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 의선되다-237화 (237/470)

제237화

237화

“그러면 위조된 황금 문제는 어찌할 것이냐. 아진아.”

“그것은 전부 만전을 통해서 유통되었습니다. 만전이 대가를 받고 황금을 받은 것도 아니니 만전이 단리서언에게 황금을 받기 이전으로 상황으로 되돌리면 됩니다. 만전은 다시 황금 사만 관의 빚을 지는 것으로 하고 만전에서 돈을 받아간 사람들은 다시 받아가면 됩니다. 단리서언이 그 외에도 황금을 더 유통했다면 그건 문제가 될 것이지만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왜이냐.”

“누군가 황금을 위조할 수 있는 술법을 아는데 지금까지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을 행하는데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는 의미가 됩니다. 구하기 어려운 재료가 들 수도 있고 다른 대가가 필요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단리서언은 황금의 가치보다 위조된 황금이 유통되는 것으로 야기되는 혼란을 위해서 그것을 만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짐을 흔들기 위해 그자도 대가를 치른 것 같아서 짐도 속이 좀 시원해지는구나.”

“예. 폐하. 만전에서 황금을 받은 이는 모두 기한 내에 황금을 가져와 눈앞에서 폐기하도록 하시지요. 어차피 그때는 이미 황금이 아닐 것이라 그들도 가지고 올 것입니다. 손해가 클 거라고 생각하기는 하겠지만 일단 변색해 버린 황금은 황금이라고 속여서 유통할 수도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겠지요.”

“그렇구나. 너무 간단한 해결책이라 짐이 바보가 된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염빈과 정빈도, 설인정도 멍하니 아진과 황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한다면 정말로 새로 손해를 보게 될 이가 없었다.

홍성루에 가짜 황금으로 입회비를 낸 사람들은 새로 황금을 가져다주어야 하겠지만 그 돈은 만전에서 받으면 되니 거기에서도 손해가 생겼다고는 할 수가 없었다.

“일이 순식간에 바로잡힌 것을 알면 단리서언이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하구나.”

“아진이 이 일의 배경을 알아내지 못했으면 훨씬 복잡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금자가 아니라 황금이라는 것도 한몫한 것 같고 말입니다. 황금 한 관을 쓸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적지 않은지요, 폐하.”

“그렇지. 홍성루에도 여러 개가 들어온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고 보니 가장 큰 수혜자는 루주인 것 같구나.”

설인정은 황제와 선이남의 대화를 들으며 멍하니 있다가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마터면 위조된 황금만큼 그대로 손해로 떠안게 될 뻔했다가 돈을 되돌려받을 근거가 마련되어서였다.

“황금으로 입회비를 내고 갔던 사람들은 모두 왔습니까?”

아진이 궁금해서 묻자 설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의위에서 함께 나가 그 일을 설명해 주었더니 펄쩍 뛰고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기는 했습니다. 돈은 다시 가져다주기로 했어요.”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아진이 하월을 보았다.

“만전에서 돈을 받아간 사람들이 누구인지 목록이 필요하오.”

“바로 써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설인정이 지필묵을 가져오겠다고 말하며 사라졌다.

“염빈. 정빈. 오늘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 주려고 했는데 어떤가. 마음에 드느냐.”

“폐하. 상상도 하지 못한 즐거움입니다. 폐하의 곁에 이렇게 귀한 동량이 있다는 사실에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그래. 사실이다. 이번에는 단리서언 그놈에게 짐이 제대로 얻어맞을 뻔했는데 정말 통쾌하구나.”

“그런데 그자를 그냥 두실 것인지요. 폐하.”

염빈이 화가 난다는 듯이 부들부들 떨며 말하자 황제가 웃었다.

“염빈. 짐은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에 짐을 향해 노여운 눈빛을 한 사람이 있으면 그 눈빛까지도 기억하지. 그런데 하물며 단리서언을 가만두겠느냐. 그놈이 있는 천마신교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돌 하나도 겹쳐지지 못하도록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다.”

아진은 황제와 개인적으로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겠다고 생각했고 하월은 황제의 말을 들으면서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황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않았으면서 자기가 무슨 생각을 했던가 하는 생각에 허허실실 웃음이 나왔다.

황제의 시선이 그런 하월을 향해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하월은 어떻게 할 것이냐. 아진아. 정말 황후의 태감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냐.”

“구문제독이 실제로 그 일을 추진하기도 해서 그렇게 해도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태감이 되려는 자들이 응당 거치게 되는 단계는 건너뛸 수 있도록 아량을 베풀어 주셨으면 합니다만 특히 제가 하월에게 가르치려는 무공에.”

아진은 말을 하다 말고 염빈과 정빈을 힐끔 보았다.

그들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해도 될까 해서였는데 염빈과 정빈은 이야기가 막 흥미진진해지다가 갑자기 멈추자 손사래를 쳤다.

“우리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고 말을 하게. 우리는 없다고 생각하도록 해.”

“그래. 맞네. 일부러 우리를 능멸하려고 하는 말도 아니지 않은가. 다 이해하네.”

염빈과 정빈이 서둘러 말하자 황제가 웃었다.

“오늘 염빈과 정빈이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구나. 그래. 아진아. 계속 말을 해 보도록 해라.”

“예. 폐하.”

아진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하월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는 듯했다.

생전 자신의 하초(下焦)가 이렇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던 차에 그가 느끼는 수치심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하초를 살리자고 하는 일이라 아진을 원망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살려만 준다고 하면 정말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이를 떠나서 형님으로 모실 수도 있을 듯했다.

“좋다. 짐은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 짐이 알기로 동창의 무공은 음의 기운이 강하다. 심법과 무공이 그런 식으로 발달했다고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편견이 아니라 그리될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하월은 다른 것이지.”

“예. 폐하. 제가 생각한 것도 그것입니다. 사람들이 하월에게 기대할 수 없을 무공을 가르칠 것입니다. 그리고 태감이 된다고 해도 동창에서 하월을 전적으로 신뢰하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하월이 구문제독의 아우라는 것을 생각하자면 동창에서는 하월을 믿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자 황제의 눈이 커졌다.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라면 구문제독이 하월을 아우가 아니라 철천지원수라고 여기겠다고 생각하겠구나. 하월이 제 가문을 등지고 동창에 협력하는 이유도 이해가 될 것이고 말이다. 일이 어찌 이렇게 맞아떨어진다는 말이냐. 하월에게 일어난 일이 이때를 위해서 일어난 일들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하월을 향했다.

하월조차도 그것은 대단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실상 북궁세가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하월과 구문제독의 관계가 아주 안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일이 밝혀지고 만전이 다시 빚더미에 올라앉으면 구문제독은 하월을 향해 이를 갈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하월이 태감이 되기로 하는 것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될 터였다.

“그런데 동창에서 하월 공자를 뽑아 줄지가 의문입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다면 동창이 거부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경로로 동창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들은 하월 공자를 신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이남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황제도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냐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는데 아진은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는 듯 그를 보았다.

“제가 하월 공자에게 내공을 주고 심법과 검법, 권법을 우선 하나씩 전수할 것입니다. 그만한 내공을 지닌 것을 알게 된다면 누구건 하월 공자를 탐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걸 안다면 구문제독에서도 하월 공자를 데려가고 싶어 할지 모릅니다.”

“좋구나. 그런데 동창에 들어간 후에 그 사실을 들킬 염려는 없겠느냐.”

황제가 말을 하고 정확하게 지목을 하기는 그렇다는 듯 시선을 대충 하월의 아랫도리를 향했다가 거두며 말했다.

그 후로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을 왔다가 지나가자 하월은 슬금슬금 걸음을 옮겨 제 하체를 아예 가려 버렸다.

그곳에 있은 지 오래된 것도 아니었는데 만신창이가 된 느낌이었다.

“그것은 하월에게 해결하도록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부 다 떠먹여 주면 머리가 기능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구나. 기대해 보겠다. 앞으로 정말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것 같아서 기대되는구나.”

그건 정말 중요한 문제여서 그 해답까지는 아진이 알려 주었으면 했는데 그대로 넘어가는 듯했다.

“……만약에 보자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버티면 되는 건지.”

하월이 우물쭈물하며 묻자 아진이 무심하게 말했다.

“그렇게 하시오. 압도적인 힘으로 버티고 손도 못 대게 하시오. 그러면 그들도 어쩌지 못할 거요.”

“여럿이 덤벼들고 억지로 확인을 하려고 하면 어쩝니까?”

“만약 그런 일까지 일어난다면 그때는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을 데려다가 섭혼술을 시행해서 기억을 지울 수도 있을 테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시오.”

무척 걱정되는데 그런 것까지 대신 생각해 주는 건 귀찮은지 아진의 대답은 점점 무성의해졌다.

하월도 이제부터 그런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폐하. 폐하께서 원래도 한때 하월 공자를 아끼셨고 하월 공자가 대단한 미인이기도 하니 폐하께서 하월 공자를 총애하신다고 해 두시면 어떨지요? 폐하께서 하월 공자를 어여쁘게 여기신다는 소문이 퍼지면 아무리 동창 제독이라고 해도 하월 공자에게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느닷없는 염빈의 말에 하월의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졌다.

이제는 하다 하다 남색하는 자로 꾸미라는 것인가 해서 낙심이 됐는데 황제는 박장대소를 했다.

“염빈. 참으로 영특하구나. 참으로 영특해. 그리하면 되겠다. 그러면 감히 누가 하월에게 손을 대겠는가. 그런데도 하월을 괴롭히려는 자들이 있으면 그놈들은 짐을 향해 불순한 마음을 먹은 거라고 생각해도 되겠구나.”

“그렇습니다. 폐하.”

“그래. 그리하자. 사람들은 그 말을 쉽게 믿을 것이다. 하긴. 하월이 대단한 미인이기는 하지.”

하월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만신창이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궁중 예법 같은 것은 거의 모를 것 같은데 필요하다면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다.”

염빈이 말하자 정빈도 손뼉을 치며 자기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해야 할 일이 아주 많구나. 배울 것도 많고.”

마침 설인정이 지필묵을 가지고 돌아와서 하월은 만전에서 황금을 받아간 이들의 목록과 수량도 적어 주었다.

그것을 전부 다 기억하고 있다가 써내는 것도 신기한 일이기는 했다.

“자. 그러면 다들 각자 할 일을 시작하지.”

그러다가 황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짐이 생각을 해 봤는데 이건 순전히 아진으로 인한 문제인 것 같다. 아진과 함께 있으면 일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더 큰 일이 두 가지 더 생겨나 있는 걸 알 수 있지.”

그 소리에 선이남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가 깜짝 놀라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 송구합니다. 폐하.”

“아니다. 웃기면 웃을 수도 있지. 짐은 관대한 사람이다.”

설인정은 황제의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