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3화
413화
하월은 아진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러다가 자신의 내공이 부족해지지는 않을까 해서 입을 다문 채 열심히 신법을 펼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건지는 몰랐지만 그곳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제일조는 그들이 가마 행렬을 따라잡자 퍼드득 위로 올라갔다.
그때부터는 자기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빠지려고 하는 듯했다.
하월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는 그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대충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가마에 탄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들이 실마리를 제공해 줄 듯했다.
아진은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나무 위로 풀쩍 뛰어올랐다.
가마를 든 사람들이 빠르지 않은 것을 보고 하월에게 설명해줄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월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아진의 옆으로 가서 조용히 앉았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서 공자님? 누구입니까?”
“황후 폐하입니다.”
“……예? 황후 폐하가 왜……요?”
“그건 모릅니다. 지금 제가 아는 것은 저 가마에 황후 폐하가 타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이 시간에 혼자 궁에서 나오셔서요? 아마도 비밀리에 빠져나오신 것 같은데…….”
“그렇지요. 충분히 의심스러운 상황이라서 따라온 겁니다. 선 부정께 황후전을 살피고 있다가 황후 폐하가 움직이시거든 연락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혹시 서 공자님은 황후 폐하를 의심하고 계셨습니까? 왜요?”
하월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자기가 알아낸 것은 황후를 동정하게 되는 근거였지 절대로 황후를 의심하게 될 만한 정황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똑같은 정보를 알았는데 왜 두 사람이 내린 결과가 다른 것인지 하월은 열심히 이해를 해 보려고 했지만 그 노력은 계속 수포로 돌아갔다.
“서 공자님. 내가 모르는 일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나도 공자가 아는 것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황후 폐하를 의심한 겁니까?”
“황후 폐하가 조종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황후 폐하가 벌인 일일 때 가장 위험했습니다.”
하월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이 일이 황후 폐하가 조종한 일이라고 한다면 그분이 얼마나 무서운 일을 벌인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의 동정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팔과 다리를 잘라낼 수 있는 분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황후 폐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황후 폐하는 아니기를 바라면서 그곳을 지켜달라고 한 거였거든요.”
“……!!”
하월은 말을 하지도 못한 채 아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아진의 말을 생각해보는 듯했다.
동정을 받고 싶어서 자신의 팔과 다리를 잘라냈다.
죽임을 당한 측근들을 대신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얼마든지 채워 넣을 수 있을 테니 그 팔과 다리는 아마도 다시 자라게 될 것이다.
아진은 황후가 자기를 불러서 한 말을 하월에게 해 주었다.
벌써 아진에게 2황자를 지지해 달라고 말을 한 황후였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황후는 얼마든지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서.
황실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황상 폐하의 심기가 어지러워지는 것이 무섭다고 말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 말고도 할 말은 얼마든지 있었을 터였다.
황후가 대놓고 그런 말을 했을 때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하월은 기가 막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벌인 걸까.
아니. 이유는 이제 이해가 됐다.
그런데 어떤 마음이면, 자기에게 충성을 약속한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 그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 4황자 전하는…….”
“그게 문제입니다. 황후 폐하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동정을 받겠다는 생각만으로 그 일을 벌인 게 아닌 겁니다.”
“그러면 이 일로 4황자 전하가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사고 제거되기를 바라고 그런 건가요?”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하고 부자연스럽지 않습니까. 만약에 4황자 전하 측에서 일을 꾸몄다면 희생자 중 한 사람 정도는 눈가림을 위해서라도 그쪽 사람을 끼워 넣었을 것 같습니다. 피해자 중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4황자 전하 측 사람만 없는데 4황자 전하를 노린 함정이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겠습니까?”
“나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들의 수준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월은 헛웃음을 지어버렸다.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 폐하의 기억을 읽으실 겁니까?”
아진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계속 추측만 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확인을 해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 가마를 놓치지만 않으면 말이지요.”
하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황후라면 그도 황궁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자기 앞의 황후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기에 행동을 조심하고 말도 삼간다고 생각했다.
매사에 자신이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했었다.
그런데 자기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도대체 뭘 알고 함부로 동정을 했던 걸까.
기가 막혀서 하월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역시 세상에 나처럼 순진한 사람은 없는 것 같네. 나 빼고 다 속이 시커멓잖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하월의 옆에서 아진이 먼저 몸을 날렸다.
슬슬 가마를 따라잡기 위해 몸을 움직일 때가 된 것이다.
그들이 간 곳은 커다란 장원이었다.
하월은 그곳이 누구의 장원인지 알고 있었다.
황성에서도 알아주는 좌부도어사의 장원.
설마 황후가 이곳과 연이 닿아 있다는 것은 알지도 못한 노릇이었다.
아진은 어느덧 바람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자 하월도 그때부터는 더욱 주의를 기울이며 자신의 기척을 숨겼다.
가마가 다가가자 조용히 문이 열렸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가마에 탄 사람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열린 문으로 가마가 들어가고 가마는 전각 앞까지 이르러서야 멈췄다.
그 안에서 황후가 내렸다.
변복을 하고 있었지만 제일조 때문에 아진과 하월은 그녀가 황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각에서 미리 사람들이 나와 있다가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는 것만 봐도 그녀의 신분을 추측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기척을 완전히 죽인 채 그들을 따라갔다.
“어서 오십시오. 폐하.”
황후는 말없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
안으로 들어간 황후는 상석에 앉았고 다른 이들이 차례로 착석했다.
그들 중 누구도 그 자리에 아진과 하월이 몸을 숨긴 채 숨어든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은 어찌 되어가고 있습니까.”
“서도진이 황성에 왔다는 소식이 퍼져서 당분간은 멈추라고 해 두었습니다.”
황후의 아미가 꿈틀거렸다.
“그자를 부르셨다고 들었사온데…….”
장원의 주인이 말하자 황후가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황자를 지지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것이 황상의 명이라 어쩔 수가 없다면서 이해해 달라고 하지 뭔가요. 내가 그리 말을 했으면 못 이기는 척 말이라도 그러겠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말하는 것이 마치, 내가 저에게 반역이라도 하라고 하는 것처럼!”
황후는 그 일로 꽤나 화가 났었는지 울분을 토했다.
그 자리에 있던 자들은 다 같이 화를 내면서 서도진이 황상 폐하의 총애를 믿고 오만방자하게 군 것이 아니냐며 황후가 듣고 싶어 할 만한 말을 쏟아 냈다.
“그 건방진 자가 언제까지 그런 얼굴을 할 것인지 내가 반드시 지켜볼 것이에요.”
황후가 표독스러운 얼굴을 하고 쏘아붙였다.
“폐하께서 원하시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황후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급급했다.
“그런데 폐하. 황후전에서 나오고 서도진이 다른 후궁들의 처소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태감들이 그들의 궁으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각자의 처소에서 서도진이 일각에서 이각 정도를 머물다가 나왔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그자가 무슨 얘기를 했다던가요?”
황후가 사나운 눈을 하고 물었다.
“궁주들마다 황성에서 일어난 일과 자기들이 무관하다면서 혹시라도 의심을 받게 될까 봐 걱정하며 얘기를 했다 합니다.”
그런 것까지 알 정도라면 후궁들의 처소에 있는 태감과 궁인들 중에도 그들에게 넘어온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였다.
황후가 주먹을 꽉 쥔 채 건방지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던 일은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2황자 전하를 고립시키고 기반을 흔들기 위해 측근을 제거해 나가는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돌아가는 자들은 4황자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이 점점 더 퍼질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굳어지도록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폐하. 서도진이 한 말은 괘념치 마십시오. 서도진이 나서지 않아도 이 일은 저절로 될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2황자 전하의 품으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이미 그 움직임은 시작되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곧 2황자 전하를 태자로 책봉하실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면 황제 폐하도 더 이상 태자 책봉을 미루기만 하시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파천이 참으로 큰일을 한 것이 아닌지요. 그자들이 일을 이렇게까지 잘 하지 않았으면 황제 폐하께서 서도진을 불러들이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부르지 않으셨다면 서도진이 왜 갑자기 황성에 와 있겠는지요. 황제 폐하께서 서도진을 부르신 걸 봐도 이미 성심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지요.”
“이제 다 되었습니다. 폐하. 조금만 기다리시면 될 것입니다.”
모여 있던 자들이 한목소리로 말하자 황후의 표정도 조금씩 누그러지는 듯했다.
“좋군요. 서도진이 돌아가면 한 번에 일을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들 생각하나요?”
“폐하. 이미 거의 다 이루어졌습니다. 조급하게 여기다가 일이 잘못될 수도 있으니 지금이야말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파천의 살수들에게도 멈추라고 하고 서도진이 조사 결과를 어떻게 내놓는지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서도진이 우리 뜻대로 한다면 더 이상 의미 없는 희생을 늘릴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지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황후가 그를 바라보았다.
“의미 없는 희생이라. 좌부도어사는 그리 생각하는가 보군요.”
“그것이 아니라…….”
“내가 좌부도어사의 마음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황후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소신은 황후 폐하와 황자 전하를 위해서 목숨과 가문을 전부 내놓을 것입니다.”
“의미도 없는 희생을 왜 하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황후는 이 자리에서 확실히 버릇을 들이겠다는 듯이 말했고 다른 이들은 말을 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기척을 숨긴 두 사람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