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144화
“나를 볼 때마다 남궁세가주가 짓던 표정이 있었네. 패배자를 경멸하며 바라보는 눈이었지. 그 눈을 하고는 매번 나한테 물었었네. 무령독화는 찾지 못했나, 라고. 그렇게 쉬운 일이면 자기가 찾던가!”
그는 한참이나 더 불평을 쏟아 냈지만 나중에는 순순히 무령독화에 대해 얘기를 해 주었다.
그는 무령독화로 약을 만드는 법을 완성해 두었다.
재료가 없는데도 그것으로 약을 만드는 법을 완성했다는 게 희한했지만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남궁세가주는 무령독화를 얻고 싶어 해서 황궁비고에 있는 책에까지 접근해 무령독화에 대한 내용을 전부 모아 두었다고 했다.
“남궁세가주는 자기가 스스로 검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던 것 같아. 그리고 어느 독문 고수와 우연히 비무를 했던 경험 때문에 독공에 깊이 빠져 있었지. 무령독화만 있으면 독공으로 대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네. 그리고 무령독화를 사용해서 내공도 증진하고 싶어 했고.”
문주는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말했다.
“세가주의 내공이 이갑자가 넘었는데 무령독화를 복용하면 다시 일갑자의 내공을 더 갖게 되는 거였지. 그 정도의 내공이 받쳐진다면 상승무공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더욱 거기에 매달리게 됐을 거야.”
그러다가 그가 문득 말을 멈추고 아진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짐작도 하지 못한 것 같더니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뒤늦게 깨달은 얼굴이었다.
“무령독화를 찾은 거군! 지금 무령독화를 갖고 있는가!”
그의 말에 아진은 린린을 바라보았다.
아니라고 할 거였다면 그냥 문주를 본 채로 아니라고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린린을 바라본 것으로 그것은 문주에게 대답이 되었다.
“그걸 가지고 있다면 나에게 맡겨 주면 안 되겠는가. 내가 아니면 그걸로 약을 만들 수 없네. 그리고 그건 약을 만들지 않으면 복용할 수가 없네. 나는 무령독화에 있는 독기를 중화하면서 흡수하는 방법을 40년 넘게 연구한 사람이네. 그리고 그걸 알아냈어. 나를 믿고 맡기게.”
문주의 눈이 무섭게 이글거렸다.
그 집착과 열정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오랜 가뭄 끝에 멀리서 밀려오는 구름을 발견한 사람의 눈이 그럴까.
그는 아진을 붙잡고 말했고 아진은 문주를 바라보았다.
희한한 운명이었고 신기한 인연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진은 그를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문주는 아진의 대답을 듣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꼭 미친 사람 같았는데 뭘 하려고 그러는 건지 묻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문주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돌아올 때는 약재가 수북수북 품에 안겨 있었다.
“무령독화의 독기를 중화시키려고 내가 찾아놨던 조합이…… 금계국과 송엽국도 있어야 하고. 가만. 송엽국이 어디에 있더라?”
노인의 몸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재빠르게 이리저리 오가며 찾아온 것이 어느덧 바닥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자. 이제 내놓게.”
문주가 말하자 아진이 순순히 목함을 내밀었다.
“저는 계속 여기에 있을 겁니다.”
“나를 겁박하려고 하는 거면 그런 소리는 할 것도 없네. 자네가 보기에 이제 내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어디로 갈 수 있겠나? 여기에서 무령독화로 약을 만들어 주고 나는 산본으로 갈 걸세. 산본으로 가서 산본신의를 찾아가 나를 받아 달라고 하겠네. 의생이건 의학당의 문하생이건 뭐든. 어차피 갈 데도 없어.”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그는 오히려 이상할 게 전혀 없다는 태도였다.
“자네 때문에 생긴 일이네. 자네가 그걸 가르쳐줘서 내가 북궁세가의 삼공자 말을 안 듣지 않았는가. 그래서 지금 내 목숨이 위험하다는 말일세. 그러니 그곳에 가서 의탁이라도 해야지.”
얼마나 당당한지 아진도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문주가 산본의가에 가서 자신이 가진 의술을 가르쳐 주기만 한다면 그 상승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 같았다.
린린을 보자 린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지만 제선문이라는 경쟁자가 있어서 산본의가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었는지 그것을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이제부터는 뭘 하면 됩니까?”
“먹을 걸 준비해. 나는 지금부터 불 앞을 떠날 수가 없으니까.”
“……예.”
아진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따랐다.
약을 만드는 일이 이십 일이 넘게 걸린다는 것을 아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직 무령독화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다른 약재를 섞어 만드는 것에만 그 시간이 걸렸다.
문주는 쓰러지지 않는 것이 용하다 싶을 정도로 기를 쏟아부었다.
“그런데 문주님. 무령독화의 뿌리만 팔아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그냥 무령독화로 약을 만드는 게 더 낫다고 확신하세요?”
나중에 아진은 문주에게 그런 것까지 묻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문주에게 숨길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네가 보검을 만들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사람인데 성 한 채의 값과 맞먹는 만년한철을 구했다고 생각해 보게. 자네는 그걸 성 한 채 값을 받고 팔 텐가? 아니면 자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서 검을 만들 건가?”
“검을 만들어야죠.”
“그럼 나는 자네 질문에 따로 답을 하지 않아도 되겠군.”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나눈 얘기에서 중요한 전제가 되는 것은 보검을 만들 재주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였다.
문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보검을 만들 재주를 가진 사람.
아진은 이제부터 문주를 믿기로 했다.
문주가 만든 보검이 당분간은 성 한 채 값은커녕 성의 문짝만 한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는 것도 문주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만든 보검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었다.
아진도 마찬가지였다.
“이놈이 너무 날뛰어서 목함에 넣어두었습니다.”
“어떻게 제압을 했었나.”
“점혈을 했습니다.”
그러자 문주가 큰 소리로 웃었다.
“나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네. 역시 내가 생각한 게 맞군. 목함을 열게. 내가 침을 놓겠네. 그래도 살아 있는 놈을 그대로 약재로 쓰면 안 되지. 원한이 다 담길 텐데.”
“문주님. 그건 제가 하는 게 어떨지…….”
아진은 좀 더 성공 가능성을 높여 보려고 말을 한 거였지만 문주도 만만치 않았다.
“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나를 믿는 게 좋네. 자네가 무령독화에 대해 알게 된 게 언제부터인가.”
그 말에 아진도 반박할 말이 없었다.
“나는 준비가 됐네.”
문주의 말에 린린도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목함 옆으로 다가왔다.
커다란 솥에서는 약재 달인 물이 진하게 끓고 있었고 이제는 무령독화를 넣기만 하면 되었다.
긴장감이 흐르는 동안 아진이 목함을 열었고 문주가 침을 놓았다.
처음에는 무령독화가 날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고 그 후에는 의식을 잃도록 목함을 완전히 연 채 여러 곳에 빠르게 침을 놓았다.
그런 속침은 아무리 도종이라고 해도 흉내를 못 내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침을 빼고 무령독화를 솥에 넣은 후에 뚜껑을 닫았다.
“지금부터는 불 조절에 집중해야 하니 말을 시키지 말게.”
그로부터 다시 이십 일이 넘게 지났다.
아진은 문주가 죽을까 봐 계속해서 먹을 것을 옆에 두고 입에 넣어 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굶었다는 것도 잊은 채 문주가 계속 불만 때고 있을 것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무령독화를 얻은 것도 천운이었지만 문주를 만난 것도 만만치 않은 행운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진과 린린 두 사람은, 문주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무령독화의 기운을 완전히 가둘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아이고. 죽겠다.”
마침내 오랜 작업을 마치고 문주가 말했다.
너무 고되다는 뜻으로 말을 한 것이겠지만 정말 죽을 것처럼 보여서 아진은 그에게 마나를 불어넣어 주었다.
문주는 그런 아진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제선문주에게 마나를 불어넣어 그의 활력을 되찾아 주고 있다는 것이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지만 아진도 웃었다.
“다 되었습니까, 문주님?”
“그래. 다 되었네. 우선은 자네들 두 사람이 복용해야겠지?”
그 말에 아진과 린린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령독화로 약을 만든다는 생각만 했지 그것을 자기들이 복용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내공이 부족하다는 경험을 거의 한 적이 없는 아진이라서 더 그랬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문주에게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내공이 부족하지 않았다면 짝눈 아저씨를 그렇게 잃지도 않았겠구나.’
“내가 장담하네만 이걸 복용하면 90년 치의 내공이 증진될 거네. 내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아니었으면 절대 이렇게까지 만들지는 못했을 거야.”
“90…… 년 치요?”
30년 치의 효능을 중복해서 두 번 쓸 수 있다고 했었으니 최대가 60년이었는데 문주는 거기에서 30년의 내공을 더 늘려버렸다.
그런 것에 별로 욕심을 내지 않는 린린도 그때는 어느 틈에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영약을 복용하는 것은 내가 도와줄 수 없네. 진기도인인가 하는 그런 게 필요할 테지만 그건 두 사람이 서로 해 주면 될 것 같고. 그렇지?”
문주는 기대가 되는 듯했고 그것은 아진과 린린도 마찬가지였다.
일단은 두 사람이 먹고 그다음에는 스승님과 사고님, 그리고 소청이에게 가져다주고 그동안 산본의가를 지켜주었던 천이재와 북리세가의 무인들, 독고세가의 무인들에게도 주겠다는 생각에 아진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면서 문주의 곁을 얼쩡거렸는데 문주 역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며 솥을 열었다.
“……문주님?”
아진은 솥이 빈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문주를 불렀다.
린린도 덩달아 놀라서 문주의 팔을 잡았다.
“문주님. 무령독화가 다 어디에 갔어요?”
“여기에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나?”
문주는 그렇게 말하더니 나무 주걱으로 솥 바닥을 벅벅 긁어서 손가락 한 마디만큼 뭉쳐지는 끈적한 것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이 먹기에는 충분할 거네. 두 개를 똑같이 가르도록 하지. 큰 걸 먹는다고 내공이 하루 치가 더 는다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으하하하.”
문주는 두 사람이 어떤 부분에서 놀랐는지는 아는 바가 없다는 듯이 동그란 환을 만들었다.
“그…… 그 비싼…… 무령독화로 영약을 달랑 두 개를…… 만드셨다는…….”
아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하자 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돈을 가지고 뭘 할 텐가. 여기 있는 두 사람이 강해지면 그게 더 나은 게 아닌가?”
“그럼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처음부터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러면 생각이라도 해 볼 수 있었을 텐데요.”
“아니야. 그러면 아마도 안 한다고 했겠지. 나를 믿게. 이 결정은 잘 한 거네. 어서 준비하게. 식는다고 약효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따뜻할 때 먹어.”
아진과 린린은 서로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문주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