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81화
“너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고 나는 당분간 너한테 질문을 하지 않을 생각이야. 제갈세가 놈들은 하늘이 내려 준 머리를 갖고 있다지? 내가 뭘 물을 것 같은지 잘 생각하고 있다가 내가 질문을 시작할 때 거기에 답을 해 봐. 그러면 어쩌면 고통받는 시간이 조금은 단축될 수도 있을 테니까. 여섯 시진 동안 계속 고통의 강도를 키워나갈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게 네 시진으로 끝낼 수도 있겠지.”
“……!”
제갈미령의 턱이 빠진 듯 입이 벌어졌다.
그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말에 정신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고 싶었지만 다시 찾아온 고통에 몸을 떨었다.
손을 잡힌 채로 몸이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그만하시오. 제발 그만하시오. 말하겠소. 다 말하겠소! 연가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말할 테니 제발 이 손을 놓으란 말이오!”
그의 눈에서는 어느새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쉿. 아직은 질문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 괜히 시끄럽게 떠들면 네 목을 부러뜨릴 수도 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지금 분타에 제갈세가 놈이 너만 있는 게 아니잖아? 네가 계속 시끄럽게 떠들면 너를 죽이고 새로운 놈을 데려올 수도 있어. 사람들이 제갈세가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정말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으로. 정말 똑똑한 놈으로.”
“으으으으으!”
제갈마령은 말을 하지도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이러다가 곧 의식을 잃을 것 같았다.
차라리 의식을 놓는 것이 편할 것 같기도 했는데 그렇게 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면 제 몸에 사지가 제대로 붙어 있기는 할까 해서 걱정이 됐다.
생전 이런 두려움은 처음이었다.
서도진에 대해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가, 그가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던 정보가 이럴 때 이렇게 몸을 옥죌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당채운은 아진이 고문하는 모습을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때로 고문은, 그것을 당하는 사람보다 옆에서 그 모습을 봐야 하는 사람에게 더 큰 공포를 안겼다.
지금의 당채운도 그랬다.
제갈마령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을 까뒤집을 때마다 그는 그 일을 당하는 것이 자기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몸이 벌벌 떨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치고 있었는데 자신은 그것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진은 시간을 들여 제갈마령의 손가락 열 개를 전부 다 부러뜨리고 손가락을 꺾어 뼈를 발라냈다.
가루처럼 분쇄된 뼈가 아진의 손에 훑어져서 나왔다.
“남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놈들은 똑같은 취급을 받아봐야 남이 당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법이지. 사람들은 제갈세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알았다면 네놈들을 두고 하늘이 내린 두뇌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겠지. 네놈들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잖아.”
“……!”
제갈마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그는 숨을 내쉬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거친 숨을 급하게 내쉬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과 어깨가 크게 오르락거렸다.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이 소름 끼치는 통증을 어떻게 해야 떼어낼 수 있는 건지 그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만 알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손가락이 끝난 후에는 손등이었고 그 후에는 팔이었으며 어깨 아래에서 팔이 뽑혔다.
그리고 팔이 겪은 일을 다리가 그대로 다시 겪었다.
제갈마령의 눈에서는 눈물이 쉴새 없이 떨어졌다.
한두 방울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장맛비가 내리는 것처럼 줄줄줄, 굵은 눈물이 계속 이어져 쏟아진 것이다.
“살려…… 살려 주십시오…… 제발 살려 주십시오…….”
흐느껴 울면서 그가 애원했고 마침내 아진이 손을 멈췄다.
“좋다. 제갈세가의 정보각이 모은 자료. 거기에 대해 말해라. 연가장이 습격을 받을 거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제갈마령은 금방이라도 쓰러져 죽을 것처럼 고통에 휩싸여 있었으면서도 지금이 자기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며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자들이…… 그자들이 고르는 것은 무가가 아닌 살수단인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전국에 있는 살수 단체를 전부 조사했습니다. 규모와…… 실력과…… 단체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놓은 분류에 따라서 나누기도 하고…… 그게 지역마다 정말 많았습니다. 맨 처음에는 그동안 변고가 일어난 무가를 중심으로 조사를 하다가…….”
그의 이야기는 한동안 길게 이어졌다.
무가를 조사하는 것에서는 한계가 있었고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애써서 공통점을 찾아낸다고 해도 나중에 다시 새로운 사례를 대입하면 그 원칙에서 어긋나는 것이 발견되었다.
규칙을 알아내지 못하면 안 되는 제갈세가인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가혹한 시련이었을지 족히 상상이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고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점점 초조해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살수 단체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일을 벌인 살수 단체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각 살수 단체에 대한 정보를 모두 기록해서 그걸 대조했는데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공통점이 나타났습니다.”
제갈마령은 자기가 처한 상황과 다르게 웃음을 지었다.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얼굴이었다.
“무엇이었느냐.”
“그 살수단 모두, 일이 일어나기 한 달 전쯤에 특급 살수가 생겼습니다.”
“특급 살수가 생겨?”
“예. 살수들은 보통 급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급 살수와 일급 살수가 대부분의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지만 특급 살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살수 단체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급 살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가.”
“무공 실력과 함께 살행의 성공률을 고려합니다. 무공 실력만 높다고 특급 살수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만 무공 실력은 반드시 좋아야 합니다. 몸을 숨기고 있다가 적에게 들키고 전면전에 나서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자는 두말할 것 없이 특급 살수의 요건을 갖추겠지만 대부분은 조직에서 정한 살행 성공률을 달성할 경우에 특급 살수가 됩니다.”
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특급 살수를 목전에 둔 일급 살수에게 임무가 주어지고 살수가 임무에 성공하고 돌아온 날. 저희는 그 일이 벌어졌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일?”
“예. 저희는 벌레가 그때 살수의 몸에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의뢰는 벌레를 이식하기 위한 장치였던 건가?”
아진은 설마라는 생각으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른 채 물었다.
“저희는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살행을 통해 벌레가 살수에게 옮겨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다른 살수들에게도 퍼졌을 겁니다.”
“살수들은 평소에 같이 활동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퍼졌다는 거지?”
“저희도 그 생각을 했는데 살수의 유족들에게 탐문을 한 결과 일이 생기기 얼마 전에 이례적으로 회합이 열렸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곳에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제갈마령은 얘기를 하다가 자기가 고통 없이, 숨이 차는 것도 없이 이야기를 편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 느낀 그 지독한 통증을 안고 말을 해야 했다면 벌써 몇 번은 숨을 헐떡거려야 했을 텐데 그런 것도 없이 수월하게 말을 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제갈마령은 아진이 자신의 혈 몇 개를 점해서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해 두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을 부수는 것도, 통증을 제거하는 것도 이렇게 간단하게 하다니…….
제갈마령은 새삼스럽게 아진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그때 벌레가 퍼졌다고 생각하나.”
“예.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인근의 무가를 공격했을 때 살수들의 몸에 벌레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가는 어떻게 정해진 것인가.”
“살수 단체의 본거지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무가 중에 일정한 규모 이상인 곳으로 선택한 것 같았습니다. 연가장이 이번 일의 희생자가 될 거라고 정확하게 안 것은 아니었고 최근에 특급 살수가 나온 살수 단체의 인근에 있는 무가 중에서 무인의 수가 팔십 명이 넘는 무가를 추렸습니다. 거기에 해당하는 무가가 세 곳이 있어서 저희는 세 곳에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살수 단체에 특급 살수가 생긴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살수 단체에도 좋은 일이기에 적극적으로 의뢰인들에게 알립니다. 저희는 자체적인 정보망을 통해서 알아냈습니다.”
아진은 당채운을 바라보았고 당채운은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건가 하는 표정으로 아진을 보았다.
“너희가 그동안 모았던 정보와 자료를 모두 지금 즉시 현무단에 제공해라. 그리고 너희는 앞으로 그 일에 일절 관여하지 말고 사죄해라. 무림맹에 이 일의 전말에 대한 보고서를 보내야 할 것이다.”
“…….”
제갈마령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무인들의 목숨을 담보로 구슬을 얻으려고 한 것이 알려진다면 무림맹에서 요직을 잃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파의 모든 무인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게 될 수도 있었다.
이미 그들이 저지른 일 자체가 정도를 크게 벗어났기에 그 사실이 밝혀진다면 크나큰 타격을 입게 될 거라는 것이 자명했다.
제갈마령의 고뇌는 깊어졌다.
그게 저 하나의 목숨을 내놓고 끝낼 수 있는 일이라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갈등이 이어졌다.
“대답해라.”
“저는…….”
제갈마령이 망설이자 아진이 다시 한번 말했다.
“대답해라.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없다면 네 놈의 목숨은 내가 거두어 주겠다.”
스스로 삶을 마감할까 했을 때는 가문을 위한 숭고하고 고결한 결단인 것처럼 느껴지며 자기 자신에게 명분도 생겼지만 일단 위협을 받고 나니 잠시 유지되던 평정심이 전부 요동치는 것 같았다.
“하, 하겠습니다. 할 테니 살려 주십시오.”
“아니. 못 할 것 같아. 손이 이렇게 돼 버렸는데 보고서는 어떻게 쓰려고?”
“소협. 제발 살려 주십시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제갈마령은 구차하고 굴욕적일 정도로 아진에게 매달렸다.
그러자 다시 한번 잔인한 웃음이 아진의 얼굴에 걸렸다.
“살려 달라는 말.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닌데.”
제갈마령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지 못한 채 아진을 바라보았다.
이내 아진의 손이 제갈마령에게 다가왔는데, 제갈마령은 아진이 혈을 풀었다는 것을 그 즉시 깨달았다.
고통을 잠재우고 있던 혈이 풀리자 제갈마령은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어떤 통증은, 그 지대한 강도로 인해 사람의 정신을 나가게 할 수도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지금 제갈마령은 그 경계에 놓여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소름 끼치는 비명이 대기를 뒤흔들었고 다른 곳에 있던 이들도 그 소리를 넉넉히 들었다.
살아 있는 자들.
특히나 무림맹 분타에 있던 제갈세가의 무인 중 몇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다른 짐승의 살을 뜯어 발기던 맹수가 몸을 돌려 저희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