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1화
431화
“감사합니다. 역천마의 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만 해 주십시오. 역천마의 님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이거야말로 든든한 말입니다. 잊지 않고 써먹도록 하겠습니다.”
“꼭 그렇게 해 주십시오. 역천마의 님의 실력이라면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별로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꼭 빚을 갚고 싶습니다.”
연월랑이 말을 하는 동안 역천마의도 아진도 웃었다.
처음에는 연월랑에게서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신기하고 조금은 어색했는데 계속 들을수록 그 목소리가 연월랑에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가 좋으십니다. 연 군사님.”
역천마의의 말에 연월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제가 정말…… 목소리 좋다는 말은 엄청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한테 막 가수 하라고 그러고…… 그 목소리가 이 목소리는 아니기는 합니다만 제가 정말 목소리는…… 목소리 하나는…….”
그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말을 하다가 아진을 바라보았다.
“공자님. 그러면 이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번번이 이렇게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연월랑은 빨리 산본의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빨리 가고 싶어지네요.”
“그러면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주 잠깐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고마웠던 분들에게 인사는 해야지요. 제가 이렇게 된 걸 보여드려야지요.”
그리고 연월랑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연월랑입니다. 저 연월랑입니다. 역천마의 님 덕에 제가 이렇게 됐습니다. 대법이 성공했습니다. 저 연월랑입니다. 앞으로 저 보고 못 알아보시면 안 됩니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미친 사람 같았다.
그렇게 그는 자기 이름을 외치면서 천마신교의 영역을 계속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마다 그에게 다가가며 축하를 해 주었다.
정말 어지간해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연월랑은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다시 신교에 올 날이 언제일지 모르기도 했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게 재미있어서 그러는 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을 잔뜩 달고서 연월랑이 돌아오자 역천마의는 한참이나 웃어댔다.
그동안 수많은 대법을 시행하고 성공했지만 연월랑처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역천마의는 이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흐뭇하게 연월랑을 보았다.
“앞으로 정말 잘 쓰겠습니다. 역천마의 님은 저에게 어머니와 같으신 분입니다.”
“됐습니다. 연 군사님을 아들로 두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나에게 고마우면 우리 주군을 잘 보필해 주세요. 나는 그거면 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래 봬도 잘하는 게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얼굴도 잘생겨졌으니까 눈 호강도 시켜 드리겠습니다.”
연월랑은 나오는 대로 마구 지껄여댔고 역천마의는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성공한 대법으로 이렇게나 좋아해서 역천마의도 한껏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두 사람을 배웅했다.
먼저 보내지 않으면 아무래도 오늘 안에 떠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 * *
“어어?”
“어어어……!”
연월랑과 아진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아진이 돌아왔다.
웬 낯선 사람과 함께.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설마 연…… 군사님?”
아진이 내려 주자마자 연월랑은 사람들의 앞에서 뛰어다니며 자기 이름을 외쳤다.
“저 연월랑입니다. 연월랑이에요. 제가 연월랑이에요. 역천마의 님이 성공하셨어요. 역천마의 님의 대법이 성공했습니다!!”
그 소문은 즉시 퍼졌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달려 나왔다.
“세상에. 우리 예쁘던 연월랑 님은 어디 가시고 이렇게 흉한…….”
누군가 그렇게 장난을 쳤지만 연월랑은 굴하지 않았다.
못생겨졌다고 해도 좋았을 텐데 얼굴도 퍽 마음에 들어서 남들이 하는 말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린린이 급하게 달려왔다.
그러고는 연월랑을 보고 크게 웃음을 지었다.
“역시 우리 역천마의군.”
“소저, 제 모습이 어떻습니까?”
한껏 신이 난 연월랑이 묻자 린린이 흐뭇한 표정을 했다.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몰랐어요? 역천마의를 안 믿었나 보네요. 역천마의한테 말을 해야겠네.”
그러자 연월랑이 깜짝 놀라며 그런 게 아니라고 했고 사람들은 연월랑이 린린의 앞에서 꼼짝 못 하는 게 재미있는 듯 웃어댔다.
“수고했다. 아진아.”
어느새 다가온 도종이 말했고 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위도도 서악을 데리고 나왔고 서악은 연월랑을 빤히 보더니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자기가 모르는 아저씨가 달려와서 와락 안아버리는 바람에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서악아. 숙부다. 연월랑 숙부야. 이 연 숙부를 못 알아보면 섭섭하지.”
그러나 서악은 여전히 알 바 없다는 듯이 제 아버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린린이 아진의 옆으로 와서 힘들지 않냐고 물었고 아진은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어.”
그 말에 린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정말 간절히 바랐었나 봐. 안 될 거라고 했을 때는 받아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그렇지. 어떤 꿈들은 그렇잖아.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포기하자고 마음을 다독이면서도 그게 안 되는 일들이 있잖아. 그리고 그 꿈은 결국에는 이루어지게 되는 모양이야. 이렇게 의지가 강한 사람들에게는.”
“그래. 이렇게 의지가 강한 사람들에게는.”
린린이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는 연월랑을 위해 잔치를 해야겠다고 말하더니 고기와 술을 사오게 했고 정말 잔치가 열렸다.
산본의가의 잔치는 거창하지 않았다.
고기와 술을 사오고 상을 펼치고 올려놓으면 진료를 하다가 와서 먹기도 하고 다른 업무를 하다가 먹기도 했다.
일이 일이니만큼 모두가 다 상에 둘러앉아 먹기는 어려웠다.
“연월랑. 이제는 어떻게 살고 싶어?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연월랑과 함께 앉은 위도가 묻자 연월랑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생각나는 게 없는 듯했다.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은데요? 참한 여자가 있으면 만나고 싶다는 게 우선은 가장 큰 목표고요. 그리고 산본을 다니면서 제가 달라졌다는 걸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아예 연월랑이랑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새로 시작하는 게 낫지 않아? 여자가 남자로 됐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은데. 나는 아예 새로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안 그래, 아진아?”
위도의 말에 아진이 연월랑을 보았다.
사실은 아진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법의 성공으로 연월랑은 단순히 성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얼굴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자기가 연월랑을 데리고 가서 대법이 펼쳐지는 동안 옆에 같이 있다가 연월랑이 바뀐 모습까지 지켜보고 함께 돌아왔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연월랑이라는 것을 알 방법은 전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연월랑이 아진이랑 같이 돌아왔으니 그를 연월랑이라고 믿은 것뿐이지 연월랑이 혼자 와서 자신을 연월랑이라고 했다면 아마 그 말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연월랑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사람들은 아마 그 말을 못 믿을 거야. 우리가 그렇게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믿는 게 어렵기는 할 거라는 거지.”
연월랑도 위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시비가 생길 수도 있고 피곤해질 일이 많기는 할 듯했다.
당장 산본의가에 진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만 해도, 그리고 의학당에서 그에게 수업을 받는 사람들만 해도 그랬다.
그가 자신을 연월랑이라고 할 때 순순히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여자를 만날 때도 그래. 여자였다가 남자가 됐다고 하면……. 나는 좀 그럴 것 같은데. 기왕 얼굴도 달라졌으니까 그동안 살아왔던 건 없던 거로 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건 어때? 이름도 이참에 센 느낌 나는 거로 바꾸고. 악두혁 같은 거로.”
위도의 말이 길어질수록 연월랑의 귀가 팔랑거리는 것 같았다.
“공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연월랑이 대뜸 자기에게 묻자 아진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린린을 보았다.
“너는 어떨 것 같아?”
“나라면 바로 갈아타지. 이름도 바꾸고 다른 사람인 것처럼 할 거야. 그동안 잘못을 저지른 게 많으면 이럴 때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텐데. 그런데 연 군사님 정도면 고민할 것도 없지 않나?”
그러면서 린린이 연월랑을 빤히 보자 연월랑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린린을 보았다.
“나는 그동안 평판을 잘 쌓아왔는데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계속 연 군사님으로 사셔도 될 것 같고요. 그런데 저는 한 번 해 본 거잖아요? 제 경우에는 새로운 사람으로 사는 것도 좋은 것 같더라고요. 천마하고는 다른 평범한 삶도 좋았어요.”
그 말이 결정적이었을까.
연월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야겠어요. 앞으로 다른 사람으로 살아봐야겠어요. 그런데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죠?”
“살인멸구?”
린린의 입에서 당장 그 말이 나오자 아진이 린린을 쥐어박았다.
“너는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말해, 인마.”
“당연히 농담이지.”
“연 군사님 앞에서는 농담도 함부로 하면 안 돼.”
그러자 연월랑이 발끈하며 자기도 그런 게 농담인 건 안다고 했고 위도는 연월랑의 새 이름으로 뭐가 좋겠냐면서 센 느낌이 나는 여러 이름을 읊어댔다.
그곳에서 시작된 작전에 점점 살이 붙었다.
* * *
산본의가의 예쁜 의원이 갑자기 사라졌다.
의학당 교수까지 할 정도로, 그리고 산본의가의 의원들도 따로 가르칠 정도로 의술 실력이 뛰어나다고 하던 그 연월랑 군사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 볼일이 있어서 갔나 보다고 생각하던 환자들은 하루 이틀이 지나고 몇 번이나 산본의가에 가는 동안 연월랑이 계속 보이지 않자 점점 궁금해졌다.
“그 예쁜 의원님은 어디 가셨나요? 요즘 통 안 보이시는데. 다른 곳으로 가셨나요?”
연월랑을 찾으며 그렇게 묻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갔다.
그런 얘기를 하는 동안 연월랑이 가까이에 있었지만, 그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예. 다른 곳에 가셨습니다.”
의원들은 연월랑이 신신당부한 것을 들어서 그렇게 말을 했고 환자들은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의원님이 참 친절하게 잘 봐주셨는데. 아니. 그렇다고 다른 분들이 안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분은…….”
연월랑은 자기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감동을 받았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 더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연월랑의 착각이었다.
연월랑의 존재감이 꽤 강렬했던지 시간이 지나고도 연월랑을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다.
그리고 연월랑이 어디로 갔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앞으로 영영 만날 수 없는지 묻곤 했다.
이제는 돌이키지도 못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을 시켜 거짓말까지 하게 했는데.
연월랑은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자기가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롭게 자리를 잡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아진과 위도가 가장 적극적으로 말렸다.
그럴 필요가 있겠냐는 거였는데 연월랑은 못 이기는 척 그곳에 남았다.
악두혁은 너무 센 것 같다며 새롭게 지은 이름은 추연월로 연월랑에서 한 글자가 빠지고 한 글자가 새로 붙었다.
추연월이라는 이름이 새로 입에 붙기까지 그를 연월랑이라고 부르며 수많은 실수를 거듭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실수도 없이 그를 추연월이라고 부르게 됐을 때, 북리세가에서 사람이 왔다.
출산이 임박한 독고소영을 위해 의원을 보내줄 수 있냐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