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3화
제1화. 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2)
전투복을 갖춰 입은 후에 장정들은 다시 연병장에 모이게 되었다.
각 중대별로 모이게 된 장정들. 그들 앞에 조교가 등장했다.
"지금부터 군 생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제식 훈련을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본 조교가 ‘3번 기준!’이라고 외치면 3번 장정은 손을 번쩍 들면서 ‘기준!’이라고 외칩니다. 훈련소에 들어갔을 때에는 ‘3번 훈련병 XXX 기준!’이라고 자신의 관등성명을 크게 외치면 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뭐겠습니까."
조교의 물음에 장정들은 입을 다물었다.
방금 한 설명도 잘 이해 못하는 장정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강진은 알고 있었다.
‘목소리지.’
이강진이 속으로 몰래 대답했을 때, 조교도 때마침 같은 대답을 들려줬다.
"바로 목소리입니다. 군대에선 목소리 무조건 크게 크게 외칩니다. 알겠습니까."
"예."
"목소리 작습니다. 방금 조교가 뭐라고 했습니까. 크게 크게 외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조교의 목소리에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한 명의 기백이 수백 명을 기죽게 만들었다. 이것이 조교의 위력이다.
장정들은 반사적으로 ‘네!’를 외쳤다.
기준 잡는 것을 시작으로 오와 열 맞추는 법 등을 알려주는 조교.
시간이 지날수록 이강진의 한숨은 더욱 짙어졌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이 거지 같은 오와 열 맞추기를 다시 하게 될 줄 몰랐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답답해 죽겠네!’
장정들이 너무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강진은 장정들, 여기에 더 나아가 조교들까지 포함해서 가장 짬을 많이 먹은 남자다. 이강진보다 더 짬이 되는 사람은 간부들을 제외하고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병장 만기 제대였으니까.
그러다보니 우왕좌왕하는 장정들의 모습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이강진은 유격 훈련 당시 조교까지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장정들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을 보고 복창이 터질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강진이 속해 있는 중대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다른 중대는 더 가관이었다.
만약 이강진이 조교였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얼차려를 부여했을 것이다.
‘얼차려가 뭐냐. PT체조 8번 정도는 해야지!’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무거운 방탄모를 착용하고 양 팔을 벌린 채 다리를 들어 올려 좌, 우로 반복하는 지옥 같은 동작!
만약 이 자리에서 PT 체조 8번을 소화하라고 하면, 90퍼센트 이상은 다 나가떨어질 것이다.
오와 열 맞추는 방법이 끝난 뒤,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다음, 거수경계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오른쪽 손바닥이 보이지 않도록 손을 펼친 후, 눈썹 끝에 손가락 끝이 위치하도록 들어 올리면 됩니다. 본 조교가 먼저 시범을 보일 테니, 눈으로 잘 보고 기억하면 됩니다."
조교가 거수경례를 시전했다.
"충! 성!"
우렁찬 목소리였다.
하지만 목소리만 클 뿐. 이강진이 보기에는 자세가 영 별로였다.
‘저 일병 조교, 더럽게 못하네.’
마음 같아선 이강진이 직접 나서서 시범을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강진은 거수경례가 특기다. 예전에 지나가던 대대장에게 목소리를 잔뜩 높이고 각 제대로 잡은 채 거수경례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대대장이 이강진을 보자마자 했던 말이 있었다.
너, 포상.
덕분에 이강진은 기존에 받아뒀던 4박 5일 포상휴가에 대대장한테 받은 2박 3일 포상휴가까지 붙여서 근 1주일의 휴가를 즐기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붙었던 별명이 바로 ‘경례의 왕’이었다.
물론 장정들이 보기에는 ‘와!’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한 거수경례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강진은 아니었다.
거수경례 이후에 좌로 돌아, 우로 돌아, 뒤로 돌아 총 ‘돌아 3총 세트’를 연달아 본보기로 보여주는 조교.
차렷, 열중 쉬어 자세도 보여줬으나, 이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우리 부대 사람들이 훨씬 더 잘하겠다.’
조교의 시범이 끝난 뒤.
소대별로 흩어져서 제식 훈련을 이어가게 되었다.
가장 먼저 거수경례 차례.
"전방에 대하여 경롓!"
"충성!"
이강진을 비롯해 장정들이 생애 두 번째 거수경례를 시전했다.
장정들의 거수경례를 쭉 훑어보던 또 다른 조교가 이강진을 가리켰다.
"125번."
"125번 훈련병, 이강진!"
이번에도 무의식적으로 관등성명이 튀어나왔다. 습관이라는 게 이래서 참 무섭다.
"앞으로 나와 보도록."
조교는 이강진을 불렀다. 왜 불렀을까? 조교가 그를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뒤로 돌아!"
오른쪽 발끝을 세워 뒤쪽에 붙인 후에 뒤로 돌기를 시전했다.
완벽한 턴이었다.
조교의 눈이 가늘어졌다.
"전방에 대하여 경례!"
"충! 성!"
쩌렁쩌렁한 목소리. 장정들뿐만 아니라 조교들마저 이강진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이강진에게 거수경례를 시킨 조교는 방금 전, 장정들 앞에서 시범을 보였던 조교에게 외쳤다.
"일섭아. 얘가 너보다 더 잘하는 거 같은데?"
"그럴 리가 없지 말입니다, 김수완 병장님."
"와서 봐봐."
김수완 병장은 정일섭 일병을 호출했다.
순간 이강진은 일이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안 되는데.’
이강진의 군 생활 마음가짐 중 하나.
중간만 가자.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의 눈에 너무 띄고 있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제식이 이미 몸에 베여버린 탓에 자신도 모르게 알아서 척척 해내버리고 있었다.
군대에서 당했던 세뇌 교육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125번. 다시 한 번 해보도록. 자, 경례!"
"충성."
이강진은 일부러 어설픈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그러자 김수완 병장이 바로 쓴 소리를 내뱉었다.
"어허. 아까는 그렇게 안 했잖아."
"······."
이미 김수완 병장의 관심을 사버리고 말았다.
"아까 했던 것 그대로 해봐. 입대 1일차가 일병 조교보다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라고."
이강진의 승부욕을 은근히 자극하는 김수완 병장이었다.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병장이었다.
‘그래, 뭐. 까짓것 시범 한 번 보여준다는 셈 치자.’
다시 한 번 전방을 향해 거수경례를 시전했다.
칼 같은 동작. 자로 잰 듯한 팔 각도.
그리고······.
"추우웅! 서어엉!"
복부에서 울려나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거수경례였다.
이 정도는 되어야 대대장에게 포상휴가 정도는 받을 수 있다.
정일섭 조교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처음에는 입대 1일차가 자신보다 거수경례를 더 잘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고 확인한 이상, 인정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김수완 병장은 정일섭 일병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일병 정일섭."
"좀 더 분발해라, 일섭아."
"······."
입대 이후 최대의 굴욕을 맛봤다.
* * *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이강진은 장정들과 함께 병사 식당을 찾았다.
8명이 나란히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베레모를 벗은 후에 식기를 들고 식사를 진행했다.
저녁 식사를 보자마자 이강진의 입에서 다시 한 번 한숨이 새어나왔다.
똥국에 배추김치, 조기튀김, 밥, 콩나물무침.
이번이 몇 번째 한숨인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였다.
부식으로 나온 콘 아이스크림이 제일 나아 보였다.
‘맛없는 건 여전하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군대 식당에서 나오는 밥의 맛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건더기 하나 없는 똥국을 조금 마시다가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은 이강진.
그러나 다른 장정들은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었다.
배가 많이 고팠을 것이다. 게다가 정신적인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니, 더더욱 굶주림이 심하게 느껴졌을 터.
하나 이강진은 달랐다.
‘그냥 아이스크림만 먹고 나가고 싶네.’
그렇게 되면 저녁 때 배가 너무 고파서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적우적 강제로 식사를 진행했다.
‘맛다시 하나만 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무리 맛없는 밥이라도 맛있게 만들어줄 수 있는 마법의 양념장!
오늘따라 이 마법의 양념장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 * *
저녁에는 할 일이 또 있었다.
장정들이 입고 온 사복을 상자에 담아 각자 집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그 안에 가족들에게 보낼 편지도 같이 작성해서 동봉할 거라는 게 조교의 설명이었다.
각자 바닥에 드러누운 채 옷과 함께 보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강진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몸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라는 말 정도가 다였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옆에서 엎드려서 편지를 작성하던 장정 하나가 머리를 푹 숙였다.
뚝, 뚝, 뚝.
굵은 눈물방울이 편지 위로 떨어져 내렸다.
"엄마······ 흐어엉······!"
이강진은 남자를 바라봤다.
‘덩치는 산만한데. 눈물이 많은 녀석이네.’
그렇다고 이걸 가지고 남자를 놀리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가족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강진도 처음에 입대했을 때에는 눈시울이 붉어졌던 적이 몇 차례 있었으니까.
한 명이 울기 시작하니 우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생활관 내에는 훌쩍이는 소리가 가득했다.
군대라는 게 참 묘한 곳이다.
가족과 연인, 그리고 친구들의 얼굴을 보는 게 당연했던 일상을 너무나도 소중했던 기억으로 좋게 포장을 시켜준다.
거기서 오는 그리움.
이것은 슬픔이 되지만, 때로는 군 생활을 버틸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들, 군대가 좋은 곳이라는 건 아니다.
‘군대는 뺄 수 있으면 빼는 게 가장 좋지. 갔다 와 봤자 몸만 상하고. 뭐 대우 받는 것도 없으니까.’
다치면 본인만 손해다.
결국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
군대는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