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4화
404화
서도진이 오고 있다.
표월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보낸 이가 백련이어서였다.
백련이라면 절대로 자기가 미행하던 사람을 이곳으로 끌고 올 리가 없을 텐데 무슨 일인가 했다.
백련을 통해 그동안 서도진의 무위 수준에 대해 듣기는 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백산선문이 아닌 다른 중원 무인들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설마 백련도 그를 감당할 수가 없었던 건가 해서 표월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표월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제자들 몇을 불러들였다.
서도진이 그곳까지 들어오도록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자가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해라.”
“죽이기를 바라십니까, 스승님.”
“그래야겠지. 이곳을 외인으로 더럽힐 것이냐.”
제자들은 그의 말을 듣고 몸을 날렸다.
표월도 거리를 둔 채 그들의 뒤를 따랐다.
“헌정, 백련!”
두 사람의 기척을 먼저 알아차린 제자들이 신형을 드러내며 멈추자 헌정과 백련도 그들의 앞에서 본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서도진만은 상관없다는 듯이 그대로 그들을 지나쳤고 백련이 그 뒤를 바짝 쫓으며 소리쳤다.
“저자를 놓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백련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다른 제자들이 서도진을 뒤따랐다.
그들에게서 바람이 날카로운 형태를 하고 서도진을 향해 날아갔다.
‘어?’
서도진은 바람이 강기처럼 응축되어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바람을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거야? 신기하네?’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그걸 피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그것은 궁금했다.
서도진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그들이 자신의 위치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람들 앞에서 내 기척을 숨길 수는 없나 보네?’
그는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에 내려섰다.
그러자 표월의 제자들 역시 곳곳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들이 하나같이 다 너무 젊고 순진해 보였다.
백산선문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 듯했다.
신선이 되게 해 주겠다고 꼬드긴 걸까?
그는 태혈령의 모습을 떠올렸다.
몇몇은 태혈령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일 것 같았다.
그들이 자기를 노린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자기가 백산선문으로 향하고 있으니 그들이 그러는 게 당연했다.
상황이 다급하게 흐르는 것도 아니라서 서도진이 말했다.
“나는 산본의가의 서도진이라고 합니다. 백산선문에 볼 일이 있어서 가는 길이오. 그러니 나를 막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를 막는다면 여러분을 다치게 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본문은 외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살생을 할 수밖에 없소. 우리도 살생을 원치 않으니 돌아가 주시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도 무턱대고 이곳에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저를 낳은 어머니가 저를 찾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저를 죽이려고 했지요. 그분이 자연지기를 사용하셨고 그 때문에 이곳으로 온 겁니다. 그분을 만나야 하니까요.”
서도진의 말을 들은 사람들 중 몇몇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백련은 일이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수가 없었다.
“지금 왜 이런 말을 듣고 있는 거죠? 이자는 우리 사문에 침입하려고 했어요. 왜 이자가 이런 소리를 하도록 그냥 듣고만 있는 거예요?!”
백련이 소리치자 그녀의 사형 청효가 그녀의 말을 막았다.
“너희는 어디에서 오고 있는 것이냐. 서 공자를 어디에서 만났기에, 공자가 여기로 오는 것을 어찌 알고 쫓아오는 것이냐.”
청효의 말에 백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이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스승님의 명을 받았습니다. 스승님의 명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서 제가 사형에게 설명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말은 청효의 입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고 서도진의 의문도 어느 정도는 풀렸다.
“그 스승이 내 어머니입니까?”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내 스승님은 남자입니다!”
그러다가 백련이 고개를 저었다.
자기가 그 대답을 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머니라면…….”
청효가 태혈령을 떠올리며 말을 하려 하자 백련이 나섰다.
“이자를 죽여야 합니다. 여기까지 오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무위가 대단합니다. 저희도 이자에게 몇 번 공격을 받았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후회하게 될 일이 생길지도 몰라요.”
백련은 그들이 스승의 명을 받고 왔을 거라 생각했고 빨리 서도진을 죽여야 한다고 다시 한번 재촉했다.
그러나 서도진이 조금 더 빨랐다.
“나는 여러분을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역시 피해자일 거라고 생각하기에 여러분을 공격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내 어머니를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지기를 사용하는 여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겉모습은 이십 대였지만 그것은 술법으로 바꾼 모습일 겁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죽이려는 여자인데 여러분에게 무슨 짓을 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습니다.”
“헛소리하지 마시오! 스승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결국 헌정이 거기에 걸려들었다.
서도진의 얼굴에 웃음이 걸리자 헌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기가 노림수에 넘어간 거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그렇군요. 내 어머니가 당신의 스승이군요. 백산선문의 사람이라는 건 확실히 알겠고. 그럼 내 어머니의 이름도 알려 주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자식인데 어머니의 이름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서도진이 서 있던 나무가 아래로 가라앉았다.
나무 밑의 땅이 푹 꺼지면서 빠져드는 중이었다.
서도진은 간단히 몸을 띄워 옆에 있는 다른 나무로 가려 했지만 그것 역시 같은 신세가 되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가 있던 나무에 순식간에 불이 붙고 뜨거운 불길에 휩싸였다.
“와. 이건 좀 대단하네요.”
서도진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자 여기저기서 공격이 이어졌다.
표월의 명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백련이었다.
청효는 서도진이 하는 말을 더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말을 하기 전에 백련이 소리쳤다.
“스승님의 명을 어기실 작정입니까, 사형?!”
그 말에는 청효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사형! 빨리 저자를 공격하십시오!”
사제들이 잇따라 소리쳤지만 청효는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나는 여러분을 공격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먹으면 여러분은 금방 한 줌의 재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서도진이 말을 하고 손을 펼쳤다.
그리고 그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공격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백산선문의 제자들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것인데 저희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서도진의 손에서 펼쳐진 것은 두꺼운 빙벽이었다.
공격 대신 방어막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가 백산선문을 습격하려고 한 거였다면 힘을 들여가며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을 만드는 대신 그 힘으로 공격을 했다면 그들 중 상당수가 부상을 입었을 듯했다.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도진을 보았다.
“내가 내 어머니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제자들이 청효를 바라보자 백련이 소리쳤다.
“스승님의 명을 어기고 저자의 말을 듣겠다는 거예요?!”
그러고는 사나운 바람을 일으켰다.
서도진은 백련이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일단 자기가 백련을 공격하게 되면 다른 제자들도 별수 없이 자신을 공격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걸 알고 계속해서 도발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내가 꼭 먼저 나설 필요도 없을 것 같네.’
빙벽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단단했고 백련의 공격은 매번 수포로 돌아갔다.
“염화를 날려요!”
백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누군가 염화를 날렸지만 그것은 서도진의 빙벽에 닿자마자 파시식 꺼졌다.
빙벽과 염화의 대결에서 빙벽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염화가 빙벽에 닿자마자 꺼지는 것을 보고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내공 대결에서 밀린 것처럼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까지 그들은 일단 자기들이 싸우기로 결심하고 공격을 하기만 하면 서도진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가 그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서서히 자각했다.
“우리는 싸울 필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중 몇몇은 내 어머니의 제자일 텐데, 내가 왜 여러분을 공격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서도진이 느긋하게 말을 하는 동안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표월이 조용히 사라졌다.
표월은 그들 중 누구보다 서도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서도진이 태혈령의 아들이라는 것도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었는데 서도진이 모든 자연지기를 전부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자리에서였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도 놀랐는데 단순히 각각의 자연지기를 다룰 수 있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성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 나이에 벌써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는데 그것은 자신은 물론 자신의 스승도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서도진이 아직 제자들을 공격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표월은 서도진이 도중에 얼마든지 뜻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단 서도진이 뜻을 바꾼다면 그때는 더 이상 백산서문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을 듯했다.
순식간에 표월이 태혈령이 갇힌 곳에서 나타났다.
태혈령은 영문을 모른 채 그를 바라보았다.
“네 아들이 왔다, 태혈령!”
표월은 화를 참지 못한 채 소리쳤다.
“나가라. 나가서 그놈을 죽여! 그놈을 죽여서 사문에 지은 죄를 씻으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던 태혈령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낳은 자식인데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는 건지.
아이의 아버지가 무골이 좋은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옥함신공의 산물인가?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한 거야?’
그러나 생각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계속 있다가 표월에게 또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산본의가에 직접 찾아가지만 않았으면 이런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왜 자기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건지.
피눈물이 나도록 후회가 되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아이를 죽이고 돌아오면 다시 너를 받아주겠다. 태혈령.”
태혈령은 속으로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표월이 자기를 가둔 후에 자신의 제자들을 어떻게 했을지 알 것 같았고 앞으로 그 일을 바로잡으려면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표월은 태혈령이 사라진 곳을 보다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얼마 동안은 태혈령이 그곳을 맡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는 환단을 꺼냈다.
스승이 남겨준 것으로, 백산선문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것을 먹으면 곱절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했었다.
그의 생각에 이번에는 백산선문이 위기를 맞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