십니까?”
결국 참다못한 건지, 그가 물었다.
나는 그에게 시선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시신을 인계받을 만한 지인이나, 친인척을 알고 계시면…….”
“없습니다.”
“유감이군요. 그럼 무연고자 장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범인, 잡을 수 있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와 동시에 수사관은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질문은 정말 범인을 찾을 수 있냐는 의미가 아니었다.
범인을 찾는다 한들 그를 법정에 세울 수 있냐는 뜻이었고, 정말로 범인에게 죄를 물을 수 있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수사관 또한 무언가 들은 게 있는 듯, 대답을 망설였다.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을 내놓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어차피 다른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하은혜 사원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제가…….”
나는 다시 한번 수사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가 인계받아도 되겠습니까?”
“네, 네?”
“시신 말입니다.”
“아, 뭐…….”
수사관은 퍽 당황스러운 듯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물론 가능은 합니다. 성함이랑 소속, 생전 고인과의 관계를 말씀해주시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이능차원관리협회 서울 본부 작전 1팀 소속, 김준우. 고인과는…….”
또다시 그녀를 바라보길 한 차례.
“직장 동료였습니다.”
수사관은 숙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알겠습니다. 그럼 인계 절차는 오늘 오후에 진행해드릴 테니, 남은 시간 동안 장례 준비하고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나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부검실을 나왔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깊게 생각할 수 없었다.
온몸의 신경과 근육들이 제멋대로 꿈틀거렸고, 당장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어딘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애써 머릿속을 비우려 했지만, 말처럼 쉽진 않았다.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
그런 강박감이 들자,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편창현 팀장이 보내놓은 문자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은혜 사원의 자택 주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그곳으로 향했다.
이윽고 도착한 작은 빌라.
나는 하은혜 사원 혼자 살고 있던 그 집에 들어갔고, 이내 아무도 없는 빈방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곳은 그날의 급박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했다.
나는 잠시 가만히 서서 그곳을 둘러봤다.
널브러진 물건들과 옷가지.
박살이 난 컴퓨터와 가구들.
이내 옅게 숨을 내쉬었다.
정리해둘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유품을 전해줄 사람도 없었으니.
결국은 다 폐기해야 할 것이다.
영정으로 쓸 사진 몇 장만 챙기면 충분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방 안을 천천히 훑었고, 머지않아 눈에 들어온 작은 액자 하나.
그녀와 그녀의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잠시 바라보던 끝에, 그 액자 하나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툭―.
액자 뒤에 붙어있던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걸 확인하자 내 눈썹이 크게 요동쳤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것을 주워들었다.
테이프로 엉성하게 붙여놓은 USB였다.
물론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
그 존재만으로 이곳에서 대충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하은혜 사원이 어떤 선택을 했던 건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숨이 작게 떨려왔다.
끄드득―.
이내 입에서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그녀는 죽었다.
누군가 아무리 명복을 빌어도 그녀는 듣지 못할뿐더러, 만일 내가 진실을 밝힌다 한들 그녀가 살아 돌아오진 않는다.
그녀의 억울함을 풀겠다거나 복수한다거나… 이제 와서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니 지금부턴 그저 개인적인 용무일 뿐이다.
지난 일은 죽은 자가 가져갔고.
결국, 남은 일은 산 자의 역할이니까.
***
“시발…….”
작전 1팀 사무실.
모두가 퇴근한 늦은 시각이었지만, 이수용 팀장은 집에 갈 생각도 못 한 채 연신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이수용 팀장은 다리를 떨어대며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게, 자신 또한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으니까.
설마하니 부하 헌터 한 명 견제하려고 시작한 일이 누군가가 죽는 결과를 낳을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진짜 막 나가네, 우석호 위원장…….’
물론 조사팀 신입 사건에 직접 끼어 있는 건 아니었기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지만, 서민철 본부장이 해준 이야기와 이런저런 상황을 본다면 이번 일을 벌인 건 그가 분명했다.
원래부터 무서운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약점 잡히지 않겠다고 신입마저 죽여버릴 줄이야.
이수용 팀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이라도 발을 빼야 하나?
만약 이번 일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면 자신까지 줄줄이 엮일 게 분명하다.
재수 없으면 이번 일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같은 처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이제 와서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여기서 발을 뺀다는 건, 결국 우석호 위원장의 뒤통수를 치는 행동일 텐데.
과연 그 인간이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둘까.
아니, 애초에 이 일이 수면 위로 드러날 수가 있나?
‘시발, 하나도 모르겠네…….’
오만가지 생각에 어느 것 하나 선뜻 선택하지 못하던 그때.
따르릉―.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수용 팀장은 수신자를 확인한 후,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사무실이냐?」
“……예.”
서민철 본부장.
그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우 위원장이랑 이야기하고 왔다. 조용히 처리하기로 했어.」
“…그렇습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연고도 없는 신입 한 명 죽었다고 세상이 망하냐? 어차피 며칠 지나면 알아서 묻힐 일이야.」
이수용 팀장은 대답을 아꼈다.
그렇게 말하는 서민철 본부장 또한 어딘가 불안감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이만 퇴근하고 집에 가서 좀 쉬어.」
“파일 회수는 못 했다면서요. 만약 나중에 발견되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상관없어. 어차피 그년이 죽은 시점부터 그 파일은 출처도 불분명한 찌라시가 됐으니까. 조작이라고 잡아떼면 그만이야.」
“그게 가능합니까?”
「우석호 위원장이야. 다른 건 몰라도 그만한 힘은 있어.」
“…….”
그 말에 이수용 팀장은 내심 안심이 되었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석호 위원장이다.
애초에 이런 일을 벌일 정도면,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러니까 우리만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 일 없을 거야. 너는 어차피 이번 일이랑 상관도 없잖아.」
“…예.”
「끝까지 모른 척해. 무슨 일 있어도 너한테는 불똥 안 튀게 내가 잘 봐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수용 팀장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작게 한숨을 내뱉던 그때.
덜컥―.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렸다.
그 소리에 심장이 떨어질 뻔했지만.
“…시발, 깜짝이야.”
이내, 사무실로 들어온 이를 확인하고는, 이수용 팀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경찰이라도 찾아온 줄 알았는데, 다름 아닌 김준우였으니.
“이 시간에 네가 여긴 웬일이야. 너 내일까지 토벌 없잖아.”
“…….”
김준우는 대답 대신 돌아서서 문을 철컥, 잠갔다.
그 행동에 이수용 팀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는 거야?”
그가 물었지만, 김준우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였다.
이내 김준우는 주먹을 움켜쥔 채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야, 야. 너 지금 무슨…!”
뻐억―.
이수용 팀장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너, 너 미쳤어?! 지금 이게 뭐 하는 짓…!”
뻐억―!
휘청거리는 몸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한 번 더 주먹이 날아들었다.
다짜고짜 벌어진 상황.
그 두 번의 공격에, 이수용 팀장의 인내심은 금방 한계에 다다랐다.
“이 시발…!!”
[습득 스킬 : 레볼루션]
[적을 향해 마법 구체를 발사합니다.]
지이잉―.
기어이 던전도 아닌 사무실에서 스킬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습득 스킬 : 하이퍼 부스트]
쾅―!!
[습득 스킬 : 원 카운터]
뻑, 뻐억―!
김준우는 그 공격을 간단히 회피하며, 그의 복부에 다시 한번 주먹을 찔러넣었다.
“끄으윽…!”
점점 세지는 강도.
방금 맞은 부분이 어딘가 잘못된 듯, 이수용 팀장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너, 너 시발, 잘리고 싶어 환장했냐?! 이게 어디서 지금…!”
콱―!
김준우는 그의 목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닥치고 묻는 말에 대답해. 아가리 찢어버리기 전에.”
살기가 아른거리는 눈빛.
한 번도 본 적 없던 그 표정이 눈앞에 드리웠다.
“누가 계획한 일이야?”
“……무, 무슨 소리야!”
“니들이 내 평판 깎으려고 개수작 부린 거 다 알고 있어. 그런데 그게 사람까지 죽일 일이었어?”
“…….”
이수용 팀장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알고 있었나?
대체 언제부터?
아니 그것보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치자, 이수용 팀장은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나, 나는 진짜 모르는 일이야! 그 신입 죽인 건 애초에 나랑은 상관 없…!”
꾸욱―.
정답이 아니라는 듯, 김준우은 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목을 졸랐다.
이수용 팀장은 껄떡거리는 숨을 애써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 난… 그냥 너 진급 누락만 시키려고 했다고…! 파일만 조작해서 실수로 위장하려고 했는데… 서민철, 그 자식이 위원회 입 막겠다고 다른 거로 딜을 해서…!”
“…….”
그 대답이 들려오고 나서야 김준우는 손을 뗐다.
“컥, 커억…! 콜록콜록!”
이수용 팀장은 그대로 고꾸라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자세히 말해.”
하지만 김준우는 그런 것까지 기다려줄 생각이 없다는 듯, 곧바로 물었다.
“서민철, 그 인간이 우석호 위원장의 약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걸고 딜을 했다고! 이번 조작 건을 눈감아 주는 대신 그 약점을 영영 묻어주겠다고…….”
“서민철 본부장이?”
“그, 그래! 신입이 죽은 것도 다 그 새끼 때문이야! 나는 아무 상관도 없어!”
“…….”
김준우는 그 대답을 듣고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실 알고 있어.”
그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뭐, 뭐?”
“알고 있다고. 너랑은 딱히 상관없는 거.”
“그, 그럼 왜…….”
“네가 그동안 나한테 지랄한 이유랑 똑같아.”
김준우는 이수용 팀장을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냥 X 같으니까.”
뻐억―!
그와 동시에 날아든 발길질.
이수용 팀장은 억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동시에 이수용 팀장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저 자식, 진짜 끝을 볼 생각이다.
진짜로 자길 죽일지도 모른다.
‘싸, 싸워야 하나…?’
아니, 그런다 한들 저놈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빽도, 라인도 없이 실력으로만 부팀장까지 올라온 천재가 아닌가.
실력도, 실적도 부족한테 서민철 빽으로 팀장까지 올라온 본인이 이길 수 있을 리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자, 잠깐…!”
그의 머리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회전했다.
“나한테 화풀이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
“무,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복수를 하고 싶은 거라면 내가 아니라 서민철이랑 우석호를 쳐야지!!”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
김준우는 잠시 대답을 아끼곤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애초에 아무 상관 없는 나한테 이래 봤자 아무것도…!”
“내가 서민철이랑 우석호를 친다면….”
그 순간, 김준우의 눈이 번뜩였다.
“네가 정말 아무 상관이 없을까?”
“……뭐?”
이수용 팀장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번 일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면, 그놈들은 가장 먼저 꼬리를 자를 거야. 애초에 시작은 너였으니, 너한테 모든 걸 다 뒤집어씌우겠지.”
“그, 그럴 리가!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밑에 놈 하나 정리하는데, 증거가 필요할 것 같아?”
김준우의 말에 이수용 팀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 말대로 나는 곧 그 두 사람을 조질 거야. 그리고 장담하는데, 내가 그 두 사람을 건드리는 순간 가장 X 되는 건 바로 너야.”
“…….”
“네가 정말 그 두 사람을 믿는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아.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네가 해야 할 건 딱 하나야.”
“그게 무슨…….”
“물리기 전에 물어야지.”
이내 김준우가 자세를 낮춰 이수용 팀장과 눈높이를 맞췄다.
“두 사람을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달려가서 자수해. 그게 유일한 살길이야.”
“……!”
그 말을 전했다.
“아니면 끝까지 믿고 버텨보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