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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왜 데이트마저 전투적인데 (71/153)


71. 왜 데이트마저 전투적인데
2022.04.07.


원래 행사를 한 번 진행하려면 몇십 번의 시행착오와 수정을 거친다.

그러나 이번 데이트 계획만큼은 십 단위를 넘어 백 단위로 넘어갔다.

그만큼 중요한 행사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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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천 마리 정도 더 줄여야겠어.”

제롬은 며칠 사이 낚시의 달인이 되어갔다.

실제로 물 반, 고기 반까지 물고기를 담가도 보았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현실의 차이는 꽤 있었다.

낚시가 잘 되는 문제 이전에 수면에 퍼덕이는 물고기들은 예쁘지 않고 징그러웠다.

데이트의 배경이라면 예뻐야 한다.

하지만 적당히 물고기가 잘 낚여 즐겁기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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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렵네…….”

제롬은 낚싯대를 드리운 채 한탄했다.

사실 제롬도 낚시가 처음이라 뭐가 즐거워 할 포인트인지를 알 수 없었다.

사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리시스도 낚시 경험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제롬 자신이 재미있을만 해야 두 분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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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걸 어떻게 하면 재미있냐고!”

물고기가 많으면 수면 위로 퍼덕이는 게 징그럽고, 낚아올리기 바빴다.

반대로 물고기가 적으면 멍하니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하는 데까지는 해 보아야지.

***

만반의 준비를 마친 데이트 날이 되었다.

제롬의 까칠해진 얼굴과 대조되게 키에르트는 온몸의 피부에서 반질반질 윤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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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보기 좋은 외모를 가꾸는 것도 매너의 하나니까.’

키에르트는 참 잘 배운 황제이자 남자였다.

데이트 전날까지 과로도 하지 않고, 지나친 운동도 삼갔다.

숙면을 취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다 했음은 물론이다.

온갖 피부관리와 미모에 좋다는 건 다 골라먹었다.

그 결과 키에르트는 두 눈으로 바라보기 어려울 만큼 화사하게 빛났다.

안 그래도 매끄러운 피부는 티 한 점 보이지 않았고, 머리카락은 자수정을 갈아 만든 듯 빛났다.

몇 번이고 다시 맞추고 수정한 의상도 딱 맞았다.

낚시라는 콘셉트에 맞게 청순하고 해사했다.

얼마 전 합궁의 날 리시스가 편하게 내린 머리카락에 호감을 표했던 것에 착안했다.

황제의 위엄이나 빈틈없는 깔끔함은 포기하고 청년다운 편안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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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키에르트를 마주 본 리시스의 반응은 모두를 흡족하게 해 주었다.

리시스는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키에르트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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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혹시 앞으로 전쟁터에 또 나서게 되실 일이 있으면 투구 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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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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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습으로 전쟁터 나가시면 생존 확률 올라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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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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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우셔서요.”

리시스는 최고의 찬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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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인가?! 아직 방심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시는 건가?!’

시종들은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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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군.”

쑥스러움을 숨기지 못해 얼굴을 붉힌 키에르트는 리시스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당사자인 두 사람의 의사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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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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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걸어가요?”

리시스는 황궁 안에 호수가 있다는 걸 몰랐다.

말이나 마차가 준비되지 않아 당황했다.

키에르트는 싱긋 웃으며 팔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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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 낚시터를 마련해 두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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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터를요? 황궁 안에요? 어떻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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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보면 알겠지?”

사전 준비는 제롬이 많이 힘을 썼지만 키에르트도 한 번 사전점검을 위해 방문했다.

일단 키에르트의 눈에는 썩 괜찮았다.

리시스의 마음에도 들기를 바라며 키에르트는 에스코트를 시작했다.

***

낚시터까지 가는 길에도 준비해 둔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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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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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두 번째 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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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키에르트는 리시스에게 주었던 꽃을 순서대로 가는 길에 심도록 지시했다.

몇 걸음 걸을 때마다 꽃의 종류가 바뀌었다.

그 화단에서 키에르트는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한 송이씩 꽃을 꺾어 리시스에게 주었다.

한 송이 두 송이 모이다 보니 낚시터에 도착할 즈음엔 커다란 꽃다발 하나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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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뻐요. 그리고 그걸 다 기억하고 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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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더군.”

키에르트도 일부러 외워둔 건 아니었다.

리시스가 꽃 한 송이에 감동하던 것이 뇌리에 박혀 그 후에도 계속 기억이 남았을 뿐이다.

길고양이에게 생선조각 하나 던져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친절에서 시작한 짓이었는데.

이제는 리시스가 꽃을 받고 밝아지는 얼굴을 보는 것이 하나의 낙이 되었다.

키에르트의 마음이 잔뜩 담긴 꽃다발을 든 리시스는 어느 때보다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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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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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요?”

키에르트는 담쟁이장미로 덮인 철문 앞에 섰다.

저택의 정원으로 향하는 문 같은 생김새였다.

기다리고 있던 문지기들이 양쪽으로 문을 열자 햇살을 반사하며 보석처럼 빛나는 새파란 호수가 눈앞에 넓게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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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끽해야 작은 방 하나 크기의 웅덩이를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태어나 본 적도 없는 바다 같은 드넓은 호수였다.

리시스가 보았던 것 중 가장 큰 물은 전선에 있던 무아렌 강이었다.

평야를 가로지르는 무아렌 강은 수심이 깊고 강폭도 넓어 ‘긴 바다’라는 별명도 있었다.

하지만 두 나라가 늘 대치중이라 무아렌 강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물가에서 활을 쏘았을 때 아슬아슬하게 반대편 물가까지 닿는 거리인 탓이었다.

때문에 무아렌 강은 늘 바라만 보는 곳이었다.

다만 식량 공급을 위해 조심조심 강가에서 낚시를 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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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공주라서 절대 안 된다고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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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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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치사하다고 렉싱턴 장군님한테 투정도 많이 부렸었어요.”

물에 잠긴 낚시찌를 바라보던 키에르트가 리시스를 돌아보았다.

리시스는 추억에 잠긴 듯 초점 없는 눈을 수면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가끔씩 찰랑이는 물결처럼 리시스의 머리카락도 살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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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 장군이 꼭 나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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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렉싱턴 장군님이 전선에서는 보호자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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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보호해 줄 수 있어.”

고집스러운 목소리에 리시스가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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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세상에서 그대의 편이 렉싱턴 장군 하나뿐인 것처럼 말하지 마.”

리시스는 방긋 웃었다.

말만이라도 고마웠다.

그리고 실제로도 키에르트는 리시스를 많이 보호해 주고 있었다.

보호뿐일까.

평생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잔뜩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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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하고 있어요. 지금은 폐하가 제일 강한 제 편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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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남편이니까.”

‘제일’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키에르트는 치켜 올라가려던 눈썹을 다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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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는 저한테 이런 즐거운 시간도 만들어 주시고, 꽃도 주시고, 선물도 주시고, 궁도 주시고, 드레스도 빌려주시고, 돈도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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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상 급하기도 하고 알차게 빼먹으려고 작정한 것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키에르트는 뭐든 흔쾌히 내주었다. 오히려 생각한 것보다 더 얹어 준 것이 대부분이었다.

번번이 고맙다는 인사를 놓쳤다.

했었어도 내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은 품고 있었다.

마침 이렇게 툭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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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협정 때문이라고 해도 저한테 굳이 이렇게까지 잘해주실 필요는 없는 거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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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괴롭힐 이유도 없었지. 잘 지내면 더 좋은 거고.”

리시스의 이어지는 찬사에 키에르트는 겸연쩍어 괜히 더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하지만 리시스는 그래도 꿈쩍없었다.

키에르트가 은근히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것을 이제는 리시스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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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대 인간으로 감사해요. 그리고 폐하랑 이렇게 지내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키에르트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을 것이다.

친한 주변 사람들이 계속 다쳐나갔을 것이고, 렉싱턴 장군도 어느 날인가에는 목숨을 잃게 되었을 수도 있다.

빈곤하고 힘든 생활이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춥고, 배고프고, 모든 것이 모자란 생활.

지금 이렇게 지내는 나날을 상상도 못 한 그 순간들.

황후가 되었어도 똑같았을 수 있다.

소외되고 무시받는 공주로도 살아봐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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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말로, 그대가 낯선 이 땅에서 쉬란을 위해 노력해줘서 감사하지. 오히려 내 쪽이 더 감사할 일이야.”

키에르트는 감사를 감사로 돌려줬다.

에드린의 공주가 작정하고 목을 따려 들었다거나, 황궁 안의 평지풍파를 일으키려 들었다면 그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서로 감사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하핫 어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던 중 리시스의 낚시찌가 쑥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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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리시스는 황급히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제롬이 최적의 비율을 찾아 세심하게 개체수를 조정한 보람이 돌아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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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잡았어요!”

리시스는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낚아올렸다.

아무리 생선이어도 데이트니까 예뻐야 한다는 제롬의 지론이 들어간, 신중에 신중을 기해 고른 물고기였다.

리시스는 자신의 손으로 잡아올린 물고기를 보며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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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으로 물에서 난 식재료를 공급하다니!”

제롬이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었다. 하지만 리시스가 기뻐하니 뭐든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키에르트도 리시스가 기뻐하니 덩달아 기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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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 낚시에도 소질이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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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저 낚시도 잘하나 봐요! 이렇게 된 이상 제가 여기서 제일 큰 물고기를 낚아 폐하께 선물해 드릴게요!”

촤악!

그 순간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고래……, 아니 고래만 한 크기의 물고기가 펄떡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리시스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오늘의 목표가 정해진 순간이었다.

뒤에서 혹시 시키실 일이 없을까 대기하고 있던 제롬의 어깨가 움찔했다.

아니, 안 되는데……, 이게 아닌데…….

지금까지는 계획대로 아름답고 한적한, 예쁜 데이트가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분위기가 전투적으로 흘러버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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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그렇다면 나도 질 수 없지.”

거기에 같이 불이 붙어 소매를 걷어붙이는 황제 폐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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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또 낚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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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군! 이번 건 제법 큰데!”

본격적으로 낚시에 매진한 두 사람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바가지로 퍼담는 수준으로 물고기를 낚아댔다.

어딜 봐도 데이트가 아니라 낚시 대회였다.

그래도 제롬은 인내심을 가지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저러다 지치시면 다시 앉아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시겠지. 그럼 그때 적당히 다과를 들이면서 예쁜 티세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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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저, 저!”

제롬의 계획은 이번에도 빗나갔다. 아주 대처할 수조차 없는 방향이었다.

설마했던 그 고래가 리시스의 미끼를 물어버렸다.

흥분한 리시스는 온몸으로 낚싯대를 붙잡았다.

사건은 그 순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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