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6화
436화
하늘이 어두워진다 했더니 기어이 비가 내렸다.
적무단이 먼저 움직였다.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추살 3조가 죽었다는 곳은 이쯤 어디였다.
“소문주님, 흩어져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대주님.”
저절로 그 말이 나왔다.
사이한 기운이 말도 못 할 정도로 짙었다.
음산한 분위기에 팽수혁은 몸이 움츠러들었다.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것도 희한한 노릇이었다.
이런 사기는 느껴본 일이 거의 없는 듯했다.
혹시 곽설은 어떨까 해서 그를 보자 그 역시 비슷한 기분인지 팽수혁을 보았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길보다 흉이 많은 날.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들은 일찌감치 검을 꺼내 들었다.
“으아아악!!”
가까이에서 단주의 비명이 들리자 두 사람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비명이 들린 곳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다.
“단주님! 무슨 일입니까!”
곽설이 다가가며 외쳤다.
단주는 무슨 일을 당했는지 등을 보인 채 웅크리고 있었다.
“단주님!”
다가가는 곽설을 팽수혁이 잡아챘다.
그와 동시에 웅크리고 있던 남자의 몸이 터져나갔다.
“단주가 아니다. 옷이 달라. 다른 자야. 함정에 빠진 듯하다.”
팽수혁이 말하고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단주님, 조장님!”
곽설도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폭음이 들렸다.
“단주님. 조장님! 모두 어디 계십니까!”
두 사람이 이리저리 찾아다녔지만 폭음이 들린 곳에서 살이 터진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적무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슴이 무서울 정도로 두근거렸다.
그때부터 연달아 스무 번 정도는 폭음이 터진 듯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서 그런 짓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따라오지 못하도록?
발을 묶어 놓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자들은 누구라는 말인가.
그들은 제대로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이자들을 구해야 하는 건 아닌가?’
적무단을 찾으러 가는 동안 몇 사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하면 곧 몸이 터져나갔다.
백발백중이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가 그들의 몸을 터뜨리는 것 같았다.
몸에 무슨 장치가 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팽수혁은 도저히 어찌 해 볼 수도 없는 무력감을 느끼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다가 몸을 물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세요, 공자님. 저희는 선량한 사람입니다. 저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를 납치한 사람들이 몸에 폭약을 심었습니다. 무섭습니다. 저렇게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살려 주세요. 공자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소리치며 눈물을 흩뿌리던 사람은 말을 하던 그대로 터졌다.
팽수혁과 곽설은 제대로 말을 하지도 못하며 그 자리에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인가.
“단주님!!”
곽설은 빨리 적무단을 찾아서 이곳에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다녀도 적무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들이 있던 곳에서 움직이지 않던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달려왔다.
다른 이들이 터져 죽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두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며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저희 좀 살려 주십시오.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렇게 몸이 터져서 죽어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좀 살려 주십시오!!”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팽수혁과 곽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비척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주위에서는 피비린내가 났고 삽시간에 살점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벌인다는 말인가……!!
“가자. 곽설. 여기를 빠져나가야 해!”
팽수혁은 적무단을 붙잡아간 사람들이 노린 것이 그들의 무골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게 맞다면 자기들이 붙잡혀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도 적무단주의 실력을 알고 있었고 적무단주가 쉽게 잡힐 사람이 아니라는 것 역시 익히 알았다.
그런 적무단주가 잡혔다면 자신과 곽설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몰랐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그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몸이 터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함하며 도망친 것 말고는.
그러면서도 모든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지금 이대로 적을 만난다면 제대로 싸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그들에게 달려와 곽설의 다리를 잡고 매달렸다.
그는 거의 정신이 나가 있었다.
“살려주십시오. 공자님. 죽기 싫습니다. 저는 죽기 싫습니다!!”
무서운 집념이었다.
곽설은 그의 팔을 잡아떼려 했지만 그는 제발 살려달라면서 곽설에게 더욱 매달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몸에서 피가 흘렀다.
엉성하게 봉합되어 있던 곳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듯했다.
헤쳐진 옷 속으로, 절개된 자국이 보였다.
“놓으십시오!!”
곽설이 참담하게 외쳤고 팽수혁이 다가갔다.
“놓지 않으면 베겠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놓으십시오……!”
“싫습니다. 그냥 저를 죽이세요. 무섭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터져 죽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저를 죽여주세요!!”
팽수혁은 이를 악다물었다.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팽수혁은 검을 휘둘러 그의 몸을 벴다.
그리고 그때부터 전력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곽설이 말없이 그를 따랐다.
흑사문으로 향하다가 팽수혁이 멈췄다.
“나는 사련으로 가겠다. 어른들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래. 조심해.”
곽설도 이미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 서둘렀다.
적무단주는 흑사문의 핵심전력이었다.
그런 그가 손도 쓰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면 흑사문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사련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곽설이 흑사문으로 가는 동안 팽수혁은 전력을 다해 사련으로 향했다.
신법을 하는 것도 어려워 말을 구해 달렸다.
평정심을 찾을 수가 없어 내공을 운용할 수가 없었다.
말을 달리면서 그는 일어난 일을 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머릿속은 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다.
* * *
사련성에 이른 팽수혁은 자기가 무사히 그곳에 왔다는 사실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를 본 위사들이 깜짝 놀라며 일제히 달려왔다.
“소련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들은 소련주의 몸과 옷이 피투성이인 것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
핏자국은 말랐지만 혈향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팽수혁은 그들에게 말을 할 시간이 없어 그대로 안으로 달려갔다.
그를 본 사람들 중 몇몇이 팽수혁을 따랐다.
팽수혁을 대신해 그가 왔다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가 련주전에 갔을 때는 이미 몇몇 사람이 먼저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냐, 소련주!”
련주가 기함하며 물었고 팽수혁은 자기가 본 일을 말했다.
“흑사문의 적무단이 사라졌다는 말이냐. 사람들이 터져 죽었다는 것은 무슨 소리더냐!”
“약문을 두고 있는 몇몇 문파에서 그런 연구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소련주가 하는 말은 상상도 못 하겠습니다.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까.”
“누가 이런 짓을 벌인다는 말이오. 왜 하필 지금입니까!”
사람들이 저마다 말을 쏟아냈다.
팽수혁도 그들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왜 하필 지금.
팽수혁 역시 그 생각을 했다.
지금은 사련에 중요한 시기였다.
사련뿐만 아니라 사파 전체에 지금과 같은 기회는 다시 오기가 힘들었다.
“여러 말 할 필요 없습니다. 이 일을 벌인 자가 흑사문과 관계있다는 것을 알려서는 안 됩니다. 당장 흑사문주를 불러들이시고 이 일에 대한 내용이 다른 곳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하셔야 할 것입니다.”
군사 사마원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습니다. 서두르는 것이 좋을 테니 련주께서는 흑사문에 먼저 사람을 보내도록 하시지요. 엄히 함구령을 내리도록 말입니다.”
팽수혁은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설마 그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련주는 군사를 바라보며 곧바로 흑사문에 사람을 보내도록 했고 군사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 밖으로 나갔다.
“련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장 흑사문주님을 불러 그 일에 대해 자세한 것을 알아보고 사인걸에 대한 일을 공유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 일은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일 텐데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면 그자들에게 희생되는 사람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적무단도 사라졌습니다. 단주님과 단원들을 찾아야 하지 않는지요. 그곳으로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련주님……!”
“소련주. 이번 일은 소련주가 나설 일이 아니네. 이 일이 사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소련주도 생각을 해야 하네. 이번 비무대회만 성공적으로 치르고 나면 사련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을 거네. 그러면 그때는 우리도 마음껏 세력을 키워나갈 수 있어. 어떻게든 비무대회는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네.”
“그 말이 맞습니다. 비무대회를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 보십시오. 보나 마나 정파 무림인들은 그 일을 해결한다고 비무대회를 무기한 연기하자고 하거나 없던 일로 돌려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사파의 부흥을 위한 기회는 그대로 날아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곳곳에서 그 말에 호응하며 말했고 팽수혁은 아찔해졌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련주를 바라보았다.
“련주님. 안 됩니다. 설령 사파의 부흥이 더뎌지는 한이 있어도 무고한 희생이 불어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지금 그 일을 아는 것은 흑사문과 우리입니다.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희생이 더 늘어갈 뿐만 아니라 나중에 이 일을 조사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시작을 해야 합니다. 누구를 찾아서 어디서부터 조사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시간을 낭비하게 될 거라는 말입니다.”
“이 일은 어른들이 알아서 할 것이니 너는 나설 것 없다. 소련주.”
“무슨 말씀입니까, 아버지.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시작하다가는 조사에만 몇 달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 시간이면 사인걸은 이미 세력을 키울 수도 있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손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 하나만 생각하십니까. 비무대회가 중요하다고 하나 이것이 우리 스스로 얻은 기회인지요. 서도진 공자가 아니었으면 이건 가능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말이냐. 서도진은 앞으로 이 일을 후회하게 될 거다. 사파가 다시 득세하고 정파를 발아래에 두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되겠지. 범 새끼를 키웠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팽수혁은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 연회에 다녀와서 그 소식을 전했을 때만 해도 련주는 그런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감격하고 순수하게 기뻐했다.
사련에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온 것에 감사했고 비무대회를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그사이에 그의 주위에 많은 사람이 오가더니 그들이 련주의 마음에 욕심을 키워놓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