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345. 외전 After 2화
“그래서.”
서울 남부 경찰서.
이능력 범죄 전담팀 사무실.
“둘이 사귄다고?”
그곳에서 민유진이 나와 이아영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내가 누구랑 사귀든, 결혼을 하든, 네가 뭔 상관이냐?”
“아~. 그래서 결혼까지 하시겠다? 청첩장 꼭 보내라. 가서 깽판 좀 치게.”
“뭔 말을…….”
어처구니없는 말에 내가 헛웃음을 터트렸지만, 민유진은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솔직히 포항 건 때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어. 세상 어느 직장인이 휴가까지 내서 단둘이 일을 하러 간대.”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우리 정리 잘했잖아. 이제 와서 왜 급발진이야?”
“정리는 개뿔! 군대까지 기다려둔 사람한테 말 한마디 없이 잠수 타 놓고, 이제 와서 사무총장이니, 결혼이니 하는 꼬라지 보니까 토 쏠려서 그런다 왜! ”
“그러니까 그건 오해가 좀 있다고 내가…!”
서로의 목소리가 격양되던 그 순간이었다.
“저기요.”
사무실에 무겁게 깔리는 음성.
“둘이 뭐 회포 풀려고 데려왔어요? 경찰이면 경찰답게 조사나 하시죠?”
“…….”
“…….”
살기가 아른거리는 이아영 지부장의 눈빛.
그 한마디에 사무실 내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모든 형사가 시선은 고정한 채 귀를 쫑긋 열어두는 것이 보였다.
민유진 또한 뒤늦게 그 시선들을 눈치챈 듯했다.
“…그래서? 대체 뭔 일인데.”
이내 그녀가 헛기침과 함께 본론으로 들어섰다.
“WDSO 사무총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능력을 쓰는 건 좀 아니지 않아? 자각이 없는 거야, 아니면 그냥 멍청한 거야?”
“일단 첫 번째로 난 스킬을 쓴 적 없어. 그리고 폭력은 그쪽이 먼저 썼고.”
“그걸 믿으라고?”
“안 믿으면 어쩔 건데?”
“쯧.”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모르겠네.
“에휴… 더 물어볼 거 없으면 우리 먼저 간다.”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할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때.
“잠깐만.”
민유진이 다시금 나지막하게 나를 불렀다.
“뭔데 또?”
“사실 그거 때문에 데려온 건 아니고… 얘기할 게 좀 있어.”
“하, 이제 와서 또 무슨…….”
“일 얘기야.”
“…….”
사뭇 진지해진 표정.
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끝에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뭔데 그래?”
“요즘 그쪽 상황은 어때. 뭐 다른 문제는 없어?”
“딱히.”
“보고 들어온 것 중에 이상한 거는?”
“최소한 네가 신경 쓸 만큼 중요한 건 없어. 아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
대답을 아끼는 그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야, 너 설마, 아직도 작전팀에 지원할 생각인 건…….”
“그런 거 아니야.”
그녀가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는 옅은 한숨을 내뱉길 한 차례.
“사실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난 게 한두 번이 아니야.”
“뭐…?”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 들려왔다.
“요즘 들어서 협회 소속 직원들이 시비에 휘말렸다는 신고가 많이 들어오고 있거든. 이번 주에만 벌써 5건이고.”
그 말에 내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뭐, 오늘은 정말 사소한 시비였던 거 보면, 오늘 일은 별로 관련은 없을 거 같긴 한데…….”
“뭔 소리야. 그럼 다른 일은 관련이 있다는 거야?”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래.”
이해할 수가 없는 대답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지속적으로 협회 소속 직원들을 상대로 시비를 걸고 있다, 뭐 그거야?”
“맞아. 그것도 주로 청소팀 상대로. 공통적으로는 주동자도, 이유도 모른다는 거고.”
“애들이 장난치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하기엔 규칙적이야. 마치 청소팀을 일부러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고 있는 듯한…….”
“하아…….”
“뭐, 사실 그래봤자 물건을 던진다거나 청소도구를 훔쳐 간다거나 하는 정도라 아직은 테러라고 하기엔 좀 그렇긴 한데…… 점점 수위가 세지는 걸 보면 또 모르지.”
민유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나중에는 정말 그렇게 될지.”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과민한 거 아니냐? 애초에 그럴 수준의 일이었으면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분명히 보고가 올라왔을…….”
“…….”
그렇게 말하며 이아영을 바라보자, 어째선지 꽤나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땀을 흘리고 있다.
“……뭡니까?”
“아, 그…….”
“설마 알고 있었습니까?”
“…….”
대답하지 않아도 대답을 알 것 같은 반응이었다.
나는 이마를 턱 짚었다.
“아니, 왜 보고를 안 했습니까?”
“그렇게 심각한 수준도 아니었고… 한국 협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면 어쨌든 제 책임이잖아요. 그러잖아도 당신 신경 쓸 일도 많은데…….”
“하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문제를 보고 안 하면 어쩌자는 건가.
“문제는 우리 쪽에서도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지, 수색 허가가 안 나고 있어.”
그때, 무거운 분위기를 파악한 것인지 민유진이 다시금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렇겠지. 보통 단순 시비에서 테러까지 번질 거라고 누가 생각해.”
“아무리 봐도 규칙적이고 계획적으로 준비한 일이야. 분명히 더 심해질 거야.”
“그래서, 뭐 어떻게 해달라고.”
“네가 좀 알아봐 줘.”
“…….”
에휴.
이럴 줄 알았다.
“감시역을 붙이던지, 아니면 직접 따라다니던지, 테러를 하고 다니는 놈이 누군지만 알아내면…….”
“내가 왜? 난 네 일까지 도와줄 만큼 한가하지 않아.”
“…….”
단호하게 말하자, 잠시 대답을 아끼던 민유진이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어차피 내가 부탁 안 해도 할 생각이잖아.”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정곡을 찌른다.
“……간다.”
나는 굳이 답하지 않고 이아영 지부장과 함께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
“처음 사건 발생은 일주일 전. 오후 2시경에 청소 6팀이 작업 끝내고 이동 중이었는데, 누군가가 물을 뿌리고 도망간 게 시작이었대.”
본부로 향하던 중, 이아영이 길을 걸으며 미처 전하지 못한 그 일들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뭐…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고 범인 얼굴도 못 봐서, 애들 장난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맞아.”
그녀가 대답했다.
“하루에 한 번… 많을 때는 세 번도 발생하고 있어. 물 뿌리고 도망가는 건 귀여운 수준이고, 청소도구 절도, 일부러 밀쳐 넘어뜨리기도 하고…….”
말끝을 흐리길 잠시, 이아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심할 때는 대놓고 밀어 넘어뜨리거나, 어깨를 치고 갈 때도 있다고…….”
“그건 시비 수준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하… 나는 그걸 보고 안 했다는 게 더 충격이다.”
너무나 기가 찬 상황에 또다시 말을 내뱉자 그녀가 슬쩍 내 눈치를 봤다.
‘에휴…….’
됐다.
이제라도 안 게 어디인가.
‘그나저나…….’
누군가 일부러 청소팀을 쫓아다니며 테러를 하고 있다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근 1년 동안은 이렇다 할 문제도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그래서, 조사는 해봤어?”
내가 묻자, 이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통제팀에 부탁해서 CCTV 확인도 해봤는데, 파악이 잘 안 돼. 애초에 사각을 노렸고, 동선 자체도 들키지 않게 미리 짜둔 것 같아.”
“쯧, 확실히 계획적이네.”
“더 자세히 조사하려면 경찰에 협조받아야 해. 그런데 뭐…….”
“단순 시비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이상 그쪽에서 나설 이유가 없겠지.”
“그러니까.”
나와 이아영은 누구랄 것 없이 옅은 한숨을 뱉었다.
주동자가 누군지도, 목적도, 명분도 모르는 테러 사건이라.
‘그냥 덜떨어진 놈이 벌인 짓이라면 차라리 다행인데……’
누군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벌이는 짓이라면…… 그 목적을 이룰 때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또한, 민유진의 말처럼 그 강도가 점점 더 세질 수도 있고.
“뭐…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크게 다친 사람은 없다는 거고. 나머진 이제부터라도 알아보자고.”
“어떻게?”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곧장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신 실장님. 김준우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신수지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름이 아니라… 내일부터 일주일간 일정을 좀 비우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일주일 치 일정을 전부요?」
“예.”
단호하게 대답하자, 곤란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알겠습니다. 연락은 제가 해놓겠습니다.」
그녀는 다른 건 묻지도 않고 허가를 내주었다.
「대신, 딱 일주일에요.」
“알겠습니다.”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길 한 차례.
「그나저나 또 무슨 일인데요?」
“아니, 뭐…….”
나는 이아영을 슬쩍 흘기길 한 차례.
“청소나 좀 할까 해서.”
의미심장한 대답을 던졌다.
***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형님!”
금광 캐피탈 사무실.
낡은 책상과 너저분한 소파가 전부인 그곳에 한 남자가 들어오자 사무실에 있던 부하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모두가 빠르게 눈치를 굴렸다.
그들의 형님.
흑광파 우두머리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분노한 듯 보였다.
“혀, 형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남자는 대답 대신 소파에 털썩 앉으며 담배를 물었다.
이내 깊게 연기를 빨아들이길 한 차례.
“김준우 만났다.”
“예, 예?! 벌써 말입니까?”
“크, 일주일 만에 작전이 먹혔군요. 역시 형님이십니다!”
“축하드립니…!”
부하들이 입에 발린 아부를 떨던 그 순간.
쨍그랑―!!
재떨이가 그들 사이로 날아들었다.
부하들은 주춤하길 잠시, 이내 곧바로 자세를 고쳐잡고는 차렷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순식간에 험악해진 분위기.
남자는 날이 바짝 선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계획대로 됐으면 내가 지금 여길 혼자 왔겠냐?”
“…….”
“…….”
그의 말에 부하들은 입을 꽉 다물었다.
남자는 한 차례 더 담배를 빨아들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경찰이 떠서 타이밍을 놓쳤다.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포기했어.”
“…예. 예?”
“설마 벌써 눈치를 챈 건…….”
“아니,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운이 더럽게 나빴던 거 같은데.”
남자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시발, 하필 거기서…….”
그 분노 젖은 혼잣말이 사무실에 조용히 울려 퍼졌고, 부하들은 바짝 긴장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이 잠시 본업을 접고 이런 짓을 하고 다니기 시작한 건 모두 형님이 김준우와 만나기 위해서였다.
겨우 그것을 이뤘는데, 고작 경찰 한 명 때문에 허사로 돌아가다니.
그들의 형님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는 그들로선 감히 무어라 위로를 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용기를 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일단은… 계속 진행할까요?”
“해야지.”
남자가 즉답했다.
“이제부턴 좀 세게 나가자고. ”
“세게라면…?”
“무식하게 가야지.”
그때, 남자의 시선이 부하들에게 향했다.
무식한 방법.
그건 남자가 가장 싫어하던 것이었고, 또 가장 기피하던 방법이었다.
옛 시절, 낭만이라 불렸던 남자.
물론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빌어먹더라도 신념만큼은 지키던 남자.
하지만 이제 와서 낭만이고 신념이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 정도는 해야 김준우, 그놈이 다시 미끼를 물지.”
흑광파의 보스.
최장석은 그만큼 절박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