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1화
361화
아무리 도종과 북리소은이 랑랑을 아끼고 걱정한다고 하더라도 랑랑의 곁에서 하루 종일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독각화망은 달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이 지난 밤부터 새벽까지 독각화망은 랑랑의 곁을 떠나지 않고 늘 랑랑을 지킬 수 있었다.
독각화망에 대한 랑랑의 마음도 점점 각별해져서 이제는 잘 때도 독각화망을 안고 잘 정도였다.
죽부인에 다리를 올려놓고 자는 것처럼 독각화망을 안고 자면 편한 것 같았는데 옆에서 보는 사람은 기겁을 해도 정작 랑랑은 독각화망을 좋아했다.
“여기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해도 본가로 돌아가면 사람들을 해칠 수 있을 텐데.”
린린은 그 걱정을 하고 있었고 아진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본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우선 시험 삼아서 그동안 주둥이를 묶어 두었던 교룡의 힘줄을 풀어 주었더니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곧바로 아진을 공격하려고 들어 아진의 몸에 독각화망의 이빨 자국이 생겨났다.
독각화망은 드디어 복수를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듯했지만 아진의 몸에 박아 넣은 이빨을 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독각화망은 자기가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아진은 독각화망의 머리통을 잡고 이빨을 팔에서 뽑아낸 후 놈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독각화망은 그에게서 폭사하는 사나운 기운을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다.
아진의 팔에 난 이빨 자국에서는 피가 흘렀는데 독이 섞인 피가 저절로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고 이빨 자국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독각화망은 영물이라고 불리는 녀석이었고 평범한 짐승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으니 아진에게 계속 싸움을 걸어 봐야 자기만 만신창이가 된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그것을 깨달았으면 그냥 순순히 포기를 하는 게 좋았을 텐데 그때부터는 린린을 노렸고 린린의 성격이 셋 중 가장 안 좋다는 것을 깨우치고 나서야 마음을 정리했다.
“숙부님. 랑랑의 피에는 화망이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게 들어 있지 않을까요? 그걸로 해독제를 만들어 두고 화망이를 본가로 데려가면 화망이에게 물린 사람이 나와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랑랑은 이제 슬슬 어머니도 보고 싶고 아버지도 보고 싶고 본가에 돌아가고 싶은 듯했다.
그러나 독각화망과 헤어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나름대로 해결책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랑랑?”
“네. 화망이는 저를 지켜 줄 거예요. 그러니까 저도 화망이를 지켜 줘야 해요.”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조카의 눈이 의지로 빛나는 것을 보면서 아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그런 눈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은 가 보자. 사람들이 화망이를 무서워할 거라는 건 랑랑이 너도 이해해야 한다.”
“네. 숙부님.”
랑랑은 본가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이미 신이 나 있었고 사람들이 독각화망을 조금이라도 예뻐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독각화망을 단장해 주었다.
독각화망의 뿔에 비단으로 앙증맞은 나비 모양의 매듭이 묶여 있는 것을 봤을 때는 뭔가 애처롭기도 했다.
‘독각화망. 네가 고생이 많다.’
그러면서 아진은 산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아진이 돌아왔다며 기뻐하면서 달려오던 사람들은 그의 옆을 기어오는 독각화망을 보고 기겁을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쳤다.
사람들은 밖에서 나는 소리에 어리둥절해서 나왔다가 똑같이 비명을 지르고 집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덜덜 떨었다.
뿔에 묶어 놓은 비단도 소용이 없었다.
아진과 함께 온 뱀이 독각화망이라는 소문은 금세 퍼졌다.
사람들은 아진 일행의 모습이 멀어질 때쯤 나와서 뒤에서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놀란 가슴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아 두근거렸다.
산본의가의 정문을 통과해서 들어가려고 하다가, 그렇지 않아도 몸이 아파서 찾아온 사람들이 놀라 쓰러지겠다는 생각에 아진이 독각화망을 안고 곧바로 내원으로 들어갔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내원으로 속속 들어왔다.
도종과 북리소은이 가장 먼저 부리나케 달려왔고 랑랑을 꼭 끌어안았다.
아진의 말을 기다리던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독각화망에게 향했다.
“독각화망이에요. 신교에 있던 건데 오라버니가 데려왔어요. 랑랑이 독물도 다스릴 수 있는지 보려고 그런 건데 독각화망이 랑랑에게 복종해요.”
린린이 말하자 북리소은과 도종이 동그래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건…… 뱀이잖아. 린린.”
도종이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깨우쳐 주려고 하는 것 같았기에 린린은 독각화망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무서웠지만 그 뱀이 랑랑을 굉장히 위해 준다고 하자 랑랑의 부모는 어느새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소식을 늦게 들었는지 한발 늦게 온 소청은 독각화망을 보고 깜짝 놀랐고 랑랑은 의기양양하게 독각화망을 자랑하며 소청에게 소개를 해 주었다.
“안 물어. 오라버니. 만져 봐. 화망이도 좋아할 거야.”
소청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독각화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독각화망은 소청이 랑랑의 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곳에 와서도 독각화망이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고 그들이 랑랑의 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편하게 구는 것을 보며 아진과 린린도 마음을 놓았다.
“아진아. 황실에서 사람이 여러 번 왔었다. 이번에도 바로 오지 않으면 너에게 관직을 내리고 황성을 떠나지 못하게 하시겠대.”
도종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아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걸 어쩌면 그렇게 잘 알고 협박도 맞춤형으로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아진은 남은 일을 린린에게 맡긴 후에 그대로 바람으로 변해 버렸다.
“아진이는 그게 정말 싫은가 보다.”
아진이 사라진 허공을 바라보며 도종이 말했다.
* * *
황성은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전체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활기가 넘쳤고 시끄러웠다.
곳곳에서 손님을 잡아끌려는 상인들의 소리가 들려왔고 전보다 넓어진 것 같은 관도에 마차가 자주 오갔다.
그러는 동안 유독 비슷하게 생긴 여러 대의 마차가 보인다 하면서 마차에 새겨진 음각을 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아진을 보며 말했다.
“북궁세가의 마차를 처음 보슈?”
“예? 저게 북궁세가의 마차입니까?”
“어디에서 오셨수? 그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시골에서 올라온 것 같은데 그러고 돌아다니다가 소매치기당하기 십상이니 조심하슈.”
북궁세가의 마차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그런 말을 들었다.
북궁세가의 마차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고 크기도, 마차를 끄는 말의 수도 제각각이었는데 어떤 것은 뒤에 짐을 가득 실은 채 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황성 곳곳을 향해 급히 달려가는 마차들을 보면서 아진은 북궁세가가 그사이에 많이 발전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돌아서려고 할 때 마차 한 대가 급하게 달려와서 멈췄다.
“서 공자!”
마차가 완전히 서기도 전에 창문에서 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뛰어 내렸다.
아진이 돌아보자 언제 내렸는지 하월이 마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걸어왔다.
어떻게 여기에서 보는 건가 하는 듯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하월 공자가 아닙니까. 그나저나 이게 다 뭡니까? 여기에 와서 본 마차 중에 반 이상이 북궁세가의 마차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하월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게 됐습니다. 요즘 본가의 위세가 대단하기는 하지요.”
늘 어딘가 모르게 우울하고 음습한 것 같던 하월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지금도 황궁에서 일합니까?”
“아니오. 이제는 그만두었습니다. 아버님이 이제 가문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하시기도 하고.”
“동창은 포기하신 모양입니다.”
“그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본가의 일을 계속 미룰 수만도 없어서 폐하께 허락을 받아 냈습니다. 폐하를 뵈러 가는 길이면 태워다 주겠습니다.”
아진은 굳이 마차에 탈 필요가 없었다.
신법을 전개하면 순식간에 당도할 수 있겠지만 오랜만에 황성의 변한 모습을 보려고 여유를 부린 것뿐이었다.
하월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강권하며 청했다.
“어서 타십시오.”
마차에 오르자 화려하게 장식된 내부가 드러났다.
이제는 확실히 자리를 잡은 듯해서 아진은 하월을 축하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서 공자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하월은 산본에 갔던 아버지가 산본의 사업장을 따라 해서 많은 이익을 냈다고 말했다.
“뭐가 됐건 산본 사업장에서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하라고 하셨지요. 전장이면 전장, 표국이면 표국, 상단이면 상단.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무조건 그렇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게 먹히더군요. 가주님과 가모님에게 가르침을 달라고 하면서 매년 수익의 2부를 주기로 하고 시작했는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월의 말은 끝이 없었다.
재미있는 말이기는 했지만 아진은 이제 슬슬 황상이 자신을 찾은 이유를 생각해 봐야 했다.
“혹시 황상께서 저를 부르신 이유를 아십니까. 하월 공자.”
“폐관 수련을 마쳤으니 달라진 모습을 보고 싶으신 것도 있을 테고.”
말을 딱 끝맺지 않은 것을 보니 무언가가 더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요?”
“이건 확실한 이야기는 아닌데 서남지역에 요괴가 나온다는 말이 계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요괴가 나온다는 지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고 그 때문에 거대 상단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이용해 오던 상로를 포기할 정도면 확실히 문제가 되기는 하겠지요.”
“요…… 괴요?”
산적 때문도 아니고 요괴 때문에 상로를 포기한다는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괴라는 말을 듣고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없었을 정도였다.
“요괴라는 게 정말 있습니까?”
그러자 하월이야말로 이상하다는 듯이 아진을 바라보았다.
“요괴가 정말 있느냐니요? 그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서 공자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까?”
“네. 당연히…….”
말을 하고 보니 당연하다고까지 할 말은 아닌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정확한 건 가서 들어 보셔야 하겠지만 요즘 황상께서 그 일로 고민이 많으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마차는 황궁을 향해 부지런히 달렸다.
가는 동안 아진은 요괴에 대해 아는 걸 말해 달라고 했지만 하월도 사람들에게 들어 왔던 것 외에 아는 것이 많지는 않았다.
‘혹시 던전에 나타나던 괴수들이 나온 건 아니겠지?’
아진은 자꾸만 생각이 그런 식으로 치달아서 머리를 꾹 눌렀다.
그런 생각은 웬만하면 하고 싶지 않았다.
“요괴에게 당했다는 상단의 얘기를 들어 보면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밖에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고 하더군요. 일이 끝날 때까지 밖을 내다보지도 못했고 한참이 지난 후에 문을 열고 나왔을 때는 사람들이 갈기갈기 찢겨서 죽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짐승의 발에 할퀸 자국이 남은 채로요.”
“그러면 산짐승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요괴가 한 짓이라고 하더군요.”
어차피 하월도 뭔가를 확실히 알고 하는 말은 아니었기에 이야기를 계속해 봤자 의미가 없었다.
이럴 바에는 빨리 황제의 말을 듣는 것이 나을 것 같았고 하월도 비슷하게 생각한 듯 마부를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