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
357. 외전 After 14화
롱 아일랜드, WDSO 미국 협회.
“협회장님.”
조셉 비서가 협회장실로 들어서며, 나지막히 목소리를 냈다.
톰 협회장이 대답 대신 고개를 까딱거리자, 조셉 비서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이었다.
“F구역 실험체가 도주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뭐?”
톰 협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청소팀으로 포지션 이동 후, 작업 중에 벌어진 일 같은데… 다행히 발각되기 전에 데이빗 팀장이 잘 처리했다고 합니다.”
“죽인 건 아니겠지?”
“아뇨. 생포했습니다.”
그 대답에 톰 협회장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또 도주 우려가 있어, F구역으로 다시 이송했습니다.”
“…하아.”
우려하던 대답이었던 듯, 톰 협회장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 롱 아일랜드에 WDSO 본부 인사들이 와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것도 김준우 사무총장의 최측근인 협회장과 기획본부장, 둘씩이나.
그들 때문에 F구역도 급하게 폐쇄한 것인데, 인제 와서 다시 그곳을 열게 되다니…….
‘이럴까 봐, 실험체들 잘 감시하라고 했던 건데…….’
물론 이아영과 한유빈이 F구역을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그럼에도 이 타이밍에 일이 틀어진 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도주했던 실험체 정보는?”
톰 협회장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두 명입니다.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동양인 남매인데, 1년 전쯤에 양부모가 갱단에 연루되어서 살해당한 후 그쪽 조직으로 넘어갔습니다.”
“나이는?”
“누나 쪽이…… 15살, 남동생이 10살입니다.”
“……지원자는 아니라는 소리군.”
“예. F구역 실험 참가자를 모집할 때 주변 갱단에서 조직원들을 대거 지원시켰는데, 그때 같이 따라 들어온 걸로 확인됩니다.”
조셉 비서의 대답에 톰 협회장이 크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걸 들어온다고 넙죽 받으면 어떡해? 애새끼는 알아서 걸렀어야지.”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는데…….”
“……했는데?”
조셉 비서가 말을 이었다.
“누나 쪽 적응도가 A등급이랍니다.”
“…….”
미쳐버리겠군, 톰 협회장이 이마를 꾹꾹 눌러대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시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톰 협회장은 몇 차례 연기를 뿜어대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비공식 강화 신체 프로젝트.
일명, F구역 실험.
무려 정부와도 엮인 이 실험은, 말 그대로 이능력으로 강화된 군인을 만드는 것. 하지만 단순히 이능력자를 군인으로 키우는 것은 아니다.
이 실험의 핵심은, 이능 차원 사태가 종식된 후에도 유지 가능한 힘을 얻는 것.
그로 인해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부대를 만드는 것으로, 국제 사회의 주권을 되찾는 것.
그것이 F구역 실험의 의의였다.'
당연하겠지만, 이 실험에는 미국 협회뿐만 아니라 여러 정부 기관과 기업들이 엮여 있었다.
그들 모두가 암암리에 진행되는 이 실험을 비공식적으로 지원, 투자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F구역 실험이 실패하게 되면……, 그 책임을 오롯이 톰 협회장이 뒤집어써야 한다는 뜻이었다.
다행히 실험은 거의 성공 단계였다.
남은 건 강화된 힘을 가진 실험체들의 적응 훈련 정도.
‘그런데 하필 이 타이밍에 도주 시도라니…….’
그것도 가장 높은 적응력을 보이는 A등급의 실험체가!
하필 WDSO 본부 인사가 방문한 시기에!
그나마 다른 이의 눈에 띄기 전에 잘 처리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F구역 경비 강화해.”
“네, 알겠습니다.”
“한유빈 쪽에 붙이라고 했던 감시는 어떻게 됐어?”
“아직 들키지 않은 모양입니다. 다행히 협회장과도 떨어져 있는 것 같고… 무언가 찾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긴 한데, 아직까지 위험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무언가를 찾고 있다라.
‘낌새를 챈 건가…….’
톰 협회장은 시가 연기를 연거푸 뿜어대며 잠시 대답을 아꼈다.
이내 다시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유빈 쪽 감시역한테 전해둬.”
“…뭘 말입니까?”
“만약 한유빈 쪽에서 뭔가 위험한 움직임이 보이면… 반드시 막으라고.”
“반드시라고 하면…….”
“뭐겠어.”
톰 협회장의 눈빛이 번뜩이길 한 차례.
“무력을 써서라도 막으라고.”
그 말과 함께 톰 협회장은 의자 뒤에 등을 푹 기댔다.
물론 협회 내에서 무력을 쓰는 건 또 다른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 톰 협회장 또한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만큼 F구역은 누구에게도 발각돼선 안 되니.
그래, 이 실험은 절대 들켜선 안 된다.
미국을 위해서, 아니……, 자기 목을 위해서라도.
***
“흐음…….”
17층 복도 끝 모퉁이.
그곳에서 한유빈의 작은 신임이 울려 퍼졌다.
이전 동료와의 썩 기분 좋지 않은 재회를 마친 한유빈은, 여전히 지부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목적지는 데이빗이 말했던 F구역.
다만 그곳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는 여전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전시실 및 투어 공간으로 꾸며진 1~10층을 제외하면, 실 사무 공간은 11~35층.
층수도 층수지만, 한 층의 공간 또한 너무 넓었기에 단순히 돌아다니는 수준으로는 단서조차 잡기 힘들 듯했다.
‘기밀 구역이라면 대놓고 있을 것 같진 않은데…….’
현재 한유빈의 위치는 지원팀 소속 장비제작부서가 위치한 17층.
그녀는 으슥한 모퉁이 뒤에 숨어, 지나가는 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나마 저기가 가장 수상하긴 하네…….’
복도 끝에 놓은 문 하나.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 쓰인 그곳이 현재로선 1순위 조사 타깃이었던 까닭이었다.
한유빈은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리다가, 사람이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잽싸게 문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힘껏 문을 밀었지만…….
“얼씨구?”
웬걸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능력을 쓴 건 아니었지만, 평상시의 근력도 성인 남성을 크게 웃돌 수준이었다.
그런데 미동도 하지 않는 문이라고?
‘문짝이 얼마나 두껍길래…….’
당황스러운 상황.
능력을 써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상태는 어때.”
“진정제 투여 후, 현재까진 잠잠합니다.”
뒤에 있던 복도에서 누군가의 대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유빈은 황급히 모퉁이 뒤로 모습을 숨겼다.
“적응도가 A등급이긴 해도 무의식 상태에선 불안정해질 수 있으니까, 수시로 바이탈 체크하고.”
“넵.”
이윽고 복도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흰 가운을 입은 두 명의 연구원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다가오고 있었고, 이내 복도 끝에서 멈춰선 채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유빈은 저들이 저 문 안에 있는 시설과 관련된 이들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들을 조용히 습격해서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고, 마침내 연구원들이 문으로 다가간 순간.
‘미친…….’
한유빈은 저도 모르게 그 말이 새어나왔다.
연구원들은 문이 아닌, 그 옆에 아무것도 없는 시멘트 벽을 밀어서 숨겨진 공간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럼 저 문은 문이 아니라… 벽이었던 건가?
대체 뭘 숨기고 있길래 건물 내에 저딴 비밀 공간을 만드는 것인가.
작은 충격과 함께 머릿속을 스친 그 생각들 때문에 연구원들을 습격하기로 한 계획은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그들은 다시 벽을 원위치시키며 눈앞에서 사라졌다.
곧바로 연구원들이 들어간 그곳으로 다가가 손바닥으로 벽을 훑었다.
‘이쯤이었던가…….’
그리고는 벽을 밀려던 그때.
“한? 너 한 맞지?!”
누군가 뒤에서 한유빈의 어깨를 턱 집었다.
순간 숨이 거꾸로 넘어갈 뻔한 듯, 크게 놀란 한유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맞네! 오랜만이야, 한!”
“……케빈?”
“기억하고 있구나! 거의 5년 만인가? 미국에는 웬일이야?”
반가운 얼굴로 그녀를 맞이하는 흑인 남성.
5년 전, 그녀가 미국 지부에 있었을 당시 그녀의 팀원이었던 케빈.
“그나저나 여기서 뭐하고 있어? 혹시 길을 잃은 거야?”
“…그건 아니고…….”
“아, 협회장님 만나러 온 거야? 그럼 내가 안내해줄게. 따라와!”
케빈은 살가운 표정과 말투로 한유빈에게 손짓했다. 그녀는 대답 대신 그를 지그시 바라봤고.
“아니, 됐어. 여기에 볼일이 좀 있어서.”
이내 비밀 공간이 숨겨진 벽을 가리키며, 입 꼬리를 올렸다.
“……아니, 한. 넌 거기에 볼일이 없어.”
그와 동시에 케빈의 눈빛이 바뀌었다.
서늘하리만치 살기를 띠는 눈. 당장이라도 달려들것만 같은 자세.
그리고 그런 케빈의 뒤에서.
“헤이, 한.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하.”
10명 남짓한 헌터들이 한유빈에게 아는 척을 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제이콥, 리사, 라이언…….”
“이야, 한은 하나도 안 늙었네?”
“역시 동양인이라 그런가!”
모두 아는 얼굴들이다.
모를 리가 있나, 그녀가 작전 4팀장으로 승진했을 때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반발하던 놈들이었는데.
“다들 오랜만에 만나는 거지?”
그때, 그들 가운데 있던 케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 얘기할 것도 많은 것 같은데… 어떻게, 인제 그만 따라오는 게 어때?”
“……글쎄.”
한유빈은 담담하게 그들을 살피며 대답했다.
‘사람을 붙여뒀었나…….’
그녀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정도 인원이 이런 타이밍에 정확히 자신을 찾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겠지.
처음부터 감시 중이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뒤에 정말 뭐가 있긴 한가 보네?”
“…….”
“…….”
그녀가 피식 실소를 흘리며 묻자, 케빈과 그의 동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했다.
이쯤 되면 확실하다 못해 정답이다.
한유빈은 그런 생각에 마소를 숨기지 못했다.
‘그건 그거고, 문제는…….’
이놈들, 아무리 봐도 말로 끝낼 생각은 없어 보인다는 거겠지.
한유빈은 곧바로 머릿속으로 빠르게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저놈들… 5년 전에도 각자 나름대로 날고기는 헌터들이었다. 시간이 꽤 지난 걸 생각하면, 지금은 각자가 팀장급 실력은 되겠지.
아무래도 이 정도 실력에, 이 정도 인원과 전투를 벌이는 건…….
‘사무총장이 잔소리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꽤 골치가 아픈데.
한유빈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길 잠시.
“…그래, 뭐.”
한숨을 푹 내쉬며 어깨를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이건 업무에 포함되는 거니까 괜찮겠지.”
[고유 스킬 : 하이패닉 버서커]
쾅―!!
한유빈의 주변으로 붉은 기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때 너희들이 그랬지? 어떻게 나같은 X만한 동양인이 팀장이 된 거냐고.”
한유빈은 그들을 향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려줄게. 왜 너희들이 팀장이 되지 못한 건지.”
쿠구구구―!!
동시에 주변의 벽과 천장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 두 남매는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였다.
밖에서는 연신 무언가 깨지고 부러지는 소리와 비명이 들려왔다.
용기를 내서 도망쳤지만, 머지않아 다시 잡혀버렸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도망쳐야 한다.
누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가 부서져라 깨물었다.
동시에 남동생을 껴안은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힘이 들어갔고.
“누, 누나…?”
남동생이 나지막이 그녀를 부르고 나서야, 누이는 다시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우리 여기서 평생 살아야 되는 거야…?”
동생이 절망감이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야. 도망칠 수 있어.”
“…하지만 또 잡히면 어떡해.”
“누나만 믿어. 누나 힘 센 거 알잖아.”
누이는 그렇게 동생을 안심시켰다.
그 순간, 밖에서 나던 소리가 뚝 멈췄다.
그와 동시에 남매는 숨소리 멈추고 굳게 닫혀있는 문을 바라봤다.
터벅, 터벅―
점점 다가오는 발소리.
겁에 질렸지만, 누이는 다시 한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 평생 여기에 갇혀 있을 순 없다.
그렇게 다짐하며 문 앞으로 다가갔다.
저 문을 여는 순간 공격한다면…….
끼이이익―
이윽고 굳게 닫혀있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고, 그 틈새로 환한 빛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검은 실루엣이 나타나자.
“으아아아!!”
누이는 주먹을 불끈 쥐곤, 그 실루엣을 향해 달려 들었다.
하지만.
턱―
그 실루엣은 아무렇지 않게 누이의 주먹을 막아버렸고.
“…뭐야, 이건.”
검은 실루엣 사이로 드러난 싸늘한 눈빛이 그녀를 향해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