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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362화 (362/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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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에필로그 1화 은퇴 (1)

“웬일로 이런 데를 예약했대?”

청담동에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

막 가게에 들어온 이아영은 퍽 의외라는 표정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좋든 싫든 늘 회사에서 부딪히고 있는데, 간만의 저녁 한 끼가 뭐 그리 새삼스럽겠냐만은…….

이렇게 분위기 내는 건 또 오랜만이니 그녀의 반응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이아영이 내 맞은편에 착석하자, 웨이터는 기다렸다는 듯 와인을 가져와 우리의 잔에 따라주었다.

“뭐, 너나 나나 요즘에 꽤 바빴잖아. 따로 못 만난 지도 꽤 된 것 같아서.”

“하긴, 이래저래 정신없었지.”

은은한 테이블 조명 아래, 이아영이 턱을 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젠 한숨 돌렸어. 종식 준비도 모두 마쳤고… 이젠 정말로 돌아갈 때가 됐네.”

이아영이 말했다.

“던전과 헌터가 없는 세상이라……. 우린 태어날 때부터 봐왔던 것들인데, 막상 없어진다고 하니 상상이 잘 안 가네.”

“너무 늦은 감은 있지.”

“난 오히려 빨랐다고 생각하는데?”

이아영이 두 손으로 턱을 받치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언젠가 몬스터들에게 멸망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국제 협회가 전 세계를 집어삼켰거나.”

“끔찍한 소리를 잘도 하는군.”

소름 돋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이아영이 씨익 웃어 보이며 잔을 들었다.

“건배나 할까?”

“…….”

나는 말없이 그녀와 잔을 부딪쳤다.

미래드림사업으로 시작한, 본격적인 이능차원사태 종식 준비도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미래드림사업은 엄청난 지지를 받은 덕에 WDSO에 대한 신뢰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였다.

그 덕분에 우리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점차 사라졌고, 그사이 아무런 방해 없이 전 세계적으로 토벌 대체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과정이 쉽진 않았다.

전 세계적인 사업을 고작 2년 만에 진행한 것이다.

당연히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었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대부분 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야 했다.

무엇보다 이 사업은 이능차원사태를 공식적으로 종식하기 위한 밑거름일 뿐이었다.

다시 말해, 이로 인해 우리가 얻는 이익은 전혀 없다는 소리였다.

WDSO는 보유하고 있던 모든 주식과 부동산을 매각했고, 그 모든 자산을 인프라 구축에 재투자했다.

그에 따라 각국 모든 협회가 차례차례 해산했고, 어제부로 미국 협회가 해산함으로써 현재 WDSO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협회가 되었다.

그리고 WDSO 또한 3일 후 공식적인 해산 절차를 밟는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3일 후 에덴 파괴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뜻이며, 곧 공식적으로 이능차원사태가 종식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 지긋지긋한 생활도 3일 후면 끝이네.”

한평생을 이 업계에 몸담았던 내 은퇴 날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당신은 지긋지긋할 만하네. 헌터로 평생을 살아놓고, 이번에는 청소부로 평생을 산 셈이니까?”

“맞아. 과거로 돌아왔는데도 업계에서 벗어나질 못했지.”

“다른 사람이 들으면 치를 떨 만한 일이네.”

“그전에 과거로 돌아왔다는 걸 믿기나 하겠어.”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이아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 그쪽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이었어?”

“……!”

갑작스레 훅 들어온 질문에 하마터면 와인을 뿜을 뻔했다.

“그, 그건 갑자기 왜…….”

“왜긴, 아직 한 번도 얘기한 적 없잖아. 솔직히 그동안 진짜 궁금했단 말이야.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헌터였을 땐 어땠을지.”

“…….”

나는 시선을 떨군 채 잔을 만지작거렸다.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지만, 이아영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빛을 반짝일 뿐이었다.

크게 호흡을 내뱉길 한 차례, 나는 마음을 먹고 그 말을 꺼냈다.

“별로…….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

“응?”

“아니, 쓰레기였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이겠네.”

의외의 대답이었던 듯, 이아영의 눈썹이 물결쳤다.

그 한마디에 스멀스멀 밀려오는 과거의 기억.

트라우마로 남았던 리젠 던전 사태와 애써 기억에서 지웠던 하은혜 사원의 일.

랭크에 대한 강박.

해치우듯 닥치는 대로 했던 토벌들.

그 결과는 세계 최초 SSS랭크였고, 천재 헌터라는 수식어였다.

국제 협회가 붙여준, 아무 의미 없는 랭크와 수식어 말이다.

그것이 날 정말로 강자로 만들어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것에 속아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아니, 다 변명이다.

그때의 난 그냥…….

“뭐, 이유가 있었겠지.”

그때, 이아영이 그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이야.”

“알고 있어? 당신은 나쁜 척은 할 수 있어도, 나쁜 사람은 못 돼.”

“…….”

“그런 당신이 쓰레기였다면, 그건 쓰레기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던 걸 거야.”

마치 나를 다 안다는 듯한 말투.

내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이었지만…….

“예를 들어… 아무도 죽지 않게, 하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했다거나?”

“…….”

가만 보면 무당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날카롭다니까.

“뭐, 그냥 해본 소리야. 당신은 이유 없이 나쁜 사람이 될 위인은 아니니까. 물론 주변에선 오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꿈보다 해몽이네.”

“남자친구 기 세워주는 거라고 생각해.”

이아영이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고.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묵묵히 따라주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했던 이전의 기억이 아직 선명히 남아 있었고, 그 죄책감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짧은 순간 내 머릿속엔 온갖 복잡한 감정들 휘몰아쳤지만, 이아영은 늘 그랬듯이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가만히 나를 응시해줄 뿐이었다.

그래, 늘 그랬듯이.

우린 그렇게 잠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내 식사가 나오고 나서야 우리의 침묵은 막을 내렸고, 그 틈을 타 이아영은 분위기를 바꿔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나저나, 은퇴하면 앞으로 뭐할 거야?”

“어…….”

그 또한 꽤나 갑작스러운 물음이었다.

“사실 은퇴라곤 해도 아직 젊잖아. 어쨌든 앞으로 먹고살려면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할 거 아니야?”

“몰라. 생각해본 적 없는데.”

순간 멍해진 기분에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최근 몇 년간은 그저 이 사태를 종식시키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 이후의 일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능차원사태가 끝이 난다고 해도, 내 인생도 끝이 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늘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던 천하의 김준우도 은퇴 계획은 어렵나 보네?”

이아영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디 작은 회사라도 취직하더라도 혼자 먹고 살기엔 충분할 테니까.”

“……혼자?”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응?”

그 짧은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살기가 아른거리는 얼굴을 보며,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

“…….”

사무총장실.

나는 머리채를 부여잡은 채 계속해서 심호흡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영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은퇴.

그 한 단어가 주는 중압감과 부담감은 가히 그 정도였다.

헌터로 반평생, 청소부로 나머지 반을 살아왔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인생 자체가 던전 토벌과 청소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바닥이 통째로 사라진다면, 나는 대체 뭘 해야 하는가.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래, 경력이 날아가는 건 둘째 치자.

아직 젊지 않은가. 지금 뭔가를 다시 시작해도 시작할 나이다.

말했듯 작은 회사라도 취직하던가, 모아둔 돈으로 치킨집이라도 차리던가.

그마저도 안 되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살면 그만이다.

혼자라면 그 정도로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그래, 혼자라면…….

‘너,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어젯밤, 레스토랑.

이아영의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넋이 나가버렸다.

대답 타이밍을 놓쳤고, 이아영은 그 뒤로 돌아갈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여태껏 본 적 없는 그 싸늘한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려올 정도다.

“그래서…….”

내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사무총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회사에서 사랑싸움 중인 건 알겠는데, 저는 왜 부른 건데요.”

“선생님이 이 정도로 심각해 하는 건 오랜만인 것 같은데…….”

다름 아닌, 미국 지부가 해체되면서 다시 한국으로 귀국한 한유빈 기획 본부장과 김민주 작전 본부장이었다.

“미리 말하는데, 저 다른 사람 싸움에 끼어서 누구 편들어주고 하는 거 질색이든요?”

“그런 말 말고요, 유빈 씨. 선생님이 우리한테 먼저 고민을 털어놓는 건 처음이잖아요. 이 정도는 들어줄 수 있죠.”

“아니, 애초에 두 사람이 싸울 일이 뭐 얼마나 된다고! 해봤자 시답잖은 거밖에 더 있어요? 기념일을 잊어버렸다던가…….”

두 본부장이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티격태격하던 중.

“그 사람, 결혼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

“…….”

이내 꺼낸 그 한마디에 두 사람의 얼굴이 갑자기 굳었다.

“어제 오랜만에 저녁을 먹었는데, 그곳에서 제가 프로포즈할 줄 알았답니다.”

“갑자기요?”

“꽤 고급 레스토랑이었거든요.”

“아…….”

“그런데… 요 며칠 종식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결혼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나 있었겠습니까?”

“…….”

한유빈의 입이 작게 벌려지자, 이번엔 김민주가 물었다.

“선생님이 아영 씨랑 만난 지 얼마나 됐었죠?”

“3년 조금 넘었지.”

“그사이에 결혼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건가요?”

김민주의 물음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잘못했네요.”

“거기서 살아 돌아온 게 천운이네.”

그러자 처음으로 두 사람의 같은 표정,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 정도입니까?”

“그걸 지금 진심으로 물어보는 것부터 아웃인데?”

“두 분이라면 오히려 지금도 늦은 거예요.”

한유빈과 김민주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이번엔 그쪽이 잘못한 거예요. 이제부터라도… 아니, 솔직히 지금도 많이 늦긴 했는데…….”

“뭐, 이제부터라도 진지하게 생각해서 준비해야겠네요.”

두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리곤 뜸을 들이길 잠시.

“사실 생각을 안 한 건 아닙니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생각을 못 했다?”

“그게 좀 복잡합니다.”

한유빈이 곧바로 톡 쏘았고, 나는 한 차례 더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두 사람 다 아시다시피, 전 헌터로서의 삶과 청소부로서의 삶, 두 개의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요.”

“이전의 삶, 그러니까, 제가 헌터일 때는 지금과는 많은 게 달랐습니다. 목표하던 바도 달랐고, 주변과의 관계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주 나빴다고 해야겠군요.”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그건, 이아영 씨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

“그 당시 저는 이두식 이사에게 온갖 혐의를 뒤집어씌워 협회에서 해임 시켰고, 이아영 씨는 그 여파로 헌터지원실에서 좌천당해 제 보과좐으로 임명됐죠.”

처음 이야기하는 이전의 모습.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거라 예상했지만, 두 사람은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내가 하는 말을 경청했다.

“솔직히 말해서, 많이도 부려 먹었습니다. 욕도 많이 했고 약점을 쥐고 억지를 부렸던 적도 있습니다. 덕분에 그 당당하던 성격이 딱 1년 만에 바뀌더군요.”

“…….”

“물론 그때의 이아영 씨와 지금의 이아영 씨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다른 세상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나는 그때의 이아영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더욱 없던 일로 치부할 수가 없다.

“이미 한 번 이아영 씨를 그렇게 만든 제가, 이제 와서 그녀와 깊은 관계를 이어갈 자격이 되는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결론을 전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지 못하는 한, 저는 이아영 씨와 결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때의 이아영에게 사과하지 못했다.

아니, 그때의 모두에게 사과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그때의 모든 걸 없던 일로 치부한 채, 이곳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건 위선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뭐라는 거야?”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

두 사람의 예상치도 못한 대답에 내 눈이 동그래졌다.

“아, 아니. 두 사람이 겪어본 적이 없어서 쉽게 말하는 것 같은데, 이게 막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선생님이 처음 이능차원사태 종식 준비에 들어가면서 했던 말 기억하세요?”

“뭐?”

그때, 김민주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현재 토벌은 없어서는 안 될 산업이 되었다. 사라지게 된다면 국제사회는 수년간 침체기를 겪게 될 것이고.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김민주가 당시 내 연설 내용을 읊었고, 이어서 한유빈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현재에 머물기를 선택한다면 미래는 오지 않는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괴물도, 헌터도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미래를 위해선, 현재를 놓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후회가 있어도 불구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이유다.”

“…….”

“솔직히 그땐 좀 오글거리긴 했는데,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긴 해.”

“무엇보다 지금 딱 선생님 이야기 아니에요? 현재의 후회 때문에 미래를 포기할지, 미래를 위해 후회는 잠시 덮어둘지.”

김민주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쨌거나 아영 씨랑 풀어야 할 문제긴 하네요.”

“뭐,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한유빈이 피식, 실소를 짓길 한 차례.

“아영 씨가 그런 거 신경 쓸 것 같진 않은데?”

“동감이에요.”

“…….”

두 사람은 그 말을 남기고는 먼저 자리를 떴고, 나는 그 뒤로도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여러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지만, 그것들을 전부 차치하고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방금 두 사람이 말했던 그 연설문.

‘그거 편 팀장이 대필해준 건데…….’

내가 말했으니, 내가 쓴 거지 뭐. 크크크크.

그나저나, 아영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이런 걸 해봤어야 알지!

……회귀해도 모르는 건 모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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