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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63화 (63/470)

제63화

63화

북리의천을 만나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소청이 가진 기운이 발각된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이 되었다.

린린은 아진이 왜 그렇게 그 일에 열심인지 알고 있었다.

아진은 종종 그랬다.

린린의 가족을 제외한 대부분 사람이 린린에게 열여덟 살 이후의 삶은 없다고 믿었지만 아진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했고 일부러 보란 듯이 그러는 것처럼 그 후의 삶에 필요한 것을 준비했다.

린린의 호위로 아주 어린 아이를 지목한 지금처럼.

소청의 어머니는 통증이 사라지는 것에서 나아가 이제는 상처나 멍도 남지 않은 것에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 건지.

어느 날 소청의 아버지가 움막에 들어왔을 때도 꿈을 꾸는 것 같았지만 그때와 비슷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부인께서 걱정하시는 일이 뭔지 짐작이 갑니다. 제가 직접 소청을 데리고 북리세가에 가서 사부님께 소청을 소개해 드리면 어떨까 하는데 혹시 그렇게 하는 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면 저도 고집을 부리지는 않겠습니다. 소청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결정을 내려주실 분은 부인이라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어떤 것이 소청을 위한 길이 될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제가 의원님께 그 책을 드리면 어떨까요?”

한참 만에 나온 말은 그거였다.

아진은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그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 자신은 책을 봐도 그게 어느 정도로 위험한지 알 수가 없지만 아진이라면 알아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진이 그것을 기초로 판단을 내려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게 좋겠습니다. 그 책은 제가 보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그래 주실 수 있나요? 제가 너무 위험한 일을 떠넘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걸 바로 외우고 그 자리에서 불에 태우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외워지지도 않고 내용도 워낙 방대해서요. 책 한 권이라고 말은 하지만 정말 두꺼워요. 글씨도 깨알 같고요.”

그러다 그녀는 말로만 그럴 게 아니라고 생각한 듯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소청이 기다리고 있다가 달려와 그녀를 보며 물었다.

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온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말끔해진 모습 때문이었다.

현령은 자기 딸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평소보다 훨씬 더 가혹한 처벌을 내렸고 그 정도로 맞고 나면 장독(杖毒)으로 죽기도 했다.

소청 역시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멀쩡해 보였던 것이다.

“그래. 소청아. 어미는 괜찮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물이라도 떠다가 드리거라. 드릴 것이 변변치 않아서…….”

그녀는 잠시 망설이면서 말하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소청은 물을 두 그릇 떠서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저도 목이 말랐다.

그 먼 거리를 달려오느라 갈증이 났는데 방 안에서의 소식이 궁금해서 한가하게 묵이나 축이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진이 고맙다고 말하며 물을 소청에게 주었다.

“이건 나보다 네가 더 필요할 것 같구나. 마셔라.”

“아닙니다. 저는 나가서 다시 떠서 마시면 됩니다.”

“네가 먼저 마시고 나에게는 새로 떠다 주어라. 나는 급하지 않다. 그런데 너는 급하다.”

“…….”

소청은 미안해하면서 물을 마셨다.

아진이 그렇게 말을 하기 전에는 자기 상태가 그렇게 급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목이 마르다는 거야 알았지만 급히 물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진이 그런 소청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너는 참 재미있는 아이다.”

“……네? 왜요?”

“다른 사람들 같으면 아무리 그렇게 하고 싶었어도 그러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너는 네 몸이 그야말로 몸부림을 쳐대도 그걸 그냥 무시하고 한계를 뛰어넘어 버리는구나.”

소청은 아진이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아서 무릎만 문지르며 꼼지락거렸다.

화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부끄러웠다.

“소청아. 너는 특별하다. 나도 너처럼은 하기가 힘들 것 같다. 그렇게 숨이 턱에 찰 정도가 되면 더 이상은 뛰지 못할 테고 그렇게 목이 마르면 갈증을 이기지 못했을 거다.”

“그건……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요. 제가 멈추면 어머니 치료도 그만큼 늦어지고 그러면 어머니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 맞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도 육체의 한계에 부딪히면 굴복을 하게 된단다. 그게 정상이지.”

“네…….”

“소청이 너의 정신력은 웬만한 어른들보다도 더 훌륭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너보다 더 정신력이 뛰어난 사람은 지금껏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소청이 설마 하는 눈으로 아진을 바라보았다.

“정말…… 요?”

“그래. 나는 운이 좋아서 여러 훌륭한 분들을 어려서부터 많이 봐 왔는데도 그 중에도 정신력이 너처럼 강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헷…….”

소청이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 이건 칭찬이 아니란다. 소청아.”

“네?”

소청의 표정은 짧은 시간 동안 각양각색으로 변했다.

칭찬을 받은 건 줄 알았더니 칭찬이 아니라는 말에 다시 기운이 빠졌다.

그러나 아진은 진지한 얼굴로 소청의 두 손을 잡은 채 말했다.

“이제부터 할 말은 아주 중요하니까 내 눈을 보고 똑똑히 들어라.”

“네. 의원님.”

“몸이 보내는 신호는 아주 중요하단다. 몸이 신호를 보내는데 그 신호를 무시하면.”

아진이 말을 멈추자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듣고 있으니까 말해 달라는 것 같았다.

“너는 죽게 된다.”

“네?”

소청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진이 하는 말은 믿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그 말은 왠지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건 확실히 좀 이상했다.

힘이 들기는 했지만 참으면 참을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걸 참으면 죽는다고 하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소청아. 몸이 신호를 보낸다는 건 네 몸에 그게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너는 그걸 무시할 힘을 갖고 있지. 다른 사람들이라면 몸이 신호를 보내면 거기에 따를 거다. 굴복하는 거지. 굴복한다는 게 나쁜 의미인 것만은 아니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어?”

“네…….”

소청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확실하게 알아들은 건 아니었다.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좀 어려웠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요?”

“그러게 말이다. 나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진의 진심이었다.

한계를 극복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것은 중요하고 칭찬할만한 일이었지만 소청은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멈추는 법을 몰랐다.

누군가 곁에서 그것을 말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소청아. 만약에 네가 시간이 지나도록 너를 가르쳐 줄 스승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내가 네 스승이 돼 줄까?”

“네?”

소청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에 무수한 별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진은 자기가 그 어린아이의 우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동안 그런 일은 많았다.

무림 세계로 오기 전에도, 그리고 그 후에도 그를 향해 경외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수도 없었지만 이쪽에서의 감정이 호응하지 않는 일방적인 감정은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진도 기분이 좋았다.

저절로 응원하고 싶어지는 아이가 진심을 담아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보면서 웃음이 지어졌다.

“내가 너를 가르치면 너는 내 동생의 호위가 돼야 한다.”

“네. 스승님.”

“응?”

아직은 아닌데?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소청이 웃었다.

“저는 의원님이 제 스승님이 돼 주시면 좋겠어요. 다른 분은 아무도 제 스승님이 안 되면 좋겠고요.”

소청은 신이 난 듯했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깨가 들썩거렸다.

‘귀엽네.’

아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동안 소청의 어머니가 급하게 들어왔다.

몸은 나았다고 하지만 입고 있던 옷을 아직 갈아입지 않아서 옷이 여기저기 찢기고 피로 얼룩져 있었는데 이제는 설상가상 거기에 진흙까지 잔뜩 묻어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거기에 오래 신경 쓰지 않았다.

흙 묻은 천에 싸인 책에 관심이 쏠려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거예요. 의원님.”

그녀는 밖에서 천을 풀고 그 안에 있던 책을 아진에게 주었다.

이미 그녀에게서 이야기를 들어 그 책이 얼마나 중대한 의미를 있 는지 알아차린 아진은 조심스럽게 책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용히 책장을 넘겼다.

일각이 지나고 이 각이 지나고 어느덧 반 시진을 지나다 세 시진이 지났다.

사람들은 거기서 계속 그렇게 기다리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 각자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제가 맡은 일을 다 마치지 못할 뻔했어요.”

소청의 어머니는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아진과 린린에게 먹을 것을 준비해 주고 그때부터는 바느질에 매달렸다.

그동안 남들이 맡긴 옷을 바느질해서 소청을 키워 왔다는 그녀는 신들린 듯한 솜씨로 바느질을 했다.

“본가에 가면 되게 잘하시겠다.”

린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소청의 어머니가 린린을 바라보았다.

“혹시 은공의 댁에 제 재주가 쓰일 곳이 있을까요? 그렇다고만 한다면 그곳에 가서 일하고 싶습니다. 삯은 주지 않으셔도 돼요. 소청이도 다른 곳에 가서 무공을 배운다면 어차피 저는 여기에 남을 필요가 없는데. 혹시 댁에서 침모를 구하신다면 제가 가서 일을 도우면 어떨까요?”

“아…… 그 말씀을 드린 게 아닌데…… 그리고 말씀 낮추세요. 부인. 저는 이렇게 어리고 의원도 아니에요.”

“그래도 은공의 동생이신데 함부로 말을 낮출 수는 없습니다.”

린린은 난감해하다가 자기가 생각한 것을 말했다.

“산본의가에 가끔, 열상을 입은 환자들이 오거든요. 그때는 피부를 바늘로 꿰매는데 부인의 솜씨면 그걸 잘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드린 말씀이에요.”

“정말 제가 도움이 될까요? 그렇다고만 하면 당장이라도 가고 싶어요. 평생을 다 갚아도 은공께 받은 은혜는 다 갚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서두르지 마세요. 오라버니 얘기도 들어봐야 하고요.”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요.”

그러는 동안 아진이 린린을 찾았다.

“린린. 여기에 있는 걸 외울 수 있지?”

아진은 자기가 본 부분을 부욱 찢어서 린린에게 건넸다.

“…….”

구음절맥.

그것의 대표적인 특징이 머리가 좋다는 거였고 린린이 그동안 그것을 드러낸 일이 없어서 그렇지 린린이 마음만 먹으면 그런 것을 외우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라버니가 외워야지. 중요한 것 같던데 만약에…….”

만약에 내가 죽으면 그다음에는 어쩌려고?

그 의미를 담은 침묵이 말끝에 매달렸다.

“읽고 외워. 외운 건 태우고.”

“…….”

린린은 말을 하는 게 좋을까 했지만 결국 말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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