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힐러, 의선되다-379화 (379/470)

제379화

379화

린린도 몸을 날려 그중 하나를 상대하려 했지만 그림자 용이 린린의 발목을 휘감아 던지자 벽에 처박혔다가 주르륵 미끄러졌다.

‘발목을 잡아 던져?’

그림자 용은 점점 그림자와 실체 사이에서 중간 형태를 갖추어 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크으으아아-!

어디선가 애처롭고 기이한 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독각화망이 나왔다가 그림자 용에게 붙잡혔다.

린린이 위험해지자 랑랑이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고 독각화망이 나섰다가 그림자 용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아진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바람 칼을 날렸다.

그것을 만드는 동안 집중을 할 틈도 없었는데 반드시 그림자 용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성공적으로 만들어졌고 그대로 날아가 그림자 용의 움직임을 속박했다.

그림자 용은 입을 벌리고 독각화망을 잡아 뜯으려고 하다가 움직이지 못했고 그사이에 재빨리 달려온 소청이 독각화망을 안고 달아났다.

린린도 그때는 정신을 차리고 몸을 날려 그림자 용에게서 피했다.

그림자 용들은 이제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감행했다.

가장 약한 게 랑랑이라는 것을 알아챈 듯, 놈들의 공격이 랑랑에게 집중됐는데 독각화망과 소청이 목숨을 내걸고 랑랑을 지켰고 아진도 계속해서 바람 칼을 날렸다.

“오라버니. 힘을 전부 사용해 버리면 안 돼.”

린린은 아진이 무리한다고 생각한 듯 말했다.

자연지기는 대기에 있는 자연의 기운을 그대로 끌어 자신의 힘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기는 했지만 대기에 언제나 충분한 기운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그림자 용이 버티고 있는 동굴에는 그 기운이 희박했고 린린이 말하기 전부터 아진도 그 사실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그림자 용이 더 늘었어. 이제 열두 마리야!”

린린이 절망적으로 외쳤다.

빛이 문제였다.

야명주처럼 보이는 구슬이 그림자 용을 계속해서 만들어 냈다.

한 번 만들어진 그림자 용은 그림자가 사라져야 할 때도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린린. 아이들을 놀라게 하지 마.”

아진이 말하자 린린은 아차 싶은 듯 소청과 랑랑을 바라보았다.

린린이 느끼는 긴장감과 걱정은 소청과 랑랑에게 훨씬 더 크게 전해지고 있었다.

린린은 입을 꾹 다문 채 그때부터 그림자 용들을 하나하나 처리해 나가기로 한 듯했다.

린린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솟구쳤고 머리카락이 미친 듯이 나부꼈다.

그 기세 그대로 린린이 그림자 용을 향해 날아가는 순간 아진은 무언가가 바닥에서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았다.

분명히 소청이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소청은 아니었다.

솟아오른 그것은 그림자 용을 만들어 내는 불빛 위로 올라가고도 멈추지 않았다.

설마라고 생각하던 아진은 그것이 흑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천장으로 올라가는 동안 흑주의 빛은 점점 더 밝아졌다.

‘설마……?’

흑주는 더 강한 빛을 발하면서 야명주 같은 구슬 위로 날아 올라갔다.

마침내 흑주의 빛이 동굴 안을 가득 채우자 그림자 용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못했다.

“…….”

아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이 그림자 용을 전부 해치운다고 해도 그 빛이 그림자 용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한 싸움의 결과는 정해져 있다고 봐야 했다.

지금 당장은 자기들을 공격해 오는 그림자 용을 막는 것에 급급해서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하기가 어려웠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흑주가 생각지도 못하게 그 문제를 해결해 버렸던 것이다.

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흑주를 바라보았다.

흑주는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라는 듯이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소청을 끌고 나가고 싶어 할 만큼 겁을 내던 흑주였던 것을 생각하면 아진은 흑주가 지금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흑주는 언제나 그래왔었다.

용기가 남아돌아서 내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살림에 아끼고 아끼던 것을 내놓는 것처럼 긁어모아서 내곤 했던 것이다.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 흑주는 늘 스스로 그 일을 맡아 왔다.

그렇게 지금껏 아진의 곁에 머물며 그들을 지켜왔던 것이다

그 흑주의 존재가 그림자 용에게 위협이 된 것은 자명했고 그 사실을 알아차린 그림자 용들이 일제히 흑주를 노리고 솟구쳤다.

“흑주를 건드리지는 못할 거다.”

아진은 곧장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때까지 그의 발목에 천 근의 추가 달려 있다가 그 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처럼 아진의 움직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 보였다.

강기를 머금은 폭뢰신권이 그의 손에서 나가 벽에 새겨진 그림자 용에 박혀 들어갔다.

퍼퍼퍼퍼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벽이 부서져 나가며 그림자 용의 몸에서 피가 튀었다.

‘……!!’

놈들이 스스로 실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린린도 그림자 용을 향해 천마공의 초식 하나를 펼쳤다.

여간해서 들어가지 않던 공격이 마침내 성공했을 때 린린은 괴성을 질렀다.

“아오오오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게 까불고 있어!!”

지금까지 그렇게 힘들어했던 것을 생각하자면 그렇게 말할 일은 아닌 것 같기는 했지만 린린은 성공의 기쁨을 만끽했다.

쓰러진 그림자 용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벽을 얼룩덜룩하게 만들며 유영하던 그림자 용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러나 남아 있는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민첩하고 전투의 기술도 좋았다.

여러 마리가 아진을 노리고 협공을 하기도 했고 갑자기 소청이나 랑랑을 공격하기도 했다.

소청의 검에서 푸른 검강이 솟아났다.

검강은 순식간에 소청의 키를 뛰어넘고 대단한 기세로 소청과 한 몸을 이루었다.

소청은 그대로 그림자 용 한 마리를 노리고 달려갔다.

그 위용이 대단해서 아진은 곁눈질로 그를 보면서 이번에는 성공하겠다고 생각했다.

“으윽!”

그러나 이번에도 소청의 검은 그림자 용을 뚫지 못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소청에게 린린이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협공을 제안했고 두 사람은 그림자 용 한 마리를 노리고 동시에 덤볐다.

린린의 검은 그림자 용을 거뜬히 찌르고 들어갔는데 소청은 그러지 못했다.

“으아아악!!”

계속된 실패에 소청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아진은 어렵지 않게 몇 마리의 그림자 용을 더 해치웠다.

흑주는 이제 그 자리에 머물면서 여유를 되찾은 것 같았다.

자기가 위험에 빠지도록 아진 일행이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 것 같았는데 독각화망도 그것을 보고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흑주가 왜 천장에 올라가서 버티고 있는 건지 독각화망은 이해가 잘 안 되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일단 흑주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자기도 질 수 없다고 여긴 듯했다.

독각화망은 그림자 용을 어떻게 상대해야 좋을지 아직 방법이 서지는 않는 듯했지만 그래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독각화망의 독아에서 독이 분사되자 벽이 녹았다.

“독각화망. 진작 그러지 그랬어!”

린린은 독각화망의 활약이 기쁜 듯이 소리쳤고 랑랑까지 응원을 해 주자 독각화망은 자신감이 넘쳐나는 듯했다.

순간의 실수가 그림자 용의 반격을 허용했고, 갑자기 벽에서 튀어나온 그림자 용이 독각화망을 틀어쥐었는데 독각화망은 몸을 작게 해서 그림자 용에게서 빠져나갔다.

많이 놀랐는지 눈에 띄게 움직임이 움츠러들었지만 자신의 공격이 꽤 유용했다는 걸 알고 독각화망은 그때부터 그림자 용이 붙어 있는 벽마다 독을 분사했다.

언제 벽에서 그림자 용이 튀어나와 기습 공격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금은 거리를 벌려 둔 채 계속 독을 뿜던 독각화망은 자기가 가진 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치일 텐데 그동안은 그 사실을 알아차릴 일이 없었던 것이다.

자기가 그림자 용을 꼼짝 못 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한껏 기분이 좋아진 독각화망은 독을 남발하다가 더 이상 독아에서 독이 나오지 않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고, 그림자 용 몇 마리가 그때를 노리고 독각화망을 덮치려 했다.

때마침 소청이 독각화망을 구해내지 않았으면 불쌍한 독각화망은 그림자 용에게 붙잡혀 뼈도 남기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버렸을 터였다.

“잘했어. 화망아. 정말 대단했어.”

랑랑이 독각화망을 꼭 안고 말하자 독각화망은 그때부터 여유롭게 싸움을 구경했다.

이대로라면 곧 싸움이 끝나겠다고 모두가 생각했을 때 그림자 용 한 마리가 벽에서 튀어나가 린린의 몸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놈에게서는 뇌기가 쏘아져 나갔고 린린이 검을 휘둘러 그림자 용을 공격하려 했지만 그림자 용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뇌기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했고 그림자 용은 점점 더 빠르게 린린의 주위를 맴돌았다.

린린은 검을 빠르게 휘둘러 제 주위에 검막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림자 용은 굴하지 않고 뇌기를 발출했고 린린의 검막과 뇌기가 크게 충돌했다.

린린의 검막이 뇌기를 버티지 못하고 깨지는가 하는 순간, 아진이 린린에게 달려가려 했는데 그때 부서진 검막의 안쪽에서 검강 다발이 그림자 용을 노리고 날아갔다.

린린은 그림자 용이 하필 자신을 노렸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림자 용을 잡아채고 그대로 천장까지 솟구쳤다.

그림자 용은 린린에게 붙잡힌 채 축 늘어졌고 권강이 실린 주먹에 연거푸 얻어맞았다.

그 거대한 충격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는 없을 터였다.

다른 그림자 용 한 마리가 동료를 구하려는 듯 몸을 날렸지만 린린에게서 날아간 지강에 그림자 용이 쓰러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공의 운용과 정확성이 점점 더 높아져, 처음에는 실패로 돌아갔던 여러 공격이 제대로 먹히고 있었다.

나중에는 소청도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했고 그림자 용의 숫자는 서서히 줄어 갔다.

그러다가 갑작스러운 변화가 나타난 것은 공중에 떠 있던 빛이 돌연 사라지면서였다.

빛이 사라지자 그때까지 남아 있던 그림자 용들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로 변했다.

그것은 점차 윤곽을 갖췄는데 그때까지 보였던 그림자 용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모양을 했다.

‘그냥 크기만 커진 걸로 하자.’

아진은 속으로 간절하게 외쳤다.

그러나 하나로 융합된 그림자 용은 움직임조차 범상치 않았다.

그림자 용에게서 뇌기를 머금은 거대한 기운이 분출되었다.

단지 기운이 분출된 것뿐이었는데도 아진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피를 쏟았다.

느껴진 기세는 단순히 위험하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진은 자기가 가진 힘을 동원해 거대한 검막을 펼쳤다.

랑랑을 중심으로 해서 소청과 린린을 보호하려는 순간 쩌저적 금 가는 소리가 들렸다.

흑주의 몸에 균열이 생겨났던 것이다.

아진이 검막을 유지하느라 미처 손을 쓰지 못하고 있을 때 린린이 흑주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그림자 용이 펼쳐내는 가공할 만한 무형지기는 한참이나 계속됐고 시간이 지나는 동안 더욱 거세졌다.

급하게 만들어 낸 검막이 얼마나 더 버텨 줄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할 수 있었으면서도 그림자 용이 그때까지 버틴 것을 보면 자기가 바람 칼에 숙달되기 위해 초반에 시간을 들인 것과 비슷한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아진은 그림자 용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끌어내서 싸워야 하는 상대는 오랜만이라는 생각에 전신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