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361화 (361/366)

361

361. 외전 After 18화

미국 협회에서 소란이 일어난 지도 한달 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서울에서 전국적 던전 축소 모니터링에 꾸준히 참석해야 했다.

다행히 모니터링 기간에 차원석은 안정적으로 가동되었고, 던전 축소 또한 큰 문제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아니, 문제없이 진행됐다고 한다.

사실 그 한 달 동안 내 정신은 온통 다른 데에 가 있었으니까.

때문에, 김민주나 다른 직원들에게 브리핑 내용을 세줄 요약으로 다시 전달받았다.

일 안 할 거냐고 김민주에게 잔소리 들은 건 비밀 아닌 비밀.

그도 그럴 것이.미국 협회에서 그 난리가 났는데, 어떻게 가만히 앉아서 브리핑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회의 시간 중 대부분은 이아영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미국 협회에 대한 조사와 처분, 그리고 앞으로의 관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단순히 미국 협회만의 일이었다면 이아영에게 전권을 위임할 수도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 사건의 조사가 진행될수록 엮여 있는 집단들이 꽤 심상치 않았기에, 그녀 혼자서 모두 처리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문에 한 달이 지나고 마지막 모니터링이 끝나고 나서야…….

“이능력 이식 실험을 통한 ‘반영구적 신체 강화군인 육성 프로젝트’. 그게 이번 미국 협회의 F구역 프로젝트의 본명이야.”

“…제목 한번 살벌하네.”

무사 귀국한 이아영으로부터 비로소 현 사건을 직접적으로 인계받을 수 있었다.

“일단 자세한 건 자료 보면서 파악하면 될 거고…….”

“…….”

이아영은 한 달 동안 조사한 자료를 포함해 상당한 양의 보고서를 책상에 턱, 올려놓았다.

동시에 그 어마어마한 양에 나도 모르게 눈이 크게 벌어졌다.

이 정도 양이면 종이가 아니라 전자 문서로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던 그때.

“뭐, 나도 조사 과정에서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땐 기겁하긴 했어. 보통 신체 강화, 군인 육성, 그런 키워드면 좋은 내용일 수가 없잖아. 비인륜적인 인체 실험이거나…….”

“…설마 아니야?”

“응.”

이아영이 즉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놀랍게도, 생각보다 그렇게 구린 실험은 아니었더라고.”

“그게 진짜 반전이네.”

“공식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실험은 아니어서, 주변 갱단이나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참가자를 모집한 거긴 한데, 그래도 나름, 동의서는 모두 제대로 작성했다고 하더라?”

이아영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동의를 한 사람에 대해서는 실험 내용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고 하고……. 실험 내용도 그다지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어.”

“그래서, 대체 무슨 실험이었던 건데?”

“대충 요약하자면…….”

내 물음에 이아영이 턱을 괴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그때,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고.

“이능력을 가진 헌터의 이능파를 만들어내는 특정 유전자를 분석, 그것을 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코어’를 실험체들에게 이식.”

그 누군가가 이아영을 대신해 그 내용을 읊었다.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나열하며 방으로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결과적으로는 실험체들의 몸속에서 이능 파동을 지속적으로 간섭시켜, 해당 파동에 반응한 신체가 부분 변화하는 특성을 노린 실험이에요.”

“……그 얘기를 하는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겁니까.”

“협회장님 귀국했다면서요. 그럼 당연한 이번 사건 얘기하겠지, 점심 메뉴 고르고 있겠어요?”

WDSO 본부 지원팀 산하 연구기관.

이클립스 연구소장으로서 뱅크 아이템 관리 및 이능 차원 연구의 총괄을 맡은, 클로이였다.

“비전문가 둘이서 얘기해봤자 머리만 아프지, 제대로 파악이나 하겠나 싶어서 와봤어요.”

“그것 참 세심한 배려군요.”

무시하려고 온 건지, 정말 생각해서 온 건지 모를 투에 빈정대기도 잠시.

나는 책상에 턱을 괴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하던 얘기나 계속하시죠. 그래서, 이능파에 지속적으로 간섭시키면 왜 신체가 강화된다는 겁니까?”

“엄밀히 따지면, 어느 파동에 간섭하냐에 따라서 효과가 달라는 거죠. 이번 실험에 쓰인 이능파가 버서커 클래스의 그것이었는데, 대부분 신체 강화 스킬이 주된 클래스다 보니 비슷한 영향을 받을 수 있었던 거고요.”

“…….”

“사실 여기까지는 이미 있던 이론에서 확장 시킨 거라, 그리 놀랄 것도 없어요. 핵심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영향을 통해 신체를 강화하는 것뿐이라, 이능 차원 사태가 종결된 후에도 그 효과가 유지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군요. 확실히 머리를 좀 쓰긴 했네요.”

“그러니까요. 물론 간접적인 영향인 만큼, 실제 이능력자들처럼 상식 밖의 능력이나 괴력을 갖는 건 아닐 테지만……. 그래도 일반인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를 테니까요.”

“네, 뭐, 그건 둘째치고…….”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묻지도 않은 내용과 이론들을 쏟아내는 클로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쪽이 이 내용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겁니까?”

“…….”

이 실험에 관련된 자료는 나와 이아영, 그리고 한유빈 정도만 알고 있는 내용이다.

심지어 나도 자세한 자료는 방금 전달받지 않았던가.

해봤자 미국 협회에서 실험이 있었다, 정도의 내용만 알고 있을 그녀가 어떻게 죄다 꿰고 있는 건지 잘 이해가…….

“……잠깐.”

설마…….

“이 실험, 그쪽이 기획했던 겁니까…?”

“……예?”

“…….”

그 질문에 이아영의 눈이 동그래졌고, 클로이는 눈을 피했다.

“지, 진짜로? 이거 당신이 기획한 실험이에요?!”

“……아씨, 그냥 모른 척할 걸 그랬나.”

클로이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머리를 긁적이길 한 차례.

“맞아요. F구역 프로젝트, 원래 제가 책임자였어요.”

“아니, 그게 무슨……. 내가 이것 때문에 한 달 동안 거기서 무슨 고생을 한 줄 알아요?! 근데 이게 다 당신 때문이었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래. 나 미국 협회에서 쫓겨난 지 벌써 3년 넘은 거 몰라요? 프로젝트가 처음 기획된 게 10년 전이고, 내가 책임자를 맡은 건 8년 전이에요. 인제 와서 무슨…….”

“그래서 뭐, 본인은 책임 없다 이거에요?! 당신 이거 해고 당해도 할 말 없는 거 몰라요?!”

“아, 짜를 거면 짜르시던가. 거, 되게 성질부리네.”

“뭐, 뭐라고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갑작스레 두 여자의 싸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끼어들기 애매해져 잠시 숨죽여 바라보고 있자니.

“짜를 거면 짜르라고요. 막말로 지금도 옛날 일 가지고 있는 대로 부려 먹고 있잖아.”

“아, 아니 부려 먹긴 누가 부려 먹어요? 당연히 그쪽이 해야 하는 일인데…!”

“헌터 지원, 무기 관리, 이능 연구…, 거기에 요즘은 던전 축소 건 때문에 하루에 15시간씩 일하는데, 저 짜르면 이 일 누구한테 갈 것 같아요?”

“…….”

클로이의 짧고 굵은 한마디에 이아영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죠. 죄송해요. 제가 좀 흥분했네요.”

드디어 결판이 난 모양이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 일 얘기나 마저 하죠.”

팝콘을 준비해야 하나, 하다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난 싸움에 아쉬움을 뒤로 하며, 내가 말을 건넸다.

“아무튼 이번 F구역 실험의 의의는, 이능력이 사라진 세상에서 아무 부작용 없이 유일한 이능력 군인을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맞죠?”

“네, 뭐. 그렇죠.”

“10년이나 더 지난 프로젝트를 이제 와서 다시 가동한 건, 저희가 이능 차원 사태 종식을 선언한 덕에 그 이후의 준비를 하려고 했던 거고.”

요지를 정리하자, 이아영과 클로이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까보니 딱히 비인도적인 실험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 프로젝트의 의도가 WDSO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과 정반대였다는 게 포인트겠군요.”

“맞아요. 과정이야 어떻든 의도 자체는 상당히 위험하긴 했죠.”

이내 이아영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남매 건도…….”

“…….”

그 이야기에 나 또한 잠시 대답을 아꼈다.

부모 때문에 갱단에 팔려 갔다가, 갱단 전체가 프로젝트에 전부 투입되며 엉겁결에 실험에 참여하게 된 아이들.

물론 그들 또한 결과적으로만 따져보면 크게 문제는 없었다.

“알아보니 두 아이가 가장 높은 적합도 표본이었다곤 하는데, 다행히 아직 실험이 성공한 건 아니라, 며칠만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거래요.”

“그거야말로 정말 다행이군요.”

“의도하고 아이들을 실험체로 쓴 건 아니었고, 어쨌든 결과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을 저지른 것에는 변함이 없겠지만요.”

이아영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강압적인 실험 진행과 감금이 있었으니, 그에 대한 처벌은 당연히 이루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아이들에게는 다행히 신체적으로 크게 나쁜 영향은 남지 않는다.

정신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 남겠지만, 그건 협회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고.

고강도의 실험도 아니었고, 실험 여파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테니.

그러니 통상적으로는 감금되어 있던 아이들이 해방되어, 사랑하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갔다. 정도의 이야기가 되어야겠지만…….

‘그 아이들은 그럴 수가 없지.’

미국으로 입양된 동양인 남매.

갱단에게 살해당한 약쟁이 양부모.

그 아이들을 구해줬다고 한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도, 그들이 돌아갈 곳도 없다.

그리고 그 부분이, 아무래도 한유빈의 발작 버튼을 눌러버린 모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지부장 제안 같은 건 절대 수락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

출장 중에 지부장이 돼버리는 말도 안 되는 제안에 고민하기도 잠시, 꽤 흔쾌히 수락한 건 나에게 있어서도 의외의 일이었다.

뭐, 옛날에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까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는 건 이해해도…….

“그래도 그렇게 의욕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뭐, 유빈 씨도 나름 만족하는 것 같던데?”

혼잣말로 중얼거린 것이 들렸는지, 이아영이 대답했다.

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자.

“사실 만족하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좋대.”

“대체 왜? 원래 감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뭐…….”

이아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길 한 차례.

“한상혁이랑 같이 안 있어도 되니까, 라던데?”

“…….”

상상도 못 한 대답이 들려왔다.

***

전 미국 협회.

현 WDSO 본부 소속 미국 지부.

“하아.”

그곳의 새 지부장으로 취임한 한유빈은 뒤늦은 후회를 하는 중이었다.

‘지부장 일이 이렇게 재미없는 거였나.’

나름 미국에서 오래 생활했고, 미국 협회에서도 꽤 경력이 있으니 이전처럼 하면 되겠거니 했는데…….

‘임직원끼리 폭력 사용 금지, 욕설 금지, 기합 금지…. 죄다 금지면 일을 무슨 재미로 하라고.’

미국 협회가 WDSO 본부 직속으로 소속이 변경되면서, WDSO 본부와 같은 규칙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한유빈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심심하고 따분하고 평화로운 업무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일이라고 해도 아직까지 F구역 프로젝트에 대한 조사가 끝나지 않아서, 실 업무는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한유빈의 일과는 출근해서 9시간 동안 지금처럼 창밖을 보며 멍 때리는 것 외엔 딱히 하는 게 없었다.

“하아…….”

그녀의 한숨 소리가 한 번 더 집무실에 짙게 울려 퍼졌다.

창밖 풍격으로 롱 아일랜드의 길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론가 급하게 뛰어가는 남자, 이어폰을 끼고 조깅하는 여자.

그리고 제 부모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아이들.

한유빈은 그 한가로운 풍경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됐을 무렵, 한유빈은 한상혁과 함께 미국으로 입양을 가게 되었다.

이유는 알지 못했다.

지금에 와선 그저, 어른들의 사정이 있었겠거니 하는 것뿐.

그렇게 미국에 온 뒤로는.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약쟁이였던 양 아버지에게 얻어맞던 날들.

매일 밤이 두려워 옷장에 숨어서 벌벌 떨던 날들.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 속으로만 삭여야만 했던 날들.

그러다 어느 날 발현한 이능력.

가까스로 집에서 도망쳐 나온 후 이어갔던 뒷골목 생활.

우연한 기회에 들어가게 된 헌터 협회.

그 사이사이 무수하게 많은 일이 있었지만, 한유빈은 애써 그것들을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잠시 눈을 감고 머릿속에 떠다니는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치우길 잠시.

“…….”

한유빈은 핸드폰을 꺼내들고는 잠시 망설이던 끝에,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뚜루루―

짤막한 신호음이 이어지길 잠시.

“…어, 나야.”

“아니, 그냥……. 잘 있나 해서.”

핸드폰에 대고 머쓱한 투로 그 말을 내뱉었고, 다시금 창가를 바라봤다.

아까 보았던 한가로운 풍경에 따뜻한 햇빛이 덧붙여지니, 세상이 참 평화로워 느껴졌다.

“날씨가 참 좋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