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 리시스 (83/153)


83. 리시스
2022.05.19.



16549372343894.png

“흡……!”

리시스는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나 키에르트의 단단한 팔이 리시스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모닝키스가 아니었다.

그리고 닿은 입술의 모양도 모닝키스와는 달랐다.

16549372343894.png

“폐, 으읍……?”

키에르트를 부를 틈도 없었다.

틈이 생기려고만 하면 득달같이 달라붙어 막아버렸다.

숨결 하나 새어나가지 못하게 입술이 밀착되었다.

입술은 입술로, 몸은 몸으로 결박되었다.

16549372343894.png

“파하!”

겨우 입술이 떨어졌을 때, 리시스는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절박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그도 잠깐, 다시 입술을 찾는 키에르트의 갈구에 다급히 두 손을 올렸다.

16549372343894.png

“자, 잠깐, 잠깐, 폐하!”

 

16549372343914.png

 
리시스의 손바닥에 입술이 막힌 키에르트가 눈을 찌푸렸다.

아직도 모자랐다.

아니, 한참 모자랐다.

리시스의 입술이 없으면 자신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리시스가 간절했다. 리시스를 원했다.

입술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통틀어, 리시스가 필요했다.

이미 리시스의 입술에 취해버렸음에도.

16549372343894.png

“하, 하루에 키스는 한 번…….”

16549372343921.png

“……더.”

16549372343894.png

“예에?”

키에르트는 몽롱한 눈으로 리시스을 바라보았다.

리시스는 그 눈빛에 홀린 듯 덩달아 멍해졌다.

키에르트의 입을 막은 손가락 사이로 키에르트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입술을 파고들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리시스는 키에르트의 목마른 몸짓에 덩달아 입술이 말랐다.

16549372343921.png

“……더 하면 안 되나?”

재촉해 오는 낮은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리시스는 곤란한 듯 입술만 달싹였다.

여기서 허락해 버리면 입술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홀랑 잡아삼켜질 것 같았다.

그러나 놓아버리면 그 갈증이 자신에게 옮겨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16549372343894.png

“……왜요?”

겨우 할 수 있던 것은 이유를 묻는 것뿐이었다.

이유라도 있으면 뭐라도 달라질 것 같아서.

그러나 키에르트는 빙 돌아가지 않았다.

16549372343921.png

“하고 싶어서.”

16549372343894.png

“…….”

리시스는 정면에서 부딪쳐오는 충격에 말을 잃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조르듯 입술 위에서 숨결이 지분거렸다.

16549372343921.png

“그대에게 키스하고 싶어서, 라는 이유로는 안 되나?”

솔직한 욕망은 그 어떤 이유보다 강력했다.

리시스는 도망가지도, 그렇다고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갈팡질팡했다.

자신의 마음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섣불리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16549372343921.png

“싫은가?”

리시스가 망설이자 키에르트가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쉬웠다.

16549372343894.png

“아뇨.”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자 칭찬처럼 입술이 다시 한번 닿았다.

이번에는 폭풍처럼 밀려들어오는 대신, 봄바람처럼 살랑이며 입술을 스쳤다가 떨어져나갔다.

달콤함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입술이 떨어지고도 아쉬움에 눈을 뜨지 못할 만큼 달았다.

16549372343921.png

“사과해야 하나?”

키에르트가 속삭였다.

리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키에르트는 기쁜 듯 리시스의 몸을 더욱 힘주어 꽉 안았다.

16549372343921.png

“이대로 그대를 놓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되나?”

키에르트의 뜨거운 체온이 몸에 옮겨붙었다.

거절할 수 없는 따스함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그 누구도 리시스의 몸을 이렇게 뜨겁게 끌어 안아주지 않았었다.

언제나 스치는 온기가 있었을 뿐이다.

처음으로 자신을 사로잡는 뜨거운 온기는 매력적이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리시스는 자신의 욕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6549372343894.png

“네.”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키에르트는 리시스의 몸을 덥썩 안아올렸다.

16549372343894.png

“꺅!”

놀란 리시스가 키에르트의 목을 끌어안았다.

키에르트는 화답하듯 리시스의 허리와 무릎을 안은 팔을 더 꽉 조였다.

발로 문을 차 열어젖힌 키에르트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었다.

16549372343894.png

“어, 어딜 가시는…….”

뒤따르던 시종과 친위대까지 물린 키에르트는 곧장 부부궁으로 향했다.

키에르트의 걸음이 향하는 방향을 알아차린 리시스는 발개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이러려고 만든 부부궁이었지만 이렇게 안겨서 가게 될 줄은 몰랐다.

황후궁에서 부부궁까지는 멀지 않았다.

키에르트는 부부궁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리시스의 입술부터 찾았다.

16549372343894.png

“으읍……!”

이제는 사과하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아주 제멋대로였다.

하지만 리시스도 화내며 밀치는 대신 키에르트의 머리를 끌어안고 입술을 받아들였다.

조급함이 묻어났던 입술이 한차례 숨을 돌리고 나서는 다시 부드러워졌다.

입술의 모양을 그리듯 천천히 표면을 스치다가, 도장을 찍듯 꾹 눌러보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서툴기 그지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순수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모양새이기도 했다.

16549372343921.png

“후…….”

입을 맞추는 사이 어느새 부부궁의 침실이었다.

키에르트는 두 팔을 리시스의 머리 양 옆에 짚어 몸을 떨어뜨리며 리시스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대로 더 흥분해버리면 자신이 어디까지 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한 박자 늦추듯 숨을 몰아쉬며 내려다본 리시스의 모습에 키에르트는 울컥 솟구치는 충동을 느꼈다.

16549372343921.png

“내가 말한 적 있던가?”

16549372343894.png

“뭘요?”

16549372343921.png

“그대는 참 예뻐.”

16549372343894.png

“…….”

리시스는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키에르트도 마찬가지로 잘생겼다고 돌려줘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한 마디가 몸에 불을 붙여버렸다.

입이 녹아서 달라붙었다.

16549372343921.png

“귀엽고, 예쁘고, 아름답고. 매력 있지.”

16549372343894.png

“…….”

리시스는 마주친 눈을 피하지도 못하고 쌕쌕 숨만 몰아쉬었다.

몰아치는 칭찬세례에 몸 둘 바, 눈 둘 바를 다 모르겠다.

키에르트의 몸 아래에서 손가락만 꼬물거리는 것이 다였다.

16549372343921.png

“이 머리카락은 처음 본 순간부터 귀엽다 생각했어. 흉폭한 병아리이긴 하지만.”

16549372343894.png

“……흉폭한 병아리요?”

자연스럽게 넘어가려다 응? 하고 리시스가 되짚었다.

키에르트는 장난에 성공한 어린애처럼 키득키득 웃으며 리시스의 옆머리에 입술을 묻었다.

16549372343921.png

“응, 꼭 병아리 털처럼 보송보송하고 노란데 그렇게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잖아. 여차하면 잡아먹힐 수도 있으니까.”

16549372343894.png

“…….”

칭찬인가 욕인가.

흉폭하다는 건 전쟁터에서 대부분의 경우 칭찬이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흉폭하다는 말을 들으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리시스의 미묘하고 찝찌름한 눈빛에, 키에르트는 이번엔 눈가에 입을 맞췄다.

16549372343921.png

“볼 때마다 조마조마했던 덕분인가. 이제는 그 위협적인 눈빛만 마주하면 가슴이 뛰어.”

16549372343894.png

“…….”

칭찬인 것 같기도 하고…….

리시스의 미심쩍은 눈빛은 쉬 거둬지지 않았다.

하지만 키에르트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눈빛에 들어섰던 날카로운 기운은 무뎌졌다.

16549372343921.png

“계속 쉬란의 황후로 있어 주면 안 되겠나?”

16549372343894.png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생각이에요.”

16549372343921.png

“계속 내 곁에서.”

16549372343894.png

“쉬란의 황후라면 그렇게 되겠죠?”

이치에 맞는 대답이었지만 키에르트는 뭔가 부족했다.

불만스러운 표정에 리시스도 고민에 빠졌다.

뭐가 부족하신 걸까……, 뭐가 불만이신 걸까…….

자신은 이미 키에르트의 곁에 딱 달라붙어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이렇게 입술을 맞대고, 몸을 끌어안는 일도 키에르트랑만 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모르겠다.

16549372343894.png

“왜 불안해하시는 거예요? 뭘 불안해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리시스의 안목은 정확했다.

키에르트 스스로조차도 자신이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리시스의 말을 듣고 나서야 몸을 가득 채우고 안달 내는 이 감정의 출처가 불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6549372343921.png

“……내가, 불안해하고 있었군.”

16549372343894.png

“네. 그래 보여요.”

불안이라.

키에르트에게는 몹시 생소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름을 붙일 만한 것이 없었다.

불안은 이 감정의 정확한 이름이었다.

16549372343921.png

“다른 사람이 그대를 탐내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

16549372343894.png

“그 로구안 놈 때문에 많이 불쾌하셨어요?”

16549372343921.png

“응.”

16549372343894.png

“쫓아내셨잖아요.”

16549372343921.png

“그놈 하나뿐일까.”

16549372343894.png

“또 있을까요?”

16549372343921.png

“그대가 황후로서의 영향력이 커지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어떤 마음을 먹은 놈이든 달라붙겠지.”

말을 하며 키에르트는 깨달았다.

자신이 부족한 탓이었다.

자신이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더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하지만 무엇을 더 가지고, 갖춰야 이 불안감이 사라질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16549372343894.png

“그래도 지금은 폐하의 아내이자, 쉬란의 황후잖아요.”

16549372343921.png

“그래, 나의 아내지.”

키에르트는 리시스의 작은 몸을 끌어안았다.

자신의 품 안에서 팔딱거리는 작은 생동감은 그의 커다란 몸 전체를, 영혼 전체를 울렸다.

이것을 잃는다 생각하니 가슴이 타들어갈 것 같았다.

키에르트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평생 무언가를 이렇게 가슴으로 안았던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자신에게 주어졌던 모든 것들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었다.

황태자이기 때문에, 황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곁에 있는 것들은 오히려 자신의 소유가 아니었다.

사람이 숨을 쉬는 것을 공기를 소유한다 느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니 있다가 사라지는 것 역시도 상실이 되지 않았다.

16549372343921.png

“그대를 잃는 것이 두려운 모양이야.”

지금 리시스를 가졌다 하기도 어렵지만, 곁에서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다.

영영 다시 못 보게 될까봐.

이렇게 손을 뻗어도 닿지 못하게 될까 봐.

16549372343894.png

“걱정마세요. 동맹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예요.”

리시스가 쉬란을 떠난다고 해 보았자 에드린으로 돌아가는 일뿐일 것이다.

에드린 왕이 아무리 멍청하다고 한들 스스로의 목을 옭아매는 짓까지 하지는 않는다.

키에르트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키에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아쉬워하는 것이 황후가 아니었다.

황후는 사라져도 다시 들일 수 있다.

황후감으로 줄을 설 사람이 끝도 없다.

자신의 황후이기 때문에 리시스가 소중한 것이 아니었다.

리시스.

그 이름이 키에르트의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이미 박혀 있었다.

낙인처럼 깊숙이 파고든 이 이름을, 과연 자신의 영혼에서 다시 파낼 수 있을까?

키에르트는 조심스럽게 품안의 리시스에게서 거리를 벌려 보았다.

그 작은 틈새로도 세상의 모든 바람이 불어온 양 가슴이 휑하게 비었다.

16549372343894.png

“폐하?”

리시스가 말간 눈으로 키에르트를 올려다보았다.

키에르트는 처음으로 자신의 가슴을 채운 존재를 불러보았다.

16549372343921.png

“리시스.”

 

16549372493449.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