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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378화 (378/470)

제378화

378화

언제 검을 뺀 건지 알 수 없는 속도로 검을 뺀 소청이 벽을 향해 검을 밀어 넣으려다가 단단한 벽에 막히고 웅크리고 앉았다.

충격이 고스란히 팔로 전해지는 듯했고 그에 따라 그의 고개가 바닥에 처박히려 하고 있었다.

“으으으으으욱!!”

린린은 그 모습을 보고 한숨 돌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린린. 너 진짜 야비하다.”

“아니. 소청이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그 말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청이 너는 랑랑이만 잘 지켜. 그러면 돼.”

린린은 소청의 실패로 인해서 기분이 많이 좋아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네. 사고님.”

소청도 단 한 번의 실패로 깨달은 것이 많은 듯 랑랑의 옆으로 갔고 독각화망은 겁먹은 눈으로 그림자 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뱀의 눈이 사슴 눈처럼 보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잘하면 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던 아진은 린린을 보며 마지막으로 신호를 보냈다.

뒤를 린린이 맡아 주기만 한다면 이제부터 신나게 싸워볼 수 있을 듯했다.

린린은 자기만 믿으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쿵-.

쿵-.

요란한 소리가 몇 번 더 이어지고 마침내 벽에 균열이 생겨났다.

‘온다.’

모두가 그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다.

쿵-!

그림자 용이 마침내 벽을 부수고 나왔고 아진은 그때만 기다리고 있다가 강기를 두른 검으로 놈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 대가는 처참했다.

아진은 조금 전에 소청이 냈던 것과 비슷한 소리를 내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픔을 느끼며 멈춰 있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진은 그림자 용에게 검격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상 계속 검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고집을 부릴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검법이 아니라고 해도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이 많았고 그림자 용이라면 아진이 그동안 익혀 왔던 무공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림자 용은 아진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일찌감치 느낀 것 같았고 괜히 힘을 빼는 것보다 정확한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해 작전을 세우는 듯했다.

“그냥 들어와. 나도 별 것 없으니까.”

아진이 검을 검집에 넣는 것을 보며 그림자 용은 동굴 안에서 한껏 크기를 키웠다.

동굴이 그림자 용에게는 진의 역할을 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격진을 펼치면 원래 자기들의 기량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일시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그림자 용 역시 그런 것 같았다.

아진은 그림자 용을 마주 보고 선 자리에서 두 팔을 양쪽으로 벌렸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형체가 없는 칼이 생겨났다.

아진이 가진 바람의 기운을 응축해 만든 거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는 아진이 뭔가를 준비하려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림자 용은 아진의 바람 칼이 저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며 몸을 피했다.

그림자 용은 몸을 피하면서 동시에 공격을 퍼부었다.

그림자 용의 거대한 몸이 천장에 부딪치자 동굴이 몸부림을 치는 것처럼 요동하더니 천장에서 커다란 돌이 흉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린린의 천마등천공에 의해 다시 떠올랐다가 위력이 반감된 채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아진이 날린 바람 칼은 그림자 용을 뚫지 못했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의 강도로 날려야 할지 알지 못해서 우선은 시험 삼아 날렸는데 그것으로는 턱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림자 용의 살가죽은 독각화망의 것보다도 훨씬 더 질기고 단단했다.

그것을 뚫기 위해서는 그저 그런 강기로는 어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한테도 역린이 있을까?’

아진은 그림자 용과의 싸움이 아주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싸움을 쉽게 풀어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굳이 어려운 길로 갈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역린.

용의 목에 거꾸로 박힌 비늘.

하나뿐인 용의 약점.

그러나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온통 검기만 한 그림자 용의 몸에서 역린을 찾는 것이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아쉽네.’

아진은 그림자 용을 향해 몇 개의 바람 칼을 더 날렸다.

그것을 본 린린은 아진이 지금 전력을 다하는 게 아니라 그림자 용을 상대로 바람 칼을 만들어 날리는 것을 연습해 보는 중임을 깨달았다.

그 모습을 봤을 때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자기는 긴장이 되는데 도대체 서도진이라는 인간은 어떻게 생겨 먹었기에 저런 놈을 상대로 수련을 할 수가 있는가 해서였다.

“왜 안 되지?”

아진은 그림자 용에게 바람 칼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화가 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러면 안 되지. 아진아. 아진아.”

나중에는 혼잣말까지 해 가면서 바람 칼을 여러 모양으로 다양하게 만들었다.

바람 칼을 만들어 내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것을 날리기 직전에 강기를 씌우는 것도 가능해졌다.

린린은 그것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연지기를 사용해서 바람으로 칼을 만들어 내는 거면서 거기에 내공으로 만든 강기까지 씌우는 걸 보며 그게 도대체 말이 되냐고 생각한 것이다.

“서도진. 정신 차려. 하나를 던져도 정확하게 던지라고.”

아진이 저에게 소리치고 그때부터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림자 용은 그런 아진을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며 동굴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아진을 압박했다.

싸움이 생각대로 잘 안 풀리는 것은 그림자 용이나 아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림자 용은 벽 밖으로 나오고도 계속 그림자의 상태였고 아진은 곧 녀석의 상태가 변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했다.

그러다가 아진이 날린 바람 칼이 그림자 용의 어느 부분엔가 날아가 박히자 그림자 용이 요동을 쳤다.

‘드디어 역린을 건드렸나 보다.’

대충 저기쯤이 아닐까 하면서 하나하나 신중하게 바람 칼을 날리던 아진은 운 좋게 공격에 성공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린을 맞춘 것과 동시에 바람 칼이 그림자 용의 가죽을 뚫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림자 용은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듯 갑자기 위로 치솟아 뇌기를 날렸다.

뇌기는 아진이 까다로워하는 것 중 하나였는데 하필 그 공격이 날아오자 아진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림자 용은 아진이 그 공격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뇌기를 집중적으로 날렸다.

불편해하는 것을 들키면 그때부터는 아주 복잡해진다.

상대가 그것을 집요하게 노리고 들어올 수가 있어서였다.

아진은 살이 찢어지는 것은 그럭저럭 버틴다고 해도 뇌기의 그 짜릿한 느낌은 소름 끼치게 싫었다.

그러나 이미 그림자 용은 아진이 그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파악한 듯했고 아낌없이 뇌기를 줄기줄기 쏟아 냈다.

아진은 바람으로 변한 채 그것을 피했지만 그림자 용이 한계도 없이 뇌기 다발을 쏟아 내자 전부 피하지는 못했다.

하늘에서 폭우가 퍼붓는데 그것을 하나도 맞지 않고 피하는 게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 이상 방어는 도외시하고 공격권을 다시 뺏어오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아진은 바람으로 변한 채 신검합일을 펼쳤다.

몸과 검이 하나가 되어 쏟아져 들어가는 기세에 그림자 용이 움찔했고 아진은 속도를 더욱 높였다.

보통의 신검합일도 충분히 위협적일 텐데 아진이 펼친 것은 섬전과 같은 속도로 그림자 용을 향해 날아가 놈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동안 그림자 용의 살갗을 제대로 찢고 들어가지 못했지만 일단 아진의 몸과 검이 하나가 되자 그 문제는 조금 더 수월하게 해결이 됐다.

그림자 용의 살갗이 찢어질 때까지 아진이 계속해서 버텼던 것이다.

그림자 용은 그렇게 초근접전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당황한 것 같았다.

아진은 그림자 용의 몸에 직접 닿고야 그것의 실체가 그림자라는 사실을 진지하게 깨달았다.

실체가 그림자라는 것은 놈에게 형체가 없다는 말이었고 그건 그림자 용에게 피해를 입히는 게 아주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면 좀 억울한데?’

그림자를 베는 것은 물을 베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림자 용은 실체를 갖기를 소망했을지 몰라도 아직 실체를 갖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고 아진에게는 그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림자를 죽이는 방법.

‘빛이 생기면 그림자는 사라지겠지만 죽는 건 아닐 테고.’

아진은 그림자 용을 처리하는 게 생각보다 더 까다로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느끼고 괴로워하지만 그림자 용의 생명이 어디에 있는 건지, 이놈이 지금 살아 있기는 한 건지 그것도 애매했던 것이다.

아진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시 집중이 흐트러졌을 때 그림자 용이 이때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속도로 아진을 공격했다.

놈이 입을 벌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몸을 뒤로 날렸지만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진이 멍하니 옆을 돌아보자 제 팔이 팔꿈치 아래에서 잘려나가 있었다.

그림자 용의 그림자가 벽에 그려졌다.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씹는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인데…….

아진은 결국 그림자 용을 그 그림자가 생겨난 곳과 같이 해치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벽과 천장.

그림자 용이 벽에서 나왔다고 해도 놈은 벽과 완전히 떨어질 수는 없었다.

허공에 보이는 것은 허상이라고 생각하고 벽에 있는 것을 실체라 여기며 그것을 노려야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아진의 팔이 다시 생겨났다.

괴물은 그림자 용만이 아니었다.

그림자 용이 그 자리에서 잠시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림자 용에게도 감정은 있는 듯했고 아진에게는 그것이 위안처럼 느껴졌다.

“내가 도와줘?”

린린이 말했지만 아진은 이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진은 먼지의 응집처럼 존재하는 그림자 용을 지나 그 뒤의 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림자 용은 당황한 듯 몸을 피했다.

아진이 제 그림자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려고 아진의 공격 범위에서 그림자를 피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그래? 내가 이렇게 하면 불편해?’

아진의 얼굴에 사악해 보이는 웃음이 지어졌다.

그 순간,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아진의 손에 커다란 검이 생겨났다.

바람 칼이었다.

그것은 지금껏 만들어지던 것과 달랐고 길이만 해도 족히 3척은 되었다.

아진은 그것을 허공에 던졌다가 다시 받아 역수로 쥔 채 벽에 새겨진 그림자에 박아 넣었다.

그림자 용은 미친 듯이 몸을 움직여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아진은 웃음을 지은 채 그림자를 쫓았다.

어느새 상황은 반대가 되었고 그림자 용은 제 그림자와 함께 피하느라 점점 다급해지는 듯했다.

아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연신 그림자를 공격했다.

그림자가 벽에서 튀어나온 것은 그때였다.

쿠콰콰쾅-!

벽에서 나온 그림자가 아진의 몸을 힘껏 휘둘렀고 아진은 동굴의 맞은편 벽까지 내동댕이쳐졌다.

그의 입에서 진득한 선혈이 토해질 정도로 지독한 충격이었다.

그다음에 펼쳐진 장면은 아진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어디선가 야명주 같은 구슬이 떠올라 사방에 빛을 뿌렸고 그 빛이 그림자 용을 여러 개로 만들었다.

‘어……!!’

아진은 기가 막혔다.

빛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가 동시에 여러 개가 생겨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왜 하필 지금인가 해서였다.

동굴의 굴곡 때문에 그림자는 더 많이 만들어졌고 일단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자 용은 아진을 향해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오라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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