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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 의선되다-441화 (441/470)

제441화

441화

“그것까지 전부 다 알아보려면 시간이 걸리기는 할 겁니다. 그런데 표사들은 워낙 이동이 많기는 합니다. 특히나 저희 흑사문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표행이 일정하게 잡히는 편이기는 하지만 표국에 상주하는 표사는 그 수가 정해져 있고 그 외에는 표행이 잡힐 때마다 뽑는 식이었거든요.”

그 말에 아진이 곽설을 바라보았다.

말을 한 곽설 자신도 뭔가 희한한 기분을 느꼈다.

표국.

드나드는 사람도 많고 떠나는 사람도 많은 곳.

표행이 끝나고 떠나는 사람도 많고 표행 중 다치는 사람도 많은 곳이 바로 표국이었다.

누군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들을 납치하기 위해 접근한다면 다른 사람의 의심을 크게 받지 않고 일을 성공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진은 그곳에서 확인할 것보다 흑사문에 가서 확인할 것이 더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자기가 곽설과 함께 흑사문으로 가 보기로 했다.

“형님은 린린과 함께 이곳에서 더 조사를 해 주세요.”

“그래. 나한테 맡겨라, 아진아.”

청수와 무린은 흑사문으로 같이 데리고 갔다.

그들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자세하게 알지는 못해도 눈을 빛내며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려고 애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던 상황에서 차츰차츰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것 같은 아진을 보면서 그들은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뭘 하려고 했을까요? 그런데 그러고 보면 사인걸은 정말 영리하게 군 거기는 합니다.”

곽설의 말에 아진도 그렇게 느꼈다.

흑사문에 도착한 그들은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제일조의 전서를 받고 미리 준비를 해 두고 있어서 조사가 착착 진행되었다.

문주의 배려 하에 표국의 국주가 특별히 아진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고 사인걸과 비슷한 시기에 표국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이 같이 와서 아진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사실 사인걸이 그 일을 저질렀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말이 많지도 않았고 그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정말 존재감이 없이 지내던 사람이어서 말이지요. 총표두면 부각이 되게 마련인데 사인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국주가 그에 대해 떠올리며 말을 해 주었다.

“그런데 사인걸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서 생각나는 게 있었지요. 무위도 다른 사람들보다 낫기는 했지만 그자는 특별한 게 있었습니다. 비적들을 만나거나 해서 목숨에 위협을 받을 때 다른 사람들과 달리 떨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게 나중에야 생각이 나더군요. 그리고 사람들을 죽일 때도 확실히 잔혹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서 공격을 했다면 사인걸은 그걸 즐기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즐겨요?”

“예. 과도하게 손을 쓰는 느낌이었죠. 목숨을 끊기 위해서 필요한 것보다 더 손을 썼어요.”

말을 하고 국주가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런 걸 진작에 알아봤으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많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사인걸에 대해 자기들의 기억을 말해주었다.

“사람들의 무위를 알아보는 걸 좋아했어요. 누가 강한지 관심을 많이 갖는 것 같았고 새로 들어온 표사들한테 특히 관심이 많았죠. 연무장에 자주 가서 표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곤 했고요. 총표두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표행이 끝나면 뭘 하고 지냈습니까? 표국 사람들 외에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걸 본 적이 있나요?”

“아뇨. 그 사람은 표국에서만 살았습니다. 다른 취미는 없는 것 같았어요. 일이 없으면 연무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봤죠. 정말 그게 다였던 것 같습니다.”

정보가 하나씩 모였다.

추살 3조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전서는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필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본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 결과 사인걸을 쫓아간 추살조들이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아진은 그게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알 수가 없었다.

때로는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하고 고통스럽기도 했던 것이다.

* * *

사련은 숨 가쁜 시간을 보냈다.

자기들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면 사인걸을 누구보다 먼저 잡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동안 사인걸이 문제를 일으키고 다녔다고 해봐야 그가 상대한 사람들은 표사나 양민들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들과 붙으면 상대가 안 될 거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련의 고수들마다 사인걸이 나타날 만한 곳으로 가서 그를 수색했다.

사람들이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수일이 지난 후였다.

며칠이 지나고, 련주는 고수들을 소집했고 그 소집에 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모두 개인적으로 사인걸을 찾겠다고 나선 이들이었다.

련주가 부르면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고 주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라고 했는데 연락이 두절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사인걸을 잡고 싶은 욕심에 그런 걸 거라고 생각했지 설마 그들에게 일이 생긴 거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고 련주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련주는 팽수혁을 보내 아진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일은 급하게 진행되는데 막상 아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피해의 규모도, 그리고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 * *

검은 석벽에 불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깊은 잠에 빠져든 것처럼 기척도 없었다.

이곳에 이런 석벽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파가 한창 융성했던 당시 사황이라 불리던 자의 비고로 쓰이던 곳이었다.

사황이 갑자기 죽으며 이곳에 대한 비밀도 같이 사라졌는데 사인걸이 이곳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세계에 왔을 때 그가 눈을 뜬 곳이 이곳이었던 것이다.

그때는 거대한 문으로 가로막혀 있었고 그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힘을 키우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결코 그의 힘으로 뚫고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방법을 찾던 그는 석벽에 빼곡하게 비급이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심법부터 시작해 하나하나를 깨쳐야 했다.

동굴을 빠져나가는 데 3년이 넘게 걸릴 거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그는 어쩌면 자살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희망을 가졌고 며칠만 있으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버텨 결국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동굴을 가로막고 있는 문을 부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무공을 익혔고 자기가 익힌 것이 사파의 무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동굴에서 익힌 무공 덕분에 먹고 살 일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들어간 곳이 흑사문의 표국이었다.

조금만 시간이 어긋났어도 그는 아주 큰 곤욕을 치렀을 터였다.

그는 사파가 남들의 눈치를 보면서 숨죽여 살아야 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다가 막 기지개를 켤 때 나왔다.

그곳에서 다시 상태창을 보았다.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상태창이었다.

서도진을 죽이면 황제가 되게 해주겠다고 했다.

‘웃기는 작자가 여기로 왔다 이거지?’

황제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보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기꺼이 서도진을 죽였을 것이다.

십 년도 훨씬 더 되었을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서도진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뉴스가 지구촌 곳곳에서 속보로 전해졌다.

사인걸 역시 그 뉴스를 보았다.

한국의 헌터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던 그는 몇 번 서도진과 같이 레이드를 한 경험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도진을 경멸하고 조롱했고 왜 그런 기형적인 스탯이 나온 건지 소름 끼쳐 했다.

나중에 서도진의 스탯이 갑자기 높아지고 사람들의 관심이 서도진에게 향했을 때 사인걸은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무슨 장난인지.

그동안 헌터들의 우상이었던 사인걸은 갑자기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한순간에 돌변한 사람들은 웃기지도 않았다.

서도진은 그런 사람들의 열렬한 관심과 구애에 내내 무관심하더니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후에 일어난 일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람들은 서도진이 그동안 얼마나 큰 역할을 해왔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던전의 괴수들이 던전에서 빠져나와 사람들이 살던 삶의 터전을 덮치기 시작했을 때.

수많은 이들이 손도 쓰지 못하고 죽어가고 헌터들이 도망치기 바빴을 때.

뒤늦게 셀터가 만들어지고 그곳으로 숨어든 사람들은 셀터를 벗어나지 못했다.

던전에 가서 괴수를 사냥하던 헌터들은 이제 셀터를 지키는 수비대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서도진이 사라지고 생긴 변화에 분노했다.

진작 서도진을 지켜내지 못해 일을 이렇게 만들었다며 헌터 협회 관계자들을 공격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사인걸은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괴수와 싸웠지만 들려오는 것은 늘 분노에 찬 소리였다.

서도진은 어디에 간 거냐고.

서도진을 어떻게 한 거냐고.

사람들은 모두 광기에 휩싸인 것 같았고 사인걸은 왜 자기가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나고 무림세계로 가겠냐고 했을 때 사인걸이 주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것은 그에게 구원이었다.

함부로 날뛰는 괴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더 이상 목숨을 위협받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더군다나 그곳은 더 이상 사인걸을 원하지 않았고 그것은 사인걸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눈을 떴을 때 동굴 안에 갇혀 3년 동안 나오지도 못했지만 원래 있던 곳의 상황이 그랬기에 사인걸은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있다가 나온 곳이 어색하기는 했지만 영 적응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그는 최대한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말은 저절로 할 줄 알았고 동굴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동굴에 적혀있던 글자도 볼 줄 알았으니 그런 것은 저절로 되는 모양이라고 어느새 의문 없이 적응해나갔다.

서도진에 대해 소문을 모으는 것도 열심히 해나갔는데 그것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쉬웠다.

서도진에 대한 것을 어디서 어떻게 알아봐야 하나 하고 걱정했던 것이 우스울 정도였다.

서도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누구든 그에 대해 하루 종일 떠들어댈 수 있을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사람들은 서도진을 찬양하고 떠받들다시피 했고 그가 속한 가문, 그의 스승, 그의 아버지와 형, 여동생까지 모두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그들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 자랑스러운 것처럼 떠들어댔다.

아무 상관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었는데도 그랬다.

사인걸은 원래의 세계에서 느꼈던 열등감을 이번에도 다시 느끼게 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원래의 세계에서는 사인걸이 서도진보다 훨씬 젊었다.

그가 알기로 아마 열세 살 차이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오히려 사인걸이 다섯 살이나 많았다.

사인걸은 좀 더 젊고 강한 모습으로 눈을 떴으면 좋았을 거라고 아쉬워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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