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더니 입대 전날 9화
제2화. 신병교육대, 입소! (4)
입소 1주차에는 사실 큰 훈련 같은 건 없었다.
2, 3, 4주차에 사격, 수류탄, 행군, 각개전투, 그리고 화생방까지. 굵직한 훈련들이 전부 다 몰려 있다.
1주차 때에는 훈련소 적응 기간이라고 보면 된다.
제식 훈련, 그리고 약간의 정신교육 등. 이런 것만 계속 반복된다.
706 보충대에서도 이미 제식 훈련을 받긴 했지만, 신병교육대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간 제식 훈련을 받게 된다.
가장 큰 차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역시 집총동작.
세워 총, 받들어 총, 좌경계 총, 앞에 총 등 개인화기를 이용한 제식 동작들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훈련이다.
훈련병들은 단독군장 차림으로 땡볕 아래에서 계속 집총동작 훈련을 받았다.
총이라는 게 살면서 자주 만지는 그런 흔한 물건이 아니다. 오로지 군대에 왔을 때에만, 혹은 어른이 되어서 개인적으로 사격 훈련을 받는다거나 혹은 야생동물을 사냥할 때에나 진짜 총을 만져볼 수 있다.
흔치 않은 기회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다 원하는 그런 기회는 아니었다.
훈련병들은 벌써 땀범벅이 되었다. 분명 1월일 텐데 왜 이리 땀이 나는지 원······.
잠시 후. 조교가 이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 시간을 부여했다.
"앉아서 10분간 휴식한다. 전원, 탈모!"
"탈모!"
머리가 벗겨진다는 의미의 탈모가 아니었다. 방탄모를 벗으라는 뜻이었다.
하나 아직까지 탈모라는 단어에 적응이 안 된 훈련병들은 조교들 몰래 키득키득 웃음소리를 냈다.
쉴 때에도 주의 사항이 있었다.
백우호가 물을 마시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야!!!"
버럭 소리를 치는 조교.
백우호는 화들짝 놀랐다.
"배, 백이십육 번 훈련병 배, 백우호!"
"누가 총 놔두고 다니라고 했어!! 정신 안 차려?"
"죄, 죄송합니다!"
어딜 가든 항상 총은 가지고 가야 한다. 볼 일을 보러 화장실에 갈 때에도 마찬가지다.
개인화기는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생각하고 가지고 다녀야 하지만, 이제 막 입소한 훈련병들에게 이런 습관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백우호 같이 혼쭐이 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126번 훈련병. 벌점 1점 줄 테니까 그리 알아라."
조교의 말에 백우호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벌점 15점이면 군기교육대다. 그런데 벌써 1점을 받아버렸으니, 그의 표정이 어두운 것도 당연했다.
물을 마시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백우호는 한탄을 했다.
"아니, 총 두고 간 게 그렇게까지 혼날 일인가?"
"그러게."
김철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나 이강진은 달랐다.
"얼차려 안 받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예전에 이강진이 소속되어 있던 분과의 이등병이 총을 두고 생활관에 갔다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이강진은 자기 밑으로, 이등병 위로 싹 다 막사 뒤로 집합시킨 적이 있었다.
그 뒤에 이등병은 거의 멘탈이 가루가 될 정도로 선임들에게 갈굼을 받았었다.
그것에 비하면 벌점 받고 끝난 건 애교 수준이다. 이강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집총동작 훈련을 마친 후에 점심 식사가 이어졌다.
1시까지 휴식을 끝낸 훈련병들은 막사 아래로 다시 집합했다.
이다음은 주간정신교육 일정이 잡혀 있었다.
정신교육은 훈련소 교회에서 이루어진다.
출발하기 전에 중대장이 직접 나와 훈련병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대대장님이 직접 교육하실 거니까 ‘절대로’ 졸거나 하지 마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유독 ‘절대로’라는 말을 강조하는 중대장이었다.
"조는 인원 있으면 바로 벌점 10점 때려버릴 테니까 머릿속에 잘 새겨두는 게 좋을 거다."
대대장에게 한 번 미운 털이 제대로 박히면, 그 소대는 퇴소할 때까지 이리 굴려지고 저리 굴려질 것이다.
그래서 대대장이 진행하는 정신교육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이강진은 알고 있었다.
‘큰일인데······.’
이 주간정신교육의 끝이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그 반대다.
조는 인원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결국 따로 얼차려를 받게 된다.
‘어쩐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좋을지 빨리 떠올려야 한다.
그렇다고 이강진이 나서서 훈련병들의 잠을 일일이 깨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대대장의 기분을 좋게 만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드는 작전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한다.
이강진은 자신이 직접 ‘소(小)’가 되기로 했다.
* * *
교회에 빽빽하게 들어선 훈련병들.
음량 체크가 모두 끝난 뒤, 대대장이 강단에 올라섰다.
현무중대 중대장이 직접 거수경례를 했다. 중대장은 뒤에서 간부들과 함께 대기하면서 자는 훈련병이 있으면 빠르게 가서 깨우려고 했었다.
그러나 도중에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고 말았다.
"중대장하고 간부들은 나가 봐."
"하지만······."
"병사들하고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래. 원래 정신교육이라는 건 딱딱하게 진행하면 효과가 없어. 요즘 젊은이들 보니까 유머러스하고 가볍게 강의하는 사람들을 더 선호하더구먼. 나도 이번 기수부터는 스타일을 좀 바꿔보려고. 근데 자네들이 거기 뒤에서 도깨비 마냥 인상 팍 쓰고 병사들 노려보고 있으면 어떻게 편하게 정신교육을 진행하겠나."
"······."
"······."
"······."
현무중대 간부들은 중대장의 눈치를 살폈다.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다. 이건 병사들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간부들한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중대장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에게 거부권은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나가 있겠습니다."
"그래, 그래. 가서 편하게 쉬고 있어."
그건 불가능하다. 행여나 병사들이 대대장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있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릴 것이다.
현무중대 간부들이 모두 나간 뒤.
대대장은 세상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저 미소를 끝까지 유지시켜야 한다!
이것이 이강진과 현무중대 훈련병들에게 부여된 미션이다.
* * *
"다들 이 대대장의 정신교육에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편하게 듣도록."
"예, 알겠습니다!"
훈련병들의 목소리에는 잔뜩 기합이 실려 있었다.
졸면 안 된다! 이걸 수차례 강조했던 중대장의 살벌한 협박 때문이었다.
하나 수면욕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몸도, 마음도 힘든 훈련소 생활. 졸음은 자연스럽게 이들을 유혹했다.
이 유혹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달콤했다. 훈련병들이 점점 하나둘씩 병든 닭마냥 꾸벅 꾸벅 머리를 떨궜다.
김철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대대장은 김철을 가리켰다.
"거기 오른쪽 다섯 번째 줄 끝에 앉은 훈련병."
이강진이 김철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김철은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관등성명을 외쳤다.
"백이십사 번 후, 훈련병 기, 김철······!"
"많이 졸린가 보군."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부정과 동시에 용서를 구했다.
그토록 졸지 말라고 경고했건만.
하지만 대대장의 정신교육은 너무 재미없다. 관심도, 흥미도 없는 강의를 1시간동안 들어야 하니 이만한 고역이 따로 없었다.
대대장은 처음은 ‘허허허.’ 하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가볍게 넘어갔다. 하지만 두 번의 용서는 없다.
정신교육을 진행하던 도중에 대대장이 훈련병들에게 물었다.
"예전에 판문점에서 UN장교가 살해당한 최악의 사건이 있었지. 이때 거의 준전시 상태까지 갔었는데, 혹시 이 사건이 뭔지 아는 훈련병 있나?"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훈련병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곤 없었다.
"125번 훈련병, 이강진!"
대대장이 질문하자마자 바로 손을 들면서 자신의 관등성명을 외치는 이강진.
대대장은 내심 놀랐다.
정신교육을 진행하면, 손을 들고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훈련병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래서 이 놀라움은 배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정답까지 말할 수 있을까?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입니다."
정답이다!
대대장의 관심은 이강진에게 급격하게 쏠렸다.
"사건의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나?"
"1976년 8월 18일에 벌어진 사건이며, UN군이 미루나무 절단을 시도했다가 벌어진 사건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오호, 그런 것까지 알고 있군."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은 정훈교육 시간에 꼭 한 번은 나오는 단골 사건이다. 그러다 보니 이강진은 따로 역사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이 무엇인지 아주 상세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이강진의 적극적인 대답 덕분일까. 대대장의 미소가 짙어졌다.
‘좋아, 이 흐름만 어떻게든 잘 유지해보자!’
이 순간, 이강진은 살면서 처음으로 모범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 * *
현무중대 간부들은 어서 1시간이 흐르기를 애타게 기원했다.
오후 2시.
드디어 대대장이 주관하는 정신교육이 모두 끝났다.
문을 열고 나오는 대대장. 현무중대 중대장은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대대장님!"
대대장의 얼굴 표정은 과연 어떨까?
그는 웃고 있었다.
"중대장."
"대위 윤일원!"
"이번 156기 애들 말이야······ 아주 마음에 들었어! 특히 125번, 그 친구는 정훈교육에 대해서 아주 빠삭하더군! 내가 1개를 질문했다 치면 2개, 아니 10개 이상을 답해!"
"이강진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그 친구한테 전화 포상이라도 내려줘."
"그 훈련병은 저번에도 전화 포상을 받았습니다만······."
"어허! 받았다고 또 주면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신병교육대에선 대대장의 말이 곧 법이다.
없는 규칙도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대대장이다. 그런 대대장의 말을 어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윤일원 대위의 어깨를 토닥여준 뒤에 대대장은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대대장실로 돌아갔다.
교회로 돌아온 윤일원 대위는 이강진을 찾았다.
"이강진."
"125번 훈련병, 이강진!"
윤일원 대위는 그를 향해 엄지를 추켜올렸다.
"아주 잘했어!"
이강진의 활약은 대대장과 중대장을 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