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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10화 (410/470)

제410화

410화

거의 두 달 동안이나 아진은 산본무관에서 문하생들을 가르쳤다.

다행히 그 시간 동안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아 그럴 수 있었던 건데 아진이 산본무관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자 린린도 은근슬쩍 그곳을 기웃거리며 자신의 비기를 조금씩 흘렸다.

그렇지 않아도 산본무관에서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진에 이어 린린까지 그곳에 와서 무공을 봐준다는 말을 듣고 그 걸음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 와중에 청수와 무린의 성장은 눈에 보일 정도였고 아진은 두 사람과 함께 섬풍대를 계속 훈련시켰다.

청수와 무린의 힘을 이용해서 공격하는 방법을 창안해내고 그것을 연습하도록 했는데 교두들도 아진이 섬풍대를 특별히 가르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고 아이들을 전적으로 맡겼다.

소청도 나서서 도와주었는데 섬풍대의 아이들은 소청과 대련하는 것을 좋아했다.

대련을 하는 동안 그들은 생사투를 벌였고 아진은 거의 목숨이 위태로워진 녀석들을 고치느라 마나를 들이붓곤 했다.

아이들은 그렇게까지 좋은 환경에서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남은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더욱 열을 올렸다.

근성 하나는 따를 자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진도 힘을 다해서 가르쳤다.

지금 그렇게 하고 나면 나중에 자신의 힘으로 사람들을 전부 지키지 못하게 될 때 아이들이 넉넉히 제 역할을 다 해 줄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소청아. 그런데 너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솔직히 나는 매 순간 쓰러질 것 같고 정말 힘들거든. 그런데 소청이 너는 우리보다 훨씬 더 일찍부터 이렇게 살아왔던 거잖아.”

청수가 말하자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사도련의 제물이 되어 갇혀 있을 때 아진과 함께 나타나 그들을 구해준 소청이었다.

그때 소청이 얼마나 어렸는지 알고 있었기에 감탄하는 마음이 더욱 큰 듯했다.

“그냥 운이 좋았죠.”

소청이 말하며 웃자 아이들도 더 환하게 웃었다.

그들의 유대가 각별한 것을 보고 아진은 소청에게 섬풍대의 훈련을 맡겼다.

슬슬 어디선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고 하다못해 황제라도 자기를 부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진이 그 이야기를 하자 린린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동안 얼마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면 그러는 거냐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했는데 아진은 그런 린린을 보며 혀를 찼다.

“그중에 상당수가 너로 인한 거였다는 건 알고 웃는 거냐?”

린린은 가만히 허공을 보다가 반박할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아직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린린이 쾌활하게 말하고 먼저 산본의가로 돌아갔다.

정말 오랜만에, 상당히 오랫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 * *

황상이 그를 찾았을 때 아진은 차라리 후련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래도 이제 무슨 일인지 곧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린린은 아진의 옆에 당연히 자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처럼 따라나서려고 했는데 대규모 상단이 꾸려지고 상행의 호위 부탁을 받게 돼 어쩔 수 없이 상행에 따라가게 되었다.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것처럼 구는 천마도 가모의 명령이 내려지면 꼬리를 내리고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며 황상을 알현하고 별일이 아니면 자기도 상단 호위를 도와주겠다고 하고 아진은 먼저 황성으로 향했다.

다른 때와 다르게, 조용히 들어오라는 말이 특별하게 전해져서 아진은 도중에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은 채 곧장 황제의 처소로 향했다.

밀영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아 황제는 곧 아진이 도착할 거라고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을 물린 듯했다.

“폐하.”

바람이 되었던 아진이 그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황제가 잠깐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이런 모습으로 다니는구나.”

“예. 폐하. 이제는 이것이 편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요.”

“근래 들어 조정 대신들이 죽어가는 일이 잦다. 조정 대신들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곳곳의 요직에 있는 자들이 소리도 없이 죽임을 당한다고 하더구나. 선 부정과 하월하고는 이미 얘기를 나눠봤는데 너를 부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더구나.”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무슨 말씀이신지요. 혹 살수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폐하.”

“그런 듯하다. 선 부정이 사람들의 시신을 확인했는데 선 부정도 정확한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흉기에 당한 것입니까, 폐하.”

“죽은 이가 많으니 몇은 그렇게 죽기도 했겠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면 별것 아니라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하다만 짐이 놓치는 것이 있지 않은지 걱정이 되는구나. 무엇보다 이 정도로 일이 진행된다면 향화문에서도 뭔가 낌새를 알아차려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그것은 확실히 의심을 할 만했다.

지금의 향화문은 물 샐 틈 없이 조직이 뻗어 있어서 향화문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쉽사리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이럴 것이 아니라 북궁세가로 가자. 거기에서 향화문주를 불러 같이 얘기를 들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그곳이 남의 이목을 피해서 이야기를 나누기에 편할 것 같아.”

“예, 폐하.”

태자가 죽고 새 황후가 책봉된 후 한동안 황권은 흔들림 없이 견고했다.

지금도 황권을 흔들려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고 후계 다툼을 위해 누군가 일을 벌이는 듯했다.

황제는 아무도 보지 않겠다고 말을 해 둔 후 아진과 함께 소리 없이 황궁을 빠져나갔다.

북궁세가에서는 이미 향화문주와 선이남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하월과 북궁세가주가 그를 맞아들였다.

황제는 우선 북궁세가주와 나눌 말이 있다고 하며 그와 함께 자리를 했다.

아진은 그가 일부러 자리에서 빠져주는 거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과 급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저씨. 무슨 일인지 그동안 향화문에서 알아낸 걸 말해주세요.”

향화문주에게 말하자 그의 검미에 주름이 깊어졌다.

“누군가 살종에 살행을 의뢰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황도에 세력을 둔 살종 중의 한 곳일 텐데 아무리 향화문이라고 해도 살종에는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종은 목숨을 걸고 정보를 지키려고 해서 만약 살종의 정보를 얻으려고 하면 그때는 저희도 희생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황상의 말씀을 들어 보면 죽은 자들이 조정 대신들로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 같던데요. 그런 자들을 죽이려면 웬만한 살종으로는 안 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황도에는 오대 살종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곳은 봉문했고 한 곳은 마지막에 의뢰받은 살행을 수행하다가 살수가 거의 죽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지요. 남은 곳은 세 군데인데 모두가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나 한 곳은 운영과 조직이 비밀스럽고 어떻게 의뢰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없습니다. 아는 사람만 알고 지극히 폐쇄적으로 운영을 해나가는 듯한데 수법을 보면 그곳에서 벌인 일이 아닌가 합니다.”

향화문주가 말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파천이 아니고는 그만한 일을 할 곳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일이 벌어지는 시기를 봐도 그렇지요. 다른 두 곳에 소속된 살수의 수로는 이 일을 할 수 없을 겁니다.”

하월의 말에 선이남을 바라보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 개의 살종이 손을 잡았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그러자 향화문주가 고개를 저었다.

“세 살종은 절대로 그러지 못할 겁니다. 사이가 아주 안 좋아요. 특히나 파천은 다른 곳들과 앙숙이나 다름이 없어서요. 파천은 지위 체계가 확실한 것으로 유명한데 파천의 살수는 금령, 은령, 동령으로 계급이 나뉜다고 합니다. 성공한 살행의 횟수와 임무의 난도에 따라서 나뉘는데 다른 살종의 수뇌부를 죽이면 살행의 횟수에 상관없이 바로 금령이 된다고 하지요. 그렇게 해서 수뇌부를 잃고 조직의 힘이 급격히 와해된 살종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합니다.”

향화문주의 말을 들으니 파천에 대해 점점 관심이 생겼다.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점은 발견됐습니까?”

“황위의 후계 다툼 때문이 아닌가 하는 전제 하에 생각을 하고 있는데 뭐 하나 수월하게 풀리는 게 없어. 의뢰자가 여럿일 수도 있는 것 같고.”

선이남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진이 그를 보다가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형님은 왜 여기에 계시는 겁니까. 이제는 내의원 부정이 이런 일까지 하십니까.”

“어쩔 수 없지 않으냐. 황상께서 내가 아니면 믿지를 못하시는데.”

선이남이 흐뭇하게 말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아야 누가 벌인 짓인지 알고 막을 수가 있잖아. 그래서 단골로 불려오고 있다.”

이번에는 아진의 시선이 하월을 향했다.

“하월 공자는요?”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저야말로 하는 일이 많은데요. 살종의 살수들은 보통 평소에 다른 일을 하다가 임무가 떨어지면 살행에 나섭니다. 본가에서도 살종 몇 군데와 손이 닿아 있고 한때는 살종의 큰손이었던 적도 있었지요. 그걸 바탕으로 해서 파천에 손을 대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파천도 꼬리가 잡히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하월의 말을 듣다가 아진은 그게 자랑스럽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고 하월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입을 다물었다.

“다른 때는 살행을 의뢰할 때 어떤 식으로 하셨습니까?”

“아버님이 살종의 지휘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을 불러들여 일을 시키면 됐지요.”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먼저 접근했나요?”

“그런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움이 안 되겠는데요?”

그러자 하월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일을 의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두셨습니다. 그런데 파천은 그 방법을 쓰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요.”

“살행을 의뢰받아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살종이 의뢰를 받지 않는다…….”

“의뢰를 받지 않는 게 아니라 의뢰받는 방법이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하셔야 할 겁니다.”

하월이 정정해주었고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향화문주가 아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황상께서는 이 일의 끝을 걱정하고 계실 겁니다. 지금은 각 황자 전하들을 지지하는 사람이나 후견인이 죽는데 나중에는 황자 전하들이 직접 암살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황상에게는 열아홉 명의 소생이 있었고 그중 태자를 비롯해 죽은 사람이 여섯이라고 했다.

자라는 동안 병을 얻어 죽은 사람도 있지만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 이도 있다고 했다.

많이 낳다 보니 여섯이 죽고도 열셋이나 남아 있었다.

언젠가 황상의 어린 아들을 보고 그의 지치지 않는 힘에 놀란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많이 죽는 것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살종은 어떻게 대상을 정합니까? 살행 의뢰가 들어오면 의뢰의 수락 여부를 어떤 식으로 결정해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살종에 따라서 다르겠지요.”

향화문주의 말을 들으며 아진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북궁세가 무인이 그들을 부르러 왔다.

황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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