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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363화 (363/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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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에필로그 2화 은퇴 (2)

“……그랬더니 입 꾹 다물고는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음습하고, 지저분한, 토벌이 끝난 던전 안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아영은 팔짱을 낀 채 격양된 목소리로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물론 준우 씨 성격 모르는 것도 아니고, 종식까지 며칠 남지도 않았으니 정신없는 건 이해해도… 그래도 사귄 지 2년이 넘었는데, 결혼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는 게 말이 돼요?”

“…….”

“아니, 뭐 생각 못 할 수도 있어. 근데 왜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게 비싼 레스토랑까지 예약해선 분위기를 잡냐고! 게다가 옛날 얘기까지 하면서 진지한 말이나 하고! 누가 봐도 프로포즈할 분위기잖아! 안 그래요?! 이거 제가 충분히 화낼 만하죠?!”

“…….”

이아영은 뭐라도 대답을 해달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을 바라봤지만, 청중들은 잠시 대답을 아꼈다.

그리곤 곁눈질로 서로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그것도 잠시.

“저… 무슨 말씀이신지 충분히 이해는 하는데…….”

열심히 청소 중이던 박근태 부장의 청소팀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상황.

그들 중 가장 연장자인 박근태 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왜 굳이 여기서…….”

“민주 씨나 유빈 씨는 바쁘다고 안 만나주고…. 제가 이런 이야기 털어놓을 분들이 여러분밖에 더 있겠어요? 아, 혹시 불편하셨다면…….”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박근태 부장은 아차 싶었는지 바로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다시 말을 이었다.

“협회장씩이나 되는 분이 던전 청소하면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듯 싶어서…….”

“…….”

박근태의 그 말에 이아영의 눈썹이 물결치길 한 차례, 이내 자신의 손에 들린 걸레를 슬쩍 흘겼다.

분명 던전 들어올 때는 새 것이었는데, 어찌나 세게 문질렀는지 벌써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러고 있으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더라고요.”

“아, 예… 하하하.”

박근태 부장은 애써 웃음을 보이자, 옆에 있던 한상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슬쩍 입을 열었다.

“저번에는 편 팀장님 소개팅 차였다고 오셔서 한참 청소하고 가시더니… 이젠 협회장까지 오시네요.”

“야야, 그전에는 작전 1팀장님이랑 3팀장님도 청소하고 갔어.”

“참나, 여기가 무슨 힐링캠프래요? 뭔 팀장이라는 사람들 청소를 하고 가. 다음부터는 오지 말라 그래요.”

“알았어, 알았어. 공지라도 좀 해서 다음부터는…….”

“다 들리는데요.”

“…….”

이아영의 담담한 그 한마디에, 박근태 부장과 한상혁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

두 사람은 뭐라 대답이라도 좀 해보라고 서로에게 무언의 눈빛을 보내고 있던 그때.

“뭐, 준우 씨가 잘못했네요. 차라리 분위기라도 안 잡으면 몰라…….”

유일하게 이아영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문소연이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이아영은 금세 화색을 띄며 문소연을 바라봤다.

“내 말이 그거에요! 역시 소연 씨는 말이 좀 통한다니까?”

“그 뒤로 준우 씨한테 얘기는 해봤어요?”

문소연의 말에 이아영의 표정이 팍 식었다.

“냉전 중이라 아직은…….”

“흐음.”

문소연은 의중 모를 미소를 짓길 한 차례, 다시금 이아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아영 언니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뭘요?”

“결혼 말이에요. 아영 언니는 준우 씨랑 결혼하고 싶은 거죠?”

“그, 그거야…….”

이아영은 이제 와서 대놓고 말하기는 부끄러운 듯, 말꼬리를 흐렸다.

물론 그것만으로 충분히 대답이 되었기에 문소연은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두 분이 진지하게 얘기를 해보는 건 어때요? 우리가 뭐라고 해봤자, 결국 두 분이 풀어야 할 일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지금 냉전 중이라…….”

“에이, 그래도 할 말은 해야죠. 이대로 헤어질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죠.”

이아영은 눈치 보는 고양이처럼, 문소연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어쨌든 언니 생각을 잘 얘기해봐요.”

물론 문소연이 몇 년은 어린 동생이었지만, 반박할 수 있는 말도 아니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을뿐더러 이아영 본인도 내심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생각해보니까 그러네요.”

이아영이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생각이 짧았어요. 여러분들한테 징징거릴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뭐, 저희야 재밌는 썰을 공짜로 들으니 오히려 고맙긴 하지만요.”

문소연이 넉살 좋게 대답하자, 이아영은 그녀의 배려에 싱긋 웃어 보였다.

“그 사람하고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어요.”

그리고는 들고 있던 걸레를 내려놓으며 그 말을 내뱉고는, 곧바로 등을 돌려 던전을 빠져나갔다.

“…….”

“…….”

이아영 협회장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찾아온 정적.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소연이 박근태 부장과 한상혁을 바라봤고.

“자, 해결했습니다. 다들 뭐해요? 계산해야죠.”

두 사람을 향해 양손을 까닥거렸다.

그와 동시에 박근태 부장과 한상혁은 고개를 저으며, 현금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내 살다, 살다 상사를 쫓아주고 돈 받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그 순수했던 녀석이 어쩌다 이렇게 됐대…….”

“아니, 다들 원했으면서 저만 나쁜 사람 만드세요?”

문소연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어이없다는 듯한 말투였지만, 박근태 부장과 한상혁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리다 못해, 어둠에 잠식되어버린 그녀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

“뭐야.

”WDSO 서울 본부, 사무총장실.

그곳의 문을 벌컥 열어젖힌 이아영 협회장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분명 업무 중일 시간이었음에도, 집무실은 텅텅 비어있었다.

‘이 시간에 자리를 비워?’

이아영 협회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물론 업무 시간에 대놓고 사적인 일로 사무총장을 찾아오는 것 또한 협회장으로서 그리 좋은 행동은 아니었다만…….

이틀 뒤, 없어질 조직인데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같은 이치로 이틀 뒤엔 사라질 협회의 사무총장이, 이 시간에 자리를 비울 만한 건덕지가 뭐가 있겠는가.

뭐, 정말 급하게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해도 그런 일을 협회장인 자신이 모를 리도 없다.

당연하겠지만, 이아영 협회장은 오늘 김준우의 스케줄에 대해 그 어떤 언질도 받지 못했다.

협회장으로서도, 여자친구로서도.

‘나한테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비웠다, 라…….’

이아영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도망친 건가?

나랑 대화하기 싫어서?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던 그때.

벌컥―

“……어?”

“아영 씨?”

누군가가 집무실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다름 아닌, 김민주 작전 본부장.

이아영 협회장은 그녀의 두 팔에 안긴 서류로 시선을 옮겼고, 슬쩍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 작전 보고하러 온 거예요?”

“네, 아영 씨는요?”

“할 말이 좀 있어서, 민주 씨도 타이밍이 나빴네요. 말도 없이 어디 갔는지…….”

“아, 선생님은 오늘 외부 업무 있다고 잠깐 나가셨어요.”

“……?”

이아영 협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민주 씨한테는 이야기 한 거예요? 자리 비운다고?”

“아…….”

그 질문의 저의를 바로 알아차린 김민주는 말끝을 흐리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는 이 시간에 찾아뵐 예정이라고 아까 연락드렸거든요. 그때 말씀해주셨어요.”

“…….”

김민주는 최대한 뒤탈 없게 잘 얼버무렸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이아영은 어딘가 찜찜한 표정이었다.

사실 김준우가 자리를 비웠다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본인들이 20대 커플도 아니고, 일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연락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각자 나름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자리 비우는 게 그리 이상한 것도 없다.

그럼에도 이아영이 찜찜해하는 이유는, 시기가 영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결혼 이야기로 언쟁이 있었던 직후에 연락이 끊긴 남자친구. 심지어 본인과 다르게 결혼에 대해 확신이 없는 것 같은 반응.

설마…….

“…다른 여자랑 선보러 간 건 아니겠죠…?”

이아영은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그 말을 내뱉었다.

동시에 김민주는 두 커플이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

‘하아…….’

평소 잘 입지도 않는 양복 때문에 더욱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그곳에서, 나는 연신 시계를 확인했다.

이런 자리는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마저도 자꾸만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 때문에 오래가진 못했지만.

‘결혼이라…….’

가까우면서도 먼 그 단어.늘 생각해왔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현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보다 더 무거운 단어는 없었던 것 같다.

“쯧,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작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곤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와 결혼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그저 너무 먼 이야기 같아서 깊게 생각하는 걸 자꾸만 미뤘을 뿐.

결혼하지 않을 것도, 결혼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아니, 사실 그녀와의 결혼은 나 또한 정해진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내가 그녀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없을 뿐이었다.

김민주와 한유빈에게도 말했듯, 회귀 전의 그녀에게 사과하지 못한 채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녀와 관계를 이어가는 건 나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회귀 전의 이아영을 다시 만날 수도 없다. 지금 그녀에게 사과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실상 답이 없는 문제.

때문에,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용서받을 대상을 바꿔야만 했다.

지금 이 세계에서, 회귀 전 내가 저질렀던 만행을 용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는가.

만약 과거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나를 용서할 수 있다면, 조금은 짐을 덜 수 있지 않을까.

김민주와 한유빈과 이야기를 나눈 직후부터, 그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 이곳에 온 이유 또한 그 때문이다.

지금부터 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지 확인해봐야 했으니.

“김준우 님.”

그래. 지금 중요한 건…….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이쪽으로 들어오실 게요.”

“네.”

은퇴까지 고작 이틀.

나이 서른 중반에 평생을 일해온 직업을 잃을, 백수 예정자.

던전, 토벌, 헌터.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직업.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자격증도 없고, 토익이고 나발이고 아는 것도 개뿔 없는 사회 초년생.

“김준우 씨?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면접실로 들어오자마자, 세 명의 면접관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한 뒤, 이내 준비했던 말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전 국제던전관리협회, WDSO 사무총장으로 직무를 수행하다, 본사에 지원하게 된 김준우입니다.”

“……?”

“……?”

사회의 가장 아래에서, 다시 한번 시작해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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