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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39화 (239/470)

제239화

239화

하월의 생존력은 믿기지 않을 정도여서 황후전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남들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혼자 나돌아다녔다.

저러다가 동창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내쫓기는 게 아닌가 했는데 그것까지는 아진도 더 이상 신경 써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공자. 아니. 태감.”

아진이 먼저 하월을 발견하고 다가가자 하월도 반가움을 감추지 않은 채 다가왔다.

“여쭤보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황제의 궁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해서 가르치기에 그곳이 좋아서였다.

황제도 하월을 데려오라고 명을 내린 후였기에 그들은 거리낌 없이 그곳으로 갔다.

밀영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진은 주위에 한 번 더 기막을 둘렀다.

황제는 매번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기까지 경공을 펼쳐서 왔으면서 기막까지 두르다니. 기막은 내가 둘러 줄 테니 너는 하월이나 지도해 주거라.”

“…….”

아진은 황제의 말이 고맙다기보다 미심쩍어서 안심하고 그것을 맡길 수가 없었다.

“짐은 괜찮으니 그렇게 하여라.”

황제는 아진이 자기를 믿지 못해서 그런 거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자신을 걱정해서 그런 거라고만 여기며 몇 번이나 말했다.

“제가 하는 것이 좋습니다. 폐하.”

그냥 두면 끝까지 괜찮다면서 자기가 하겠다고 할 것 같아 아진이 정색하고 말하자 황제도 나중에는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깨닫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러고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화를 냈다.

“짐을 도대체 얼마나 무시하면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이것은 황명이다. 그러니 기막 두르는 것은 짐에게 맡기고 너는 하월을 가르치거라!”

“……예. 폐하.”

아진은 정말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하월을 가르쳤고 황제는 씩씩거리며 기막을 둘렀다.

그때 선이남이 안으로 급히 달려왔다.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아진이 너. 이게 무슨 일이냐? 이런 일을 하려면 기막을 둘러야 하는 게 아니냐! 하월 공자의 기척이 다 느껴지고 하월 공자가 내공을 사용하는 것까지 알겠던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거냐!”

선이남은 그 자리에 황제가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사안이 워낙 중대해서 일단 아진을 혼부터 내고 보았다.

아진은 이제 어쩔 거냐는 표정으로 황제를 보았다.

아진은 황제가 두른 기막에 구멍이 뻥뻥 나 있는 것을 알았고 그렇지 않아도 바깥쪽에서 나는 기척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랬기에 선이남이 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황제는 그야말로 충격을 받은 듯이 선이남을 보았다.

“짐이…… 기막을 둘렀다만…… 그것이 느껴지더라는 말이냐.”

“…….”

선이남은 순간적으로 상황 판단을 끝냈다.

매사에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아진이 저지른 짓치고는 이상하다 했더니 범인은 황제인 듯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이미 땅굴을 파고 기어들어 갈 것처럼 낙심한 황제의 모습을 보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잘 오셨습니다. 형님. 형님이 기막을 둘러 주십시오.”

“그, 그래…….”

황제는 속이 상했지만 별수가 없었다.

“폐하. 그래도 폐하께서는 전음만 하시면 된다고 하다가 이제 구멍 뚫린 기막이라도 두르실 수 있게 됐으니 큰 성과가 아닌지요. 이남 형님의 무위가 높다 보니 안 것이고 이 정도면 이류의 무인들에게는 완전히 기척이 감춰졌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자기가 만든 기막의 수준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황제는 더욱 시무룩해졌다.

그러나 아진은 그때부터 하월에게 집중적으로 지도를 해 주었다.

이제 대략 이각 정도를 가르치고 나면 앞으로 하월에게 더 지도해 줄 시간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권법은 어려우면 검법에만 집중하도록 하세요. 이런 건 스스로 깨닫는 게 더 좋다고 하지만 공자는 그럴 시간이 없으니 전부 다 으깨서 삼키기만 하면 되도록 떠먹여 주는 겁니다. 심법의 성취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겠지만 공자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압니까?”

하월은 순식간에 의기소침해졌다.

심법의 성취가 워낙 빨라서 자기는 타고난 무공 천재가 아닐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 보니까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 목이 언제 떨어졌지?’ 하면서 죽을 수가 있어요. 자만하지 마세요. 나한테 배우고 이 정도면 열등아인 겁니다. 구제 불능이라는 말을 듣는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거고요.”

“거참. 말을 심하게 하네.”

아진에게 맺힌 게 있던 황제가 하월의 편을 들어 주자 하월도 조금 고개를 들었다.

“뭘 그런 눈으로 봅니까. 내가 내공을 이 정도 때려 박아 주고 검법을 이 정도로 가르쳐 준 사람 중에 절정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없어요.”

“그래도 나는 배운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배운 지 한 달이 안 됐어도 그랬어요.”

물론 그건 뻥이었지만 지금의 하월에게는 자신감이 너무 넘쳐나는 것 같아서 그것을 밟아놓느라고 그랬다.

“지금 하월 공자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남의 힘으로 흉내만 낼 수 있는 겁니다. 내공도, 심법도, 검법도. 전부 스스로 깨닫고 얻은 건 하나도 없잖아요.”

“……알았습니다.”

“깨달음이라는 건 언젠가는 그걸 그냥 지나쳐 버린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그 후회를 하지 않도록 처절하게 고민하세요.”

“예.”

하월도 아진이 괜히 시비를 걸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없는 차에 급하게 중요한 것을 많이 각인시켜 주려고 하다 보니 그런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는 더 집중하십시오. 절초 몇 개를 알려 줄 겁니다. 이미 하월 공자는 수많은 사람의 목표가 돼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는 몇 개의 절초를 알려주었다.

“이남 형님이 앞으로 종종 하월 공자를 지도해 주세요.”

“그래. 걱정하지 마라.”

“짐도 알려 주마.”

황제까지 나서서 의욕을 보였지만 하월은 아진을 보았고 아진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황상에게 배우면 안 된다는 듯이.

하월은 확실히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황제는 그것을 보지 못했고 자기가 내공 한 톨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됐는지 열변을 토했다.

“짐은 잠시 나갔다 올 것이니 여기서 연습들 하고 있거라.”

어째 생각만큼 호응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황제가 큼큼거리며 일어섰다.

황제가 나가고부터는 더 혹독한 가르침이 이어졌다.

“알려 준 걸 해 보세요. 어떤 게 안 되는지 빨리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예.”

하월이 옆에서 초식을 연습하는 동안 선이남은 그 사이에 향화문을 통해 새로 들어온 정보를 급하게 말해 주었다.

“항주는 이제 거의 정리가 돼 가는 것 같아. 도중에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알고 관이 개입하려고 했는데 검신 대협이 철저히 막으셨고 일부는 관을 막는 데 주력했다고 하더라. 전면전이 벌어지기 전에 검신 대협과 소청이 이미 왜구를 삼천 명 가까이 죽인 후였고 둘이 처리한 왜구가 전체 전력의 팔 할 가까이 됐대.”

“그러면 항주에는 들르지 않고 바로 십만대산으로 가도 될까요?”

“아니. 린린을 보려는 거면 홍성루로 가.”

“홍성루요? 거기에 와 있대요? 그 이야기를 왜 이제 하세요. 형님?”

아진의 얼굴이 귀에 걸리자 선이남도 환하게 웃었다.

“나도 바로 말을 하려고 했는데 기막이 엉성하게 처진 것 때문에 놀라서 잊고 있었다.”

“빨리 가 봐야겠네요. 형님은 린린을 만나셨어요? 다친 데 없이 건강한 거죠?”

“당연하지. 누가 린린을 다치게 하겠냐? 그런데 나는 아무리 여동생이라고 해도 너처럼 예뻐하는 녀석은 처음 봤다.”

“무슨 말이에요? 여동생 있으면 다 이렇게 예뻐하지.”

아진은 더 이상 말을 시키지 말라는 듯 그 자리에서 빠르게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홍성루가 황궁에서 그렇게 멀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며 아진은 정신없이 경공을 펼쳤다.

자기가 그동안 펼쳤던 어떤 경공보다도 더 빨랐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그는 홍성루가 너무 먼 것만 탓했다.

홍성루에 왔다면 루주의 방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처음부터 루주 방의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만두가 거만하게 태사의에 누워 있었다.

전에 왔을 때만 해도 루주가 누워 있던 그곳을 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차지하고 누워 있는 린린을 보니 그 거만함과 뻔뻔함은 타고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왔어. 오라버니?”

린린의 말에 모두 무슨 말인가 하며 돌아보고 그제야 아진의 기척을 알아챘다.

그들은 아진이 지척에 왔는데도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야. 어떻게 됐어? 사람들 만났어? 얘기했고? 네 말을 믿어?”

아진은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속사포로 떠들어댔다.

“그건…… 안 물으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역천마의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아진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린린을 보았다.

“왜요? 안 믿던가요? 너무 달라져서 그랬나?”

아진은 린린이 속상했겠다고 생각하며 린린을 힐끔거렸다.

“저희가 조금 늦었습니다. 거의 다 갔는데 그 앞에서 문제가 생겼거든요. 그때 그냥 지나쳤어야 하는 거였는데. 단리서언이 한 짓인 것 같기는 했는데…… 아오. 마도가 언제부터 양민들 목숨을 챙겼다고…….”

역천마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참이나 했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

아진은 그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그걸 먼저 물었다.

“루주를 여기로 보낸 게 저거든요. 루주가 지존을 많이 따르기도 했고 그래서 여기에 와 보자고 했죠. 공자님이 먼저 다녀가신 건 몰랐어요.”

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해 보라고 말했다.

“십만대산 입구에 있는 도시에 불길이 미친 듯이 번지는 거야. 정상적인 불도 아니고 무공으로 만든 게 분명했고. 우리 발길을 묶어 두려고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그냥 갈 수가 없잖아.”

말을 한 린린은 자기 자신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왜 그럴 수가 없다고 생각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그랬다고 그런 거냐고. 와.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러나 아진은 린린이 그럴 만했다고 생각했다.

귀찮아하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그곳에 가장 먼저 가서 일을 시작하고 있는 게 린린이었던 것이다.

상관없다는 듯이 툴툴거리면서도 언제부터인지 그러고 있는 린린을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번에 그것 때문에 제대로 발목을 잡히고 화가 나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일은 해결됐어? 다친 사람은 없었고?”

“응. 그건 그런데.”

린린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진짜 화나. 내가 했어야 되는 일인데. 신교도들이 단리서언 말에 속아 넘어가서 내 말을 안 듣는 것도 화가 나고.”

아진은 린린의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각자가 맡은 일이 정해져 있었다.

모두가 성공했고 린린은 그러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미안할 텐데 천마신교도들이 단리서언에게 속아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될까 봐 그게 더 속상했을 터였다.

“포기하지 말고 기회를 기다리자.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내버려 둘 리 없잖아. 폐하께도 그렇게 말씀드리고.”

린린은 기운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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