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1화
던전과 게이트가 나타나고 그 안에서 괴수가 출몰하기 시작한 이후,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거기에 맞춰 대응해 나가고 있었다.
괴수와 싸울 수 있는 마나를 가진 헌터.
그 헌터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상급 헌터를 얼마나 많이 보유했는지 등이 국력을 결정지었다.
헌터의 비율은 전체 인구수의 0.5%를 이룰 정도로 극악했고 던전과 게이트의 생성 속도가 빨라지면서 각국에서는 헌터 각성자를 조기에 찾아내는 작업에 혈안이 되었다.
“어…… 헌터 협회에서 온 거네? 혹시 나도 각성자인 건가?”
열여덟 살이 되면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특별 검진을 받고 그 결과 각성자로 판별된 사람들에게는 헌터 협회의 특별한 관리가 시작된다.
서도진은 헌터 협회에서 우편물을 받은 날 한 무리의 사람들의 방문을 받았다.
일반적으로는 각성자로 판별된 사람들이 헌터 협회로 방문을 해야 했지만 서도진은 처음부터 워낙 특별했고 헌터 협회에서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서도진 씨. 일단 저희가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네.”
서도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협회 사람들을 맞이했다.
그의 주위에는 가족과 친척들까지 모여 있었다.
그가 각성자로 판별됐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가 축하하기 위해 찾아왔는데 그것은 헌터가 사회에서 얼마나 각광 받는 직업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과 같았다.
이제 갓 F급이지만 레이드를 성공하고 경험치를 쌓고 순차적으로 레벨업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상급 헌터가 될 것이고 그때는 사회 고위층의 특별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부러움으로 벌써 서도진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협회에서 나온 사람들은 조금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서도진에게 조용히 따로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 네.”
서도진은 그게 헌터의 비밀 유지 같은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서재로 안내했다.
협회에서 나온 이들 중 퀭한 얼굴을 한 깡마른 사람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수석 연구관입니다.”
“서도진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따로 자기들을 소개하지 않았고 자신을 수석 연구관이라고 밝힌 사람은 그때부터 빠르게 설명을 해 나갔다.
“헌터 각성자 중에는 공격력이 우세한 딜러와 방어력이 우세한 탱커가 있습니다. 그동안은 탱커와 딜러가 2대 8정도의 비율로 나타났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각성한 딜러는 공격력 200에 방어력 50이 나타납니다. 이건 그동안 레이드를 해 온 헌터들의 신체 활동을 기본으로 우리가 임의로 정한 수치입니다. 각 레벨의 헌터가 몇 번의 공격을 했을 때 괴수가 죽는지 지금까지 모아온 방대한 양의 자료를 토대로 알아낸 거죠.”
그것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헌터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기에 서도진은 연구관이 그 이야기를 길게 설명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갓 각성한 F급 탱커는 방어력이 200에 공격력이 50이다.
레벨이 오를수록 탱커의 방어력은 200씩이 오르고 공격력은 50씩이 오른다.
A급의 위 단계인 S급은 방어력이 1200이 되는데 S급 헌터는 전 세계에 세 명이 존재할 뿐이고 거기에서 더 레벨이 오른 사람은 아직 없어서 데이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저런 얘길 한다는 건 그 원칙이 나한테는 적용이 안 됐다는 말인가? 뭐야. 혹시 나는 각성하자마자 A급이라거나 그런 건가?!’
서도진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연구관의 이야기가 빨리 본론에 이르기를 바랐다.
“그런데 서도진 씨는…… 조금 다릅니다.”
“어떻게요?”
“서도진 씨의 마나는 조금…… 뭐라고 해야 할까. 특별합니다. 우리는 서도진 씨의 혈액 샘플을 이용해서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도출해 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알아낸 것이…… 서도진 씨는 헌터로 각성하기는 했지만 방어력은 전혀 없고 공격력만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치가 탱커의 공격력보다도 더 적습니다. 뜸 들이지 않고 말하죠. 5예요.”
“……네?”
갑자기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래서 서도진 씨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헌터로 각성했다고 인정을 해야 하는가 해서 말입니다.”
정신이 멍해지고 지금 자기가 듣고 있는 말이 다 무슨 이야기인가 했다.
“일단 우리는 서도진 씨를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레이드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마나에 그동안 우리가 본 적이 없던 특징이 나타나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게 공격력이나 방어력과는 다른 특별한 힘이 아닐까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그동안 쌓아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서 공격력과 방어력을 수치화한 것이라서 이전에 없던 능력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면…… 제가 공격력이나 방어력 말고 다른 힘을 갖고 있다는 건가요?”
얼굴은 이미 수치심으로 새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그 와중에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서도진이 물었다.
“정확히는 서도진 씨가 아니라 서도진 씨의 마나가 그런 거겠죠.”
딜러로 각성했지만 공격력은 탱커보다도 낮고 방어력은 전무했다.
레이드에는 하등 도움이 안 되겠지만 데이터 축적을 위해 헌터로 인정을 해 주고 연구를 하기로 했다는 게 결론이었다.
그래도 레이드에 투입되기는 했다.
밝혀지지 않은 서도진의 특별한 마나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서 자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함께 투입되는 헌터들은 서도진이 레이드에 도움도 되지 않으면서 경험치만 얻는다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헌터 협회는 서도진이 빨리 경험치를 쌓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시간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서도진의 마나에 다른 헌터들에게서 나타나지 않는 치유력이 있다는 거였는데 그 치유력조차 공격력 정도로 워낙 낮은 수치라 실제로 치유의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거의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연구관이 매달려 알아낸 것은 서도진이 공격력 5, 치유력 5의 능력을 갖춘 전대미문의 무쓸모 F급 헌터라는 사실이었다.
* * *
6년이 지난 후 서도진은 어엿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건 D급 헌터가 되어 있었다.
5에서 시작한 공격력과 치유력은 다이나믹한 증가 없이 성실하게 15씩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헌터 협회에서도 손을 놔버렸고 모두들 서도진을 헌터로 인정해 주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하는 중이었다.
“힐 해 줄까?”
같이 레이드를 돌게 된 팀원이 다쳐서 서도진이 소심하게 말하면 그들은 눈을 부라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꺼져. 재수 없어!”
치유력 15짜리 힐을 받느니 그냥 레이드가 끝난 후에 헌터 전용 병원에 가서 고품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게 낫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3년 후에 C급이 된 것은 기적이었고 B급이 될 때까지 헌터를 계속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A급 헌터가 됐을 때는 모두 경악에 빠졌다.
A급으로 레벨이 올랐을 때 서도진은 한 줄기 희망을 품었다.
이쯤 되면 그동안 고생한 게 불쌍해서라도 공격력과 치유력이 확 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처참했다.
꿈도 희망도 없이 또 정확히 5만큼만 올랐을 뿐이었다.
그는 어느덧 전설이 되었다.
모든 돌연변이, 패배자, 조롱거리의 대명사.
그러고도 레이드를 그만두지 못한 것은 헌터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사는 방법을 몰라서였다.
다른 사람들은 C급 헌터만 돼도 광고 계약 등으로 높은 부수입을 올리며 전망 좋은 넓은 아파트에 비싼 차를 끌고 다니면서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잘만 살던데 서도진은 끝내 일이 안 풀렸다.
처음에 그를 축하해 주러 왔던 사람들은 이제 그와 연관된 사람이라는 것을 수치스러워하며 선 긋기에 나섰다.
친구와 친척들도 모두 그에게 등을 돌렸고 가족들마저 부담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 레이드는 중독이나 마찬가지였다.
도박과 다를 게 전혀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에게는 잭팟이 터지지 않았다.
* * *
“정도영. 이번 레이드 끝나면 레벨 오르지?”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몇 사람이 D급 헌터를 에워싸며 말했다.
“예. 이제 저도 C급이 되네요. 레벨 오르면 사람 구실 좀 제대로 하겠습니다. 하하하.”
“됐어. D급은 사람 아닌가? 그리고 사람 구실을 레벨로 하는 건가? 누구는 SS급이 되고도 아직 자기 앞가림도 못 하는데. 크크큭.”
전 세계 유일의 SS급이 되었는데도 그런 취급을 받는 서도진이었다.
그에게는 높은 레벨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어서였다.
어차피 서도진은 레벨에 따른 스탯이 적용되지 않고 있었기에 그를 SS급 헌터라고 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것에서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서도진은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나한테 하는 말이냐? 할 말 있으면 내 앞에서 똑바로 말을 하던가. 병신처럼 뒤에서 낄낄대지 말고.”
서늘한 말에 몇 사람이 침을 꼴깍 삼켰다.
서도진과 처음으로 레이드를 같이 하는 사람들은 그를 놀려 보려고 했지만 서도진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눈앞의 괴수, 그리고 자신의 치유력에만 신경을 쓰며 던전에서의 시간을 활용할 뿐이었다.
SS급이 되고 나니 이제 하급 헌터 정도의 공격력은 나오고 있었기에 레이드에서 제 몫을 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서도진은 먼저 던전으로 들어갔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괴수를 공격해 나갔다.
헌터들은 서도진의 숙련된 검술을 보면서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저게 서도진의 진짜 모습이라면 이제껏 왜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놀린 건가 했던 것이다.
마나의 운용 능력, 기회를 놓치지 않는 노련함.
감정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는 레이드가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괴수가 쓰러진 후에 누구와도 말을 나누지 않은 채 그곳을 떠났다.
“뭐야, 저 사람? 저게 서도진 맞아?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병신인 줄 알았더니.”
“병신 맞지. SS급이 겨우 저러고 있는데 그럼.”
자기들이 온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서도진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억지로 그렇게 정당화를 해 나가고 있었다.
* * *
서도진이 SS급이 됐을 때도 헌터 협회는 한동안 무관심했다.
생각하면 그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F급부터 A급까지는 경험치만 채우면 레벨이 올라갔지만 A급에서 S급으로 올라갈 때는 경험치 외에 다른 조건이 필요한 듯, 경험치만으로는 레벨이 올라가지 않았는데 서도진은 아무 무리 없이 S급이 되었다.
헌터 협회는 A급을 넘어선 후 레벨이 오르기 위한 조건이 뭔지 알아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뒤늦게 그에게 접근했고 서도진은 집 앞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처음 서도진에게 그의 특이한 마나에 대해 설명해 주었던 수석 연구관이었다.
“서도진 씨. 잠시 얘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저는 나눌 얘기 없습니다만.”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1초도 싫습니다.”
싸늘한 표정으로 서도진이 곁을 지나가자 수석 연구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그들도 서도진이 SS급 헌터가 되지만 않았다면 구차하게 와서 연구 좀 해 보자고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자기들이 손을 내밀면 서도진이 거절하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서도진은 처음 각성했을 때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서도진은 이제 미련이 없었다.
그냥 악만 남았을 뿐이었다.
이 지랄 맞은 스탯이 도대체 언제까지 자신을 엿먹일 건지.
서도진은 이제 그것만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