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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342화 (342/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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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외전 – 20화

서민철 본부장을 만나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내 앞에 나타난 젊은 남자.

“토, 통제팀 소속의 엄경훈이라고 합니다.”

그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꽤나 초췌한 몰골.

마치 며칠 동안 자지도, 먹지도 못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눈빛만큼은 쨍쨍하게 살아있었다.

아니, 살아있다기보단…….

‘하은혜랑 아는 사이인가.’

살기가 넘실대고 있었다.

“혹시 들으셨습니까? 안에서 했던 대화.”

“…….”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뱉었다.

설마하니 제삼자가 엿듣고 있었을 줄이야.

이건 꽤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의 의도가 어찌 됐건, 내 계획이 누군가에게 알려지는 건 나로서도 피해야 했다.

자칫하다간 모든 게 도루묵이 될 수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아직 우석호 위원장에게 접근할 수단도 없는 상황이다.

모든 걸 최대한 조심스럽게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계획이 다른 사람한테 새어 들어간다면 우석호 위원장의 귀에 들어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은혜랑은 대학 때부터 친구였습니다. 협회에서는 동기였고요.”

엄경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은혜가 파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게 접니다. 당연히 은혜가 왜 그렇게 됐는지도 어렴풋이 알고 있고요. 분명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렸다가 화를 산 거겠죠.”

“눈치를 채고 있었다면, 왜 여태까지 나서지 않은 겁니까?”

“겁이 나서요.”

“……예?”

내 물음에 엄경훈이 고개를 떨어트리며 말을 이었다.

“저도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보려고 했습니다. 단서가 있을까 싶어서 개인적으로 조사도 했고, 만약을 대비해 준비해놓은 것도 있고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너무 겁이 납니다.”

“…….”

나는 대답을 아꼈다.

공감은 가지 않았지만, 이해는 갔다.

그도 그럴 게, 동기였다는 것을 떠나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작전팀도 토벌 인원도 아닌, 고작 입사 3개월 차 조사팀 신입이.

상식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왜 일어났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는 그로선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충격이었겠지.

나 또한 그랬으니까.

상부의 음지를 건드렸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는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자신에게도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거대한 힘 앞에서 위축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애초에 책임지지 못 할 일이었으면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죠.”

내가 그를 향해 쏘아붙이자, 그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저에게 죄송할 문제는 아닙니다.”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가 뭘 알았겠는가.

애초에 그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하은혜가 포기했을 리도 없고.

“그래서, 겁이 나면 입 다물고 가만히 숨어있으면 될 걸 왜 여기까지 절 찾아온 겁니까?”

“겁은 나지만… 이대로는 은혜가 편히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은혜를 위해서라도 꼭 복수하고 싶어요.”

“그래서 절 찾아왔다는 겁니까? 저보고 대신 좀 해달라고?”

“…….”

내가 직설적으로 묻자, 그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제가 무슨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십니까? 복수하고 싶으면 본인의 손으로 하십시오. 남한테 부탁해서 하는 복수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하, 하지만 신입인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그럼 하은혜 사원은?”

엄경훈의 말을 끊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하은혜 사원이 그동안 한 일은 뭡니까?”

“…….”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저는 은혜랑 달라요. 사람이랑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그렇게 강한 사람도 아니고… 은혜랑 만나기 전까지는 방에서 자판만 두드리던 놈이었거든요.”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한심한 새끼인 건 저도 알아요. 이런 상황에서까지 남한테 부탁하는 거 쪽팔린 짓이라는 것도 알고요.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더라고요.”

“…….”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때.

엄경훈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요즘 시대에 구경도 하기 힘든 구형 핸드폰.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뭡니까?”

“크래킹 폰이에요. 실시간으로 연동할 수 있도록 조작해놨습니다.”

“뭐랑 연동이 되어 있다는 겁니까?”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우석호 위원장 핸드폰이요.”

“……!”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석호 위원장 핸드폰에 있는 모든 기록과 문자, 통화 내용까지 전부 이 기기로 전송돼요.”

“…….”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걸 사용할 용기도 없고, 제가 사용한다고 해도 헌터님만큼 영향력이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헌터님이 사용해주세요.”

나는 대답 대신 그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이건 뜻밖의 소득이었다.

우석호 위원장의 진영으로 파고들 수단이 전무했는데, 이거라면 너무나 손쉽게 그에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점점 감정이 고무되고 있던 그때.

“염치없다는 건 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실을 밝혀서 우석호 위원장을 꼭 법정에 세워주세요.”

“…….”

나는 한숨을 내쉬길 한 차례.

“엄경훈 씨.”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 인간을 법정에 세우려는 게 아닙니다.”

“네…?”

이내 그가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지만, 나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튼… 이건 잘 쓰겠습니다.”

먼저 자리를 뜨며 그를 지나쳐갔다.

***

“후우…….”

우석호 위원장의 집무실.

우석호 위원장은 이미 해가 넘어간 시각까지 그곳에 남아 양민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준우를 처리하고, 이번 일을 모두 그에게 뒤집어씌우면 수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선거 때까지는 문제없겠지.

남은 건 추후 파일이 발견될 때를 대비하는 것뿐.

물론 그마저도 어려울 건 없다.

분석 전문가를 매수해서 조작된 영상이라고 발표하면 그만이니.

‘대충 마무리되겠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던 그때였다.

띠링―.

드디어 도착한 문자 한 통.

아니나 다를까, 양민호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우석호 위원장은 허겁지겁 핸드폰을 열어 그 문자를 확인했다.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김준우가 파일을 손에 넣은 것으로 확인되는데… 보아하니 도청을 당하고 있는 것 같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20시, 종로3가 스타필드 빌딩 옆 공사장으로 와주십시오.」

이내 그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김준우가 파일을 손에 넣었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이런 시발…….’

우석호 위원장은 크게 당황하며 양민호에게 전화하려 했지만, 곧바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래, 도청을 당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석호 위원장은 주먹을 꽉 쥐었다.

콰직―!

이내 핸드폰을 있는 힘껏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질 않는지, 몇 차례나 더 발로 짓밟으며 완전히 박살을 내버렸다.

‘20시 종로 3가라고…….’

시간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외투를 챙겨 들고 집무실을 뛰쳐나왔다.

최대한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약속 장소로 이동한 그는 텅 빈 공사장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드를 푹 뒤집어쓰고 있는 한 남자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남자가 먼저 입을 열자, 우석호 위원장은 계속 참고 있던 화가 폭발한 듯 달려들었다.

“김준우가 파일을 발견했다니, 그게 대체 뭔 개소리야! 그 새끼가 어떻게 그걸 발견해!”

“쉿. 조용히 말씀하십시오.”

남자는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우석호 위원장을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하은혜가 숨겨둔 USB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정황상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우연히 발견한 것 같은데……. 이게 단순히 김준우를 처리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뭐…?”

“이미 서민철 본부장에게 넘긴 것 같거든요.”

“시발, 빌어먹을…!”

그의 말에 우석호 위원장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래서 아까 서민철이랑 같이 있었던 건가.

파일을 빌미로 서민철을 협박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되면 두 사람을 처리하는 거로는 부족합니다. 관련된 인물들을 싹 다 제거하지 않는 이상은요. 다만…….”

그때, 남자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서부턴 추가금이 발생해서…….”

“야 이 개새끼야!”

콱―.

우석호 위원장이 갑자기 그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내가 이번 일 처리한다고 너한테 갖다 바친 돈이 얼만지나 알아?! 그것도 모자라서 더 뜯어내겠다고? 애초에 네가 제대로 처리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

“어차피 이번 일 드러나면 너나 나나 같이 죽는 거야. 너도 이 바닥에서 얼굴 팔리는 순간 끝인 거 모를 것 같아?”

우석호 위원장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목소리를 높였다.

“난 여기서 한 푼도 더 못 주니까, 같이 죽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든 해결해! 알았어?!”

“…….”

하지만 남자는 대답을 아끼길 잠시.

“그러게…….”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못은 본인이 저질러 놓고, 왜 애먼 사람을 죽입니까?”

“뭐, 뭐…?”

“위원장님이 먼저 쓸데없는 일을 벌이니까 이렇게 되는 거 아닙니까.”

우석호 위원장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야 이 새끼야. 그러는 넌 깨끗해? 네가 여태까지 그 더러운 노인네들 뒤 닦아주면서 죽인 사람이 몇 명인데! 정훈 의원이랑, 박현준 청장, 강학선 영감, 내가 아는 놈들만 해도 열 명이 넘어!”

“…….”

“어떻게, 그놈들이랑 붙어먹었던 거 한번 까발려봐?! 자기 이름 까발려진 클라이언트가 널 가만히 둘 것 같아? 그깟 연고도 없는 신입 한 명 죽인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격양된 목소리로 한껏 화를 쏟아내고 있던 그 순간, 우석호 위원장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까닭이었다.

그도 그럴 게… 양민호가 갑자기 자신을 도발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애초에 협상이 안 된다면 의뢰를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굳이 잘잘못을 가리며 클라이언트를 도발할 필요도, 의미도 없다.

무엇보다…….

‘양민호가 키가 이렇게 컸나…?’

그런 의문이 드는 순간, 우석호 위원장은 쥐고 있던 멱살을 놓고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확실하다.

이 남자, 양민호가 아니다.

“너, 너… 누구야?”

“…….”

뒤늦게 그것을 깨달은 우석호 위원장이 묻자, 이내 남자가 후드를 벗었다.

“그러게, 제가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은혜 사원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위원장님도 각오하셔야 할 거라고.”

다름 아닌, 작전 1팀 소속 헌터.

입사할 때부터 천재 타이틀을 쥐고 있는 한국 협회의 명실공히 최고 에이스.

“약속드린 대로 찾아왔습니다. 우석호 위원장님.”

“네, 네가 어떻게…….”

김준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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