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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175화 (175/470)

제175화

175화

그것을 막기 위해 귀검사영은 몇 번이나 검을 이리저리 돌리며 막아야 했다.

제 의도대로가 아니라 죽지 않으려고, 공격을 막아내려고 그렇게 급하게 검을 휘두른 게 언제 적 일인지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았다.

“……!”

상대라고 쉽게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벌레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놈이군.”

호법의 도발에 귀검사영은 화가 나 날뛰었다.

“그게 너에게 행운이었을까?”

호법의 말은 다시 이어졌다.

실전의 경험이 없이 수련만 계속해 오던 사람을 만나서 싸우면 이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검사영이 절대 실전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압도적인 실력과 무위를 갖고 있다 보니 목숨을 걸고 싸울 일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내키는 대로 검을 휘둘러도 목숨이 위협받는 적이 없다 보니 어느덧 전투에서 필요한 많은 부분이 퇴화해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아니었고 너무 강해진 몸으로 살아오면서 안이해진 것뿐이었기에 얼마 안 가서 그것들을 다시 터득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팽가의 호법은 그때가 되기 전에 싸움을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서둘렀고 아직 자신에게 내공이 남아 있을 때 끝을 내려고 몰아붙였다.

끝을 내는 것.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일인지.

충독을 가져 자신만의 무위가 이미 절대의 경지에 이른 데다가 옆에 차고 있는 항아리에서 벌레를 꺼내 사람들에게 넣는다면…….

그 생각이 든 순간 팽가 호법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지나갔다.

‘다른 걸 노릴 게 아니다. 저걸 노리자!’

그리고 그는 주위에 자신을 도울 사람이 없는지 찾았다.

있었다.

독고소영이.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자의 항아리를 같이 노리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귀면을 상대하고 있던 독고소영은 주위에 다른 이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귀면을 맡기고 팽가의 호법에게 다가왔다.

귀면은 이미 벌레를 사용했고 그 때문에 그곳의 상황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었다.

북리의천만 해도 벌레의 숙주가 된 이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부지런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성을 지키던 관군들이 이제는 벌레의 숙주가 되어 자기들을 도우러 온 사람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참혹한 일이었지만 그들을 죽이지 않고는 싸움을 끝낼 방법이 없었다.

독고소영은 팽가 호법의 말을 듣고 아직 이쪽에서는 벌레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선제적으로 대응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고 생각하며 달려왔다.

귀검사영은 그들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동안 벌레를 얼마나 아꼈는데 이제 와서 허망하게 그것들을 잃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귀검사영은 검 하나를 팽가의 호법에게 던졌다.

공력을 힘껏 불어 넣고 호법을 먼저 처리해 버리려고 생각하며 던졌지만 그것은 독고소영의 검을 맞고 튕겨 나갔다.

호법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속도와 강맹한 위력 때문에 자기 힘으로는 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독고소영이 궤적에 파고들어 튕겨 주었던 것이다.

귀검사영은 독고소영을 노려보았다.

정파 무림인에 대해서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그녀가 누구인지는 알 것 같았다.

“빙소검후……?”

독고소영은 귀검사영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호법은 귀검사영을 향해 날카롭게 칼을 밀어 넣었고 귀검사영은 혀를 차며 몸을 날려 피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위험하지도 않은 공격이었고 그저 귀찮기만 할 뿐이었지만 그것은 귀검사영의 움직임을 노리고 한 동작이었고 독고소영은 호법이 만들어 준 기회를 살렸다.

귀검사영은 별 생각 없이 바닥에 착지하려 하다가 자기가 내려설 곳에 독고소영의 검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이런!”

귀검사영이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렸다면 허공에서 몸을 다시 띄우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는 자신감이 넘쳐나는 상태였고 아직 그렇게까지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귀검사영의 옆구리에 검이 지나갔다.

검상은 깊었고 귀검사영은 피를 쏟아 내며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젠장!”

그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작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독고소영은 거기에 조금도 만족하거나 기뻐하지 않았다.

아직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독고소영의 공격은 쉬지 않고 밀려들었다.

귀검사영은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저 멍청이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건가 해서였다.

이러다가는 별수 없이 벌레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찰나 그의 항아리를 노리고 호법이 칼을 휘둘렀다.

“이크!”

귀검사영이 뒤로 풀쩍 뛰며 헛숨을 급히 들이쉬었다.

그러나 그가 자세를 채 바로 하기도 전에 독고소영의 검이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귀검사영의 몸이 흔들렸고 독고소영이 항아리를 노렸다.

귀검사영은 바닥에서 뛰어올라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그의 다리가 독고소영의 얼굴을 걷어찼고 그녀의 몸이 저만치 날아갔다.

호법이 독고소영을 쳐다봤지만 그녀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자기는 괜찮으니 어서 귀검사영의 항아리를 깨라는 듯했다.

호법은 근처에 있던 나무 기둥을 발로 차고 반탄력을 이용해 귀검사영을 향해 날아들었다.

검과 호법이 하나로 몸을 이루어 날아왔지만 귀검사영은 호법보다 더 빠르게 그를 향해 짓쳐들었다.

그 상태로는 호법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독고소영은 진탕된 내기를 갈무리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몸을 날렸다.

귀검사영은 호법을 죽여 버리겠다고 결심했지만 독고소영 때문에 궤적을 바꿔야 했다.

“이런 찢어 죽일 년!”

귀검사영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귀면을 노리고 싸우던 사람들이 이쪽을 보았다.

빨리 독고소영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벌레의 숙주들이 악귀같이 덤벼드는 탓에 그러지도 못했다.

독고소영은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진이 사도련주를 상대하고 있었다.

린린과 소청이 아진을 적절히 돕고 있어서 어쩌면 오늘 이 일이 전부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도련주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도련주 자신의 무위 수준은 오히려 그렇게 높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다른 두 명의 대제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그들은 이미 아진 일행에게 죽었거나 도망친 듯했다.

‘이놈만 끝내면 돼.’

각자의 대제들이 얼마나 많은 벌레를 가졌는지 단순히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 막을 수 있다면 성공 가능성은 훨씬 커질 거라고 생각하며 독고소영은 다시 귀검사영을 노렸다.

귀검사영은 항아리를 지키면서 싸우는 것이 이제 어렵게 됐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지키려다 보니 방어적으로 굴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힘을 다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 귀찮게 구네.”

귀검사영이 말하고 갑자기 멈춰섰을 때 독고소영은 긴장했다.

귀검사영의 기세가 조금 전과 완전히 바뀐 것이 느껴진 것이다.

독고소영이 뭔가를 할 틈도 없이 귀검사영의 신형이 위로 솟구쳤다.

그의 손은 어느새 항아리의 뚜껑을 열고 그 아래에서 벌레를 꺼내고 있었다.

처음에 당한 사람은 팽가의 호법이었다.

“귀찮게 군 대가다.”

호법은 귀검사영이 언제 온 건지도 모른 채 그에게 제압되었다.

귀검사영이 팔로 호법의 목을 조인 채 호법의 몸을 뒤로 반쯤 넘겼다.

“이제 너는 내 노예가 되는 거다.”

귀검사영이 말하고 손가락을 갈퀴처럼 구부린 채 호법의 가슴을 뜯어냈다.

“으아아악!!”

호법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그쪽을 보았지만 귀면의 벌레에 의해 숙주가 되어 조종당하는 사람들 때문에 완전히 발이 묶여 있었다.

성벽 위에 있던 린린이 먼저 그곳으로 뛰어 내렸지만 귀검사영이 한발 빨랐다.

벌레가 호법의 안으로 들어갔다.

“크으으아악!”

호법의 몸이 기이하게 꺾였다.

그러나 몸부림은 오래지 않아 멈췄다.

호법이 다시 반듯하게 섰을 때 독고소영은 호법이 벌레에게 조종당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껏 함께 합격을 하던 사람을 이제는 그녀가 죽여야 했다.

감정적인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지만 그녀는 입을 앙다물었다.

‘다음에 사과할게요. 대협.’

독고소영은 속으로 말하고 검을 들었다.

귀검사영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린린이 독고소영의 옆에서 도우려 했을 때 성벽에서 소청이 떨어졌다.

“린린. 가서 소청을 도와! 의천이 올 거다.”

독고소영의 말에 린린은 오래 생각하지 못하고 귀검사영과 독고소영을 돌아보다 몸을 돌렸다.

숙주 몇이 소청을 향해 달려들었고 린린의 신형이 그 앞에서 나타나 소청을 안고 솟구쳤다.

독고소영은 그 모습을 빠르게 훑고 나서 귀검사영을 보았다.

귀검사영은 얄궂게 웃으며 호법을 구경했다.

“이년을 죽여라. 갈가리 찢어서 죽여라.”

호법은 그 명을 듣고 바닥에서 솟구쳤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힘이 안에서부터 폭발하는 것에 놀라고 감동한 듯 그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바닥이 솟구치고 땅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그것이 떠올랐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그의 압도적인 힘으로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

“으아아아악!”

호법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도가 맹렬히 불을 뿜었다.

귀검사영을 노리고 펼쳐졌던 수법이 이번에는 독고소영을 향해 펼쳐졌다.

섬전처럼 쏘아진 칼날이 독고소영을 노렸고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그의 칼을 피했다.

찰나의 차이였다.

그녀의 얼굴에서 땀방울이 흘러 떨어져 내렸다.

‘제법이군.’

호법은 이리저리 날뛰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 같았다.

신형이 빛살처럼 쏘아졌고 그때마다 그녀의 목을 노렸다.

나중에는 생각의 과정도 없이 몸을 굴렸다.

칼에 베이고 사지가 떨어져 나간다고 해도, 끔찍한 통증이 갑자기 느껴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수많은 대련과 수련으로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뿐이었고 그로 인해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것뿐이었다.

호법의 칼이 짓쳐들었을 때 그녀는 검을 들고 그것을 막아냈다.

괴력이 팔을 타고 전해졌다.

호법은 더 이상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손이 점점 밀렸다.

이러다가는 당한다고 생각하며 독고소영은 호법을 발로 걷어찼다.

공력을 실어 온 힘을 다했는데도 호법은 아주 조금 비틀거렸을 뿐이었다.

적어도 오장 가까이 나가떨어져야 했는데 그의 발은 뿌리를 내린 듯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그때부터 호법은 무서운 속도로 칼을 휘둘렀다.

‘제발!’

독고소영은 저도 모르게 귀면이 있는 곳을 보았다.

정의맹과 무림맹에서 함께 온 명숙들이 피를 쏟으며 쓰러져 있었다.

몇 명은 몸에서 사지가 떨어져 나가 있었고 이미 죽은 듯 꿈쩍도 하지 않는 이도 보였다.

지원을 기다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 역시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서서 검을 휘둘렀다.

폭발적인 기운은 내공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내공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고강한 초식이 펼쳐졌고 호법의 칼을 몇 번 막아냈다.

이제 비틀거리고 뒤로 밀려나는 일이 점점 더 잦아졌다.

‘곧 끝나겠군. 끈질기게도 버티더니.’

그 모습을 보던 귀검사영은 징그럽다는 듯이 고개를 저어대며 생각했다.

귀검사영은 더 이상 벌레를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만약 그때 북리의천이 벌레의 숙주들 셋을 한꺼번에 터뜨려 버리고 귀검사영을 노리며 몸을 날려오지 않았다면 그는 그 정도에서 멈출 생각이었다.

어차피 싸움은 끝날 것이고 승리는 자기들의 것이 될 거라고 여겼다.

귀검사영은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을 움직였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그의 몸을 저절로 움직이게 했다.

득달같이 달려든 귀검사영이 독고소영을 노렸지만 그녀는 몸을 피했다.

그러나 귀검사영이 공력을 아끼지 않고 연거푸 그녀를 노리자 서서히 내공의 소진을 느껴 가던 독고소영의 발이 엉켰다.

사실 그때까지 버티고 서 있었다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의천이 도와주러 올 거라는 생각으로 그녀는 계속해서 버티고 버텼다.

귀검사영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안 돼!”

독고소영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서걱-.

검이 그녀의 복부를 갈랐고 귀검사영의 벌레가 뛰어들 듯이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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