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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241화 (241/470)

제241화

241화

린린은 설마하니 위도가 단리서언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그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크게 놀랐지만 어차피 서로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서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었다.

“모두 무사히 돌아왔으니 오늘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놀아 봅시다.”

가주가 흥을 돋우자 모두가 신이 났다.

아진은 소청과 벽예월하고도 인사를 나누고 제선문주와도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조금씩 긴장이 사라지고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입꼬리가 느슨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아진은 자기가 누구와 같이 앉아 있는지도 점점 인식하지 못했다.

이 정도로 취해본 적이 있기는 했을까 할 만큼 정말 많이 마시고 많이 취해 있었는데 기분은 어느 때보다 좋았다.

각자가 성공담을 말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몇 사람이 동시에 말을 하기도 하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할 때는 그때 현장에 같이 있는 사람들이 증언해 주기도 했다.

정말 대단했다는 말 등이 나오기도 했고 그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경청했다.

모두가 함께 자기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들은 흐뭇해했다.

“소청이랑 함께 다니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북리의천이 말을 하다가 돌연 서종욱을 바라보았다.

아진은 취기가 잔뜩 오른 얼굴로 그들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우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나?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 아니. 질문을 바꿔 보지. 그 순간에는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이때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구나 하는 그런 순간은 없나?”

만만치 않게 취기가 오른 북리의천이 묻자 서종욱이 웃었다.

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유지하던 그였지만 그날만큼은 서종욱도 다른 사람들이 따라주는 술을 사양하지 않고 마셔서 얼굴이 이미 벌게진 상태였다.

가끔 혀가 꼬인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아진과 눈이 마주친 도종이 아버지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본다는 듯이 웃었다.

아진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때 서종욱의 입에서 상상하지 못한 말이 나왔다.

“산본의가에 한 산모가 찾아온 날이 있었지요. 신원을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어디에서 온 건지도 알 수가 없었지만 몸이 극도로 약해진 상태였어요. 이미 출산의 징후들이 시작된 후였는데 문을 얼마나 두드렸는지 모르겠어요. 이상했던 건 거기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내원까지 들릴 수가 없는데 그 소리가 들렸다는 거예요.”

술에 취해 웃고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서서히 조용해져 갔다.

누구도 가주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없었다.

그랬기에 모두가 더욱 집중했다.

“아내와 거의 동시에 눈을 떴던 것 같아요. 눈을 떴더니 아내가 저를 깨우려고 그랬던 듯 바라보고 있었죠. 우리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문을 열고 그곳에 쓰러진 산모를 발견해 안으로 옮겼어요. 그때만 해도 제선문이 산본에 오기 전이어서 의원도 꽤 됐었죠. 아. 그러고 보니 그때는 하명준 의원도 없을 때였어요. 정말 오래전 일이죠. 도종이도 아직 어렸을 때니까.”

아진은 도종을 바라보았다.

형은 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냐는 의미였는데 도종도 아진의 눈빛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저었다.

“그날 한 아이가 태어났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보였지만 버텼어요. 아이를 낳고도 그랬죠. 그런데 아이의 옆에서 회복이 되던 중에 돌연 사라졌어요. 혹시 좋지 않은 일이 생길까 봐 찾아다녔는데 찾을 수가 없었죠.”

“그 아이가 누군데요?”

린린이 물었다.

서종욱은 웃음 지은 얼굴로 아진을 바라보았다.

“……?”

사람들은 그가 왜 그 시점에 아진을 보며 웃는 걸까 했다.

아진도 마찬가지였다.

“왜…… 요, 아버지?”

아진이 묻자 그가 더욱 크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는 그렇게 우리를 찾아온 거다. 아진아. 서도진. 나는 그 아이를 본 순간에 그 이름을 떠올렸지. 정말 탐나는 아이여서 나는 아이의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걸 알았을 때 정말 기뻤다. 그렇다고 아이를 내가 키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산모를 찾는 걸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정말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찾지 못한 것뿐이었어.”

일순간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아진은 멍해졌다.

이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는 건가 했다.

서서히 술이 깨는 것 같았고 도종 역시 충격받은 얼굴로 아진을 보았다.

어느덧 도종이 아진의 옆으로 다가왔다.

“아진아…….”

“어…….”

아진은 이럴 때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아진도 아니었기에 이제 와서 그가 가주와 가모의 친자식이 아니라고 해서 충격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이상한 것은 서종욱이었다.

그는 아무리 취했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사람이 아니었다.

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왠지.

그 말을 아주 자랑스럽게 하는 것 같았다.

왜 그런 건지 아진은 한참이 지나도록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 이야기를 하신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서종욱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와. 우리 아버지. 한 방이 있으시네?”

린린이 재미있다는 듯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아진과 눈이 마주쳤을 때 린린은 정말 홀가분해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뭐지?’

자기 혼자만 미로에 갇힌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어쩌다가 남의 가정사를 알게 된 것이 미안하고 어색했는지 그 이야기를 아예 들은 적이 없는 것처럼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와. 아버지 정말…….”

도종은 당황한 얼굴로 아진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형님도 알고 있었어?”

“나도 처음 들어.”

“아…… 억울하다. 그러면 좀 대충 살 걸 그랬어. 나는 내가 이 집 아들인 줄 알았지.”

“그래서 지금까지 말씀을 안 하셨나 보다. 아버지가 잘하신 거네.”

“역시 아버지셔.”

두 사람은 그러면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비웠다.

분위기는 다시 전처럼 돌아갔고 소청은 왠지 기분이 더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이상하게도 아진과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술자리는 그 후로도 오래 계속되었지만 다음 날 아침이 밝은 후에는 여지없이 하루가 시작됐다.

진료를 맡은 의원들은 특히나 그랬다.

대단한 체력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가 아버지의 주위를 기웃거렸지만 아버지는 아진이 왜 그러는지 전혀 모르는 듯 아진을 보고 그저 웃어 주기만 했다.

희한하다고 생각하며 아진도 그 일을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산본의가는, 골치 아픈 일을 잊는데 최적의 환경이었다.

조금만 지나면 신경 쓰고 집중해야 할 수많은 일이 생겨나서 웬만한 고민거리는 저절로 사라져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 * *

“아진아. 너 요즘 시간 좀 되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들려왔을 때 아진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으며 지금 대답을 잘하지 않으면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게 열릴 거라는 경고음이 귓가에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어…… 일단 지금은 그렇기는 한데 언제까지 그럴지는 잘 몰라요. 어머니. 폐하가 부르실 수도 있고요.”

“그렇다고 해도 네가 계속 황상의 옆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니. 네가 임관을 한 것도 아니고 황상을 곁에서 보필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머니가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말을 할 때는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 아진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애쓰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는데요?”

“우리가 힘을 합하면 산본의가의 사업체들을 좀 더 견실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동안 이 문제로 아진이 너와 상의를 해 보고 싶었는데 계속 일이 생겨서. 지금은 다행히 조금 진정세에 접어든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을 들어 보니까 단리서언 그 작자가 언제까지 몸을 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때가 되면 너는 또 그 문제를 해결한다고 갈 것 같단 말이지.”

“그건 그렇지만요…….”

“그래. 그러니까 하자.”

“어머니. 꼭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진은 어머니를 설득하고 싶었다.

그것은 사전에 아버지와 도종에게 종용받은 일이기도 했다.

그들은 가모가 보이는 의욕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면서 아진이 나서서 막아 주지 않으면 모든 사업을 다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해 보고 싶으신 게 있으세요?”

“철방.”

“……네?”

“아주버님이 북리세가의 솜씨 좋은 야장들을 여기로 불러 주시겠다고 했거든. 무관도 충분히 크고 했으니까 철방을 운영해 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하셨고 말이다.”

“스승…… 님이요?”

설마라는 표정으로 아진이 물었지만 가모는 확신에 차 있었다.

“우리 무인들에게 좋은 검이 필요하다는 건 아진이 너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검을 사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 거고 비싼 돈을 주고 산 검이 마음에 차지 않는 걸 너도 여러 번 봤겠지. 그렇지?”

“그건 그렇지만…… 요.”

“아주버님이 그러시는데 전투 중에 죽은 사람들의 병장기를 모아 녹여서 솜씨 좋은 야장이 그 재료로 다시 무기를 만들면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하시더구나.”

“어머니. 스승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거죠?”

“그래. 믿기지 않으면 직접 확인을 해 봐도 된다.”

아버지와 도종 형님의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진아. 사업체를 하나 더 늘리면 우리는 죽을지도 모른다아아아아……!

그런데 철방은 마음이 확 끌렸다.

스승님이 했다는 말을 듣기 전에도 그랬는데 그 말을 듣자 더 그랬다.

그 말을 듣자마자 토번에 제련 기술이 발달했다는 것도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토번의 염빈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며 아진은 한층 더 규모를 키워 나가는 상상을 했다.

아진이 그럴 거라는 걸 알았다면 아버지와 도종은 섣불리 그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본의가의 가솔 중 누구도 가모의 규모를 알지 못했다.

그때까지 누구도 가모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려 준 사람은 벽예월이었다.

철방 문제로 그녀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많아졌는데 벽예월은 가모의 꿈을 말해 주었다.

“가모님은 단리서언이 일으킨 문제를 듣고 굉장히 충격을 많이 받으셨어요. 가모님은 동시다발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게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놀라셨고 황금 사만 오천 관으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듣고 생각을 많이 하시게 된 것 같았어요.”

“생각을 많이 하셨다면 어떤 식으로요?”

“천마신교가 할 수 있으면 산본의가도 할 수 있지 않나 하고요.”

“……예?”

아진은 설마하니 이야기가 그렇게 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분명히 자기가 잘못 들은 걸 거라고 생각했다.

“잠깐만요. 벽 소저. 뭐라고요?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셨다고요?”

“신교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되겠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이미 많은 부분에서 거의 따라잡지 않았냐고 하셨고요.”

“거의…… 따라잡다니요? 혹시 제가 모르는 다른 이야기가 있나요?”

산본의가가 아무리 여러 사업체를 견실하게 키워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천마신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자신감이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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